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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의 마음
마치 작년에 둘이 바다에 온 느낌이다.
물론 그때와는 많은 게 다르다. 스킬도 그렇고 상황도 그렇고 바다도 그렇고….
다른 걸 찾는 것보다 그때랑 비슷한 걸 찾는 게 더 빠르겠네.
"진짜…. 너무 이뻐."
에어컨이 틀어져 있는 시원한 방 안에서 창밖을 보며 감탄하는 승희.
"아니…. 바다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왜 안 들어가는 거야?"
"바다요? 들어가고 싶죠. 들어가고 싶은데…. 그럼 살이 타잖아요."
"응?"
"일하러 갔으면서 온몸이랑 얼굴을 태우고 오면 누구라도 놀다 온걸 알아챌걸요?"
"아..."
얼굴이 탄다니. 그런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얼래? 그럼 지금의 나는 어떻지? 나도 얼굴이 탔나?
"다음에 다 같이 오면 그때 들어가죠. 지금 안 들어간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며 나를 보고 베시시 웃는 승희. 그 천연덕스러운 웃음이 참 이쁘다.
"그리고…. 저는 다른 게 하고 싶은데."
그러면서 천연덕스러운 웃음이 요염한 웃음으로 변한다.
하하. 그래. 그렇지. 바다도 좋지만, 더 좋은 게 있지.
안겨 오는 승희. 자연스러운 키스. 서로의 옷을 벗기고 이내 푹신한 침대에서 뒹굴기 시작한다.
자연스러운 스킨쉽, 자연스러운 섹스.
특별한 체위, 요란한 테크닉…. 그런 건 필요 없었다.
익숙한 서로의 몸과 살 내음. 그리고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이어진 것 같은 행위.
몇 번을 했는지는 모른다. 부드럽게, 조금 과격하게, 밥을 먹다가도 하고 잠시 쉬고 나서도 또 했다.
해가 질 무렵에야 잔뜩 지친 승희는 내 품에 안겨서 속삭인다.
“짐승.”
“내가 또 한 짐승 하지.”
재미없는 내 말에도 기분 좋게 웃어주는 승희.
"해도 졌으니 이젠 바닷가를 걸어도 되겠죠?"
"그럼 보러 갈까?"
"근데…. 다리에 힘이 없어…. 씻으러 가지도 못하겠네요."
"그래? 그럼 내가 씻겨주면 되지."
폴터가이스트를 써서 승희를 부드럽게 안아 들었다.
마치 가마를 끄는 가마꾼이 된 느낌.
"아…. 생각해보니 나도 이렇게 할 수 있는데."
"그러네. 뭐, 그냥 가만히 있어. 내가 해줄게."
"히히. 좋네요. 공주님이 된 기분이야."
승희를 데리고 욕실로 데려가 몸을 씻겼다.
알몸의 승희를 씻기면서 다시 불끈불끈하는 게 느껴졌지만…. 됐다. 오늘은 많이 했잖아.
"오빠 정말…. 어쩌다 그렇게 된 거예요."
"초인의 체력. 이게 문제인 거 같아. 엄청나네."
"그러게 말이에요. 작아지는 걸 본 적이 없는 거 같네."
그렇게 몸을 다 씻고 알몸으로 밖에 나가려 하자 승희가 깜짝 놀란다.
"엑? 이대로 그냥 나간다고요?"
"뭐 어때. 누가 볼 사람도 없는데. 게다가 밖은 더워. 여기 날씨 진짜…. 대박이야."
"으음…."
"작년에도 잘만 해놓고."
"히잉. 그래요. 나가요."
해변까지 나가자 폴터가이스트에 올라타 앉아있던 승희가 사뿐하게 내린다.
"우와. 밤은 또 바다가 무섭네. 우와. 이거 뭐에요?"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며 놀라는 승희.
"나도 몰라. 위험한 건 아닌거 같지만, 그래도 구경만 해."
"이쁘다아."
"니가 더 이뻐."
"으아아악! 그런 거 좀 하지 마요! 한동안 안 하다가 또 왜 이런데!"
그러면서 내게 팔짱을 낀다.
알몸의 남녀가 밤중에 바닷가를 산책하는 건…. 뭐랄까 정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나랑 승희는 자연스럽게 그러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팔에 닿는 승희의 가슴에 반쯤 정신이 팔려있긴 했지만…. 뭐 어쨌든 좋다. 이런 게 행복이지.
파도 소리와 부드러운 바람, 발에 밟히는 고운 모래. 그리고 승희.
정말 최고의 시간이다. 살아온 시간 동안 가장 즐거운 순간.
어제까지만 해도 승희와 양양에 다녀온 게 최고의 순간이었는데, 오늘 그 최고의 순간이 갱신됐네.
1등도 승희. 2등도 승희. 근데 어쩌겠어. 좋은 걸 좋다고 하지.
"오빠."
"응?"
"오빠 비밀 많죠?"
슬쩍 찔러보는 말인 거 같기도 하지만, 승희의 목소리는 진지했다.
사실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딨어. 누구나 하나쯤은 비밀이 있을 수밖에 없지.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물어보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런 뜻으로 들리지 않았다. 얘라면 뭐든지 알고 있을 것 같은 느낌?
"많지."
"우와. 뻔뻔해."
"비밀 없는 사람이 어딨어."
"난 오빠한테 비밀 없는데."
"윽. 그래…? 이거 참 찔리네."
잠깐의 침묵.
승희는 뭔가 조심스럽게 말을 고르는 것 같다.
나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느낌?
"너무 고민하지 마요."
"어?"
"지난번에 미나 언니랑 세아한테 다짜고짜 고백한 거. 그때 든 생각이에요."
"음…."
"모르겠어요. 오빠가 어떤 성격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모르니까. 근데 뭐든 그렇게 다 시원하게 밝힐 필요는 없어요. 아마 찝찝한걸 못 참는 성격 때문에 그렇게 다 밝힌 거 같긴 한데…. 사람이 사람을 상대하면서 밑바닥까지 전부 다 드러내는 일은 별로 없다고요."
"아아…."
"그렇다고 비밀을 꼭꼭 숨기고 속이면서 있으라는 소리는 아니고…. 아. 너무 어렵네. 그러니까…."
"상의해라?"
"맞아요! 그거에요. 나뿐만이 아니라 미나 언니나 세아, 안나도 상관없어요. 한 번에 갑자기 빵 터트리려고 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란 말이죠. 그래야 도와주던지 충격을 줄여보던가 하죠."
"음…. 그럼 지금 말하라는 건가?"
"어…. 그건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좋았던 기분으로 끝낼래요. 게다가 뭔지는 모르지만, 알몸으로 바닷가를 걸으면서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듣는 건 좀 아니잖아요?"
"그러네."
"아…. 근데 괜히 말했나. 궁금해지기 시작하네. 으으. 안돼. 머리에서 나가!"
"조만간 나 앉혀놓고 말하라고 하는 거 아냐?"
"으. 몰라요. 진짜 그럴 수도 있을지도. 아냐. 안 그래요. 나는 궁금하지 않다. 나는 궁금하지 않다."
그런 승희의 모습이 재밌어서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었다.
"어? 웃어요? 이 오빠가 비밀이나 만들고 다니면서 웃어?"
"알았어. 안 웃을게. 자꾸 그렇게 발로 차면 아파."
다시 조용해진 나와 승희. 그렇게 말없이 바닷가를 걷는다.
그나저나 날씨는 정말 좋네. 춥지도 않고 불쾌한 것도 하나도 없어.
게다가 좀 더울 거 같으면 숙소로 들어가면 되잖아? 근데 에어컨 고장 나면 조금 골치 아플 수도 있겠네.
그래도 이런 섬인데 물이랑 전기가 문제없다는 게 다행이다.
항상 생각만 했던 건데. 이러면 역시 섬만큼 숨어있기 좋은 곳은 없지.
"벙커 나와서 여기서 살까?"
"으음…. 여기서요?"
"응. 여기라면 일 년 내내 같은 날씨일걸? 게다가 바다도 질리도록 볼 수 있고."
"눈이 보고 싶으면요?"
"그럼 벙커로 가서 보면 되지. 어차피 세아도 게이트는 있으니까. 게다가 너희도 찍으면 되고. 게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순간이동만 찍으면 되니까."
"그러네. 이젠 굳이 장소에 구애받을 필요 없다 이거죠?"
"그치. 너희가 스킬이 별로 없었을 때는 안전을 위해서 벙커에 숨은 거지만, 지금은 뭐…. 어지간한 놈들이 와도 너희가 이기잖아."
"그래도 너무 탁 트인 거 아니에요?"
"탁 트이면 오히려 좋지. 게다가 너희가 봉인 배우면 아예 여기다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깔아놓으면 끝이니까. 뭔가를 노리고 날아오던 놈들도 그대로 바다에 다이빙해버릴걸?"
"천리안이랑 투시에 너무 노출되는 거 아니에요?"
"아…. 근데 뭐 사실 그건 벙커도 마찬가지라."
"그런가. 하긴 그렇네."
"아무튼, 나는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솔직히 조금 살아보고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으니까."
"그건 그렇네요. 그럼 가서 말해봐요. 다들 어떤 생각인지."
"그래."
"그럼 나는 다음에 여기 올 때 처음 온 것처럼 해야겠네."
"미안해. 내 딴엔 니가 요즘 애정이 부족해 보이는 거 같아서 이런 건데."
"뭘 또 미안하대. 미안할 것도 많네요. 그런 생각은 안 해도 돼요. 어차피 다들 여기 오면 신나서 정신없을걸?"
"그런가."
"그럴 거예요. 아참. 오늘은 그럼 어디 갔다 왔다고 해요?"
"음. 인도에 EMP 쓰러 갔다 왔다고 해."
"그래요. 근데 인도요?"
"어. 여기서 조금만 올라가면 인도니까."
"아. 맞네.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인제 그만 들어가죠. 옷도 입고. 침대도…. 좀 정리하고."
"그래. 그러자."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 숙소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승희가 나를 꼭 안더니 말한다.
"고마웠어요. 오늘."
알몸으로 안기며 말하니…. 뭔가 또 아랫도리가 불끈불끈한다.
날씨도 좋은데…. 야외 플레이가 가능하지 않을까?
"으악. 또 힘 들어가는 거 봐! 도망가야겠다!"
그러면서 뛰어가는 승희. 에잉. 그건 나중에 해야겠네. 쩝.
근데 알몸으로 도도도 뛰어가는 승희의 모습이 진짜 야하긴 하다.
가서 잡아야 하나? 자꾸 이런 고민만 하네.
결국, 나와 승희는 옷을 입고 숙소를 정리하고 벙커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아쉬운지 뒤를 한번 돌아보고 게이트를 냉큼 타는 승희.
"안타요?"
"나는 더 둘러보다 갈게."
"아. 그래요? 알겠어요. 몸조심해요!"
"응."
게이트를 닫았다. 홀로 남겨진 몰디브.
뭔가 홀가분해진 거 같긴 한데…. 뭐가 홀가분해졌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는 확실하다. 어쨌든 승희만 믿으면 된다는 것.
승희만 내 편이 돼주면 된다. 그래. 그러면 되는 거야. 과분하게 욕심부릴 필요 없지.
괜한 걱정은 이제 됐으니 이젠 스킬 숙련이나 열심히 해야겠다.
아. 연구소 박살 난 짱개놈들의 반응도 봐야 하는데.
쯧. 언제쯤 편하게 쉴 수 있을까.
해가 진지 얼마 안 됐으니 일단 허브 쪽부터 살펴본다.
버프를 모두 걸고 순간이동. 허브로 가니 뭔가 상당히 어수선하다.
오. 뭔가가 일어나나 본데?
인도 쪽 게이트가 모두 열려있고 그쪽에서 차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다시 들어간다.
뭐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인도에 있는 짱개 기지로 순간이동. 그리고 이곳에서도 뭔가가 진행되고 있다.
가득했던 기척들이 많이 비어있는 모습. 그리고 실시간으로 줄어들고 있다.
천리안과 투시로 살펴보니…. 짱개놈들이 인도 사람들을 다 죽이고 있었다.
폭발이 일어나거나 비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조용한 학살이 있을 뿐.
인도 사람들은 멍하니 앉아있거나 누워서 아무 저항 없이 짱개들에게 죽임당하고 있다.
왜 반항을 안 하지? 스킬 중에 저런 게 있나?
최소 몇천에서 몇만 명은 돼 보이는 인도 사람들인데.
저 많은 인간이 저렇게 꼼짝 못 하고 무력화될만한 스킬을 살펴보다가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아. 광역 수면, 광역 마비, 광역 기절 이건가?
근데 인도 사람들의 상태는 셋 다 아니다.
자는 것도 아니고 마비도 아니고 기절도 아냐. 그럼 뭐지?
침을 질질 흘리는 남자. 몸을 마구 긁는 여자. 바닥을 기는 나이든 남자…. 아. 그래. 저건 스킬이 아닐 수도 있겠다.
음식이나 물에 약을 탔을 수도 있겠네. 마약 같은거. 그게 오히려 더 편할 수도 있지.
어쨌든 인도 사람들은 조용히 학살당하고 있었고 그렇게 인도 사람들을 죽이는 짱개들은 웃으면서 계속 스킬을 쓴다.
음…. 철수 하는 건가? 이해를 못 하겠네.
연구소가 더 없다는 뜻인가? 그럴 리는 없을 거 같은데.
아니면 벌써 인도 사람들을 전멸시킨 건 아닐 거 아냐.
켈커타 말고 다른 지역으로 가본다. 하지만 상황은 비슷하다. 다른 짱개들 본부에서도 똑같이 학살이 이뤄지고 있다.
일단 지켜봐야겠네.
지켜보고, 녀석들이 어디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녀석들이 만약 철수하는 거라면, 시간이 조금 걸릴 거다. 그럼 나는 그동안 봉인 숙련이나 해야겠다.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저놈들 끝나는 걸 기다리면서 숙련하면 금방 마스터 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나는 멀리에서 녀석들을 지켜보며 봉인 숙련을 했다.
숙련하는 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스킬.
녀석들을 지켜보며 나는 계속 숙련했고, 녀석들이 인도 사람들을 다 죽일 때쯤에는 봉인을 마스터 할 수 있었다.
근데 이건 시간 늘어나는 거 말고는 없나? 봉인을 복수로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건 없네. 쩝. 암튼 마스터 한게 어디야. 다음 거나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