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87화 (58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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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정보 수집은 당연히 중요하지만 지겨운 작업인 건 부정할 수 없다.

오전에는 인도의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연구소 쪽이 없나 확인한다.

대부분 연구소 게이트가 열리고 온종일 인도인들을 연구소로 보내는 작업을 하니까.

그리고 오후에는 허브로 가서 보급하는 곳들의 상황을 살핀다. 게이트가 열려있는 곳을 살펴보면 차들이 나오는 곳이 있다.

그런 곳들은 철수하는 곳이니 직접 가서 내 눈으로 한 번씩 확인한다. 그리고 리스트에서 지운다.

"하아."

"왜 한숨이에요."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은 내 옆에 승희가 앉아서 물어본다.

나는 물끄러미 승희를 보다가 그녀의 무릎에 누웠다.

내가 무릎에 눕자 내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왜긴. 잡아 죽여야 하는 놈이 너무 많아서 그렇지."

"어휴. 살벌해라."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계속 내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손은 내 귓가로 움직인다.

"귀 파줄까요?"

"귀?"

"네. 잠깐만 있어 봐요."

내 머리를 살짝 내려놓고 후다닥 서랍장 있는 곳으로 향하는 승희.

그러더니 뭔가를 잔뜩 들고 온다.

"그거 귀이개야? 근데 왜 세 개야?"

"이건 나무 귀이개, 이건 불빛 나오는 거, 이건 철로 되고 동글동글한 것. 다 쓸모가 있는 거라고요."

"으음…. 뭔가 전문가의 냄새가 나는데."

"전문가는 무슨…. 암튼 아까처럼 누워봐요. 어서."

허벅지를 베고 눕는 건 당연히 좋기에 나는 냅다 누웠다.

그렇게 누운 내 머리를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던 승희는 내 귀를 잡고 귀이개로 내 귀를 파기 시작했다.

"뭐지? 왜 깨끗하지? 뭐야. 누가 귀 파주는 사람 있어요?"

"엥? 그럴 리가. 나는 내가 내 귀도 안 파는데."

"근데 왜 이리 깨끗하지? 아, 안쪽에는 좀 있네. 오빠 목욕하면서 귀 씻나?"

"어…. 귀를 안 씻는 사람도 있어?"

"아니. 안쪽까지요."

"글쎄. 어느 기준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 목욕하고 나서 면봉으로 안에 물기 닦아서 그런가?"

"음…. 그런가 보네요. 암튼 자. 이제 말 그만하고, 움직이지 마요."

"니가 물어봤잖아."

"말 그만하래도요."

가만히 입을 다물자 귀이개가 귀 안에서 사각사각하는 소리만 들린다.

아…. 이거 되게 좋네. 느낌이 이상해.

간지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러고 있는 분위기 자체가 너무 좋다.

살살 잠이 올 것 같은 기분이네. 물론 기분만 그런 거긴 하겠지만.

아니다. 승희니까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가장 믿는 여자. 나의 신경안정제. 사랑스러운 여자.

"후. 뭐 별로 없어서 파는 재미가 없네. 몸 돌려봐요."

벌써 한쪽이 끝났다는 게 너무 아쉽다. 근데…. 몸을 돌리라고?

소파에서 뭉그적거리며 몸을 돌리자 승희의 배가 눈앞에 떡 하니 있게 됐다.

그리고 승희의 가슴이 얼굴을 누른다. 어…. 이거 좀 행복한 상황인데.

"승희야. 가슴이…."

"좋다고요?"

"...어."

"나도 알아요. 말하지 말고 가만히 좀 있어요."

아까 반대쪽을 할 때보다 기분이 스물세 배 정도는 좋아진 거 같다.

허벅지의 감촉, 묵직하게 눌리는 가슴의 감촉, 귀에서 들리는 소리와 느낌.

여기가 천국인가? 아 참. 나는 천국엔 못 갈 텐데. 천국이 있는지도 모르겠고.

"어! 나도 귀 파줘!!!"

"오빠 다하면."

"오예!"

세아가 승희의 옆에 앉는 소리.

그리고 잠시 뒤 미나의 목소리도 들린다.

"어머. 줄 서 있는 거야? 나도 줄 서면 되나?"

"네. 세아 다음 해줄게요."

"아이 좋아라."

그렇구나. 내가 없을 때는 얘들은 이러고 지내나 보네.

"오오! 씅희!"

"응. 미나 언니 다음에."

"오오!"

유난히 좋아하는 안나. 어쩌다 보니 네 여자에게 귀 파고 있는 모습을 직관 당하게 됐다.

"저 봐 저 봐 저 오빠. 승희 가슴에 눌렸다고 좋아하는 거 봐."

"남자라면 당연히 좋을 만하지. 게다가 승희는 귀도 잘 파자나."

"맞아. 잘 파는 건 사실이긴 하지."

"맞아. 씅희가 귀 파주면 나도 모르게 잠들 거 같다니까?"

"안나는 저번에도 자더니만. 그렇게 좋아?"

"좋지. 막 간질간질하고 오싹오싹하고…."

"오싹오싹?"

"음? 오싹오싹? 그게 뭐야?"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

"잘 모르겠는데."

뭐지? 통역이 에러 났나? 대화하는 게 왜 저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행복감에 젖어있는데…. 약간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까 반대편 했을 때보다 조금 길게 하는 거 같은데. 아닌가?

"헤에. 다했다. 아. 이쪽은 귀지가 많네."

음? 안 그랬던 거 같은데. 뭐, 파준 사람이 그랬다니까 그런 거겠지.

"아싸! 다음엔 나!"

그렇게 자신의 무릎에 벌렁 눕는 세아를 바라보는 승희.

세아의 긴 머리를 손끝으로 정리해서 옆으로 옮기면서 나를 살짝 보더니 싱긋하고 웃고는 다시 세아를 바라본다.

아…. 그렇구나. 둔하디둔한 나에게 저렇게 내색을 해주다니.

내가 무심했네. 어휴. 멍청하긴.

"나는 그럼 자기 전에 잠깐 나갔다 올게."

"엥? 또 나가?"

"세아야. 말하면 안 되지."

"아니, 오빠가 나간다잖아."

"세아는 하기 싫나 보다. 미나 언니 와요."

"아냐 아냐! 입 다물게. 미안."

"잘 다녀와요."

승희가 인사해주고, 미나와 안나도 내가 어딜 가는지 모르지만 잘 다녀오라고 인사한다.

바로 순간이동. 목적지는 벵갈루루.

불 꺼진 인도인들의 천막과 아직 불이 켜있는 특수 파견대의 건물. 그쪽을 한번 쓱 확인하고 나는 바로 하늘을 향해 날았다.

그리고 스마트폰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적당히 방향을 확인하고 그대로 날아간다.

한 40분 정도 날자 나타난 바다.

밤바다는 상당히 무섭다. 빛 한점 없는 바다. 그 밑은 마치 무저갱 같다.

그런 바다 위를 무작정 날아간다. 그러면서 옛날 선원들의 기분을 느껴본다.

별을 보고 바다를 항해한다는 기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네.

아무것도 없는 바다 위에서는 기준을 잡을 수 있는 게 별밖에 없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날아 거의 근처라고 생각되는 곳까지 오니 저 멀리에 불빛이 보인다.

오…. 불빛이 이렇게 환하구나. 이렇게 보일 정도로.

아마 저건 무수히 많은 섬 중에 하나겠지? 그렇게 가까이 날아가며 천리안으로 살펴보니 섬이 맞았다.

그리고 멋들어지게 지어져 있는 건물들.

리조트인가? 그런 거 같다. 깔끔한 건물이었겠지만, 식물에 잠식당한 모습.

섬이 가까워졌기에 탐지를 돌려보지만, 기척은 없다. 이제는 무인도가 되어버렸나 보네.

그렇게 섬 가까이 다가가자 해안가 파란색 빛들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와. 이건 뭐냐. 신기하네. 근데 이거 괜찮은 건가? 유독물질 같은 거 아냐?

사람이 없기에 그대로 내려가 보니 위험해 보이진 않는다. 아마…. 바다에 사는 생물인 거 같네.

근데 이렇게 빛나나? 반딧불이 같은 개념인가? 바다에도 이런 게 있나 보지?

어쨌든 신기하다.

머나먼 땅, 이국적인 바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곳.

딱 맘에 드는 곳이다. 시설만 괜찮으면 좋을 텐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 봤더니…. 안의 상태는 별로 좋진 않았다.

하긴, 관리가 몇 년이나 안 됐으니 당연히 그럴 만하지.

근데 다행히 물이랑 전기는 여기도 무제한인가 보네. 물도 잘 나오고 전구가 깨진 게 아니라면 불도 잘 켜진다.

좋아. 그럼…. 더 좋은 곳이 있나 찾아볼까?

생각보다 이쪽 바다에는 섬들이 되게 많았다. 그리고 그런 섬마다 리조트 같은 건물들이 무조건 있다.

그렇게 섬들을 돌아다니면서 맘에 드는 곳을 찾아본다.

돌면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을 덮어씌우며 저장하는 식으로 결국 한군데를 골랐다.

날이 밝으면 한 번 더 확인해 봐야 하긴 하겠지만, 여기가 가장 맘에 드네. 수영장도 있고, 건물도 괜찮고.

그렇게 결정한 다음 이번엔 도쿄로 순간 이동한다.

나를 보고 반기는 신영, 역시 셋 다 모아놓고 간단한 지시를 했다.

"내일 정오까지 각자 매혹할 수 있는 인원을 모두 매혹해서 이 밑에서 대기하고 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그녀들이지만 이런 것까지 전부 설명해줄 필요는 없지. 그렇게 매혹을 리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수면.

푹자고 일어난 나는 적당히 인도 쪽 짱개 기지들을 살펴보다가 몰디브를 한번 더 둘러보고 정오가 되자 도쿄로 넘어갔다.

나를 기다리고 있던 세 여자, 그리고 밖에 느껴지는 기척들.

남자 열여섯. 매혹을 당한 놈들. 음…. 저 정도면 되겠지.

"따라와."

남자들 있는 곳으로 내려간 나는 몰디브의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세 여자와 남자들 열여섯이 넘어가자 나도 넘어간 뒤 바로 닫았다.

"꺅! 주인님! 여긴 어디예요!? 너무 이쁘다! 여기가 주인님이랑 우리가 함께 살 스위트 홈이에요?"

"레나. 너는 여기 저장 금지."

"네?"

"금지."

"에에? 알겠어요오…."

"지금부터 내가 자정에 돌아올 때까지 저놈들을 시켜서 여기 청소 깨끗하게 해놔. 수영장, 건물들, 숙소…. 하여간 보이는 곳은 전부 다 청소해. 당장이라도 여기에서 너희랑 살 수 있을 정도로."

내 말에 레나, 신영, 가인의 눈에 의욕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이 보인다.

"시작."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남자들을 지시하기 시작하는 세 여자.

쯧. 좀 미안하네. 어쩔 수 없지. 저렇게 해야 좀 정성스럽게 치우겠지.

음…. 이젠 여긴 됐고.

다시 벙커로 돌아가자 마침 승희가 거실에 있었다.

"일찍 왔네요?"

"어. 잠깐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근데 숙련 안 해도 돼?"

"후후후. 마스터 했는데요?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아. 정말?"

생각해보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네. 얘들이 스킬 배운 게 홍콩 가기 전이니까.

아. 내가 인도 쪽 돌아다닌다고 스킬 숙련을 제대로 못 하긴 했구나. 쩝. 진짜 추월당하게 생겼네.

"그럼 너 말고 다른 애들도?"

"네. 다 마스터 했죠."

"일찍 오길 잘했네. 아 참."

"네?"

"내일? 아니다. 내일이 아닐 수도 있겠네. 하여간 니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어. 그러니까 그때는 좀 부탁해."

"음…. 그래요. 진동파가 필요한가 보죠? 아니면 EMP?"

"아마도. 아무튼, 알고만 있으라고."

"알겠어요."

"그럼 올라갈까? 아. 너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마스터 했다고 했지? 그럼 다음엔 침묵 찍어."

"침묵이요. 알겠어요."

"그다음엔 봉인이야. 그렇게만 찍으면 너도 졸업할 수 있겠다."

"졸업?"

"일단 그것보다 더 사기인 콤보는 없으니까. 그다음부터는 원하는 걸 맘대로 찍어도 된다는 소리지."

"아아."

그렇게 승희와 이야기 하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이제는 들개가 아니고 사람이 키우는 듯한 느낌이 나는 개들.

그런 개들을 목욕시켜주고 있는 미나와 세아, 안나.

"어? 왜 이리 일찍 왔데?"

"아. 너희 스킬 마스터 했다고 들어서."

"어! 나 게이트 마스터 했어! 볼래?"

"이미 충분히 봤어. 나도 있고."

"쳇. 그냥 순순히 보자고 하면 안 되냐?"

"그래. 순순히 볼까?"

"캭! 장난해!? 됐어! 그게 뭐야!?"

그런 세아를 보면서 킥킥 거리며 말한다.

"너도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찍어라."

"엥? 왜?"

"뭘 왜야. 그게 가장 좋으니까 그렇지."

"천리안 찍으면 안 되나?"

"뭐하러."

"투시 찍게."

"스킬 사용 불가 지대랑 침묵, 봉인 다 배우고."

"아. 왜?"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내가 스킬을 쓰자 깜짝 놀라는 세아.

이미 봉인해 놨기에, 이 지역에서 나를 제외한 사람은 아무도 스킬을 쓸 수 없게 됐다.

물론 승미세안은 전부 폴터가이스트가 있지만, 그걸로는 나를 막을 수 없잖아?

"자. 내가 적이었으면 너는 이미 죽었어."

"오빠는 적이 아니잖아!"

"어휴. '적이었으면' 이라고 했잖아."

"폴터가이스트 있잖아!"

"어휴. 자라."

세아가 그대로 잠들었고 내 염력이 그런 세아를 잡아줬다.

"썽철? 나는 그냥 그거 배우면 되죠?"

"응. 맞아."

현명한 안나의 대처. 그녀는 웃으며 스킬을 올린다.

"무효화."

"으헉! 나한테 수면을 썼어!"

잠에서 깬 세아. 나를 보며 소리 지르지만, 할 수 있는 건 없다.

"왜 배워야 하는지 알겠지?"

"아잇…. 그래. 알았다. 헤휴."

"해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해제하고 이제 미나를 바라본다.

"전 화염 지대 벌써 찍었어요."

"아. 그래? 잘했네."

"이제 이것만 마스터 하면 메테오랑 천국의 문이에요."

"응. 기대되네. 코인 좀 많이 벌어와야겠다. 단번에 티어 두 단계가 올라가네."

"그럼…. 됐고. 나는 또 코인을 벌러 가야겠네. 너희도 패시브 비용 슬슬 벅차지? 아직 남았나?"

"아직은 꽤 남았죠."

승희의 말에 얼추 계산해본다. 근데 얼마 있는지 감이 안 잡히네. 내가 4천만 정도 있으니 아직 쟤들은 여유가 조금 있긴 하겠지.

"알겠어. 그럼…. 난 다시 다녀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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