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86화 (58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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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향

켈커타의 한 야산 위.

게이트를 향해 인도인들이 줄지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몽롱한 기분이 든다.

아침까지 민희와 찐하게 야한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가서 한숨 잔 뒤 다시 나왔는데도 아직 몸에 민희의 살 냄새가 배어있는 거 같다.

그리고 그 특유의 향수 냄새도.

내 딴에는 향수 냄새를 열심히 지운다고 지웠는데…. 지워진 거 맞나 모르겠네.

아마 승미세안 네 여자가 눈치를 챈다면 향수 냄새 때문일 거야.

파티로 위치 잡히는 건 펜스 이야기를 해놔서 크게 문제는 없을 텐데…. 아. 모르겠다. 왜 이리 머리가 안 돌아가지.

짱개놈들과 인도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긴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잡생각이 잔뜩 든다.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은 그거다. 승미세안과 민희를 함께 둘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민희는 맡은 자리도 있잖아? 민희를 곁에 두기 위해서는 캐슬의 해체가 우선 되어야 한다.

지금 그녀는 캐슬의 수장이니까. 애초에 함께 살려고 했으면 캐슬로 보냈으면 안 됐겠지.

게다가 승미세안 네 여자에게도 염치가 없다.

넷이 함께 살게 된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거기서 민희 이야기를 어떻게 해.

아무리 이해심 깊은 그 넷이라도 그건 무리지. 무리야.

물론 내 독단으로 전부 다 한자리에 모아놓을 수는 있다. 있겠지.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다섯 명이 하하호호 사이좋게 지내는 걸 바라는 건 미친 생각이다.

그냥 이 상태가 낫겠지. 욕심은 과하면 결국 탈이 나게 돼 있어.

젠가를 하면서 한층 더 올려보겠다고 어설프게 쌓았다간 기껏 쌓아놓은 것도 무너지니까.

내 분수를 알아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인도 사람들을 집어넣는 줄이 끊겼다.

아쉬워하는 인도 사람들. 게이트를 닫고 정리하는 짱개들.

저기 들어가면 그냥 죽는 건데…. 저 사람들은 왜 아쉬워하는 거지?

어지간히도 잘 속였나 보네.

하긴, 자진해서 들어갈 정도니까 어지간히 달콤한 말로 꼬시긴 했겠지.

근데 뭐로 꼬셨을까. 하여간 짱개놈들은 이상한데서는 행동력이 좋아.

그렇게 인도 사람들이 다시 천막 같은 곳으로 돌아가고 이번엔 또 다른 게이트가 열렸다.

인도 녀석들을 보내는 게이트와는 다르다. 일단 크기가 크잖아.

기본 가로세로 4미터 보다는 크다. 그럼…. 한계 돌파를 찍었다는 이야긴데.

적어도 티어13 이상이라는 소리네. 어쨌든 그런 게이트가 열리고 트럭이 게이트에서 나왔다.

보급품인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바로 탐지를 봉인한 다음 축소와 투명화를 쓴 상태에서 게이트 모서리 쪽으로 블링크 했다.

이러면 나를 발견할 놈은 없다고 봐야지.

정말 우연히 발견하거나 내가 실수하지 않는 이상은 말이지.

바로 게이트를 살짝 건너가 바로 하늘 위로 블링크 한다. 그러자 제법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공항.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가 다니지 않는 곳.

그리고 그 바닥에는 수많은 선이 그려져 있고 몇몇 군데에는 게이트가 열려있다.

바닥에 쓰여 있는 글씨. 번역 패시브를 찍고 있기에 바로 알 수 있다.

지명. 그것도 중국뿐만이 아닌 별의별 장소가 다 적혀있는 곳.

하. 신기하네. 여기는 그럼 물류 허브 같은 곳인가보다. 그래. 이런 건 있긴 있어야지.

게이트 스킬은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 고작 티어9잖아?

지급 파견대의 녀석들 평균이 티어9이니 게이트 찍을 수준은 얼마든지 될 거다.

굳이 한계 돌파를 찍지 않아도 가로세로 4미터면 어지간한 트럭들은 다 다닐 수 있을 것이고.

힘들여서 도로를 차로 달릴 필요가 없다는 소리.

나이스한 곳을 찾았네. 문제는 내가 원하는 곳을 언제든지 갈 수는 없다는 거지만.

어쨌든 여기 적혀있는 곳들은 전부 짱개들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봐도 된다는 소린데….

그럼 여기를 먹으면 짱개놈들의 체계적인 이동을 전부 틀어막을 수 있다는 거다.

물론 개인적으로 위치를 저장해놓은 놈들도 있겠지.

하지만 이 녀석들 특성상 게이트 같은 스킬들은 전부 직접 관리할 거다. 모든 장소를 함부로 가게 두진 않을 테니까.

게다가 정말로 비밀스러운 곳은 없겠지. 보안이란 걸 그렇게 허술하게 하지는 않을 거야.

정말로 중요한 장소는 몇몇 소수가 직접 관리할 거다.

나 같은 경우만 해도 저장 위치가 열일곱 군데니까. 적어도 두세 명 정도면 진짜 중요한 곳은 다 관리할 수 있겠지.

잠시 고민해본다. 이곳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일단 내가 먹어치우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 하지만 그러는 순간 녀석들은 중요한 곳부터 빠르게 정리하겠지?

적혀있는 장소들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뭐가 있는지를 알아야지. 파악하는 게 먼저야.

이곳은 크게 세 가지 구역으로 돼 있다.

중국, 동남아, 인도.

그리고 그 구역에는 여러 군데 도시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아마도 인간들을 잡아 오는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이겠지?

여기는 그런 곳들의 보급을 관장하고 있는 곳 같으니까.

인도는 내가 나왔던 켈커타, 파트나, 뉴델리, 아마다바드, 나구푸르, 비샤카파트남, 벵갈루루 이렇게 일곱개의 도시가 적혀있다.

동남아는 뭐가 되게 많네. 내가 아는 이름이 별로 없어.

근데 하노이, 호치민, 방콕, 쿠알라룸푸르, 마닐라…. 이런 곳은 알겠네. 진짜 대도시들이잖아?

그럼 동남아는 확실하게 중국에 다 먹혔다고 봐야겠네.

이 새끼들. 자국민들은 식량 생산으로 올인하고, 성장을 타국인들 잡아다가 한 거구나.

자국민들을 갈아 넣은 적이 없던 거였네.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다. 정말.

하긴, 녀석들의 처지에선 자국민을 갈아 넣는 걸 선호할 리가 없다.

바로 옆에 인도라는 14억 인구가 있었잖아? 게다가 동남아도 인구가 절대 적은 편이 아니다.

내가 알기론 세상이 망하기 전에 5억인가 6억 정도 되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뭐가 됐든…. 합이 20억. 지구 인구의 삼 분의 일. 게다가 자국민들까지 합치면 반에 가까운 숫자.

역시 인구가 코인인 시점에서 짱개의 독주를 막기는 쉽지 않았을 거야.

진짜…. 지금까지 버텨온 홍콩 놈들이 대단할 정도네.

게다가 상하이방이나 위구르, 티벳, 파룬궁 그런 놈들도 결국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있는 거였어.

제 딴에는 열심히 반격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짱개놈들이 진심으로 상대 안 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잡아 죽이려면 얼마든지 잡아 죽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특히 홍콩, 위구르, 티벳 같이 지역 거점이 명확한 곳은 특히나 그렇다.

파룬궁이나 상하이방 같은 놈들이야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게릴라를 하고 있으니 못 잡았다고 치더라도.

왜 살려뒀지? 역시 하나로 똘똘 뭉치려면 외부의 적이 필요했던 걸까?

어쨌든…. 일단 내가 할 일은 확실해졌다.

나는 몸이 하나고 저장할 수 있는 위치도 한정되었으니 한 번에 칠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우선순위를 정해야 해. 정보를 모으고 녀석들의 핵심 시설을 먼저 아작낸 다음 차근차근 밟아 죽여야 해.

박살 낸다면 타격이 큰 곳, 코인이 많은 곳, 더 위에 높은 놈들에게 닿을 수 있는 곳 위주.

결국, 할 수 있는 건 숨어서 지켜보는 일밖에 없다.

기나긴 정보전이 되겠어. 어차피 녀석들이 나를 알아챌 확률은 거의 없다.

그러니 준비는 철저하게 하는 편이 좋겠지.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고? 그 계란이 일반 계란이라면 당연히 깨지겠지.

근데 티타늄 합금강으로 만든 계란이면 어떨까? 바위정도는 얼마든지 깰 수 있다.

산산조각내서 가루로 만드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

지켜만 봐서는 뭔가를 상세하게 알 수 없다.

최대한 높은 놈들의 정보를 얻어야 해. 얼마나 잡아 죽였는지, 얼마나 공략이 진행됐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일단은 현 위치를 저장하고 열려있는 게이트들을 하나씩 들어가 보기로 했다.

어디 보자. 저긴 뭐야. 벵갈루루? 저기면 인도 남부일 텐데.

가보자. 아마 거기도 켈커타랑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눈으로는 확인해 봐야지.

게이트를 넘어가 바로 하늘 위로 블링크 했다.

역시 켈커타와 비슷한 건물들. 그리고 잔뜩 잡힌 인도인들.

근데 여긴 확실히 덥네. 6월인데도 이렇게 덥다고? 아. 하긴…. 여긴 위도가 낮지. 더울 만하네.

한참을 그렇게 돌아봤지만, 켈커타랑 차이 나는 것은 별로 없다.

비슷한 건물, 비슷한 천막, 비슷한 규모. 게이트는 열려있는 게 없네. 늦어서 그런가?

근데 인도 놈들은 진짜 드럽게 많구나. 바글바글하네. 어휴.

그렇게 돌아보는데 간판 하나가 보였다.

푸른 바다와 새하얀 해변, 컵에 담긴 음료가 그려져 있는 간판. 그리고 몰디브라고 쓰여 있다.

몰디브? 오….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

갑자기 그게 생각났다. 잠깐. 몰디브가 이 근처인가?

스마트 폰을 꺼내 지도 앱에서 몰디브 위치를 찾아봤다. 얼래? 여기랑 그렇게 멀진 않네?

벵갈루루에서 몰디브 수도인 말레까지 1,100킬로미터. 내 비행 속도로는 두 시간 남짓.

블링크를 섞으면 더 일찍 도착할 수 있겠지?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곳이다. 내가 생각했던 조건에 맞잖아?

아름다운 바다, 온화한 기후, 사람이 없는 곳. 아니지.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르지.

근데 있을 리가 없지. 있다고 해도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남았겠어.

어쨌든 가보고 싶은 생각이 확 들었다. 몰디브라니.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곳이야.

이름만 들어본 곳인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가깝게 와버렸네.

세아에게 약속한 괌. 굳이 괌을 가는 것보단 몰디브가 더 좋지 않을까?

몰디브가 더 유명한 곳 아닌가? 비슷한가? 씨발. 가봤어야 할지.

일단 가보긴 해보자. 세아가 괌에다가 히틀러의 보물을 숨겨놓은 게 아닌 이상 괌에 목메진 않겠지.

근데 일단은 정보 수집이 먼저야. 일단 여기는 저장만 해놓자.

다시 게이트들이 있는 허브로 순간 이동했다. 또 어디가 열려있나.

시간이 늦었는지 열려있는 게이트는 별로 없다. 마닐라랑 싱가포르? 둘 다 대도시네. 잠깐.

마닐라면 필리핀이잖아?

거기서 괌도 금방 가는 거 아냐? 다시 지도 앱을 켜서 거리를 재본다.

얼래? 2,500킬로미터? 금방이 아니네…. 존나 멀잖아?

일본 남부에서 가는 거랑 그렇게 차이가 안 나네. 괌이 결코 가까운 곳이 아니었구나.

뭐, 어쨌든 일단 마닐라로 가보자. 하나씩 다 가보긴 해야 하니까.

마닐라에 넘어가자 이곳은 분위기가 조금 다르다. 철수하고 있는 느낌?

어쩐지. 계속 트럭들이 넘어온다 했다. 여기는 이미 다 해 먹었나 보다.

그렇다면 이 동네는 이미 사람이 없다는 건가?

일단 철수하고 있는 기지 근처를 저장해놓고 하늘 위로 올라가 내려다봤다.

음…. 이렇게 봐서는 뭐 아무것도 모르겠네. 한번 돌아다녀 볼까?

봉인했던 탐지를 풀고 다시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봉인한 다음 탐지를 돌리며 주변을 돌아봤다.

아마 마닐라 시내인듯한데….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죽은 도시.

으음…. 하긴 철수할 정도면 더는 뽑아낼 게 없다는 소리겠지. 돌아봐야 의미가 없네.

그렇게 날아다니다가 기지 근처에서 농땡이 피는 짱개 둘을 발견했다.

동남아 여자 하나를 두고 존나 박고 있는 새끼들.

음…. 어떻게 할까.

주변을 탐지해보니 일단 괜찮은 거 같다. 바로 무효화를 쓰고 셋 다 재운다.

그리고 기억 읽기. 짱개들의 기억에서 어느 정도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급이 높은 놈인가 봐. 두 놈 다.

대충 정리하면 필리핀 북부는 모든 ‘자원 수집'이 완료되어 철수한다는 내용.

역시 예상이 맞았네.

이놈들을 죽이면 문제가 될까? 음…. 뭐 옆에 뒤집어씌울 사람이 있으니 상관없겠네.

여자에게 매혹을 걸고 염력으로 남자 한 놈의 옷을 벗겼다.

제복 상하의와 워커, 모자를 벗기고 남자 두 놈은 수납으로 삼킨다.

그리고 여자에게 무효화를 쓰자 여자가 눈을 뜨고 나를 보며 웃는다.

아…. 이 짱개들은 왜 이런 여자를 따먹고 있었을까? 그렇게 급했나?

취향 한번 특이하네.

"이거 입어."

짱개놈에게 벗긴 옷들을 가리키자 바로 옷을 입는 여자. 체격이 작아서 영 어색한 모습.

괜히 했나? 이걸로 속을 것 같지가 않은데.

됐다. 뭐 디테일이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가서 짱개놈들 몰래 습격해. 하나라도 죽이고 죽겠다는 마음으로."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짱개들이 있는 쪽으로 뛰어간다. 이러면 뭐…. 짱개 둘이서 여자를 따먹다가 방심해서 죽었다고 되겠지?

옷에 계급장 같은 것도 붙어있고 이름도 쓰여 있으니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끝까지 지켜본다. 기억 읽기 하는 놈이 있어서 저 여자를 읽어버리면 귀찮아지잖아?

하지만 여자는 정말 허무하게 죽어버렸다.

하필 다가간 게 짱개 특수 파견대였다. 녀석은 살려서 심문하고 할 것도 없이 바로 여자를 즉살해버렸다.

아마도 바람 칼날이었을 거야. 여자의 몸이 반으로 잘리며 빛으로 변했으니까.

됐다. 죽었으면 됐지 뭐. 그럼 여기는 무시하고…. 다시 허브로 가자. 더 게이트가 열린 곳이 없나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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