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84화 (58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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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견해에 관하여

자리에 앉은 아키는 얼굴을 잔뜩 붉힌 채 나를 노려본다.

제 딴에는 매섭게 째려보는 거라고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내 눈에는 귀여워 보인다.

그저 싱글싱글 웃게 된단 말이지.

"왜 이렇게 지독한 짓을 하는 거야…."

"대체 이게 뭐가 지독한 짓이라는 거야? 내가 뭐 너한테 키스나 야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으…."

분노에 혐오가 한 스푼 추가된다.

아. 난 진짜 변태인가 봐. 왜 이런 게 오싹오싹하고 좋지?

근데 약간 이해가 안 가네. 이게 그렇게 화낼 일인가?

"이런 식으로…. 내 고백을…."

"응? 고백? 어!? 설마 너?"

"헙."

입을 틀어막으며 화들짝 놀라는 아키.

"야. 이런 것도 고백으로 치는 거야? 게다가…. 설마 처음 고백받았다거나?"

"아…. 아니거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 게다가 저 허둥거리는 모습은 연기가 아니다.

하? 진심이야? 정말로?

"야…. 말이 되냐? 너 스물셋이라며. 그럼 세상 망하기 전엔 열여덟이었잖아? 너 정도면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명은 고백했을 거 같은데?"

"여고에서 무슨 고백이야!"

그렇게 외쳐놓고 또다시 헙 하며 입을 가리는 아키.

방금 그 말은 앞의 말의 긍정과 다름없다. 와…. 이거 재밌네.

"여고라…. 그럼 안되지. 학교에서 고백받는 거 만큼 최악인 게 없네. 근데 학교 밖에서라도 있었을 거 아냐? 주변에 남자가 하나도 없을 리는 없고. 설마 집이 검도관이라서 엄한 아버지 때문에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갔다거나, 아버지 때문에 주변에서 아무도 접근을 못 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지?"

"너…. 너. 뭐야. 그거 어떻게 알았어. 스…. 스토커야?"

"엥?"

"어떻게 그렇게 자세히 아냐고! 설마 내 기억을 읽은 거야? 스킬 중에 기억 읽기라고 있었는데…. 그거야!?"

잔뜩 흥분한 아키. 나를 향해 쏘아붙이듯 말한다.

오히려 황당한 건 나라고.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자. 진정해봐. 오해가 있는 거 같아서 확실하게 말할게. 내가 기억 읽기가 있는 건 맞아. 하지만 난 기억 읽기로 너에게 읽은 건 아주 단편적인 것밖에 없어. 니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도 빛의 검을 썼던 게 신검 합일 패시브 때문이란 거. 그거 말고는 없다고. 니 스킬이 뭐가 있는지, 니 과거나 사생활, 예전의 일…. 그런 건 전혀 보지 않았어. 니가 믿을지는 모르지만."

내 말을 듣고 입을 다무는 아키. 이어지는 침묵.

마침 그때 하루카가 식탁으로 와서 저녁 식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약간 무거운 공기 속에 밥그릇과 반찬들을 차리는 해맑은 하루카.

그렇게 다 차려진 저녁.

나는 아키와의 어색함을 접어두고 하루카를 바라보며 웃으며 말했다.

"잘 먹을게."

"차린 건 부족하지만 많이 드세요."

"이게 부족한 거면 다른 사람들은 굶고 있다고 봐야지."

그렇게 말하고 맛있게 밥을 먹기 시작한다.

조용하게 '잘 먹을 게 하루카'라고 말한 아키도 젓가락을 들었고, 우리는 그녀의 음식 솜씨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밥을 다 먹자 아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아키가 나가는 걸 확인하자. 하루카는 나에게 목소리를 낮추고 작게 말한다.

"이건 오빠가 잘못했어요. 가서 사과해요."

"엉?"

두 그릇째, 마지막 남은 밥을 입에 넣다 말고 깜짝 놀란 나는 멍하니 하루카를 바라본다.

"여자에게 첫 고백은 상당히 중요하다고요. 사실 저도 받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중요한 거예요. 장난으로 하면 안 돼요."

그리고 싱긋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간다.

어…. 뭐지? 방금 하루카 맞아?

여러가지로 놀랄 일이다.

일단 주방에서 우리가 한 이야기가 다 들렸다는 것과 천진무구하고 해맑아 보이기만 하던 하루카에게 연애 조언 비슷한 걸 받았다는 것.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여자애를 무슨 백치미 있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었나 싶다.

사실 그게 아닌데 말이지. 내가 너무 쟤를 과소평가했네.

밥을 모두 입에 넣고 삼킨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방에 있는 하루카에게 다가갔다.

약간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하루카는 나를 보더니 다시 환한 표정을 짓는다.

"어? 왜요? 물 드릴까요?"

"미안. 하루카."

진심을 담아서 사과했다. 뭘 잘못했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쨌든 나는 이 여자애를 너무 무시하고 있었던 거 같다.

나를 보고 천사님, 천사님 하던 모습을 봐서 그런 거겠지.

나도 모르게 이 아이를 약간 모자라고 어리석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하루카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더니 손을 한번 쥐었다가 다시 피고는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안는다. 얼떨결에 하루카에게 안긴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만 기억해주세요. 제가 아키 상보다 오빠랑 먼저 만났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휙 돌아서서 주방 안쪽의 문으로 들어갔다.

하. 이게 무슨 일이야. 정신이 쏙 빠지겠네.

역시 여자들은 무서운 생물이야. 어려운 생물이고.

분명 내가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게 아닌거 같다.

하. 정말 어지럽네. 어지러워.

밖으로 나가자 적당히 시원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저 앞쪽에 자신을 봐달라는 듯 등을 지고 앉아있는 아키.

그쪽으로 다가가자 아키는 내 발걸음 소리는 전혀 안 들린다는 듯 여전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쏟아질 것 같은 별빛. 이곳 마을은 산속에 있는 외진 곳이라 유난히 하늘에 별이 밝다.

뭐…. 홋카이도라서 더 그럴 수도 있겠지.

"가."

"미안해. 아키."

내 말은 예상 못 했는지 나를 휙 돌아보는 아키.

집에서 나온 불빛이 아키의 얼굴을 비췄고 그녀의 눈가는 살짝 젖어있었다.

"울었어?"

"뭐가 미안한데."

"내가 섬세하지 못한 거랑 장난 친 거."

"...됐어. 뭘 그런 거로 사과를."

"근데 울 정도로 억울 했던 거 아냐? 그래놓고 뭘…."

"그것 때문에 운 거 아냐."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는 그녀는 다시 하늘을 바라본다.

잠깐의 어색한 침묵. 6월이라 그런지 저 먼 곳에서 풀벌레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아까…. 그쪽이 말한 게 거의 다 맞아. 그래서 놀랐던 거고. 검도관, 사범이신 아빠, 엄한 집, 그런 거 다 맞다고. 운 것도 아빠 생각이 나서 그랬던 거야. 그쪽이랑은 상관없어."

"그래."

그러면서 아키의 옆에 그대로 앉았다.

청춘 드라마였다면 상당히 낭만 있는 장면이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그정도로 감수성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

앉긴 앉았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냥…. 머리가 텅 비어버린 채로 아키의 옆에 앉아있을 뿐.

예전에 어디서 봤었는데. 괜히 분위기 망치기 싫으면 차라리 입을 다물라고.

침묵이 그 어떤 위로보다 나을 때가 있다고.

나는 그 말에 충실했다. 사실 할 말도 없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던 아키. 그녀가 나에게 말한다.

"들어가자."

"어."

침묵을 선택한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나 보다.

아키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으니까. 눈물도 이미 사라졌고.

그렇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하루카가 해맑은 표정으로 나와 아키를 맞이한다.

음…. 다행이네. 적어도 삽질을 한 건 아닌거 같아서.

그렇게 홋카이도를 떠나 이번엔 도쿄로 향한다.

참…. 바쁜 일정이네. 문제는 여기가 끝은 아니라는 거지.

"오셨어요. 다들 부를까요?"

"어."

나를 향해 꾸벅 인사하는 신영. 그리고 이젠 자동으로 물어본다.

내 대답을 듣고 나간 신영은 곧 레나와 가인을 데려왔고, 나는 그녀들을 데리고 남자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방 안에 있는 열여섯 명의 남자들. 하나같이 정상인은 없어보인다.

문신, 요란한 머리 색, 피어싱, 태닝…. 양아치 소굴이네. 아주.

꼴 보기 싫은 모습이지만 매혹에 걸려있기에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놈들.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한 명만 남고 모든 남자의 머리통에 염력 촉수가 꼽힌다.

번쩍하고 순식간에 남자들은 빛이 되었고 눈부시게 환해지는 방.

영문도 모르고 남아있던 마지막 한 놈은 그런 상황에서도 가인을 보고 넋을 빼고 있다.

"쟤 니가 매혹했나 보네?"

"네."

"쟤보고 코인 좀 다 주우라고 해."

"바닥에 있는 코인 다 주워."

남자는 일어나서 모든 코인을 다 주웠다. 그리고 다음 명령을 기다린다는 듯 얌전히 서 있다.

"코인 얼마 있냐고 물어봐."

"코인 얼마 있어?"

"124만 9천…."

무효화와 수면으로 녀석을 재웠다. 124만이라. 잔챙이를 잡고 저 정도면 정말 어지간히도 죽였네.

수납에서 테이프를 꺼내 녀석을 묶으면서 레나, 신영, 가인에게 매혹을 리필한다.

"고생했어. 이제 각자 방으로 가."

"어어? 주인님? 상은요오? 헤헤헤."

레나의 살랑거리는 말투. 그리고 신영이와 가인 역시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

"곧 줄 테니 오늘은 각자 방으로 가."

살짝 실망한 듯하지만 매혹자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입을 내밀고 방으로 돌아가는 레나, 아쉬운 표정의 신영과 가인.

전부 방으로 돌아간 걸 확인하고 나는 의정부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테이프로 감긴 남자를 던져넣고, 나도 넘어간다.

"이 사람은…. 뭐에요?"

"선물."

"여자한테 선물을 이런 걸 주는 사람이 어딨어요. 꽃다발이나 보석 목걸이면 몰라도."

그러면서도 웃고 있는 민희. 곧 죽을 남자를 앞에 두고 이러는 우리는 정말…. 제정신이 아냐.

"저게 더 쓸모 있어. 그리고 저것도 반짝거린다고. 봐봐."

염력 촉수가 녀석을 찍었고, 빛이 번쩍이며 녀석은 코인 주머니가 됐다.

"나 참…. 못 말려. 근데….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글쎄. 어떻게 한 걸까? 그것보다…. 내 선물부터 받아주지 않겠어?"

"정말…. 당신이라는 사람은."

그러면서 코인을 줍는다. 그리고 놀라는 표정.

"124만?"

"적지? 다음엔 조금 더 많이 가져올게."

"난 정말 당신에 대해서 모르겠어요. 어쩜 이런 사람이 있을까."

"그래. 여기 의정부의 원래 주인이었던 사람도 그런 소리 하더라. 나보고 같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거 맞냐던데."

"누군지 몰라도 나랑 생각이 비슷하네요. 하긴, 당신을 보면 다들 비슷한 생각이 들겠죠."

그러면서 내게 다가와 가볍게 안기는 민희.

아까의 하루카와 똑같은 자세지만…. 느끼는 분위기가 다르다.

천연 그 자체와 요염 그 자체. 거의 극과 극이랄까?

"그건 그렇고…. 원하는 대로 밤에 왔어. 이제 어쩔 거지?"

민희의 가는 허리를 안으며 내 몸에 바짝 붙였고 벌써 잔뜩 발기해있는 물건이 느껴지는지 민희의 볼에 홍조가 어린다.

"그거 알아요? 내일 아침까지 아무도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거?"

이야. 내일 아침이라고? 이 여자 이거 완전 작정했네.

그래. 뭐, 좋아. 나도 무섭지 않아. 초인의 체력 패시브가 있잖아? 나도 믿는 게 있다고. 후후.

내가 좋아하는 블라우스와 골반이 그대로 드러나는 짧은 치마,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는 여자.

나를 위해 준비했다는 게 딱 느껴질 정도다. 이러면 또 그 기대에 부응해 줘야지.

블라우스의 앞섶을 잡고 그대로 확 열어 재꼈다. 단추가 날아가고 벌어진 옷 사이에 검은색 브라가 보인다.

사실 아까부터 보이긴 했지. 하얀 브라우스 안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이거 정말 좋아하는 거 같아요."

"당연히 좋지. 싫을 수가 없어."

브라를 위로 올리고 민희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저 잡기만 했는데도 잔뜩 느끼는 표정의 민희.

"어머!?"

폴터가이스트로 민희를 부드럽게 잡고 들어 올렸다. 손으로 들어 올릴 수도 있지만 그래선 두 손을 쓸 수 없잖아?

좋은 게 있으면 써야지.

"이건 대체…. 아앙…."

내 입까지 떠오른 민희의 가슴을 그대로 입에 넣고 빤다.

뭐라고 말하려고 하던 민희는 그대로 귀가 녹을 것 같은 신음을 내뱉는다.

한쪽 가슴을 빨면서 다른 가슴도 정성껏 만져주자 몸을 꼬물거리며 내 머리를 꼭 끌어안는 여자.

입과 손을 떼었지만, 염력 촉수로 계속 가슴과 꼭지를 괴롭힌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당하면서도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

그런 그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다리를 벌렸다.

말려 올라가는 치마. 그리고 팬티스타킹.

가운데 부분을 잡고 힘을 주자 투툭 하고 뜯어지는 스타킹. 그리고 보이는 브라와 같은 색의 검은 팬티.

"진짜…. 민희 너 너무 좋아."

손가락이 민희의 아래쪽에 닿자 몸이 크게 움찔하는 모습.

그리고 내 손끝은 그 부드러운 살을 조심스럽게 문지른다.

분위기와 가슴 애무로 이미 젖어있는 아래쪽은 점점 더 촉촉해지고 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안쪽으로 들어간다.

"으응. 왜…. 손가락이에요…. 바로 넣어주지."

나른한 목소리의 민희. 그래? 그럼 원하는 대로 해야지.

여왕님이 원하시면 그걸 따르는 게 의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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