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83화 (58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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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견해에 관하여

30만 코인. 생각해보니 참 웃긴다.

이제는 천만 코인씩 먹어도 '오우. 짭짤하네' 정도 같은 생각밖에 안 드는데.

어딘가에서는 고작 몇십만 코인이 없어서 스킬을 못 찍고 있다는 게 진짜 이상하다.

뭐…. 당연하긴 한 거지. 게임이랑 다를 게 없잖아.

어느 고렙이 사냥한 몹 한 마리의 경험치는 어떤 저렙이 지금껏 얻었던 경험치보다 많을 수 있으니까.

어쨌든 코인을 구하러 간다. 그렇게 어렵진 않지. 그럼…. 어디로 갈까.

사실 파티 초대 한 번이면 끝나는 일이긴 한데.

지금도 카타스트로피로 중국의 해안가를 박살 냈을 때 죽였던 짱개들의 코인은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으니까.

근데 무리야. 파티 초대는 할 수 없지.

그걸 하는 순간 승희, 미나, 세아, 안나와 민희는 서로의 존재를 알아채 버린다.

안 그래도 지금 서로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런 짓을 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겠지

잡아가자. 잡아가면 되지. 어차피 잡다 보면 코인은 나오니까.

인도는 아직 건드리면 안 되니까 놔두고, 중국은…. 파견대 놈들이 어딨는지 찾기 힘들다.

그럼…. 그래. 거기가 있지. 도쿄. 거기라면 아직 한구레 놈들이 많이 남아있을 거야.

한 놈당 가진 코인이 얼마 없긴 하지만, 그 정도야 쪽수로 커버할 수 있으니까.

게다가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잖아? 짧은 지시 하나로 해결할 수 있어.

바로 도쿄로 순간 이동했다.

아무도 없는 방. 바로 탐지를 돌렸지만 셋 다 나갔는지 아무런 기척이 없다.

하지만 얘네 특성상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거야.

신주쿠 쪽을 사냥한다고 했으니 그쪽에 있겠지? 그럼 그쪽으로 가보자. 문제는 내가 신주쿠가 어딘지 모른다는 거지만.

간판을 보고 방향을 잡은 뒤 탐지를 돌리며 날아간다. 제법 잡히는 기척들. 그리고 그중에 셋이 모여있는 기척을 찾는다.

아. 저건가? 천리안과 투시를 써서 확인하니 레나, 신영, 가인이 맞다.

바로 그쪽으로 가서 페이즈 아웃으로 벽을 뚫고 들어가 바로 해제한다.

"주인님!"

동시에 외치는 세 여자.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나에게 다가온다.

"사냥하고 있는 거야?"

"네에!"

레나는 꼬리를 흔드는 개 같다. 어…. 나쁜 뜻이 아니고 그냥 모습이 그렇다는 거다.

어떻게든 한번 만져달라고, 쓰다듬어달라고 꼬리를 풍차처럼 돌리는 개.

아. 그래. 강아지라고 하자. 개라고 하니까 아무리 좋게 말해도 욕 같네.

신영과 가인은 고양이다.

강아지처럼 적극적이진 않지만 쓰윽 다가와서 자신의 몸을 다리에 비비는 고양이.

어쨌든 세 여자가 바라는 건 확실하다.

매혹자의 손길, 관심, 그리고 야한 짓.

나는 그런 세 여자의 은근한 요청을 애써 무시하고 말한다.

"이따가 열 시 정도에 올 테니까, 그때까지 매혹해둔 남자들 죽이지 말고 있어. 오늘 얻는 코인은 남자들에게 다 몰아 주고."

"어디다 쓰시게요오!?"

"알아서 뭐하게?"

퉁명스러운 대답에 급히 시무룩해지는 레나.

"그냥 준비해둬. 잘 할 수 있지?"

하지만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하니 금세 표정이 환해지며 알았다고 대답한다.

"열심히 해봐. 벌어놓은 코인 양에 따라서 너희에게 줄 상이 커지니까."

상이라는 단어에 세 여자의 눈이 반짝인다. 그런 그녀들을 두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 뒤 바깥으로 나섰다.

"얼래? 나갔던 거 아니었어요?"

"어. 또 나갈 거야."

승희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이번엔 북쪽으로 향한다.

목적지는 펜스. 한동안 안 갔으니 한번 들리긴 해야지. 식량도 받아올 겸.

비행속도가 빨라져서 이제는 동두천 정도는 순식간에 갈 수 있다.

순수 비행으로만 부산까지 한 시간이 안 걸리는 데 뭐…. 동두천 정도야 코앞이지.

상당히 한가해진 펜스. 마침 정 부장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블링크와 페이즈 아웃을 잘 섞어 바로 그의 집무실로 들어가 해제하자 익숙하다는 듯 놀라지도 않고 나를 반기는 정 부장.

"올 때가 한참 지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저야 뭐 내키는 대로 사는 놈이니까요."

자연스럽게 일어나 나를 소파로 안내하는 정 부장.

이 남자도 민희와 비슷한 사람이다.

내가 올 때마다 항상 충격적인 이야기들만 가져오다 보니 이제는 말하기도 전에 나를 보고 뭔가를 기대하는 눈치다.

그럼 또 그 기대에 부응해주지 않을 수가 없지.

민희에게 했던 이야기들을 그대로 전해줬고, 그는 만족스러운 얼굴이 됐다.

"우리 같은 세상에서 사는 거 맞죠?"

하긴, 어떤 놈이 다짜고짜 와서 일본을 전멸시키고 중국의 해안을 아작냈으며 홍콩을 사람 하나 없는 곳으로 만든 뒤 인도에서 중국놈들이 사람 잡아 오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고 말한다면 미친놈 소리를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겠지.

하지만 그는 산샤댐 이후로는 놀라는 걸 그만둔 모습이다.

오히려 나를 통해 대리만족이라도 느끼고 있는 듯한 모습.

"아참. 저도 할말이 있습니다."

"뭔데요? 궁금하네요."

"저를 황해도지사라고 불러줄래요?"

"크크크. 성공하셨나 보네요? 개성 공략에? 게다가 황해도지사면 그 일대까지 다 먹어치웠다는 이야기잖아요?"

"물론이죠. 이제 저희는 평양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야…. 어때요? 평양의 상황은?"

"잘될 거 같긴 합니다. 전에 최 박사 기억나시죠?"

"아. 그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이 생긴분."

"후후. 그래요. 최 박사가 그런 분위기가 있긴 하죠. 아무튼, 그때 성철 씨가 말했던 거에서 이런저런 영감을 많이 받아서…. 이것저것을 만들었거든요? 소리 공격이라던가, 오물폭탄이라던가, 생화학 무기 같은 거.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흐음. 그런 걸 말했다고 바로 실용화시켜버리는 게 대단하네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교전이 있을 때 제법 도움을 주는 정도?"

"어차피 서로 스치면 죽는 세상이니 그런 스킬 외적인 도움이 큰 효과를 보일 수도 있죠. 스킬 상성 같은 것만 생각하고 있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에 당해서 빈틈을 보이면 한순간에 끝날 테니."

"맞아요. 저희가 노리는 것도 그런 거죠."

"근데 정말 수준 높은 놈들이 있으면 힘들 텐데요."

"없더라고요. 다행히도. 있었으면 상당히 힘들었을 텐데 아직은 없습니다. 애초에 북한 상황 자체가 엉망진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정말 성철 씨 정도로 강한 사람이 아니라면 투명화, 비행, 블링크, 번개 주먹 이거 네 개만 있어도 어느 정도는 상대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번개 주먹 대신 적수를 더 권장하긴 하지만."

"그건 그렇긴 해요. 사실 최단 루트로 가장 큰 효과를 내려면 그게 가장 좋긴 하죠."

이들에겐 아직 티어13 이후의 히든 스킬은 먼나라의 이야기니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상관없겠지.

사실 그런 놈들이 있었으면 이미 펜스는 전멸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음…. 지급 파견대 수준이라면 소모전을 해서 어느 정도 상대할 수 있으려나?

"혹시라도 정말 강한 놈이 나타나면 무리하지 마세요. 당하는 건 순식간이니까요."

"물론이죠. 저는 성철 씨라는 조커를 가지고 있기에 이렇게 일을 꾸밀 수 있는 겁니다. 만약 문제가 생기고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이면 성철 씨에게 부탁할 거에요. 그럼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처리해주겠죠."

"그럴 일이 없어야죠. 하하."

"그런데. 뭐 하나만 물어봅시다. 저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하니까. 만약 성철 씨라면…. 펜스의 모든 사람을 죽이는 데 얼마나 걸릴 거 같습니까?"

농담처럼 하는 말인 거 같지만, 정 부장의 눈은 진지했다.

그럼 나도 진지하게 답해주는 게 맞겠지.

"펜스에서 지금 스킬 가장 많은 사람이 몇 개죠?"

"성철 씨의 그녀들이죠. 여섯 개입니다. 곧 일곱 개가 되겠군요."

"뭐 하나 보여드릴게요."

그러면서 나는 염력 촉수를 움직여 정 부장과 나 사이에 있던 탁자를 들어 올렸다.

눈을 크게 뜨는 정 부장. 탁자를 다시 조용히 내려놓은 나는 그를 보고 말했다.

"티어13 이후에 한정적인 조건을 갖추면 나오는 스킬이에요. 아마…. 북한에 이정도 수준의 인간은 없을 거 같아서 굳이 전부 이야기는 안 했지만, 이런 것도 있다는 것만 알고 계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정 부장.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짐작도 안 갈 거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이야기해주고 싶지만…. 아직은 이르다. 필요한 순간이 왔을 때 그때 말해주는 게 낫지.

"펜스라…. 겸손 같은 것을 부릴 생각은 없기에 말씀드리는 거지만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까 정 부장님이 말씀하셨죠? 한 시간? 그렇게 안 걸릴 겁니다."

"이거 참. 소름 돋긴 하네요. 근데 그런 것보단 든든한 게 더 크고요."

"죄송해요. 재수 없게 잘난 척해서."

"걱정 마세요. 제가 그렇게 생각 안하니까.“

그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더 하다가 적당히 마치고 식량을 받아서 펜스를 나왔다.

펜스의 북진.

만약 북한이 남한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여서 코인이 집중되는 현상을 보였다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을 거다.

코인이 모인다는 건 결국 스킬 많은 놈이 생긴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일단 그런 기색은 안보이니…. 그냥 둬도 될거 같다. 정 부장도 알아서 잘 하는 거 같고.

그나저나 일곱 개라니. 나쁘진 않네. 탐색조의 여자들…. 본지도 오래됐는데.

살짝 궁금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냥 두는 게 낫겠지. 아니, 계속 그냥 두는 게 나을 수도 있고.

전부 책임질 자신도 없으면서 여지를 남기는 게 더 나쁜 짓일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펜스를 나와서 이번엔 청평으로 간다.

기왕 돌기 시작했으니 아예 다 돌아보는 게 낫지.

근데 무슨…. 숙제하는 느낌이다. 아니면 관심 잃은 선인장에 물을 주는 느낌?

무엇보다 그들을 마주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지금은 그래.

금세 도착한 청평. 하늘에 떠서 그저 천리안과 투시로 아래쪽을 살펴보기만 한다.

누구 없어진 사람은 없는지, 뭔가 문제는 없는지, 사는 건 힘들어 보이지 않는지.

그런 것들만 하늘 위에서 살펴볼 뿐, 아래로 내려가 그들에게 말 걸지는 않는다.

성장 스킬이 많은 청평의 특성상 이들이 굶을 일은 없다.

동물도 제법 많아졌고, 비닐하우스도 잘 운영되고 있다.

다들 얼굴도 좋아 보이고 각자 이리저리 모여서 제법 행복하게 사는 모습.

그런 그들을 해가 질 때까지 그저 지켜봤다.

내가 없어도 되는 이들이야. 이젠 굳이 저들의 생활에 참견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근데 웃기네. 당장이라도 내려가면 다들 반겨줄 게 뻔한데, 혼자서 멀리에서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나 하는 게.

어휴. 이 무슨 지지리 궁상인지.

청평 사람들이 저녁을 먹기 시작하기에, 나도 슬슬 배가 고파졌다.

안 되겠네. 나도 가야겠다. 하루카나 보러 가자. 맛있는 게 먹고 싶어졌어.

결정하면 바로 갈 수 있는 세상. 나는 바로 홋카이도로 순간 이동한다.

"와아! 오빠!"

나를 반기는 하루카. 방금까지 했던 찌질한 생각들을 단번에 날려주는 환영.

"왔네."

아키는 나를 보더니 짧게 한마디 한다.

음…. 많이 부드러워졌네? 적어도 날 선 반응은 아니야.

"잘 지냈지?"

"물론이죠. 식사 안 하셨죠? 저희 이제 먹을 건데."

"응. 저녁 얻어먹으러 왔어."

"다행이에요! 앉으세요! 금방 차릴게요. 거의 다 됐어요."

그렇게 하루카가 주방 쪽으로 향했고, 나는 식탁에 앉아있는 아키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는 아키. 뭐지? 무슨 할 말 있나? 하지만 말을 걸거나 하진 않는다.

나도 그런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하얗게 탈색한 머리 덕분에 마치 게임 캐릭터같이 생긴 여자다.

이쁘장한 얼굴에 약간 마른 몸. 적당한 볼륨감.

하지만 검도를 해서 그런가? 그리 병약해 보이거나 가냘픈 느낌은 없다. 적당히 건강한 느낌?

"왜 그렇게 봐?"

"니가 먼저 보고 있었잖아."

"그러네."

그러더니 시선을 돌린다. 뭐지? 싸우자는 건가?

"할 말 있으면 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

다시 나를 보는 아키. 살짝 짙은 속눈썹과 갈색의 눈동자가 나를 바라본다.

"나는 정말 여기 계속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

"어."

"왜?"

"왜냐니? 싫어? 아니면 어디 나가서 사람을 죽이고 싶은 거야?"

내 말에 인상을 쓰더니 살짝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말을 그렇게…."

"니 실력이 훌륭한 건 알아. 하지만 아무 일 없이 이렇게 있는 게 가장 좋은거지. 굳이 사람들을 죽이러 돌아다닐 필요는 없잖아? 그러니 편하게 있어. 만약 힘이 필요하면 니가 싫다고 해도 끌고 갈 거니까."

"하. 내가 싫은데 어떻게 끌고 가려고?"

"무효화. 매혹."

아키는 움찔했지만, 정말 내가 매혹을 또 걸 거라는 생각까지는 못했나 보다.

근데 대단하네. 그걸 반응하고. 만약 블링크를 쓸 생각이었다면 내가 매혹을 걸기 전에 도망쳤을 수 있을 거다.

하지만 아키는 그러지 못했고,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아키. 내가 좋니?"

"물론이에요. 당연히 좋죠."

"무효화."

"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아키. 의자가 콰당하고 넘어지고 깜짝 놀란 하루카가 후다닥 나온다.

"어머나? 무슨 일이에요?"

"아. 아냐. 아키가 벌레를 봤나 봐."

"아하. 어쩔 수 없어요. 아무리 막아도 계속 한 마리씩 꼭 어딘가로 들어오더라고요."

그러더니 다시 식사 준비를 하러 가는 하루카.

나는 그런 하루카를 끝까지 보고 다시 아키로 시선을 돌리며 작게 말했다.

"하루카 걱정시키지 말고 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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