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82화 (58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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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견해에 관하여

다음날. 인도 켈커타.

집에서 나올 때는 한국은 아침이었다. 근데 여기 오니까 새벽이다. 이제 막 해가 떠오르는 모습.

정말 시차는 신기한 거야. 별거 아닌데 사람을 참 혼란스럽게 만든단 말이지.

어쨌든 나는 좋다. 녀석들이 아직 하루를 시작하기 전부터 지켜볼 수 있으니까.

아직은 조용한 녀석들의 진영. 그걸 바라보면서 홍콩의 일들을 생각했다.

뭐…. 별 문제없었다. 문제는 없었어. 하지만 찝찝한 게 딱 하나 있다.

무명.

녀석은 짱개 파견대 정도는 쉽게 잡아 죽일 수 있는 실력자다.

문제는 녀석의 죽음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

코인 중에 유난히 많은 코인은 없었다. 전부 고만고만한 양이었어.

뇌제 놈이 그만큼이나 가지고 있었다면 무명도 비슷하게 있었을 거다. 둘이 잡아 먹은 게 제법 될 테니까.

찝찝해. 찝찝해.

죽었으리라는. 생각은 안 든다. 아마 어딘가 살아있겠지.

앞으로 녀석을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쯧. 어쩔 수 없지. 누가 어디 있는지 까진 알 수 없으니까.

그래도 아깝네. 온김에 잡았어야 했는데. 쩝.

아침이 되자 파견대 놈들이 나오고 게이트가 열리며 수많은 인도 사람들이 게이트로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 봐도 알 수 있을 거 같다. 저 건너편의 모습을.

게이트를 통과한 인도인들은 그대로 구덩이에 던져지겠지. 그리고 코인이 될 거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지. 건너가 보자. 스킬 사용 불가 지대가 깔려있어도 상관없는 몸이 됐으니까.

게다가 축소도 있잖아? 나야 꿀릴 게 없지.

게이트로 들어가는 인도 사람들을 잘 살펴보다가 블링크를 쓴 뒤 한 젊은 여자의 치렁치렁한 옷자락에 찰싹 붙었다.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는 사람들. 결국, 여자는 게이트를 넘었고, 나는 바로 블링크를 써서 하늘 위로 올라갔다.

으음. 역시 예상이 맞았네.

여기도 연구소다. 지난번 내가 때려잡았던 제1 연구소랑 비슷한 곳.

여전히 보이는 구덩이, 연구동, 감옥.

이거…. 너무 고맙잖아? 나를 위한 도시락을 이렇게 만들어주다니.

일단 근처의 인기척 없는 산으로 블링크 해서 위치를 저장했다.

그리고 다시 켈커타로 순간 이동한다.

조금 먼곳을 보니 다른 게이트가 또 있다. 역시. 한 곳만 있을 리가 없어.

똑같이 게이트를 넘어가 저장한다. 비슷한 구조지만 다르게 생긴 건물들.

어쨌든 여기도 연구소는 맞네.

머리속에서 계산기를 두들긴다. 연구소 하나당 칠천만 코인이었던가? 그럼 두곳이면 1억 4천.

조금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는데.

이제는 천만 단위에도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네. 어휴.

다시 켈커타로 돌아와 다른 게이트가 없나 살펴본다.

근데 지금은 두 개 뿐인가 보다. 다른 게이트는 없네.

다시 느긋하게 봉인 숙련을 하면서 녀석들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또 잡생각에 빠진다.

이놈들이 짱개놈들에게 맥없이 당한 게 이해가 안 가네.

아니지. 그럴 수도 있긴 하다.

짱개들처럼 초장부터 체계를 만들고 스킬 연구를 하지 않으면 맥없이 당할 수 있긴 하지.

인구가 많다고 다가 아니잖아? 그걸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지.

어쨌든 그렇게 인도가 왜이리 쉽게 당했는지에 대해서 계속 생각해보지만, 마땅히 생각나는 건 없다.

에이 됐다. 이런건 나중에 더 생각해보고.

지켜보기만 해서는 더 얻을 정보는 없어보인다.

다른 게이트가 있으면 모를까 지금은 없는 거 같고.

짱개 놈들의 기억을 조금 읽어볼까? 정보도 얻을 겸?. 어디 보자…. 누가 좋을까.

수많은 인도인. 그리고 그걸 지키고 있는 파견대들.

홍콩에 왔던 놈들과 옷이 같은 거 보니 특수 파견대다.

거의 천막과 다름없는 인도인들의 숙소, 그리고 그것과 비교될 정도로 견고하고 튼튼해 보이는 건물.

딱 봐도 파견대 놈들이 쉬고 있는 곳이다. 천리안과 투시로 살펴보니 역시 그렇다.

교대 인원으로 보이는 놈들이 곤히 자는 모습. 딱 내가 좋아하는 놈들이지.

자는 놈들은 다 내 정보원이라고 봐도 무방하잖아?

블링크, 페이즈 아웃, 해제, 무효화와 수면.

그렇게 몇 명의 기억을 읽었지만, 홍콩에서 잡은 놈들과 아는 건 별반 다를 게 없다.

역시 더 높은 놈의 기억을 뒤져봐야 할까? 어디 보자. 어떤 놈이 높은 놈이지?

보통은 높은 곳에 있겠지? 살펴보니 딱 그런 놈이 있었다.

큰 방, 많아 보이는 나이, 가슴에 달린 화려한 계급장.

하지만 역시나 높은 놈은 바로 정보를 얻기가 힘들다. 일단 깨어있는 시간엔 힘들어.

쟤는 밤에나 읽어봐야겠네. 그냥 다른 놈들의 정보나 더 읽어보자.

비번으로 쉬는 파견대 녀석은 열 여섯 명. 총인원은 그 세배 정도.

그리고 특수 파견대보다 낮은 직급인 놈들도 매우 많다.

짱개놈들…. 이놈들은 정말 사람 잡아 오는 일에 진심인 거 같아.

하긴, 인도가 있는데 동남아에서도 잡아 오는 거 보면 말 다 했지.

쉬는 파견대 놈들의 기억을 계속 읽는다.

방을 옮겨 다니면서 기억을 읽고 넘어가기를 반복하는데 뭔가 흥미로운 정보를 얻었다.

다른 지역. 여기 말고도 이런 곳이 인도 전역에 잔뜩 있다는 것.

아…. 이제야 이해했다. 그래. 내가 생각을 좀 이상하게 하고 있었네.

게이트가 있는데 굳이 인도인들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짱개 연구소로 보낼 필요가 없지.

적당한 곳마다 하나씩 세워두고 주변 인구들을 싹 끌고 가면 되는 거잖아?

그럼…. 씨발. 연구소가 대체 몇 개나 있는 거야? 소름 돋네.

내가 박살 낸 연구소 정도는 그저 일부였다는 말이잖아?

하아. 이놈의 스케일. 인구가 십억대로 있는 놈들은 역시 다르구나.

매번 느끼는 거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다. 역시 인구빨은 뭔 지랄을 해도 효과가 좋아.

인구는 국력이라는 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어. 그래. 뭐 어차피 상관없다.

인구가 많으면 나도 좋으니까.

누구든 먼저 잡아 죽이면 되는 거잖아.

일단 확보한 연구소 두 개. 하지만 두 개만 있을 리가 없지.

조금 더 지켜보자. 급할 필요 없어. 섣불리 잡아 죽이면 녀석들은 더 깊이 숨어버릴 거야.

전부 알아내서 한 번에 잡아 죽이는 게 낫지. 그러려면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

먼발치에서 게이트를 향해 꾸역꾸역 들어가는 인도인들을 바라보며 봉인 숙련을 한다.

어른, 아이, 여자, 노인 할 거 없이 끊임없이 들어가는 사람들.

녀석들이 이 짓을 한 건 얼마 안 될 거다. 게이트가 아니라면 인간을 수송하는 건 몹시 어려우니까.

차라리 현지에서 몰살시키고 코인만 옮기는 게 낫지.

녀석들을 지켜보고 있자 또 머릿속에서는 잡생각이 떠오른다.

주제는 여전히 ‘인도같이 체급있는 놈들이 왜이리 중국에 허망하게 당했을까?’에 대한 것.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그럼 인도에는 그럼 고티어 실력자는 없는 건가? 전 국민이 죄다 노예처럼 처분당하는 거야?

분명 인도에도 머리 좋은 놈들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의문이네. 왜 이렇게 속절없이 당하고 있는 건지.

자정이 될 때까지 녀석들을 지켜보다가 도쿄로 순간이동 해서 레나, 신영, 가인에게 매혹을 리필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지금 매혹의 지속 시간은 44시간. 봉인 마스터 하고 패시브 한 번 더 찍으면 이제 이틀도 유지되겠네.

티어가 올라갈 수록 획기적으로 시간은 늘어나니 좋긴 하지만…. 아직은 좀 번거로워.

한 일주일씩 지속하면 좋겠는데.

다음날은 아침부터 의정부로 향했다. 민희를 보기 위해서.

지난번에 잠시 들리긴 했지만, 너무 짧았어. 오늘은 좀 느긋하게 있다 와야지. 다른 곳도 들릴 수 있으면 들리고.

"왔어요?"

언제나 볼 때마다 느끼는 성숙한 미소.

민희 앞에 서면 조금 특별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나이도, 지식도, 삶의 경험도 전부 그녀에겐 미치지 못하잖아?

내가 그녀보다 나은 건 스킬이 많다는 것과 사람을 잘 죽인다는 것 말고는 없다.

그렇기에 다른 여자들과는 다르게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

뭐…. 매력적인게 가장 크겠지만.

소파에 앉은 나의 옆에 조용히 앉는 민희.

그녀의 얼굴 '오늘은 또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왔지?'라는 듯한 표정이다.

마치 천일야화의 세라자드가 된 느낌이네.

"별일은 없지?"

"다행히 없죠. 오히려 조용한 게 불안하지만."

"조용하면 좋은 거야. 하아. 나도 좀 조용히 살고 싶다."

"왜요. 이번엔 무슨 일인데요?"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준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 절대 강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홍콩과 인도까지.

물론 여자들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히든 스킬에 관한 것도.

민희를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히든 스킬에 대한 정보는 아직 할 필요는 없지.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해주면 되는 거야.

아예 그런 걸 신경 안 쓰고 사는 게 가장 좋고.

"정말…. 당신에겐 이 세상이 너무 작나 보네요."

"민희 너만큼 나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이거 참 얼굴이 간질간질할 정도네."

"스킬을 스물여섯 개씩 배운 사람이 그리 겸손할 필요는 없어요. 아니, 본인은 겸손해해도 주변에선 띄워주는 게 맞아요. 그래야 기분 좋지."

"그걸 그렇게 다 말해버리면 되나?"

"뭐 어때요. 우리 둘밖에 없는데."

내 허벅지를 쓰다듬는 민희의 손. 철없는 물건은 그걸 스위치로 알아차리고 슬금슬금 힘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걸 눈치챈 민희는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어휴. 요망한 여자.

그렇게 웃으면 어떡하냐. 설레게.

내가 슬쩍 민희의 어깨에 팔을 올리자 민희는 조용히 말한다.

"부탁인데…. 밤에 좀 와주면 안 돼요?"

민희의 새끼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내 물건에 스쳤다. 하지만 나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게 일부러 그랬다는 건 안다.

역시 정신 차리지 않으면 홀랑 넘어가 버릴 것 같은 여자라니까. 아주 엉큼해.

"알았어. 근데 낮이라고 못할 건 없잖아? 저번에는 다른 사람들 올라오지 말라고 한 다음 잘만 해놓고."

그렇게 말하자 내 귓가에 입술을 가져다 대고 조용히 속삭인다.

"제대로 오래 할 수가 없잖아요."

쯧. 결국, 물건 놈은 참지 못하고 살짝 섰다. 아. 귓가에 숨결은 못 참지.

안 되겠네. 오늘 밤이라도 다시 와야겠어. 정말 사람 애태우는 데는 이만한 여자가 없어.

"그래. 알겠어. 그건 그렇고…. 뭐 하나만 물어보자."

"얼마든지요."

허벅지에서 손을 거두는 민희. 그러면서 야했던 분위기도 그대로 거둬간다.

분위기 전환이 되게 빠르네. 신기하게.

"인도 말인데."

"네에."

"왜 그렇게 중국에 쉽게 먹혔을까?“

어제 온종일 들었던 의문. 제대로 해결해놓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거야.

"글쎄요. 저한테 너무 어려운 걸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전 국제 정세 같은 건 잘 모른다고요."

"이상하게 너한테는 물어보면 대답이 착하고 나올 거 같단 말이지."

"그거야말로 과대평가에요."

그래놓고는 재밌다는 듯 쿡쿡 웃는 민희.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그래도…. 그런 건 있지 않을까요?"

"오. 그것 봐. 뭔가 해답이 나오잖아. 잘 듣고 있으니까 말해봐."

"해답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에요. 그냥 생각나는 걸 말할 뿐이지."

"그래. 뭐든 나보단 좋은 생각을 하겠지. 말해줘 봐."

"인도는…. 계급사회죠? 종교 성향이 뚜렷한 곳이고."

"그렇지. 카스트 제도하고 힌두교."

"그리고 거기는 하나의 나라로 돼 있긴 하지만 수많은 민족과 다양한 문화들의 복합체라고 알고 있어요."

"그건 중국도 그렇잖아?"

"근데 중국은 종교가 없죠?"

"불교 있잖아."

"불교는…. 종교긴 하지만 조금 다르죠. 게다가 공산당은 종교를 박해하기도 하고.”

"흐음. 그럼 결국은 종교가 문제라고 보는 거야?"

"세상이 망하고 가장 먼저 없어진 게 종교잖아요?"

"그치. 신이 있다면 잔혹하거나 무지하다는 걸 증명하는 꼴 밖에 안된 거니까."

"인도도 그렇지 않을까요? 삶에서 종교 비중이 높은 나라니까 세상이 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힘을 잃은 거죠."

"음….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미국은 멀쩡하던데?"

"거기는 신분 제도도 없고, 종교인이 사람을 천민으로 부려먹진 않았으니까요."

"아…."

"중국은 본인들이 잘하는 억압과 감시로 사회를 붙잡아놓을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인도는 그렇게 못했을 거 같아요. 내가 낮은 신분이었다고 해도 바로 들고 일어났을 거 같은데요?"

"으음. 그럴듯하네."

"너무 그렇게 귀담아듣지 마요. 그저 주관적인 생각이니까."

"아냐. 내게 그럴듯하게 들렸으면 됐어."

"그런데, 인도가 그렇게 힘없이 당했나요? 중국에게?"

"그렇더라고. 인도뿐만 아니라 동남아도 많이 당한 거 같던데? 짱개놈들 땅 욕심은 원래 알아줘야 하니까."

"그런데 어째서 우리나라 쪽으로는 안 오는 걸까요?"

"아마 우리나라 사정을 알고 있어서 그럴 거야. 녀석들은 대호 그룹하고 거래했으니까. 여기는 사람을 보내서 정리할 필요도 못 느낀 거겠지."

"적어도 피곤한 일은 덜었네요. 그런 녀석들이 우리나라에서 활개 쳤으면 몹시 피곤했을 텐데."

"그치. 지금의 너희들은 지급 파견대 하나만 와도 전멸이니까. 아참. 스킬 숙련은?"

"아…. 순간이동까지는 마스터 했어요. 근데 게이트는 30만 코인이더라고요."

"뭐야. 스킬은 마스터 했는데 코인이 없어서 못 배우고 있는 거야? 이런. 내가 너무 무심했네. 알겠어. 그럼…. 이따가 밤에 다시 올게. 기다리고 있어."

"네? 아…. 네."

그러면서 살짝 얼굴을 붉히는 민희.

하. 참. 그렇게 소녀 같은 표정을 지으면 어떻게 하냐. 참기 힘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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