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78화 (57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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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스물여섯 번째 스킬

일단 집으로 돌아와 옷을 벗고 침대에 누웠다.

오랜만에 느끼는 어지러움. 물약 멀미…. 이건 내성이 생길 대로 생겼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있네.

그래도 스킬 하나를 이틀 컷 했다는 건 제법 엄청난 일이다.

코인만 있다면 그 어떤 인간들보다도 빠르게 숙련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문제는 코인이지. 늘 그래왔듯이.

그냥 자려 했지만…. 당연히 그럴 수 없다.

말이 안 되지. 스킬 창이 이렇게 깜빡이는데 어떻게 자겠어.

당연히 스킬 창을 열어본다. 익숙할 만큼 익숙해진 작업.

스킬 창을 내린다. 어디…. 이번엔 어떤 스킬이 생겼을까?

그렇게 목록을 한번 쫙 다 살펴봤는데…. 없다. 뭐지? 왜 없지?

예전에 있던 스킬과 비슷한 이름으로 나왔나?

다시 살펴본다. 내가 지금 머리가 아프고 눈이 침침해서 못 찾았을 거야.

꼼꼼히 살펴보는데…. 없다.

씨발? 왜 없지?

다시 한번…. 찬찬히…. 하나하나…. 빠뜨린 거 없이….

없다.

없어. 없다고.

안 그래도 아픈 머리가 더 아파진다. 씨발. 왜 없지? 뭐가 문제지?

아니…. 생각해보면 없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일단 패시브는 있잖아.

그래. 좋아. 일단 패시브는 찍고 나서 다시 보자.

스킬 반경 증가19, 스킬 지속 시간 증가19, 스킬 최대 수치 증가13, 스킬 한계 돌파13.

됐어. 일단 2,980만이 증발했지만, 그래. 뭐 그건 이해할 수 있어. 하루 이틀도 아니니까.

남은 코인은 940만 코인 정도. 하. 씨발. 또 허덕이게 되는구나. 암튼, 그건 그렇고.

다시 스킬을 살펴봤다.

하지만 없는 스킬이 생길 리는 없다. 여전히 모두가 아는 스킬이고 한번은 봤던 스킬들.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조금 생각해본다.

하긴…. Q&A랑 초인의 체력. 두 개가 나온 건 약간 심상치 않았어.

그리고…. 생각해보면 티어13에 히든 스킬이 나왔지.

12단위로 가나? 그래서 티어24까지 스킬이 나온 건가?

그럼 앞으로는 스킬이 없나? 하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와 있는 스킬로도 인류 멸망은 충분히 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스케일이 커지면 솔직히 말이 안 되긴 해.

패시브는 계속 나오고 있으니 범위 같은 건 계속해서 커진다는 거다.

게다가 죽으면 끝이잖아? 데스 윈드 같은 걸 보면 그보다 더 쉽게 죽이는 방법은 없을 거 같기도 하지.

진짜 쓰기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죽이는 파워 워드 킬이나 아브라카다브라 같은 게 스킬로 나오지 않는 이상은 더 강한 스킬이 나오긴 힘들겠지.

그래. 이해는 가. 이해는 가는데…. 뭔가 허무하네.

이렇게 끝이 왔다고? 새로운 스킬이 더는 없는 거야?

근데, 허무하고 자시고…. 없는 걸 내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야지 어쩌겠어.

만약 Q&A가 정말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에게 물어보는 스킬이라면, 그놈들에겐 물어볼 수 있겠지.

티어24 이후로는 새로운 스킬이 없나요? 하고.

근데 그건 일단 조금 나중의 일이고…. 지금은 알아낼 방법이 없잖아?

승미세안 네 여자도 25를 찍어보게 하면 되겠지.

나랑 똑같이 나온다면 더는 없다는 소리고 그거 말고는 확인할 방법이 없지.

됐어. 그럼 넘어가자. 머리도 아픈데 이런 거에 더 얽매이고 있을 수는 없어.

후우. 일단 스킬을 찍을 시간.

바로 카타스트로피를 찾는다. 나도 드디어 배우자마자 넘어가는 스킬을 배우는구나.

아. 씨발. 근데 코인이 없네. 아. 빌어먹을.

스킬 최대 수치 증가랑 스킬 한계 돌파는 못 찍겠네. 아…. 젠장.

일단 찍는다. 없으면 어때. 뭐, 답이 없는데.

카타스트로피를 찍었다. 그리고 또 나타난 패시브.

일단 스킬 반경 증가20, 스킬 지속 시간 증가20을 찍었다. 찍을 수 있는 건 찍어야지.

그리고 혹시나 몰라서 스킬 창을 다시 한번 살펴본다.

역시 없네. 티어25만 비어있는 건 아니라는 소린데.

됐어, 뭐 어쩔 수 없지. 다음 스킬 찍자.

봉인.

['봉인' 스킬을 배우는데 30만 코인이 소모됩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당연히 예를 눌렀고, 스킬 창에 봉인이 생겼다.

후후후…. 됐어. 이제 무적 콤보 하나 더 완성이다.

이제는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만나면 피할 게 아니고 신나게 뛰어들 수 있겠네.

평상시에는 봉인하고 다니면 되니까. 필요할 때만 봉인을 풀면 되겠지.

근데 자잘한 놈들이 쓰는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겨우 반경 30미터짜리 코딱지만 한 거잖아.

쯧. 뭐, 그거라도 상관없지. 이제 나에게는 그 안이 무적지대니까.

됐어. 이제 됐다. 잠이나 자자. 더는 머리가 아파서 못 참겠다.

한숨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서 승희랑 테스트해봐야지.

잠을 자고 일어나니 아침은커녕…. 점심이었다.

아. 오랜만에 많이 잤네. 꿀잠 잤어.

몸을 일으키고 눈곱을 떼며 거실로 나가니 수납 숙련을 하고 있던 안나가 일어나 해맑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일어났어요?"

크. 역시 안나의 미소가 더 위력은 세군. 하루카야. 미안하다.

너의 천연스러운 해맑음도 좋긴 한데…. 역시 미모가 더 위력이 세다.

나를 한번 포옹하고 입술에 키스해주는 안나.

어휴. 진짜 이쁘네.

아침부터…. 아니, 점심부터 이렇게 이쁜 여자가 반겨주면 하루하루가 즐거울 수밖에 없지.

"숙련하고 있었어?"

"네. 수납 이거 재밌네요. 당신이 쓰는 걸 봐서 그런지 여러가지로 쓸 수 있어서 좋네요."

"그렇지. 상상하는 대로 되니까. 어딘가에는 나도 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기상천외하게 수납을 쓰는 인간들이 있을 수도 있어."

"후후. 아닐 거 같아요. 당신 쓰는 거 보면 그런 사람은 없을 거 같아요. 근데 밖에 나갈 거예요?"

"어."

"같이 가요."

팔짱을 끼는 안나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저 멀리에서 바닥에 파인 구덩이에 뭔가를 쏘고 있는 미나. 그리고 조금 옆에서 게이트를 열고 있는 세아.

승희는…. 얼래. 저 멀리에 있네. 아.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숙련을 하려면 거리가 좀 있어야지.

"오빠! 이것 봐라! 게이트!"

세아가 내 쪽으로 블링크 해서 오더니 별 모양 게이트를 만들어서 나를 보여준다.

"이야…. 정말 이쁜데 쓸모없네."

"왜 쓸모가 없어? 오빠 바다랑 연결된 게이트 있지?"

"어? 어. 있지."

"여기 부어봐."

"엥? 아…."

한쪽 게이트에다가 바다 게이트를 열어 부어버리자 세아의 다른 게이트에서 별 모양으로 물이 뿜어진다.

"짠! 별 폭포!"

"이야…. 정말 이쁜데 쓸모없네."

"음…. 생각보다 안 이쁘네. 닫아도 돼."

그래도 웃기네. 게이트 모양을 별 모양으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아. 잠깐만. 그럼 이런 것도 되겠구나?

"어….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게이트…."

제약 해제로 게이트를 꼭 내 근처가 아닌 멀리에 만들 수 있게 되었기에, 나는 공중에다가 게이트로 글씨를 썼다.

한글은 좀 어려우니 영어로 LOVE라고 썼더니 세아가 그걸 보고 깔깔 웃는다.

"우와! 정말 이쁜데 쓸모없네!"

"음…. 그런가? 아. 그럼 이런 건 어때."

게이트를 모두 닫고 이번엔 하늘에 커다란 게이트를 하나를 열었다. 위치는 뉴욕.

하늘에 열린 게이트는…. 엄청나게 컸다. 하긴. 클 만하지. 지름 88미터의 게이트인데.

게다가 뉴욕은 지금은 한밤중이다. 그렇기에 내가 게이트를 연 곳은 어두운 밤처럼 보였다.

"으아. 이건 좀 무섭네."

"아차."

나는 빨리 게이트를 닫았다. 생각해보니 이러면 뉴욕엔 지름 88미터짜리 낮이 만들어진 거잖아?

오우. 뉴욕 사람들 순간 깜짝 놀랐겠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겠어.

근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니 이건 명백히 내 실수다.

아. 쓰면 안 됐는데.

만약 티어 높은 놈이 이걸 보고 게이트인 걸 알았다면…. 그 크기를 가늠해서 수준까지 확인할 수 있었을 거야.

내가 몇 초간 열었지? 한 5초? 10초?

망했네. 누군가 사진으로 찍었을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아무도 못 봤을 리가 없다.

부디 다른 거로 착각해줬으면 좋겠는데…. 으음.

"왜 닫았어? 무섭긴 해도 멋지던데. 근데 어딜 열었길래 밤이야? 지구 반대편?"

"미국."

"아. 그러네. 미국이면 지구 반대편 맞구나."

"근데 괜한 짓을 했네."

"왜?"

나는 세아에게 방금 내가 생각했던 걸 말해줬고, 세아 역시 미간을 찌푸리며 인상을 쓴다.

"아. 그건 좀 심각하네."

"그치? 아. 괜한 짓을 했어."

"아. 그럼 좋은 생각이 있어."

"음? 무슨 생각?"

"중국인 척하자."

"엥?"

"다시 또 여는 거야. 그리고 내려가서 우리가 한바탕 한 다음에 위씽쫭쫭봐 이러고 오는 거지."

"뭐? 위씽…. 뭐라고?"

"아. 그냥 중국 말 대충 해본 거야. 난 중국말 모르니까."

"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어차피 저쪽에서도 게이트란 걸 알아낸다면, 반대편 하늘이 환한 것에 대해 의심할 거다.

그럼 지구 반대편인 걸 알겠지.

그리고 다행히 우리나라와 짱개들과의 거리는 가깝다. 음…. 나쁘지 않네.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아무 짓도 안 하는 게 낫겠다."

"왜?"

"생각해봐. 짱개들이 갑자기 미국에 선전포고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갑자기 그렇게 대놓고 나타나서 짱개어를 쓰면서 부자연스럽게 사람들을 죽이면 누가 봐도 제삼자가 덮어씌우려 한다고 의심할 거야."

"아아…."

"그냥 놔두자. 오히려 잘됐네. 미국 놈들은 혹시 짱개가 자기네들한테 뭔가를 하려고 시도했다고 생각하고 움직이겠지. 설마 한국에 있는 우리가 했다고는 아무도 생각 안 할 테니까."

“그러려나?”

“글세. 내가 그놈들의 생각까지는 알 수 없지. 근데 보통 그렇게 생각하겠지.”

"뭐…. 그럼 그러던가. 그럼 난 다시 숙련하러 간다?"

"미나 쪽으로 갈 거지? 같이 가자."

그렇게 미나에게 걸어가자 그녀는 앞쪽의 구덩이에다가 열심히 스킬을 쓰고 있다.

"마그마 샷!"

파이어 볼 같이 생긴 구슬이 날아갔고 구덩이 벽면에 맞은 구슬은 팍! 하고 터지더니 사방에 용암을 뿌린다.

"와. 정말…. 저것도 왜 있는지 알 수 없는 스킬이네."

"아. 오빠 일어났어요? 그쵸? 저도 숙련하면서 이걸 어디다 쓸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면서 다시 마그마 샷을 쓰는 미나.

다시 보니 구슬은 용암이 원형으로 뭉쳐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벽에 맞자마자 깨지면서 주변에 용암을 뿌린다.

그렇게 뿌려진 용암은 느릿느릿 흐르며 강한 열기를 냈고, 그 주변에는 흐르다가 굳어버린 용암이 잔뜩 보였다.

"용암이 안 사라지네?"

"네. 그래서 구덩이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어요."

"이 구덩이는 어떻게 판 거야?"

"세아가 주먹으로요."

"아…. 진심 펀치구나."

"네?"

"아. 아냐. 만화 이야기야. 암튼…. 뭐 구덩이가 차면 또 다른 곳을 파면 되지. 근데…."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해하는 미나.

"그거 꼭 그런 공 모양으로만 나가나?"

"글쎄요…. 마그마 샷이라고 해서 이렇게 쓰고는 있는데…. 설마 이것도 모양이 변할까요?"

"잘 모르지. 근데 시도는 해봐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파이어 볼 보다는 좋아야 하지 않겠어?"

"그건…. 그러네요."

"한번 다른 모양을 생각해서 써봐."

"으음. 마그마 샷!"

이번엔 별 모양의 용암이 나가더니 벽에 맞고 용암이 팍 튄다.

"니들 왜 이리 별 모양을 좋아하냐."

"아니…. 방금까지 세아가 옆에서 막 별 모양 게이트를 열고 그래서…."

"그래. 뭐 그거야 그렇다 치고. 역시 되네?"

"그러게요."

"그럼…. 그 용암이 안 튀게도 할 수 있을까?"

"어…. 해볼게요. 마그마 샷!"

이번엔 원형의 용암이 날아가서 그대로 벽에 맞았고, 그대로 데굴데굴 구른다.

"오. 되네."

"신기하네요."

"지금 숙련도 몇이야? 고급인가?"

"네."

"그럼…. 한번 최대 크기로 키워봐. 저 크기만 되나 보자. 최대 크기를 상상하고 써보는 거야."

"아. 알겠어요. 마그마 샷!"

하지만 스킬은 써지지 않았다. 뭐지?

"뭐야? 왜 안 써지지?"

"그러게요…. 이상하네."

"잠깐만…. 잠깐만…. 미나야. 이리 와봐."

그리고 나는 게이트를 열었다. 목적지는 우리의 쓰레기통 우한.

미나는 바로 게이트를 넘어갔고, 옆에 있던 세아와 안나도 날름 넘어간다.

나까지 전부 넘어가자 나는 게이트를 닫았고, 미나와 세아, 안나에게 말했다.

"하늘로 올라가자. 조금 더 높게."

그렇게 올라간 우리들.

"자. 이제…. 써봐. 저 바닥을 향해서. 최대 크기로."

"네. 마그마 샷!"

그리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엄청나게 거대한 동그란 용암 덩어리가 그대로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용암 덩어리는 그 상태 그대로 쿠웅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부딪혔다.

"하…. 저 정도 크기면 한 2, 30미터는 되는 거 같은데."

높이가 아주 높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우리가 훨씬 더 높은 곳이었다면, 저게 떨어지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 일어났겠지.

"혹시요."

"응?"

"지금 저는 저게 깨지지 않게 생각하고 쐈거든요?"

"어."

"깨지게 하면…. 저만큼의 용암이 퍼진다는 뜻일까요?"

"어…. 글쎄. 해보면 알겠지?"

그렇게 말하자 미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스킬을 쓴다.

똑같은 크기의 용암 덩어리. 그리고 그건 아까 떨어졌던 용암 덩어리에 부딪히더니 산산이 조각나면서 주변에 용암을 흩뿌렸다.

"와…. 멋지네."

솔직한 감상평이다. 주변에 잔뜩 흩뿌려진 용암들은 그대로 꾸물꾸물 흐르며 제법 강렬한 열기를 내뿜는다.

이거…. 쓰레기 스킬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쓸모가 있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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