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76화 (57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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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와 음지

다음날.

카타스트로피는 오늘도 해안가에 해일을 부른다.

먼바다에서 밀려오는 파도. 파도? 저걸 파도라고 부르면 파도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겠지.

물의 벽이다. 재앙이고. 악몽이야.

비행 스킬이 없는 인간이 저 해일을 바라보면 대체 어떤 느낌이 날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잔인한 방법이 아닐까 싶다.

죽음을 느끼고 강제적으로 삶을 체념해야 하는 순간이 오게 한다는 것.

무슨 개지랄을 떨어도 살기 힘들 거라는 좌절감. 어떤 기분일까?

근데…. 이런걸 궁금해하는 내가 존나 나쁘네. 내가 한 짓이면서.

그렇게 해안가를 따라 내려가며 해안 도시들을 수장시켰다.

산둥반도 끝에서 상하이까지의 거리 반 정도는 왔지 싶다.

내일도 이렇게 쓸어버리면 상하이에 도착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문제는…. 왜 대응이 없냐는 거다.

어제오늘 행보로 우리가 해안가를 따라가고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을 거다.

이걸 자연적인 재해라고 생각하는 병신들은 아니겠지.

녀석들은 분명 카타스트로피의 효과를 알고 있다.

게다가 우리가 하는 짓을 봤다면 분명 알아챌 수 있을 거다.

근데! 왜! 안 오냐고!

어지간한 파견대라면 이젠 우리가 잡아먹을 수 있게 됐잖아.

승희, 세아, 안나가 전부 수납이 생겼기에 이제는 무서울 게 없다.

보이기만 하면 보호막을 쓰고 있다 해도 그냥 꿀꺽 삼키는 게 가능하니까.

낌새를 눈치채고 도망가려 해도 힘들 거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가 있으니 녀석들이 도망가는 방향으로 블링크 한방 쓰고 바닥에서 깔아버리면 끝이잖아?

그대로 패왕 패거리처럼 땅바닥에 처박혀 다진 고깃덩어리가 되겠지.

근데 안 온다. 안 오면 아무 의미 없지. 나 혼자 섀도복싱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 카타스트로피를 쓰면서 해안가를 도는 건 반찬 없이 맨밥만 퍼먹고 있는 거다.

김치 한 조각 없이 고봉밥만 퍼먹고 있는거야.

응? 햄 반찬도 오고, 응? 고기반찬도 오고. 응? 반찬이 넉넉하게 와야지! 대체 어디서 뭘 하는 거냐고.

"오늘은 그만 돌자. 게이트 열어줄게. 먼저 들어가."

"내가 열거지롱."

그러더니 세아가 게이트를 열었고 다들 웃으면서 세아의 게이트를 탄다.

웃기는 녀석. 그렇게 쓰고 싶었나?

모두의 위치가 벙커 쪽으로 향하는 걸 확인하고 나는 홋카이도로 순간 이동했다.

오늘은 생선 요리겠지? 그럴 거야. 기대되는데.

하루카와 아키가 있는 집 쪽으로 가니 아직 집에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생선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크…. 미치네. 생선이라니.

그동안 먹고살 만해지면서 고기는 이제 쉽게 구하게 됐지만…. 생선은 아니었다.

지천이 바다인데도 생선 한 마리 구해서 먹을 생각을 못했던 게 웃기긴 하지만, 어쨌든 드디어 여기까지 왔어. 왠지 감동적이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식탁에 앉아있던 아키가 나를 보고 말똥말똥 바라본다.

"뭐야? 사람을 봤으면 인사해야지."

"진짜 다 구워질 때 되니까 오네."

그러고 보니 식탁에는 이미 식사 준비가 다 차려져 있었다. 뭐지? 내가 올 걸 알고 있었나?

내 젓가락도 놓여있네?

"오셨어요!? 거봐요. 이 시간 정도 되면 온다고 했죠? 이제 거의 다 했어요. 어서 앉으세요. 손은 씻으셨죠?"

"어? 손?"

나는 내 손을 한번 바라봤다가 잠깐 멍해졌다. 손이라고? 어. 그래. 밥 먹으려면 손을 씻어야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식탁에 앉았다. 그러자 밥을 퍼서 내 앞에 놔주는 하루카.

그리고 아키에게도 퍼주더니 바로 생선구이가 담긴 접시를 가져온다.

"입맛에 맞으실까 모르겠어요. 생선은 오랜만에 만지는 거라…."

그렇게 시작된 식사.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나는 빈 밥그릇과 뼈만 남아있는 생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지? 뭐야? 벌써 다 먹었어?

분명 엄청 맛있게 먹은 기억도 있다. 맛도 느껴지는 거 같다. 근데…. 왜 벌써 다 먹었지?

"어…. 혹시 조금 더 먹을 수 있을까?"

"물론이죠. 생선도 아직 한 마리 더 있는데…."

"당연히 먹지! 부탁해."

이번에는 조금 천천히 먹어보기로 했다. 젓가락을 대자 자동으로 집히는 도톰한 생선 살.

기가 막히게 구워진 껍질, 잘 익은 속살. 살짝 피어나는 열기.

입에 넣자 쫀득한 식감이 입안을 채운다. 그리고 고소한 맛. 적당한 짭짤함.

비린내 따위는 없다. 고기와는 또 다른 즐거움. 하. 씨…. 이거 맞아? 생선이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재밌는 건 아키 역시 나와 비슷하다는 거다.

자신의 앞에 놓인 생선을 귀중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히 살을 발라 입에 넣는 모습.

고작 생선구이에…. 지금껏 살아남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다니. 하. 이것 참….

"아키."

"중요한 거 아니면 지금 말하지 말자. 나는 생선 맛을 음미하느라 바빠."

"중요한 거야. 넌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카를 지켜라. 약속해라."

"하아. 그걸 말이라고 해?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어…. 내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내가 검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루카는 지킨다."

나와 아키는 그렇게 주접을 떨면서 결국 청어의 생선 뼈 화석을 만들어냈다.

살 한 점 없는 깨끗한 뼈들. 그걸 본 하루카는 뿌듯하다는 표정으로 물어본다.

"입맛에 맞으신 거 같아 다행이에요."

"하루카. 사랑한다."

"네??? 네!??"

"여자한테 그런 소리 가볍게 말하지 마…."

어쨌든 그렇게 오바와 주접을 부릴 정도로 맛있는 식사가 끝났다.

그리고 아키는 식사가 끝나고 나서 청어에 대해 하루카에게 물어본다.

"글쎄요…. 제가 알기로는 청어가 여기 쪽으로 지나는 건 1월에서 5월 사이라고 알고 있어요. 그때가 산란기거든요. 그래서 맛있는 거고요. 살이 완전히 올랐으니까요. 사실 지금은 6월이라…. 철이 살짝 지났다고 볼 수 있죠. 진짜 제철이면 이것보다 맛있을 텐데."

그 말에 나랑 아키는 눈을 마주치고 놀랐다. 이것보다 더 맛있다고? 그게 가능한가?

"1월에서 5월…. 잊지 않겠어."

"근데. 하루카. 혹시 그럼 지금이 제철인 생선은 없나?"

"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에헤헤. 저도 막 잘 아는 건 아니라서. 근데 가을이 되면 연어가 좋아요! 연어 철이 되면 진짜 좋은데. 연어는 해먹을 수 있는 게 많거든요. 소금구이도 좋고, 루이베도 좋고…. 훈제로 해 먹어도 맛있죠. 그리고 그때는 싱싱한 연어 알도 얻을 수 있어서…."

"쓰읍."

하루카가 말하는 연어의 다양한 조리법에 대해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에 침이 고인다.

하. 연어라니. 맙소사. 연어라…. 없어서 못 먹지.

"연어는 회도 좋지…."

"아! 회는 안 돼요. 기생충이 있다고요! 절대로 연어는 회로 먹으면 안 되는 거예요!"

"어? 무슨 소리야? 난 연어 회랑 연어 초밥 같은 거 먹어본 적 있는데…."

"그건…. 양식 연어예요. 바다에서 알을 낳으러 올라오는 자연산 연어는 절대로 회로 먹으면 안 돼요."

"아. 그래? 그건 또 몰랐네."

표정을 보아하니 아키는 알고 있었나 보다. 일본사람이라 이건가? 아니, 이건 내 상식 부족인가?

어쨌든 그녀 역시 연어에 대해 군침이 도는 건 마찬가지인 거 같다. 표정이 몽롱해.

"근데. 그게 언제라고?"

"네. 조금 늦은 늦가을요."

"야. 나랑 같이 여름을 죽이러 가지 않을래?"

"그게 가능했으면 흔쾌히 같이 갔을 거야."

정색할 줄 알았는데 그래도 이런 썩은 농담을 받아주네.

아키 쟤도 사실 상당히 착한 여자일 수도 있겠어.

"가을이라. 좋네."

"뭐…? 갑자기 또 이상한 소리를!"

얼굴을 붉히는 아키, 그리고 하루카도 약간 어머어머하는 표정이다.

"뭐야? 너야말로 갑자기 왜 그래? 아! 아아! 가을? 아키?"

나는 웃겨서 풉 하고 웃었다. 그러자 아키는 그제야 이해하고 얼굴이 더 빨개진다.

하루카 역시 이제야 이해했다는 듯 입을 가리고 웃었고 나는 조금 더 크게 웃는다.

"그…. 그만 웃어!"

"아. 그것 때문인 거야? 푸하하. 당연히 가을 좋지. 가을은 좋아. 아. 가을 너무 좋다. 가을이 빨리 나에게 왔으면 좋겠네. 가을 너무 좋아!"

"이 바보가!"

그러면서 아키는 도망가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차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같이 킥킥거리는 하루카.

"재밌는 여자야. 그치?"

"너무 짓궂으신 거 아니에요?"

"근데 반응이 저렇게 재밌으니 놀리는 걸 멈출 수가 없어."

"장난꾸러기 꼬마 남자아이 같네요. 오빠는."

"어휴. 이렇게 징그러운 꼬마 남자아이가 어딨어."

그리고는 하루카에게 다가갔다.

내가 가까이 다가오자 살짝 안절부절못하면서 자신의 손을 만지는 하루카.

"저녁 맛있었어. 고마워."

"천만에요. 오빠가 잡아준 물고기인걸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착하네. 어쩜 이리 착할까.

새하얀 도화지 같은 여자다. 비록 원치 않게 때 타게 됐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새하얌이 퇴색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무서운 거지. 나 같은 놈이 만지면 새까맣게 물들어버릴까 봐.

근데 웃기네. 승희, 미나, 세아, 안나는 이미 잔뜩 물들여놓고 이렇게 주저하는 게.

하여간…. 줏대가 없어. 지 맘대로야. 나란 놈은.

"이만 갈게. 내일은 또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못 온다고 해도 아키랑 잘 지내고 있어."

"네. 늘 고마워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손을 흔들어 주면서 도쿄로 순간이동 했다.

하루에 세 탕을 뛰려니 바쁘네. 하아.

"주인님!"

그저 위치만 바뀌었는데도 분위기가 단박에 바뀐다.

청춘 로맨스 같던 분위기에서 퇴폐적이고 폭력적인 세기말 세상으로.

나를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신영이.

수줍어하는 모습이지만 매혹에 걸려있기에 나를 보는 순간 발정이 나는 여자.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서 뒷머리를 잡고 그대로 키스했다.

내 혀가 들어오자 몸에 힘이 빠진다는 듯 나에게 매달리는 신영.

사실 이럴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뭐랄까. 반발 심리? 그런 게 있었나 보다.

하루카와 아키에게 하지 못한 짓을 대신 풀려는 마음? 대충 그런 느낌.

"벗어. 그리고 내 옷도 벗기고."

키스가 끝나고 내가 한 말을 듣자마자 황홀한 표정으로 서둘러 옷을 벗는 여자. 그리고 살짝 떨리는 손으로 내 옷을 벗긴다.

알몸이 된 신영을 침대에 눕히고 다리를 벌리자 곧 느껴질 쾌락을 기대하며 입꼬리를 씰룩거리는 모습.

"졸라봐. 어떻게 하고 싶지?"

"넣…. 넣어주세요."

"별로 적극성이 안 보이네. 관두자."

"아…. 아니에요! 주인님!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어디에,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밝혀야지? 안 그래?"

"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다시 말해봐. 니가 원하는 걸 정확하게."

"제…. 보지에 주인님의 자지를 넣어주세요!"

솔직히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어차피 매혹걸고 하는 짓인걸.

근데 그냥 천박하고 저질스러운 짓이 하고 싶다. 이게 다 너무 밝고 따듯한 여자들만 보고 와서 그래.

어휴. 별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지만 그런데도 신영이의 보지는 젖기 시작한다. 그저 다리를 벌리고 있을 뿐인데도 알아서 젖는 편리한 보지.

그대로 자지를 쑤셔 넣는다. 몸을 크게 움찔거리며 내 자지를 받아내는 신영의 몸.

그저 거칠게 허리를 움직인다. 크게 몸이 흔들리며 헉헉대는 신영이의 모습이 상당히 야하다.

"주! 인! 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레나. 그리고 나와 신영이가 하는 걸 보며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매혹이 걸린 여자에겐 이보다 끔찍한 상황이 없지. 하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담담하게 말한다.

"입 다물고 얌전히 옷 벗어. 그리고 옆에 누워."

그러자 오히려 표정이 밝아지는 레나. 독점하진 못해도 하기만 하면 된다는 건가.

신영이의 몸에 박아 넣으면서 염력 촉수로 레나를 주물럭거린다.

그저 다음에 박아 넣기 좋게 몸을 달구는 용도.

가슴을 주무르고 보지를 살살 어루만지자 듣기 좋은 신음을 내는 레나.

BGM인가. 분위기 야해져서 좋네.

신영이의 안에다가 사정하고 그대로 뽑아 레나에게 다시 집어넣는다.

"하으윽."

간드러진 신음과 움찔거리는 몸. 확실히 이 여자는 느낌이 달라.

자지를 넣을 때 알아서 질을 조이는 이런 자잘한 테크닉들은 처녀인 신영이가 할 수 없는 짓이지.

게다가 어떤 반응을 보이면 남자가 좋아하는지를 안다. 섹스하면서 남자를 기분 좋게 만드는 여자랄까?

경험치가 다르다 이거지. 그렇기에 편하게 박을 수 있다. 게다가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 같기도 하고.

옆에서 헐떡이는 신영. 그런 신영에게 가인을 불러오라고 하자 힘겹게 대답하며 그대로 알몸인 채로 나간다.

곧 신영과 함께 온 가인.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옷을 벗는다. 그리고 딱히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레나에게 박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키스한다.

되게 자연스럽네. 눈치가 좋은 건가?

딱히 거부감이 들거나 하는 건 아니기에 그대로 놔뒀다. 오히려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신영.

하이고. 쟤도 큰일이다. 레나보고 가르치라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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