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75화 (57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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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선과 매혹

홋카이도에 온 목적 중에 가장 큰 이유가 하루카가 차려주는 저녁이었기에, 저녁까지 기다렸다가 밥을 얻어먹었다.

이번에는 고기가 올라가 있는 덮밥이었는데…. 이것도 미친 듯이 맛있다.

정말 먹다가 누구 하나가 뒤져도 모른다는 말을 이해할 정도로.

얘…. 뭐 마약이라도 재배해서 넣나? 어떻게 이렇게 음식이 맛있지?

솔직한 속마음으로는 이대로 승미세안에게 데려가서 밥 한 끼 먹여주고 같이 살자고 하면 네 여자도 흔쾌히 받아줄 거 같은 느낌이다.

그정도로 맛있는 밥. 물론…. 나는 소심한 놈이라 그런 짓은 못하겠지만.

자기 절제를 철저하게 할 것 같이 보이는 아키 마저 식탐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웃긴다.

아마 둘 사이가 친해진 건 음식 지분이 80퍼센트 이상은 되겠지.

하루카에게 별생각이 없었어도 음식 솜씨를 봤다면 저절로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테니까.

"아키."

"왜."

"너. 물고기 잡을 수 있냐?"

"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물고기를 잡으면, 하루카가 더 맛있는 걸 만들어 줄 수 있데."

내 말에 젓가락을 움직이던 아키의 손이 살짝 멈췄다.

"더…. 맛있는 거?"

"그치? 하루카?"

"네. 맞아요. 고기가 넉넉해서 고기 요리 위주로 하긴 하는데…. 사실은 생선 요리를 더 잘하거든요. 그래도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요. 헤헤."

"생선…. 이라고. 어디서 잡을 수 있지?"

아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래. 저건 검성의 눈이다.

웃기는 애네. 더 맛있는 거라는 말에 검성 모드까지 가는 거냐.

"시간 날 때 둘이 한번 가봐. 물고기를 잡아 오면…. 식탁이 조금 더 풍성해지겠지?"

잠시 멈춰서 생각하는 아키. 하지만 이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연다.

"근데…. 나는 낚시 하는 방법을 몰라. 어떻게 잡는지도 모르고."

"그건 방법이 있지."

"뭐?"

"너. 수납은 있는 거 알고…. 게이트는 혹시 있냐?"

"게이트…. 있어."

"그래? 그럼 잘됐네. 음…. 간단하게 예를 보여줄까? 나도 처음 해보는 거긴 하지만…. 될 거 같긴 한데."

마침 밥을 다 먹었기에 그대로 집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쪽을 잡고 블링크를 연속으로 쓴다.

내 계산상으로는 한 번에 거의 3.6킬로를 넘게 이동할 수 있게 된 블링크.

거의 열몇 번을 연속으로 쓰자 바로 해안가에 도착했다.

거리상으로는 거의 50킬로 정도를 순식간에 온 거 같네. 하하. 이것 참.

바로 게이트를 열고 들어가자 나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두 사람.

"다 먹었지? 그럼 타."

비어있는 두 사람의 밥그릇을 확인하고 말하자 성큼 일어나더니 게이트를 넘어가는 하루카와 살짝 머뭇거리는 아키.

하지만 바로 게이트로 넘어갔고, 나도 그녀들을 따라 넘어간다.

"와! 바다! 어!? 여기는?"

"아는 곳이야?"

"여기는…. 하보로조 같은데…. 어어? 방금 집에서 나가신 거 아니었어요?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후후. 나는 천사님이잖니."

"와아. 진짜 대단해요!"

마냥 신기해하는 하루카와 달리 아키는 아직도 살짝 경계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바다를 봐서 그런지 금방 표정이 풀린다.

온화해진 표정과 바람에 날리는 머리카락. 음…. 보기 좋네. 역시 이쁘면 뭐든 좋지.

"갑자기…. 바다라니."

"자. 일단 따라와 봐. 아. 하루카 잠깐 안아줄게?"

"네!? 꺅!"

맘대로 하루카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서 저쪽에 보이는 항구 쪽으로 날아갔다.

바로 뒤따라오는 아키. 하지만 한계 돌파를 못 찍어서 비행속도는 느리다.

블링크가 있으니 상관없기야 하겠지만…. 저러고 답답해서 어떻게 하냐. 어우. 속 터지네.

배가 적당히 묶여있는 작은 항구. 테트라포드가 잔뜩 있는 그 옆에 방파제에 하루카를 내려줬다.

"으아…. 하늘을 날았어요!"

"하루카도 비행 좀 해우게 해야 하는데. 괴력 숙련을 시켜야 하나…."

"네?"

"아냐. 혼잣말이야. 아무튼. 자 이제 고기를 잡을 건데…. 생각대로 될까 모르겠다."

"배를 타고 나갈 생각이야? 우리끼리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텐데?"

"뭐하러 배를 타. 지켜보라고. 아. 조금 뒤로 가줄래?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아키가 하루카의 팔을 붙잡고 뒤로 물러났다. 그런 두 여자에게 미소를 씨익 지어주고 생각했던 걸 한번 해본다.

일단…. 여기를 저장해놓고.

저 멀리 바다 위로 블링크 했다. 그리고 바닷속으로 비스듬하게 게이트를 만들었다.

다시 하루카와 아키가 있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 만들어진 게이트에서 바닷물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지고 있다.

좋아. 여기까진 생각한 대로 됐는데….

"뭐…. 뭐야? 게이트야? 근데 왜 게이트에서 바닷물이?"

"이해가 잘 안 가면 직접 보고 와. 여기에서 저 앞 방향으로 가면 보일 거야."

내 말을 들은 아키는 바로 블링크를 써서 바다 쪽으로 향한다.

그런 그녀를 놔두고 나는 쏟아지는 바닷물을 바라본다. 음…. 오. 있다. 나오네.

콸콸 쏟아지는 바닷물 사이에서 함께 튀어나오는 물고기들.

무슨 물고기인지는 모르겠다. 먹어도 되는 건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어쨌든 분명히 물고기가 있다.

염력으로 그걸 잡아서 하루카의 앞에다가 하나씩 내려놓자 그 자리에서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들을 보며 기뻐한다.

"어머! 청어가 아직 있네요!?"

"보면 무슨 물고기인지 알아?"

"그럼요. 다는 몰라도 이건 알 수 있어요. 청어예요. 산란기 끝물이라 늦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 있네요!"

뭐랄까. 조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청어? 산란기? 그런 걸 알아?

하지만 하루카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고 있기에 내가 염력으로 잡아서 수납에 넣었다.

"집에 가서 줄게."

"네!"

그 사이 아키가 돌아왔고 하루카의 앞에서 펄떡이는 물고기들과 그걸 염력으로 잡고 있는 나를 보면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게이트를 이런 식으로…. 게다가 스킬로 물고기를 잡은 거야? 대체…. 그건 도대체 뭐야? 전에 그걸로 나도 붙잡았지?"

"궁금해?"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잠시 갈등하는 듯한 표정의 아키.

"됐어…. 내가 알아낼 거야."

"뭐, 그러시던가. 암튼, 어떤 식으로 써야 하는지는 알겠지? 게이트든 수납이든 쓰기 나름이니 너도 머리 잘 굴려서 둘이 잡으러 와봐. 너는 나처럼 이렇게 물고기를 못 잡으니까 물 쏟아지는 데에 그물이라도 놓으면 고기만 건져낼 수 있을 거야. 아. 잊지 말고 여기 저장은 해놔라. 안 그러면 올 때마다 느릿느릿하게 날아와야 할 테니까. 아니면 블링크 쓰던가."

"아…."

아키는 내 말에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감탄한다. 하여간. 다들 이렇게 좋은 스킬들을 왜 활용할 줄을 모르는 거야.

어쨌든 그렇게 다시 하루카와 아키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간 다음 수납에서 청어와 이름 모를 물고기들을 꺼내서 하루카에게 건넨다.

수납에 들어가자마자 죽은 물고기들. 하지만 수납의 보관 효과 때문에 막 잡은 신선함은 유지되고 있다.

그걸 보면서 눈을 반짝이는 하루카. 바로 받아서 생선 손질을 하기 시작한다.

"내일 꼭 오세요. 내일 구이 해드릴게요. 조림도 되고...아. 생선. 오랜만이에요. 진짜로. 어라…. 청어 알…. 이건 내가 써본 적 없는데…. 어쩌지."

"청어 알? 그것도 먹나?"

"네. 초밥으로도 먹고…. 잘 말려서 먹기도 하고…. 그래요. 근데 제가 다뤄 본 적은 없어서…."

"해봐. 해보면 다룰 수 있게 되는 거지. 뭐가 문제야."

"아무리 그래도 초보자가 함부로 만든 걸 막 대접할 순 없죠오…."

"괜찮아. 먹고 안 죽으면 돼. 그리고 하루카가 만들면 뭐든 맛있겠지."

음식 맛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 그렇기에 그녀가 만든 거면 뭐든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그렇게 계속 생선 손질을 하는 하루카를 보니 되게 행복해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참나. 이런 망한 세상에서 음식 가지고 호사를 누리고 있다니. 이거 참 신기하네. 재밌어.

"그럼, 나는 이만 간다. 내일 또 올게."

"가시게요? 오빠?"

자연스럽게 오빠라고 부르는 하루카. 아유. 귀여워라. 당장 잡아먹고 싶네.

"조심히…. 가."

"그래. 내일 보자."

툭 던지듯이 인사하는 아키. 그래. 뭐 이정도면 아주 많이 가까워졌다고 볼 수 있지. 서로 인사도 해주는 사이라니. 후후.

그렇게 이번엔 도쿄로 순간이동 한다.

한창 풋풋하게 놀았으니 이젠 주인님 행세를 할 시간.

바로 탐지를 돌리자 지난번 그 방에 바글바글한 기척이 느껴진다.

어휴. 많이도 잡아 왔네. 하여간 능력들 좋아.

"오셨어요?"

나를 보고 수줍게 웃는 신영. 어휴. 진짜 적응 안 되네. 수줍은 신영이라니. 어휴.

"시키는 일은 다 잘했네?"

그러면서 신영에게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내게 안기자 얼굴을 붉히며 가슴에 얼굴을 묻는 여자.

매혹은 이게 문제야. 나 같은 새끼도 자신감 과잉이 되게 만들어주잖아?

"주! 인! 님!!! 아차…."

어떻게 알았는지 신영의 방문을 벌컥 열고 달려오려다가 어제의 침묵이 기억났는지 입을 다무는 레나.

"너. 설마 또 마킹했냐? 어떻게 바로 오지?"

"아니에요오. 안했어요오. 저는 말 잘 듣는 레나라구요! 마침 탐지를 쓰고 있었는데 기척이 잡혀서…."

"그래. 암튼 잘 왔어. 가서 가인도 데려와."

그렇게 위치스 셋을 데리고 잡아 온 여자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퀄리티를 신경 쓰지 말라고 했더니 이번엔 다들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으음.

뭐, 어쩔 수 없지. 이번엔 미끼로 쓰는 용도도 아니니까.

다행히 이번엔 옷은 안 벗겨놔서 그나마 낫네. 어디 보자.

숫자는…. 열다섯. 잘도 잡아 왔네. 이만큼이나.

"도쿄에 남은 사람들이 많나?"

"전혀 없는 정도는 아니에요오. 원래 도쿄 인구를 생각하면 거의 전멸 수준이긴 하지만요!"

하긴. 도쿄도 인구 천만이 훨씬 넘는 곳이니까. 0.1퍼센트가 살아남았어도 만 명이라는 이야기.

물론 그것보다 더 적을 수도 있겠네. 암튼…. 서울이랑 비슷한 수준이겠지.

"그럼, 시작하자. 방법은…."

지난번 신영이 스킬 숙련을 한 것과 똑같다. 다만 이번엔 거기에 내 침묵이 추가됐을 뿐.

그 덕분에 가인의 스킬 숙련은 두 배로 빨라질 거다. 열다섯 명이 버프를 쓰고 거기에 내가 침묵까지 쓰면 무효화 한방에 숙련치 30번 정도가 쌓이게 되잖아? 거의 포션 열한 개 정도로 무효화를 마스터 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야말로 초 스피드 숙련이 아닐 수 없어.

그렇게 시작한 숙련.

가인의 광역 스킬 무효화 숙련은 정말 금방 끝났다. 스킬 200번 정도야 뭐…. 껌이지. 거의 세 시간 정도 만에 끝났으니까.

덕분에 나도 거의 만신창이가 됐다. 쟤랑은 다르게 나는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침묵을 걸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단기간에 포션을 잔뜩 마셔서 어지러워 죽을 것 같다. 입도 아프고.

아. 내일은 좀 느긋하게 해야지. 그래도 이 기세면 금방 마스터 할 수 있겠네. 내일, 아니면 모레? 그때쯤?

"어우…. 나는 간다. 저 여자들…. 내일까지는 살려놔. 도망 못 가게하고…. 쓸데 없는 짓 못 하게 하고…."

"네. 주인님! 근데…. 안색이 별로인 거 같은데요. 이리 오세요. 오셔서 여기서 쉬세요. 잠시만 누워서 쉬다 가시면 되잖아요?"

레나의 달콤한 유혹. 침대를 가리키는 저 여자의 속셈은 내 휴식이 아닐 거다.

물론…. 나는 누워있게 하겠지. 그 위에 올라탈 생각을 하는 게 문제일 뿐.

"됐어…. 아. 그리고 가인. 너는 스킬…. 탐지 올려라. 주변 인간 탐지."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주인님 정말 쉬었다 가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조금 누우셔서 쉬시는 게…."

걱정해주는 말투지만, 매혹에 걸린 이상 그게 순수한 의도라고 보이진 않는다.

차분하고 얌전한 모습이지만 주가인 저 여자의 눈빛 속에서도 묘한 탐욕이 보이잖아?

하여간…. 다들 내가 좋은 것인지 내 좆이 좋은 것인지 모르겠네. 어휴.

"갈 거야. 내일 보자."

가기 전에 세 여자의 매혹을 전부 리필하고 바로 순간이동을 썼다.

마지막 순간이동을 쓰면서 사라지기 전 나를 바라보는 눈빛들은 도망가는 보물 고블린을 보는 눈빛이었어.

그래…. 그렇지 뭐. 매혹은 그런 스킬이니까.

어쨌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휘청거리는 몸을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

하아. 힘들어 뒤지겠네. 그래도 회복 포션 대형이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야. 숙련 속도가 빨라져서.

침묵을 마스터 하기만 하면 바로 카타스트로피와 봉인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봉인은 배우기만 하면 바로 활용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홍콩에 갈 수 있을 거다. 무명 놈이 있는 곳. 그리고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

뇌제 놈의 기억에서 봤던 홍콩은…. 확실히 뭔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녀석들이 중간에서 빼먹으면서 그만큼이나 코인을 모았지.

그 기회를 놓칠 순 없지. 잡놈들에게 기회를 줄 필요는 없어.

빨리 봉인 스킬을 배우고 거기에서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한 다음 알짜배기들이 있으면 내가 다 빼먹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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