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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서
뇌제.
여러 사람의 기억에서 본 뇌제 그 녀석은 한마디로 요약하면 악동이었다.
아니. 사람을 쳐 죽이는 시점에서 이미 악동이 아니고 사이코패스 살인마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기엔 그랬다.
그냥 악동. 게다가 컨셉에 과몰입 한 미친 새끼.
패왕의 기억에서 알아낸 정보. 녀석은 '번개'가 들어간 모든 스킬을 전부 배웠다고 했다.
진짜…. 대단한 놈이야. 어지간한 놈이라면 목숨 걸고 그런 컨셉질을 하진 않을 텐데 말이지.
번개라…. 번개가 들어간 스킬이 뭐가 있더라.
번개, 번개 구체, 썬더 필드, 우레 폭풍, 번개 주먹, 썬더 킥…. 아. 번개 파동도 있네.
벌써 7개. 음…. 생각보다 부담이 적네.
얘도 번개는 페인트고 다른 스킬들로 뒤통수 칠 수 있겠어.
어쨌든 스킬은 그렇다 치지만 상당히 짜증 나는 놈이긴 하다.
무리가 없는 녀석. 함께 다니는 놈이 없다. 그 말은 지킬 게 없다는 이야기.
그대로 냅다 튀어버리면 잡을 수도 없다는 소리다.
아니. 그래. 도망은 그렇다 치고 가장 중요한 건 찾기조차 쉽지 않다는 것.
거점이 오사카라고 했지만, 오사카 어디에 있을지 모르잖아.
한 명만 있으면 기척 찾기가 쉽지 않다고. 에휴.
일단은 가본다. 가보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그렇게 금방 도착한 오사카. 문제는…. 사람이 없다.
아예 없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오사카라고 하면 상당히 큰 도시다. 일본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잖아.
근데 그런 도시에 사람이 정말 하나도 없다. 기척도 없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도 없어.
무엇보다…. 해가 지니까 확실히 알게 됐다. 도시에 빛조차도 없다.
사람이 죽어도 전기가 무제한이라 전등 같은 것들은 켜져 있기 마련인데.
여기는 그런 게 없다. 그냥 가정집이든 길가에 가로등이든 뭐하나 불이 켜져 있는 게 없어.
해가 점점 저물어갈수록 도시는 어둠에 물들어간다. 거대한 구멍 같은 도시.
도시는 남아있지만, 어둠에 먹혀버린 도시.
달빛이 이렇게 밝다는 걸 처음 알 정도다.
그리고 그런 달빛이 어둠에 둘러싸인 도시를 비추는 건…. 조금 괴기하다.
지랄 같네.
천리안과 투시도 뭐가 보여야 쓰는 거지.
탐지에도 안 걸리고 천리안과 투시도 쓸 수 없다면 이건 답이 없는데.
이 짓을 해놓은 게 뇌절…. 아니. 뇌제 그놈 짓일까? 하긴, 그놈밖에 없겠지.
오사카를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놈인데 자기 영역에서 이런 짓을 하는 걸 순순히 보고 있을 리는 없잖아.
먼저 발견해서 선빵을 쳐야하는 나로서는 상당히 까다로운 놈이다.
무시하자니 찝찝하고. 잡자니 존나 귀찮네. 하. 씨발.
자정이 될 때까지 오사카를 샅샅이 뒤져봤지만, 단 한 명의 사람도 발견하지 못한 나는 기분이 몹시 나빠졌다.
이런 녀석은 귀찮아. 정말 귀찮아.
그래. 근거지가 오사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완전히 정리해버린 곳에 녀석이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헛수고는 관두고 일단 저장을 한 뒤 도쿄로 순간이동했다.
신영이의 방. 그리고 여기서도 멍하니 창밖의 야경을 보고 있는 신영.
"아. 주인님."
하지만 그때랑은 조금 다르다.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신영.
거짓으로 만든 웃음이지만, 그래도 넋 빠진 것처럼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게 더 나은 거 맞나? 모르겠네. 이거나 저거나 둘 다 시궁창인 건 똑같을 거 같은데.
"사냥은 잘 했어?"
"네. 제법 많이 잡았어요."
누가 들으면 토끼나 새 같은 사냥을 말하는 줄 알겠네. 엄연히 사람을 잡아 죽인 건데.
어쨌든 주저주저하면서도 내게 다가오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손을 까딱했다.
그제야 내게 다가와 안기는 신영.
씨발. 정주면 안 되는데. 난 또 이 지랄을 하고 있네. 에휴.
"레나는?"
"그 여자는 옆방에 있어요."
다른 여자 이름이 나오자 살짝 퉁명스러워지는 신영. 뭐, 매혹이란 이런 거지. 어쩔 수 없는 거야.
"가서 불러와."
"하아. 네."
계속해서 안겨있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여자. 그러더니 옆방으로 나가 문을 두드리며 소리 지른다.
"아줌마! 주인님 오셨어!"
"캬아악! 아줌마라고 부르지 말라고! 애송아!"
우당탕하며 요란한 소리가 들리고 레나가 달려온다.
나에게 다이빙하듯 안기려는 걸 염력으로 공중에서 잡아내자 울상이 되어버리는 레나.
"히잉…. 왜…. 왜요! 안아줘요! 이거 뭐야. 왜 나랑 주인님 사이를 방해하는데!"
"어휴."
염력을 치우자 냉큼 다가와 나에게 안기는 레나. 그리고 신영도 그걸 보더니 쓰윽 와서 안긴다.
그러면서 서로를 노려보는 모습. 정말…. 하아.
일단 무효화를 걸고 매혹을 리필했다. 이로써 또 32시간은 연장됐고.
노려보는 걸 그만두고 나에게 뭔가를 바라면서 낑낑거리는 레나.
자꾸 다리 사이를 내 허벅지에 비비며 내 팔을 자신의 가슴에 문댄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굴지마. 발정 난 암캐 같잖아."
"헤헤. 저는 주인님의 암캐 맞는데."
질색하는 표정의 신영. 그리고 나도 약간 어지러울 정도다.
이거…. 괜찮은건지 모르겠다. 정신상태가 약간 아슬아슬 한 거 같은데.
"지시할 게 있는데."
"네. 말씀하세요. 주인님. 끼잉끼잉."
어떻게든 내 몸에 자신의 몸이 닿는 면적을 크게 하려는 듯 바짝 붙어서 몸을 비비는 레나.
분명 한번 째려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한다.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건 신영이도 비슷한 짓을 하기 시작한다는 거다.
물론 레나 처럼 저돌적이진 않지만, 약간 '질 수 없다' 같은 느낌?
양쪽 팔에 두 여자의 가슴이 비벼지는 건 나쁘지 않은 기분이긴 한데…. 좀 부담스럽긴 해.
"내일 사냥할 때 버프 스킬을 가지고 있는 여자들을 최대한 많이 잡아 와."
"버프요?"
"여자요?
레나와 신영의 정신상태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대답이다.
버프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신영과 여자라는 것에 경계심을 가지는 레나.
"버프 몰라?"
"알고 있어요…. 쓰면 자신에게 유지되는 스킬들…. 말씀하시는 거죠?"
"맞아. 조금 피곤할 수 있지만, 어쨌든 잡아놔. 남자는 안되고 여자만."
"왜요! 왜요!? 왜 여자만이에요? 저는 주인님이 다른 여자들에게 눈 돌리는 거 싫은데!?"
"하라면 해."
한마디로 금방 깨갱거릴 거면서 꼭 이렇게 기어오르네. 벌을 좀 줘야 하나?
"레나."
"네에? 주인님?"
"자꾸 쓸데없는 말 하면 홀딱 벗겨놓고 니 엉덩이를 때릴 거야."
"어머나. 주인님이 때려주시는 거라면…. 얼마든지요.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야겠네요!"
"신영이 보고 때리라고 할 거야."
"...조용히 할게요."
이제야 조금 조용해지네. 암튼 용건은 다 끝났다. 이제는 돌아가야지.
"내가 말한 것들 잘 지키고…. 내일 보자."
"아! 앙대! 가지 마요! 나랑 야한 짓 해요!"
그렇게 순간이동을 하려는데 뭔가 생각나는 게 있었다.
"레나."
"네에?"
"너, 혹시 나한테 마킹 했냐?"
"...네? 무슨 소리셔요?"
"마킹했으면 당장 풀어. 만약 마킹해놓은 거 걸리면 앞으로는 절대 내 자지를 보는 일은 없을 거다."
"으악! 풀게요! 풀게요!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더니 마킹을 해제하는 레나. 씨발. 그래. 약간 느낌이 쎄하다 했어. 이래서 방심하면 안 된다니까.
"언제 걸었지?"
"어…. 어제…."
"만나자마자?"
"네에…."
"쯧."
그대로 레나를 재웠다. 갑자기 내 품에서 레나가 쓰러지자 깜짝 놀라는 신영.
염력으로 그런 레나를 들고 신영에게 말한다.
"인제 그만 자."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정말 침대로 가서 눕는 신영.
이건 지시가 아니었는데…. 뭐 상관없나.
그렇게 레나를 염력으로 들고 그녀의 방으로 향한다.
문이 잠겨있지만 잠금 해제로 바로 열고 레나를 침대에 던져놨다. 그리고 옆에 앉아서 기억 읽기를 한다.
내게 마킹한 것, 그리고 내가 잠자러 벙커로 갔을때의 위치. 그런 기억들을 몽땅 지웠다.
하여간…. 번거롭게.
그렇게 레나를 내버려 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아. 오늘은 뭐 소득이 없네. 귀찮고로.
다음날.
"오늘은 중국 가요?"
승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늘은 쉬자. 각자 숙련해."
"흐응. 기준이 뭐에요? 가고 안가고의 기준?"
"변덕?"
"뭐에요. 그게."
"그래야 녀석들도 진이 빠지지. 예측도 못 하고. 그래서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가는 거야."
"뭔가 그럴듯하긴 한데 변덕이라고 말하니 폼이 안나네요.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죠?"
"그럴까? 그게 더 좋네."
"그럼 집에 있을 거예요?"
"아니. 일본은 마무리 지어야지. 뇌제 이놈이 조금 골치 아프긴 한데…."
뇌제의 이야기를 해주자 네 여자는 신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인다.
"그런 짓을 하면서도 아직 잘 살아있네요?"
미나의 말에 다들 같은 의견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어. 다들 생각하는 게 비슷하긴 하구나.
"번개 스킬을 전부 배운 건 좀 어처구니없긴 한데…. 사실 상당히 까다롭긴 해. 좋은 방법도 없고."
"흐음…."
다들 고민해보지만, 이들이라고 좋은 생각이 날 리는 없다. 가벼운 정적.
그런 그녀들을 놔두고 나는 나가기 위해 일어선다.
"그럼, 다녀올게."
네 여자의 인사를 받으며 오사카로 순간 이동한다. 배웅을 받으면서 나가는 건 왠지 기분이 좋다. 마음이 따듯해지는 느낌이랄까.
오사카에 도착하고 한 바퀴를 쓱 돌아본다.
역시나 잡히지 않는 기척. 뇌제 그놈은 어디로 간 걸까.
마냥 여기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은 미뤄두고 무명 놈을 찾으러 가기로 했다.
문제는 이놈은 더 막연하다는 것. 뇌제 이놈은 오사카라는 도시라도 한정되지…. 무명 이놈은 범위가 너무 넓잖아.
일단 큐슈라고 했으니 가본다. 가보면 알겠지.
오사카에서 해안을 따라 비행하다 보니 한 시간도 안돼서 간판에 익숙한 도시 이름이 보인다.
히로시마. 크. 유명한 곳이네.
한낮 최고기온을 갱신한 도시잖아. 작은 아이를 싫어하는 곳이고.
하지만 도시는 텅 비었다. 어쩜 이렇게 사람이 아무도 없지?
신기한 일이야. 이 정도로 깔끔하게 청소를 할 수 있는 거야? 그 짧은 시간에?
물론 일본도 산지가 많은 곳이라 그런 곳들을 뒤지면 인간들이 조금 더 나오긴 할 테지만…. 어쨌든 보이는 곳에는 없다.
그야말로 깔끔하게 청소돼있어.
역시…. 일본인들의 청소에 대한 강박증은 놀라워. 이렇게 깔끔할 줄이야.
히로시마를 지나 계속해서 해안을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 하나가 나왔다.
시모노세키. 시모노세키 조약이라고 있었을 텐데. 뭐였지?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여길 지나가면 큐슈잖아? 저기 간판에도 쓰여 있네. 키타큐슈시? 아. 저건 도시 이름인가.
큐슈가 조금 떨어져있는 섬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가깝다.
이 정도 붙어있으면 뭐…. 거의 붙어있는 수준이네.
역시 대항해시대로 배운 세계지리는 한계가 있어. 이렇게 직접 보는 게 낫지.
웃긴 건, 기타큐슈시에 들어서자 탐지에 기척이 잡힌다는 거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기척들이 제법 있다. 끊이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정도로?
그리고 그 기척은 옆 도시까지 이어졌다. 후쿠오카. 이것도 많이 들어본 지명인데.
뭐였지? 최근에 들었었는데?
아. 맞다. 그래. 야쿠자의 왕. 그래. 그 새끼 잡을 때 있던 야쿠자 새끼들. 그놈들이 후쿠오카 야쿠자라고 했었지.
이름은 기억이 안 나네. 아. 어디 써놓았을 텐데.
스마트 폰 메모장을 뒤적이자 적혀있는 게 나왔다. 니지이치구미.
부산에서 레테와 극진파와 함께 있던 놈들.
그때 부산에 온 놈들은 싹 다 죽긴 했지만…. 잔존 세력들이 있을 텐데. 어디 보자. 여기 있으려나?
후쿠오카를 날아다니다 보니 여기저기 기척이 많이 느껴졌고, 그중에는 야쿠자처럼 생긴 놈들도 있다.
바로 하나 잡아다가 기억을 읽어봤다.
역시 니지이치구미 야쿠자가 맞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살아있어.
뭐, 이놈들이야 금방 잡아 죽일 수 있으니 놔두고…. 일단 무명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본다.
근데 아는 것들은 거의 없다. 뭐지? 큐슈에 사는 놈들도 잘 몰라?
그렇게 닥치는 대로 잡아다가 기억을 읽어본다.
그리고 그런 기억 중에서 뭔가 흥미로운 정보를 하나 얻었다.
무명 녀석이 중국으로 갔다는 소문.
중국? 일본에서 절대 강자라고 떵떵거리던 놈이 중국엘?
근데…. 생각해보면 그럴듯하긴 하다.
무명 놈도 대가리가 있다면 이 좁은 일본 땅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꼈을 테지.
그리고 바로 옆에 인구가 넘쳐나는 짱개놈들이 있다는 걸 알면 넘어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흐음…. 그렇단말이지? 결국은 중국이네.
일단 왔으니까 계속 정보를 모아보자. 사람이 남아있다면 어쨌든 뭐라도 정보는 얻을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