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58화 (55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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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성

"내 이유가 궁금해? 눈앞에 이놈을 두고?"

내 말을 듣자 검성의 눈에 불꽃이 팍 튄다.

죽일 듯이 가면을 노려보는 여자. 별말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그녀의 손에 빛의 검이 들려있다.

"어….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난 이놈을 죽여야 해."

"알아. 너보고 죽이라고 이놈 데리고 온 거야. 하지만 아직은 아니지."

내 말에 의혹 섞인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대체 내 꿍꿍이가 뭔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저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하게 둘 수는 없다.

이 상황에서의 주도권은 내가 가져가야 하니까.

염력을 써서 가면 녀석의 눈에 붙였던 테이프만 떼어냈다.

그리고 무효화. 근데…. 분명 무효화의 범위 안에 들었을 텐데도 검성 저 여자의 손에 쥐어있는 빛의 검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 지금은 저게 가장 궁금해.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도 꺼내 쓸 수 있고 무효화를 맞아도 사라지지 않는 저 빛의 검.

근데 바로 알 수는 없겠지. 뭐…. 일단은 놔두고.

"읍으읍으읍!!"

잠에서 깨고 눈을 뜬 가면 녀석은 눈앞의 검성을 보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그리고 그걸 본 검성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서늘한 미소. 전혀 상관없는 나조차도 소름이 돋을 정도.

그런 그녀를 보면서 살짝 의문이 든다. 애인이나 가족이 아닌 친구와 마을 사람이 죽은 거로 저 정도의 분노가 생기나?

정말로 가까운 관계였던 걸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그것 봐. 그냥 죽이면 안 돼. 녀석이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절망하는 걸 지켜봐야지."

미소를 띤 얼굴로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여는 검성.

"당신은…. 악마야?"

"재밌네. 하루카는 나보고 천사님이라고 부르더니 너는 악마라고 하는 거야?"

"하루카? 아까 그?"

"그래. 네게 맛있는 밥을 차려준 여자."

매혹에 걸렸어도 있었던 일은 전부 기억한다.

그렇기에 검성 저 여자도 하루카의 음식 맛을 기억할 수밖에 없다.

농담 아니고, 쟤보고 하루카를 죽이라고 하면 주저할 거다.

솔직히 음식 맛을 봤으면 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그럴 정도인데.

하루카를 죽이는 건 약간…. 인류의 큰 손실 같은 느낌이 들 정도라고.

"이제…. 죽여도 되나?"

말투가 조금 더 정중해졌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뭔가를 조금은 인정한 느낌?

"바로 죽이게? 진짜로?"

"읍읍읍으! 읍읍!"

"아. 되게 시끄럽네."

수납에서 오랜만에 마체테를 꺼냈다. 뭐랄까. 검성 쟤가 요란하게 검을 휘둘러서 그런가?

나도 약간 꺼내고 싶어졌어.

어쨌든 그렇게 꺼낸 마체테로 테이프를 피해 가면 놈의 허벅지를 찔렀다.

"으으읍!!!!"

"자꾸 시끄럽게 굴면 조금 더 아픈 곳을 찌를 거야. 그러니 입 좀 다물어줄래?"

내 말에 아픔을 참으며 입을 다무는 가면.

"당신…. 칼을 쓰나?"

호기심 어린 검성의 눈. 뭐지? 뭔가 호감도가 확 올라간 거 같은데?

설마 마체테를 쓴다고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야?

"보시다시피? 물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수준이지만."

"그게 아닌거 같은데. 상당히…. 익숙해 보이는걸?"

뭐지. 이 상황에서 물어볼 질문들이 아닌데. 가면 놈을 눈앞에 두고 내가 이러는 거에 신경을 써?

설마…. 이 여자 검 덕후 뭐 그런 건가? 어쨌든 정상인의 반응이랑은 조금 거리가 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냐? 나는 예시를 보여준 거라고. 쉽게 죽일 생각 하지 말고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야."

그제야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검성. 그러더니 빛의 검을 들어 가면 놈을 겨눈다.

"테이프는 끊지 말고."

검성은 빛의 검을 들더니 가면 놈의 왼쪽 발을 향해 휘둘렀다.

발가락을 포함한 발의 반 정도가 그대로 썩둑 잘렸고, 가면 놈은 끔찍한 비명을 지른다.

어우. 씨…. 이 여자 좀 화끈하네. 게다가 잔인하고.

칼질하는데 한점 망설임이 없다. 씨발. 괜히 센척했나? 인제 와서 눈을 돌리기도 좀 그런데.

가면 놈은 죽어라 비명을 지르지만, 테이프에 막혀 그 소리는 둔하다.

그리고 검성은 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오른발도 왼발과 똑같이 만들어줬다.

"으으으읍!!!!!!"

"그러다 출혈 과다로 죽을 텐데."

"그럼 죽기 전에 더 고통을 주면 돼."

그리고는 검을 세워서 엎드려있는 가면 놈의 엉덩이 사이를 겨눈다.

아…. 씨발. 설마?

그대로 검을 비스듬하게 찔러 넣는 검성. 정확하게 가면 놈의 고환과 물건 쪽을 노린 찌르기.

"쓰레기 같은 새끼. 감히 미하루를…."

아마 가면 놈이 강간하고 죽인 그 친구의 이름이 미하루인가 보다. 그렇게 말한 하루카는 이번엔 무릎 아래를 썰어버렸다.

아…. 고어해. 고어…. 나 이런 건 싫은데.

내가 괜히 목덜미를 찍어 죽이는 게 아니다. 나는 잔인한 건 싫다고.

눈을 돌리기도 애매해져 버린 상황에서 이런 해체 쑈를 계속 봐야 하는 건 정말 고역스러운 일이다.

예전에 민희가 고영준이 복수할 때도 보는데 존나 힘들었는데.

어휴. 어휴….

검성 이 여자는…. 확실히 독한 모습이 있다. 죽지 말라는 듯 포션을 사서 잘린 상처 부위에 붓는 모습.

그래. 씨발. 이 정도 곤조가 있으니 지금까지 살아온 거겠지. 그것도 압도적인 무력을 가질 정도로.

이 여자의 수준은 아마 승미세안 정도는 될 거 같다. 비슷하거나 그 이상? 아까 탐지 거리를 봤을 땐 그렇게 보였어.

그런 걸 보면 참 대단한 거지. 이런 세상이 적성이 맞는 거다. 얘도 정상은 아니야.

어쨌든 가면 놈은 이제 몸뚱이와 머리만 남게 되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모습.

솔직히 이 정도면 죽어야 하는 거 아냐?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은 거 같은데.

가면 놈은 검성에게 두 눈이 파이고 혀까지 잘리고 나서야 빛이 되었다.

끈질긴 놈이랑 독한 여자네. 일본 애들은 다 이러나? 어휴.

근데 이 여자 괜찮을까? 지금이라도 무력화시켜야 하나?

빛이 터질 때 이미 뒤로 물러난 검성. 그러더니 나를 향해 말한다.

"코인은…. 그쪽 거죠."

신기하네. 이런 상황에서 또 매너는 있어?

"아니. 니가 가져. 니 친구와 마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거잖아?"

가면 녀석이 가지고 있던 코인은 700만 정도. 홋카이도를 전멸시킨 것 치고는 초라한 양이다.

그렇다고 적은 양은 아니지만, 그렇게 목숨 걸 정도의 양은 아냐.

그러니 검성 쟤한테 주고 생색내는 게 낫지.

내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

그러더니 힘겹게 입을 연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받겠습니다."

갑자기 존댓말? 뭐지?

조심스럽게 코인으로 다가가더니 그 앞에서 무릎을 꿇는 검성.

코인이 빨려 들어갔고 그녀는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흑…. 미하루…."

그리고는 엎드려서 오열하는 여자.

감정이 터진 건가? 내가 한 말이 뭔가를 건드렸나?

하긴, 사람이 죽으면 빛으로 변해버리는 세상이다.

친구가 죽고 마을 사람이 죽었어도 그녀는 시체 한 구 못 봤을 거다.

그녀가 만든 게 분명한 투박한 비석. 하지만 그 밑은 비었다.

어디에도 친구와 마을 사람의 흔적은 없을 테니까.

그런 그녀에게 가면 저놈이 죽고 나온 코인은 친구와 마을 사람들의 마지막 흔적일 수도 있겠지.

물론…. 코인에 그런 깊은 뜻은 없다. 그저 사람이 의미를 그렇게 부여할 뿐이지.

서러운 듯이 오열하며 통곡하는 검성. 그리고 그녀는 어느 순간 그대로 쓰러졌다.

얼래? 뭐야? 왜 쓰러져?

황급히 다가가려다 혹시나 해서 염력으로 조심히 몸을 뒤집었다.

마치 기절한 듯 쓰러진 여자. 뭐야. 이렇게 갑자기?

나를 방심하게 만들려고 저러는 건 아닌거 같긴 하지만, 일단은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잔뜩 인상 쓰고 있던 얼굴의 근육이 풀리며 조금은 평온한 표정이 된다.

수면에 걸린 걸 확인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기억 읽기를 썼다.

지병이라도 있나? 왜 갑자기 쓰러져?

조금 기억 읽기를 하자 그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가면 놈은 마을에 있던 아이를 유괴했고, 아이를 되찾고 싶으면 검성 혼자서 그쪽으로 나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그걸 안 검성은 불같이 화내며 가면 놈을 찾으러 갔었다.

하지만 가면이 나오라고 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속았다는 걸 안 검성은 그대로 나는 듯이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반긴 건 비어버린 마을. 그리고 잔뜩 강간당하고 죽어가는 친구.

검성이 돌아온 걸 알고 도망가는 가면.

당장이라도 쫓고 싶었지만, 죽어가는 친구가 더 급했다.

포션을 들이부었지만 별 효과가 없던 미하루.

결국, 검성에 품 안에서 친구는 죽었다.

눈이 돌아버린 검성. 바로 가면 놈을 쫓아갔지만…. 가면놈은 변신 스킬이 있었다.

도망가는 중이니 곤충이나 새로 변신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건 상당히 위험하다.

검성이 아니고 다른 천적한테 죽을 확률이 높으니까.

그리고 변신은 만능이 아니다. 변신 이후에는 스킬을 못 쓰잖아.

게다가 가면 그놈은 마스터만 찍었을 뿐이지 변신에 대해서 많은 활용을 해본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녀석과 검성의 지독한 숨바꼭질이 시작됐다.

검성 녀석은 티어18. 다른 패시브들은 다 찍지 못했어도 탐지범위 증가는 전부 찍은 상태.

게다가 테이밍에 동물 탐지도 있었다. 그러니 숨바꼭질이 성립됐겠지.

거의 사흘을 쫓아갔지만, 결국엔 팔 하나만 자르고 홋카이도 근처에서 녀석을 놓쳐버린 검성.

가면 놈이 왜 그리 초췌했는지, 이 여자도 왜 그렇게 비실거렸는지 알 거 같다.

며칠간 제대로 잠을 못 잤으니 그랬겠지. 가면도 검성 이 여자도.

결국은 그것 때문에 나만 이득 본 셈이네. 역시…. 어부지리만큼 좋은 게 없지.

어쨌든 그렇게 녀석을 놓치고도 한참을 헤매다가 결국 다시 이곳으로 돌아온 검성.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가면 그놈이 언제 돌아와서 자신을 노릴지 몰랐으니까.

그래서 내가 나타나자마자 그렇게 맹렬하게 공격했나 보다. 잔뜩 긴장하고 있었겠지.

잠도 제대로 못 잔 채로.

그리고 그게 이제야 터진 거다. 가면 그놈을 죽였으니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다 한 거니까.

근데…. 내 앞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너무 무방비 한 거 아냐? 무슨 짓을 당할 줄 알고?

아무리 감정이 터지고 쌓인 피로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끝까지 정신은 차렸어야지.

복수했으니 상관없다는 건가? 아니면 나에게 조금의 신뢰가 생긴 거야?

이해할 수가 없네. 어쨌든 쓰러진 여자를 들어서 아까 이 여자가 씻었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무 짓도 안 하고 침대에 눕혀줬다. 나는…. 신사니까.

풉. 농담치고는 너무 쓰레기 같았네. 나는 장난이라도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지.

음…. 이제 어쩌나.

기왕 잠든 거 기억이나 더 읽을까?

근데…. 또 그러긴 싫다. 방금까진 나쁘지 않은 흐름이었잖아?

여기서 기억을 죄다 읽은 다음에 나중에 괜히 말하지도 않은 걸 아는 척 해버리면 겨우 만들어놓은 관계가 그대로 박살 날 수도 있다.

그러고 싶진 않다. 이 여자는 쓸모가 있어. 외모도 괜찮고.

소모재로 쓰는 것보단 조심스럽게 관계를 진전시킬 필요가 있어.

그러니 관둔다. 아. 그래. 그것만 읽어보자. 아까 그 빛의 검.

아무래도 그건 궁금하단 말이지. 그것까지만 기억 읽기로 알아보자.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니 잠든 모습이 제법 이쁘다.

방금까지 한 결심이 조금 흔들리려고 하네. 잠도 자고 있는데…. 음…. 음….

됐다. 줏대 없는 새끼. 그냥 기억 읽기만 하자. 잠든 걸 덮치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어.

그러니 지금은 기억이나 읽자.

잠든 검성의 팔을 잡고 기억 읽기를 했다.

그리고 금방 알 수 있었다. 이 여자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 빛의 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빛의 검. 그 스킬의 히든 스킬인 신검합일.

이야…. 씨발. 이름 존나 멋있네. 신검 합일이라니. 이런 이름의 스킬이 나오면 나라도 냅다 배웠을 거야.

효과는 아까 봤던 대로다. 여러 개의 빛의 검을 만들 수 있고 폴터가이스트처럼 어디에서도 빛의 검을 만들 수 있다.

음…. 좋네. 나쁘지 않아. 근데 성능으로만 따지면 폴터가이스트에는 못 미치네.

빛의 검을 들고 있다고 해도 만능은 아니니까.

근데 의아한 건…. 짱개놈들의 연구소 놈들이 왜 이걸 몰랐을까? 하는 거였다.

빛의 검이 아주 인기가 없는 스킬은 아니었을 텐데. 이걸 찍고 티어13 이상 올라간 놈이 없다고?

생각해보면 짱개놈들 중에서 빛의 검을 들고 있는 놈은 못 본 거 같다.

그때 상해당 놈이 공간 절단 같은 걸 쓰는 건 본 적 있는데, 공산당 놈들 쪽에서는 본적이 없는 거 같네.

근데…. 아무리 그래도 모를 수가 없을 텐데. 뭔가 비밀이 더 있나? 일부러 연구를 못 하게 한 건가?

스킬 삭제로 찍어봐서 히든 스킬이 있다는 걸 알아내는 거에는 안 걸렸을 거야. 이건 파생 스킬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단지 그 이유로 짱개놈들이 이걸 발견하지 못했으리라는. 생각은 안 든다.

인해전술을 쓰는 놈들이잖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지금은 그 이유가 뭔지 모르니 어쩔 수 없고.

다음에 짱개놈들 윗대가리를 조질 때 이걸 좀 확인해봐야겠네.

어쨌든 됐어. 이제 기억 읽기는 그만.

가만히 이 여자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스킬 숙련이나 하자.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쓰면 수면은 꺼지겠지만, 그래야 일어날 때 되면 일어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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