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55화 (55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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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가면.

본명은 이가라시 카이토. 32세. 뭐…. 남자 놈 이름이랑 나이는 알 필요는 없지만.

홋카이도 출신으로 세상이 망할 때는 히키코모리였다.

세상이 망하면서 인터넷이 끊긴 순간, 그는 진심으로 세상을 잃었다.

세상이 망한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인터넷이 안된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방을 나갈 수 없다는 것.

그게 문제였을 뿐.

어릴 적 입은 화상으로 인해 그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방안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부모님 역시 카이토가 화상을 입은 게 자신들의 잘못이란 것을 알았기에 그렇게 방에 틀어박힌 녀석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히키코모리 중에는 가장 속 편한 녀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아무도 그를 뭐라고 하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망했고 그의 방에는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는 모니터의 불빛만 비출 뿐이었다.

끔찍한 현실. 정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상황.

하지만 그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이상한 메시지가 떴고 바깥에서 비명이 들렸고 자신에게 밥을 차려주는 어머니가 더는 문 앞에 식사를 가져다주지 않았어도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사흘이 지나 방에 남아있는 마지막 물을 마신 그는 결국 방 밖으로 나왔다.

살기 위해서.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얼마 만에 내려왔는지 모를 1층. 조용했다. 그제야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지만…. 일단은 식욕이 먼저였다.

냉장고를 열고 잡히는 대로 입에 쑤셔 넣은 그는 허기를 겨우 해결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는 사실을.

그가 있던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빠르게 서로를 죽고 죽였나 보다. 왜 그런지는 자세히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그 시간에 방안에 틀어박혀 있었으니까.

밖은 엄청나게 무섭고 두려운 곳이지만, 세상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밖에서 들려오는 폭음.

전혀 신경 쓰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다음엔 자기가 있던 집 문이 박살 났으니까.

"한 놈 발견!"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 한 남자. 하지만 그는 자신을 보고 들고 있던 꼬챙이를 찌르려고 했다.

그 순간에 카이토가 자연스럽게 기절 스킬을 쓸 수 있었던 건 그가 그런 것들에 익숙했기 때문일 거다.

자신이 봐왔던 애니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망상들, 사흘간 방안에서 주린 배를 움켜잡고 살펴봤던 스킬 목록.

그런 것들 때문이었을 거다. 그는 기절을 썼고, 꼬챙이를 들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그리고 그게 그의 시작이었다. 그 한순간에 세상 밖은 하나도 무서운 곳이 아니게 되었다.

단지 말 한마디. 그 말 한마디에 사람이 쓰러졌다. 자신을 공격하려던 남자. 꼬챙이로 자신을 찌르려던 남자.

그랬던 남자가 한방에 쓰러졌다. 그렇다면…. 자기를 놀리고 괴롭혔던 녀석들. 자신을 방안에 틀어박히게 했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도 말 한마디로 쓰러뜨릴 수 있지 않을까?

애니메이션이 도움이 됐냐고 한다면, 그는 당연히 예라고 말했을 거다.

그래서 그런지 그는 빠르게 성장했다.

사회에 대해 조금도 들지 않는 동정심.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행방을 알 수 없는 어머니.

그러한 이유로 그는 홋카이도 일대를 거의 전멸시켰다. 혼자만의 힘으로.

그때쯤이 약 반년 전. 그렇게 그는 카멘사마라고 불렸고 다른 이름으론 절대 강자라고 불리게 되었다.

그건 뭐 그렇다 치고….

녀석이 팔이 잘리게 된 이유, 식량을 받으러 늦게 온 이유, 엉망진창의 몰골로 쫓기듯이 온 이유가 흥미로웠다.

홋카이도를 전부 잡고 일부만 살려 자신의 식량 창고로 만든 녀석은 남쪽으로 내려갔다.

자신의 힘을 확인하고 싶었는지, 아니면 단순한 호기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 건 기억에 나오지 않으니까.

어쨌든 그는 한 달 반 전쯤 센다이라는 곳에서 한 여자를 강간하려다가 실패했다.

녀석에겐 안타깝게도…. 그 강간하려던 여자는 검성이라 불리는 또 다른 절대 강자의 친구였다.

처음 맞부딪친 검성과 가면.

그리고 가면은 처참하게 밀리며 목숨만 부지한 채 겨우 도망갔다.

자기가 하려 했던 짓은 까맣게 잊은 녀석은 굉장히 열 받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짰다.

어쨌든 홋카이도를 혼자서 전멸시킨 놈이다. 절대 강자 소리도 듣는 놈이고.

결국, 녀석은 처음에 노렸던 검성의 친구를 강간하고 죽인 다음 친구와 검성이 지키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까지 전부 죽였다.

미친놈. 하여간…. 내가 심한 게 아니라니까.

어쨌든 친구와 마을을 전부 잃은 검성은 미친 듯이 가면을 쫓았다.

결국, 검성에게 한쪽 팔을 잃은 가면은 한참을 쫓기다가 겨우 비참한 몰골로 자신의 근거지로 돌아온 거다.

그런 녀석을 반긴 건 전멸해버린 마을. 그리고 천연 아가씨 하루카.

그리고 자신을 끝장낼 천사님.

이게 녀석의 기억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억을 읽으며 시큰둥했었다.

남자 놈의 기억 따위 세세하게 알고 싶지 않으니까.

내가 관심 있는 건 검성 아키. 그 여자.

정말…. 일본놈들의 문화는 잘 알 거 같으면서도 가끔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 여자는 고스족이었다. 그러니까 검은색 드레스 같은 걸 입고 다니는 여자들.

단발성 코스프레가 아닌 진짜 고스족. 몇 살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다. 화장이 진해서.

프릴이 잔뜩 달린 검은색 드레스를 입고 하얀 백발을 하고 빨간 서클 렌즈를 낀 여자.

그리고 그 여자는 빛의 검을 들고 공간 절단을 날렸다. 그리고 더 심한 것도.

기억만 봐선 그게 정확하게 무슨 스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절멸이라고 생각한다.

그거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

가면. 이놈의 스킬은 그렇게 볼만한 게 없었다. 스킬도 고작 14개.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게다가 이놈은 블링크 트리가 아예 없었다. 정말 어떻게 홋카이도를 잡아먹었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

아니…. 블링크는 기본 아냐? 왜 블링크를 안 배웠지?

이놈은 그냥 무효화에 기절 원툴이었다. 뭐…. 내가 말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어쨌든 모든 게 다 무효화랑 기절이었다. 아니면 폭발.

기절, 비행, 투명화, 반사, 보호막, 탐지, 적수, 폭발, 변신, 데미지 감소, 수납, 광역 스킬 무효화, 천리안, 투시.

마치 딱 반년 정도 전의 나를 보는 듯한 녀석.

높은 티어의 스킬은 없고 딱 쓰기 좋은 기본 스킬들만 잔뜩 배운 모습.

물론…. 이게 정석이긴 하다. 그리고 그 효과는 나도 잘 알지.

게다가 솔플로 성공하려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변신은 왜 찍은 거지? 좋아 보여서 찍었나? 그럼 존나 실망했겠네.

이래서 함부로 배우면 안 된다니까.

변신 말고 블링크를 배웠다면 훨씬 생존율이 높았을 텐데.

어쨌든 내 평가는 그렇다. 이 새끼는 진짜 강한 놈을 못 만나서 운 좋게 홋카이도를 먹은 거라고.

아마…. 광역 스킬 무효화 빨이 컸을 거야. 사실 그게 치트키긴 하지.

검성은 절멸 하나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절멸.

선행 스킬이 공간 절단과 심연, 성역인 스킬.

이것만으로도 스킬이 상당히 유추된다.

빛의 검, 공간 절단, 투명화, 페이즈 아웃, 심연,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성역. 벌써 여덟 개.

게다가 탐지도 있어 보였고 블링크도 있었다. 비행도 있었고…. 어쨌든 그런 여자.

결국, 읽은 것은 가면 놈의 기억이지만 내 계획은 검성을 포섭하는 것이 되었다.

냄새나는 히키코모리 남자와 이쁜 여자.

이건 뭐…. 두말할 것 없이 후자다. 내가 미쳤다고 남자를 곁에 두냐고.

내가 녀석을 죽이고 끝내느니 검성에게 넘겨주고 검성 그 여자를 포섭하는 것.

이게 훨씬 더 좋아 보인다. 게다가 그 여자가 어디 있을지도 알 거 같고.

그렇기에 나는 한숨 자고 나서 일어나자마자 여자들을 불러서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일본의 절대 강자 놈들을 잡으러 갈 거야."

신나게 짱개놈들을 잡다가 갑자기 일본행을 밝힌 나의 말에 황당해하는 여자들.

"일본이요? 갑자기?"

승희의 질문에 나는 일본에 대해서 전부 다 말해줬다. 하루카의 이야기는 적당히 덫이라고만 말해놓고 나머지는 제대로 다 말했다.

그러자 승희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아…. 그래서 오빠가 자꾸 저쪽에 있었구나. 저쪽이 뭐가 있는지 항상 궁금했는데. 홋카이도에 갔었던 거네요?"

승희의 말에 약간 뜨끔했다. 아. 파티. 그렇구나. 제약 해제를 배운 뒤에는 파티를 푼 적이 없지.

그럼 내가 있는 위치를 다 알 수 있었을 거다. 아…. 이거 살짝 소름 돋았네.

"맞아. 한참을 공들였는데, 결국 한 놈을 잡았지. 그래서 그런 이유로 일단은 일본의 절대 강자라는 놈들을 다 잡을 거야. 물론 거기에만 전념하는 건 아니겠지. 중간중간에 막히거나 하면 다시 짱개들도 잡고 그럴 거고."

"알겠어요. 오빠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오빠 마음이니까요."

쿨한 승희.

"도울 일 있으면 말해요. 도와줄게요."

친절한 미나.

"그러시던가."

시니컬한 세아.

"같이 가도 돼요?"

적극적인 안나.

"아. 물론 필요하거나 함께 할 수 있는 곳은 함께 하겠지. 근데 지금은 일단 정찰이 먼저라서."

살짝 아쉬운 듯한 안나.

아무리 그래도 검성 그 여자를 포섭하러 갈 건데 안나를 데려갈 수는 없지.

여차하면 매혹을 쓸 생각도 있으니까. 물론…. 이야기가 잘 되면 그럴 필요까진 없겠지만.

"이야기는 다 끝난 거예요?"

"어? 어."

"그럼 지금 바로 나갈 거예요? 그럼 우리는 오늘도 나갈 일 없는 거죠?"

"지금 바로는 안 나갈 거야. 나 축소가 얼마 남지 않아서. 그건 마스터 하고 가려고."

"아. 그래요? 그럼 우리 마스터 찍는 거 보고 가죠? 다들 얼마 안 걸릴 거 같은데?"

"아. 그래? 승희 너 몇 퍼센트인데?"

"92퍼요."

"다들 비슷한가?"

"아마도요?"

"그래? 그럼 보고 가야지."

아침을 차려 먹고 다들 느긋하게 숙련을 한다.

나 역시 돌멩이를 축소해서 하나씩 던지며 숙련하는데 안나가 가장 먼저 외친다.

"상태 회복 마스터 했어요!"

"오. 축하해. 그럼 바로 패시브 찍고. 아. 코인들은 넉넉하지?"

"네. 지난번에 자는 동안 잔뜩 들어온 거 때문에."

"그래. 근데 패시브 못 찍은 거 있었잖아?"

"네. 그거 다 찍고도 많이 남아요. 지금 패시브 다 찍었는데도 2600만 정도 있네요."

"한번, 아니 두번 정도는 더 찍을 수 있나. 어쨌든. 패시브 다 찍었어?"

"네."

"그럼 이제 염력 배우면 되겠네."

"알겠어요."

그렇게 말하는데 이번엔 미나가 외친다.

"저도 끝!"

"오. 잘했어. 미나도 패시브 다 배우고. 미나는 뭐 배울래?"

"전 파이어 볼 해야죠."

"아. 맞다. 근데 미나도 수납 배우고 싶지?"

"사실은 그래요. 근데 빨리 천국의 문은 배워야죠."

음. 약간 미안하네. 괜히 배우라고 했나.

"힘내. 힘든 거 시켜서 미안해."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렇게 미나와 이야기하는데 이번엔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승희와 세아가 동시에 외친다.

"끝!"

"다했다!"

"너네 무슨 시합하니?"

"아. 내가 더 빠를 수 있었는데."

아쉬운 듯한 세아. 저런 걸 보면 웃긴다니까. 확실히 어려. 귀엽기도 하고.

"나는 뭐 배워요?"

"승희 너는 패시브 다 배우고…. 너도 수납 배울래?"

"음…. 그래요. 지금 수납보다 좋은 공격은 없는 거잖아요? 게다가 수납 자체의 효과도 엄청나고."

"그치."

"알았어요. 그럼 수납 배울게요."

"패시브 다 찍는 거 잊지 말고. 특히 폴터가이스트."

"알아요. 그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그러면서 스킬을 찍는 승희.

"세아는? 패시브 다 찍었어?"

지난번에 다 털었다고는 했지만, 아직 얼굴 보는 게 약간은 뻘쭘하다.

하지만 세아는 이제 신경을 안 쓴다는 듯 평범하게 대한다.

"어. 난 수납 있는데. 뭐 배우지?"

"그러게. 니가 문제네. 뭐 배우고 싶은 건 있어?"

"딱히 없는데."

"음…. 채찍 배울래?"

"채찍으로 맞을래?"

"왜? 채찍 그거 은근히 좋아 보인단 말야. 채찍 히든 스킬 그거 여왕인데, 전에 효과는 말했지? 채찍으로 훼이크 주면서 실제로는 폴터가이스트로 공격하는 거지. 그럼 효과 좋을 거 같지 않냐?"

"채찍에 맞으면 매혹 효과 난다며. 그래서 싫어."

"아…. 그래. 미안."

매혹 소리에 급 쭈그리가 됐다. 쳇. 내 업보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럼 축소 배울래?"

"작아지는 건 더 싫어."

이크. 이것도 컴플렉스인가. 어휴. 까다로운 가스나.

"아무거나 배워도 되나?"

"뭐…. 지금은 여기에 더 필수로 배울만한 건 게이트 트리밖에 없는데."

"음. 그래. 그럼 그거 배울래. 순간이동 배우면 되지?"

"어? 어. 그렇지."

"알았어. 그럼 순간이동 배운다."

그리고는 허공에 손을 움직이더니 벙커 안으로 들어간다.

뭐지? 아. 저장하러 가나? 하긴, 저장부터 해야 순간이동 하지.

그렇게 안에 들어갔던 세아는 다시 바깥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작게 중얼거린다.

"순간이동."

그리고 사라지는 세아. 탐지로 확인 하니 자기방에 있는 세아.

투시로 방을 바라보니 세아는 기분이 좋은 듯 씨익 웃는다.

아무도 안 보고 있어서 저렇게 웃는 건가? 귀여운 녀석. 대놓고 웃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는데.

저런 거 보면 쟤 츤츤거리고 투덜거리는 거 다 컨셉 같다니까.

어쨌든 그런 여자들을 보면서 나도 결국 축소를 마스터 했다. 하.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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