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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어찌어찌 위치를 찾긴 했다.
빌어먹을 길 찾기. 주소와 번지, 그리고 기억에서 본 장면들만 보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문제는 깊은 새벽이라 건물에 아무도 없다는 것.
뭐…. 이건 당연하지. 이놈들도 집에 가야 하고 잠을 자야 할 테니까.
어차피 하루 만에 뭔가를 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안 했다. 내가 그 차장이라는 놈의 집 주소를 아는 것도 아니니까.
여기 저장해놓고 이따가 다시 와야지.
그래도 이게 어디야. 예전이었다면 이 근처 사람 없는 곳에 숨어서 뜬눈으로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을 거잖아.
위치를 저장하고 집으로 순간 이동한 다음 늘어지게 한숨 잤다.
그리고 점심 늦게 일어나 다시 순간이동 했다.
불과 10시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느껴지는 기척이 다르다.
많네. 생각보다 많아. 역시 웃긴 세상이야. 아무리 봐도 신기해.
미국과 중국. 공통점이 있다.
정말 윗대가리는 꼭꼭 숨어있지만, 중간 정도 되는 놈들까지는 무방비하게 노출되어있다는 것.
사실, 이건 두 나라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어디나 비슷하겠지. 다루고 있는 정보, 지식, 보안…. 이런 걸 생각하면 이게 맞긴 하다.
그런 걸 생각하면 러시아 놈들은 정말 여유로운 거 아냐? 실세 정치인이 대놓고 다니니까.
아니, 내가 운이 좋았던 것도 있겠지.
녀석을 밑에서부터 따라 올라갔으면 그렇게 쉽게 찾지는 못했을 거야.
어쨌든 의심받지 않을 위치에서 축소를 쓰고 천리안과 투시, 탐지를 써서 건물 안쪽을 살펴본다.
차장…. 차장…. 차장. 찾았다.
근데 저 차장 놈을 노릴 필요가 없잖아? 이 건물에서 제일 높은 놈을 따라가는 게 더 낫지?
시선을 돌려 어떤 놈이 가장 높은 놈인지 찾아본다.
방 제일 큰놈이 가장 높은 놈이겠지. 그리고 그리 힘들지 않게 찾아냈다.
으음. 보기 드문 50대 정도 되는 배 나온 아저씨네.
지금 세상에선 오히려 저런 사람이 무서워. 저런 피지컬을 가지고도 살아남았다는 소리잖아?
여기는 중국과학보 스킬 정보국 베이징 본사다. 거기의 수장이면 관료치고는 상당히 높은 자리야.
저놈이 제1 연구소장 보다 높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그래도 허접한 자리는 아니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기다릴 뿐.
느긋하게 축소 숙련을 하면서 녀석을 지켜본다. 녀석도 퇴근 시간 되면 퇴근은 하겠지. 여기서 사는 게 아닐 테니까.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여기 시간으로 오후 5시가 됐다. 건물 안에 있는 놈들이 슬슬 퇴근하려고 각 잡는 게 보인다.
그럼, 나도 이제 준비해야겠네.
국장. 아마도 저놈이 국장일 거다. 여기가 중국과학보 스킬 정보국이니까 국장 맞겠지.
녀석은 자신의 비서인듯한 여자에게 뭔가를 지시하고 책상에 있는 것들을 서랍에 넣는다.
그리고 방문을 잠그더니 창문의 블라인드를 치고 책상 밑으로 들어간다.
뭐 하는 거야? 투시로 살펴보니 아래에 금고 같은 곳에 뭔가를 집어넣었다.
아. 그렇구나. 금고가 저기 있어.
하긴, 지금 세상에서 금고는 존재의 의미가 많이 퇴색되긴 했지. 잠금 해제 한방이면 그냥 열리니까.
그렇기에 저런 식으로 위치 자체를 숨기는 거겠지. 근데 저것도 의미가 있나 싶다.
그렇게 책상에서 나온 그는 이번엔 벽으로 가서 액자를 열고 다른 금고를 열었다.
금고가 두 개? 뭐하러?
거기에서 서류철들을 꺼내더니 책상에 남아있던 서류를 거기에 집어넣는다.
뭐하는 건지 모르겠네. 음. 일단 퇴근할 생각은 맞는 거 같으니 기다려보자.
그렇게 뭔가 작업을 마친 남자는 그대로 사라졌다.
어? 씨발? 뭐지? 사라졌다고?
페이즈 아웃? 블링크는 아닐 거고…. 아. 씨발. 순간이동이구나.
그래. 순간이동으로 퇴근한 거야. 아…. 내가 멍청했네. 명색이 스킬 정보국 국장인데 순간이동 정도는 있을 수 있겠지.
갑자기 김이 팍 새네. 이런 적은 또 처음이야. 이래서는 녀석의 집 같은 건 알 수가 없잖아.
그럼 내일 낮에 노려야 하나? 근데 그것도 쉽지 않다. 납치 정도야 어렵진 않겠지만…. 자리를 비우게 되면 바로 들통날 거다.
하. 지랄 같네. 뭐 방법 없나?
결국은 대낮에 여기 와있을 때 빠르게 기억을 읽어야 한다는 뜻인데.
절대 쉬운 일이 아니잖아. 으. 빡치네. 추적이라도 배워야하나.
그러기엔 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아직 축소도 마스터 못 했는데. 게다가 다음은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배워야 하잖아.
추적을 배우고 마킹을 배우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긴 하지만, 당장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배우기 약간 아깝기도 하고?
머리를 긁적이다가 일단은 아까 타겟으로 삼았던 차장 놈을 살펴본다.
다행히 녀석은 순간이동은 없나 보다. 지하로 내려가서 자기의 차를 끌고 퇴근하는 녀석.
일단 녀석이라도 쫓아 가본다. 뭐 기대는 안 하지만 일단 저놈 머리라도 뒤져봐야지.
차량 정체가 없게 된 베이징이라 차는 수월하게 교외로 나아갔다.
중간에 봉쇄된 벽까지 지나 고급 주택가로 향하는 차.
이야. 차장 정도면 저 정도 주택에서 살 수 있는 거야? 신기하네. 한국의 차장이랑 느낌이 다른가?
어쨌든 집으로 돌아간 녀석을 부인이 반긴다. 지극히 가정적인 모습. 뭐랄까. 짱개놈들도 저런 삶이 있구나? 하는 모습?
그러고 보니 이쪽 주택들은 확실히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 아마…. 다들 어딘가 한 자리씩 하는 놈들인가보다.
그림 같은 주택, 즐비한 외제 차, 평화로운 모습들.
이 새끼들. 살만한가 보네. 수원지에 다시 가서 바닷물 좀 타줘야겠어. 눈꼴시네.
일단 저 새끼 기억 읽고 여기 데스 윈드 한 방 날려야겠다.
왜 진작 이런 곳을 발견 못 했지? 알았으면 진작 날렸을걸.
녀석이 잠이 들때까지 기다릴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어차피 데스 윈드 맞으면 이 부근이 다 증발할 건데. 뭐하러 밤까지 기다려?
블링크. 그리고 페이즈 아웃. 지붕을 뚫고 집안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해제.
축소와 투명화, 비행…. 암튼 버프를 잔뜩 걸고 열려있는 문을 지나 아래층으로 조용히 내려갔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는 세명. 차장, 부인, 젊은 아가씨 하나.
딸인가? 그런가 보네. 암튼 뭐 알게 뭐야. 무효화를 걸고 셋 다 수면을 걸었다.
밥 먹다 말고 식탁에 고개를 처박는 셋. 엎어져 있는 차장의 등판에 올라가 앉은 다음 녀석의 기억을 읽는다.
음…. 음…. 음…. 쓰레기네.
이놈이 알고 있는 가장 높은 인간은 아까 순간이동 했던 국장이다. 결국, 별 의미가 없었네.
혹시나 국장의 집 같은 걸 알까 했지만 역시 알 리가 없다.
출퇴근을 순간이동으로 하는 놈인데 아무에게나 집 위치를 알려주진 않겠지.
어쨌든 이제 여긴 볼일 없다. 그럼 뭐…. 마무리해야지.
차장 놈을 그대로 수납으로 먹었다. 그리고 그 부인도.
이제 딸의 차례. 근데 의외로 딸은 제법 이쁘다. 염력으로 고개를 들어보니 이 정도면 이 일대에서 가장 이쁜 여자가 아닐까 싶다.
양팔을 염력으로 잡고 들어 올린 뒤 입고 있는 옷을 잡아 뜯었다.
금방 속옷 차림이 돼버린 딸. 가슴도 적당히 크고 몸매도 좋다. 이야…. 짱개만 아니었어도 바로 박았을 텐데.
하지만 아무리 이뻐도 짱개랑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아무리 맛있고 몸에 좋아도 곤충 요리를 안 먹는 거랑 마찬가지의 개념이니까.
그래서 그대로 수납으로 삼켰다. 아. 이것도 먹은 건가?
내가 직접 먹은 건 아니니 노카운트로 하자.
바로 집 밖으로 나와 하늘로 올라가 위치를 저장했다.
그리고 집으로 순간이동. 한창 느긋하게 여유 부리며 스킬 숙련 하는 네 여자를 부른다.
"어. 쉬는데 미안하지만 잠깐만 나 좀 도와줄래?"
"옷 입어야 해요?"
승희는 지금 흰 면티 한 장에 짧은 돌핀 팬츠 하나만 입고 있어서 그런지 진지하게 물어본다.
"어…. 투명화면 되지 않을까? 혹시 테이밍 새로 해야 하나?"
"아뇨. 저는 그냥 소환하면 되는데."
"나도."
"저도요."
세아와 안나도 대답했고, 나는 바로 게이트를 열며 말했다.
"그럼 가자. 10분도 안 걸리겠네."
그렇게 고급 주택가에 우레 폭풍과 눈보라 데스 윈드가 펼쳐졌다.
요란하게 떨어지는 벼락, 급격하게 휘몰아치는 눈발, 그리고 바람 소리와 함께하는 죽음.
그 사이를 날아드는 까마귀들.
금세 이곳에서의 기척들은 모두 사라졌고 나는 다시 게이트를 열어주며 말했다.
"고생했어. 다시 가서 쉬어."
다시 우르르 게이트로 들어가는 여자들. 10분은커녕 5분도 안 걸렸네. 암튼 빨리 끝나면 좋지 뭐.
베이징 교외라고는 하지만 고급 주택이 있는 곳에 이런 사달이 났으니 아마 파견대급 놈들이 들이닥치겠지?
근데 이놈들은 우리가 그렇게 베이징 주변에서 깽판을 쳐놨는데 별 위기감이 없나?
아니면 인간이 너무 많아서 몇만 명 죽은 거로는 감흥이 없나?
잘 모르겠다. 짱개놈들의 사고방식은 죽어도 이해 못할 거야. 근데 이건 짱개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데. 기본 문제 아닌가?
아…. 얘네 기본 없지. 짱개 맞네.
얼마 있지 않아 이 근처는 난리가 났다.
겨우 한 뼘 차이로 목숨을 건진 짱개들부터 순식간에 이웃을 잃어버린 짱개들.
그 외에도 많은 인간이 뒤늦게 도망가기 시작한 것.
멀리서 천리안으로 보고 있는 거라 소리는 안 들리지만, 아마 저기 있었으면 귀가 터졌을 거야.
보기만 해도 시끄러움이 느껴지는데…. 가까이 있었으면…. 어휴.
코인을 줍는 까마귀들을 지켜보며 여유 있게 축소 숙련을 한다.
86퍼센트. 얼마 남지 않았어. 앞으로 700번. 돌멩이 700개만 축소 시키면 끝이네.
그렇게 있는데 드디어 파견대같이 생긴 놈들이 나타났다.
오자마자 텅 비어 버린 주택들과 거기를 오가는 까마귀들을 보더니 바로 까마귀를 잡으러 움직이는 녀석들.
숫자는 일곱. 테이밍은 없어 보이네. 어쩐다. 고민되네.
어차피 까마귀를 다 지킬 수도 없고 지킬 필요도 없다. 차라리 까마귀를 미끼로 하나씩 잡아 죽이는 게 낫지.
기척에서 하나라도 사라지면 녀석들이 눈치챌 거다. 그럼 수납은 안 되겠네.
간만에 클래식하게 가볼까.
코인 때문에 까마귀들이 지상에 내려와 있는 게 다행이다.
파견대 대장인 듯한 놈만 공중에 떠 있고 나머지들은 까마귀를 잡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와 있으니까.
축소를 쓰고 있기에 탐지에는 쉽게 안 걸리다니 마음 놓고 비행한다. 그리고 한 놈. 바로 무효화와 수면.
잠든 걸 확인하고 바로 다음 녀석을 찾는다.
과연…. 언제까지 눈치채지 못하려나?
세 놈. 아직 아무도 눈치 못 챘다.
네 놈. 네 명이나 한자리에 가만히 있는 걸 의아하게 생긴 대장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섯 번째 놈에게 무효화와 수면을 건 나는 그대로 대장 놈 뒤로 블링크 해서 수납으로 먹어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놈. 아직도 눈치 못 채고 까마귀 한 마리를 잡아 죽인 뒤 의기양양하게 날아오른 녀석.
그런 녀석에게 수고했다고 수납을 선물로 줬다. 고생했어. 앞으로 푹 쉬렴. 영원히.
잠들어 있는 다섯 놈을 바로 수납으로 먹어치운다. 음. 야미.
역시 압축 짱개들은 코인이 제법 된다니까.
일곱 놈을 잡고 150만. 역시 깔끔해. 지급 파견대가 300개 이상 있다고 했던가?
녀석들이 한 팀씩 계속 이렇게 와주면 너무 고마울 텐데.
파견대만 다 잡아도 4억 5천이잖아? 히익. 생각만 해도 행복하네.
그렇게 비어버린 공터에서 다시 축소 숙련을 한다.
또 파견대 안 오려나? 주특기인 인해전술…. 왜 안 쓰지?
썼으면 좋겠다. 제발 좀 와라. 조금 많이 와도 되니까…. 오기만 해. 내가 정성껏 상대해줄게.
근데 안오네. 근성 없는 새끼들. 이렇게 내가 기다리는데. 왜 안 오는 거야.
까마귀는 아직 열댓 마리 정도 남았다. 파견대 븅신 놈들. 까마귀도 하나 제대로 못 싶으냐.
하긴, 동물 탐지가 없으면 찾기도 쉽지 않았겠지. 한 열 마리 잡은 것도 대단하다고 해 줘야지.
열심히 코인을 줍는 까마귀들.
우레 폭풍을 맞은 곳은 건물이 폭삭 무너져서 코인을 빨리 줍는다.
하지만 눈보라와 데스 윈드 쪽은 집들이 멀쩡해서 코인 줍는 게 더디다.
그래도 웃긴 건 테이밍으로 강화된 까마귀인 데다가 똑똑해서 그런지 약한 창문 같은 걸 그대로 깨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코인을 줍는다.
솔직히 테이밍 된 까마귀면 스킬 한 개만 있는 민간인 같은 녀석들은 이길 수 있을 거 같아.
테이밍으로 강화되는 게 생각보다 크니까.
저런 놈들이 부리로 얼굴을 쪼면 금방 피범벅이 되겠지.
혹시나 파견대 놈들이 또 올까 해서 계속 기다렸지만, 녀석들은 노선을 바꿨나 보다.
이런 거 보면 이놈들 좀 이상하단 말이지.
명령 체계가 잘 잡혀 있는 거 같으면서도 가끔은 없는 것처럼 군단 말야.
그렇게 자정이 될 때쯤에는 코인 들어오는 게 확 줄어들었다. 음…. 대충 35만 코인인가? 3,500명? 생각보다 많네.
한군데만 스킬 쓴 거 치고는 의외로 많이 죽었어.
어쨌든 됐다. 여기는 이제 됐고…. 그 국장 놈 잡을 생각이나 하자.
일단 생각난 게 있으니 해봐야지. 그러려면…. 아침이 돼야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