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52화 (55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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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

행동패턴을 조금 바꿨다. 밤에 움직이는 거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 게 뻔한 놈들. 낮에는 아무리 투명화를 써도 천리안에 노출된다.

그러니 어둠을 틈타 밤에 움직이는 수밖에.

우레 폭풍, 눈보라, 데스 윈드.

흉악한 스킬들이 계속해서 써지고 짱개들은 죽어 나간다.

그렇게 엉망이 된 잔해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까마귀 떼는 부지런히 코인을 줍는다.

"절대 한자리에 오래 있지 마. 노려지면 안 돼. 어디서 뭐가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긴장해. 우리가 쓰는 수납 킬은 저쪽에서도 쓸 수 있다고 보고 항상 주의해. 항상 밖에서는 반사적으로 블링크를 쓸 생각을 하고 있어. 탐지도 유지하고. 갑자기 기척이 느껴진다? 아니면 뭔가가 내 근처에 나타난다? 그럼 일단 블링크를 써. 최소 두세 번.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일단 피하고 보라는 말이야."

처음 사냥을 하기 전에 집에서 해주고 나온 말이다. 다들 알았다고 대답했지만, 사실 저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거의 강박증 걸린 사람처럼 대비하고 있어야 가능한 일.

체력적, 정신적 모두 상당히 부담이 가는 짓이 맞다. 그러니 사냥을 하고 돌아가면 여자들은 녹초가 되어버리지.

잔뜩 늘어진 상태로 포션을 마시며 멀미가 올 때까지 스킬 숙련을 하다가 해가 뜰 시간쯤에 잠드는 모습.

네 여자가 잠들어도 나는 할 일이 많다.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 까마귀들이 코인을 줍는 것을 지켜본다.

물론 나도 힘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이 짓은 익숙하니까. 승미세안 보다는 널널하지.

해가 떠오르는 모습과 까마귀들이 폐허를 날아다니는 모습.

그걸 보면서 느긋하게 축소 숙련을 한다.

주변의 돌멩이들을 하나씩 집어 들어 축소 시키고 던지기를 반복한다. 별로 어려울 것 없는 반복 작업.

그 단조로운 작업에 머리는 또 잡생각으로 빠진다.

하루에 최소 200만씩은 꼬박꼬박 벌어들이는 사냥. 다섯 명이 나눠 가지고 있으니 사실은 천만.

정말…. 코인 벌어들이는 것도 획기적으로 올랐네. 하루에 천만이라니. 게다가 그것도 만족 못 하고 있어.

물론 수준이 높아지고 쓰는 양이 많아지니 이렇게 되는 건 당연할 거다.

일단 패시브 비용이 무지막지하니까. 그걸 감당하려면 이정도는 벌어야지.

게다가 승미세안 네 여자도 최대 수치 증가와 한계 돌파 패시브를 배우고 있어서 소비는 점점 커질 거잖아.

그말은 결국에는 하루 200만으로도 부족하다는 소리다.

확실히 나는 부족하긴 하다. 스킬 하나 마스터 하는데 빠르면 나흘에서 길면 일주일인데.

일주일로 쳐봐야 1,400만. 이정도 벌이로는 코인 충당이 안 된다는 소리다.

그래도 연구소를 전멸시키고 코인을 제법 많이 벌었기에 당분간은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지.

지금 가진 코인은 7,300만. 이래서야 스킬 삭제는 한 번도 못써보겠네.

아직 아무도 스킬 삭제를 못 한게 이해 간다. 1억 코인. 그걸 모으려면 성장을 포기해야 해.

이놈의 스킬들은 언제까지 선택을 강요하려는 걸까? 찝찝하게.

부지런히 코인을 줍고 있는 까마귀들. 오늘은 노리는 놈이 없나?

뭔가 수 싸움을 계속할 줄 알았는데.

녀석들 입장에선 미치고 팔딱 뛸 일이겠지? 놔둘 수도 없고 처리할 수도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해서 계속 두고 보지만은 않을 거다. 그게 마음에 걸린단 말이지.

녀석들이 븅신들이 아닌 이상 지금까지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어느 정도는 분석을 했을 거야.

결국, 우리가 공격을 받기 시작한다면 그건 저놈들이 승산이 있으니 덤빈다는 소리일 거고.

하아. 그럼 나는 그걸 또 예상해서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당하면 늦으니까.

머리 아프네. 나는 그렇게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닌데.

아무리 짱개 새끼들을 혐오하고 무시한다고 해도 어쨌든 저쪽엔 나보다 똑똑한 놈들은 수두룩하고 빽빽하게 있을 거다.

그리고 그런 놈들이 나와 승미세안 네 여자를 잡거나 죽이려고 머리를 모아 방법을 짜낼 거고.

불리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리해.

지금은 스킬 성능으로 찍어누르고 있지만, 결국은 당하게 된다. 이래서 노출되는 건 싫어.

나 하나 위험해지는 건 어찌어찌 극복할 수 있다. 여자들이 걱정이지.

그게 문제야. 걱정이 네 배는 더 늘어나는 거. 어휴. 이걸 어쩌면 좋냐.

점심 무렵이 되자 얼추 코인은 다 주웠다. 200만 넘었으니 됐지. 이쯤 되면 돌아가자.

벙커에 돌아가 적당히 자고 다시 밤에 눈을 떴다.

내가 일어나자 이미 다들 나갈 준비를 하는 네 여자. 근데 얼굴이 왜 이리 푸석해 보이냐.

생기가 없네.

"힘들지?"

"괜찮아요. 며칠 했다고 벌써 힘들어해요."

싱긋 웃는 승희. 근데 힘이 없어보인다. 오늘이 사냥한 지 며칠째지? 엿새째인가?

"안 되겠다. 오늘은 쉬자. 너희 오늘은 쉬어."

"엥? 그래도 돼요?"

"어. 할 땐 하는데 쉴 때도 있어야지. 그리고 너희 염력 숙련 얼마나 되지? 다 고급 50퍼는 넘었나?"

"네. 전 67퍼센트."

"저는 70퍼센트요."

"64퍼."

"75퍼센트요."

"얼추 비슷하네. 그럼 내일까지 쉬면서 일단 스킬 마스터 부터 하자. 패턴을 좀 바꿀 필요가 있어."

그렇게 정해지자 제각기 제방으로 돌아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더니 각자 염력 숙련을 한다.

그래. 완급 조절은 필요하지. 무작정 밀기만 하면 결국은 부러져. 탈 난다고.

"오빠는 나가요?"

"어. 집에서 쉬고만 있을 수는 없지. 나는 할 일이 많아."

"아니. 쉴 때 같이 좀 쉬죠. 어디 가려고요?"

"짬통 뒤지러?"

"네?"

"연구소 소장을 잡고 얻은 정보들 써먹어야지. 필요 없어 보여도 마저 확인은 해야 하니까."

"음…. 뭔지 잘 모르겠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죠. 조심히 다녀와요. 절대 무리하지 말고요."

승희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의 인사를 받으며 다시 베이징으로 순간 이동한다.

제1 연구소 소장의 기억을 뒤지면서 중요해 보이는 곳은 알아내는 즉시 바로 찾아가 봤었다.

짱개놈들이 빠르게 조치했기에 따로 얻은 건 없지만, 모든 곳을 다 가본 건 아니다.

분명 녀석들이 전부 조치하지 못하고 놓친 곳이 있을 거야. 없을 리가 없다. 그러니 그런 곳들을 찾아보는 거다.

찾아서 잡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닌 윗대가리 놈들을 찾아낼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서.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곳은 소장 놈이 있던 대학 연구소다.

소장 놈이 세상이 망할 때쯤 있던 곳, 그때 그 녀석은 대학 연구소 소장이었다.

세상이 망하면서 대학이나 어지간한 연구소들의 모든 연구 주제는 스킬로 바뀌었다고 한다.

인문, 사회, 과학…. 아무 의미가 없어졌으니까. 스킬 자체가 모든 상식을 박살 내버렸는데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스킬에 대한 연구와 그 효과. 활용법, 실험, 기술과의 융합….

짱개놈들은 강제로라도 사회가 유지 되었기에 그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물론 거기에 필요한 지원은 국가에서 전부 지원해줬고.

참 신기해. 그때 우리나라는 신나게 서로를 잡아 죽이고 있을 때인데.

어쨌든 거기로 가본다. 제발 뭐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한참을 헤맨 끝에 자정이 될 무렵에야 대학교에 도착했다.

학교 참 크네. 역시 짱개놈들이란…. 뭐든지 큰 걸 좋아해. 마음은 쪼잔한 새끼들이.

그 넓은 대학교에서 기척이 느껴지는 곳은 한군데뿐이었다.

기척은 열 명 정도? 천리안과 투시를 써서 보니 녀석들 중의 일부는 가운을 입고 이 시간에도 뭔가를 테스트하고 있다.

제대로 찾아왔네. 저건 아무리 봐도 스킬 테스트잖아?

바로 내려갈까 했는데 녀석들이 하고 있는 게 흥미로워서 나도 어느샌가 지켜보게 되었다.

이럴 게 아니고 내려가서 보자. 대체 뭘 하는 거야?

페이즈 아웃으로 건물 안으로 들어간 다음 투명화와 축소를 쓰고 녀석들이 실험하고 있는걸 지켜본다.

체육관 같은 곳. 한쪽 벽에는 과녁이 놓여있고 맞은편 벽에는 나이 좀 있는 남자와 제법 젊은 남자 둘, 여자 하나가 테스트를 하고 있다.

실험용 고글과 귀마개를 쓰고 있는 녀석들.

"염력 준비됐어!?"

"네! 준비 완료!"

"그럼! 탄환 준비하고!"

"네! 투명화! 장전 완료됐습니다!"

"좋아! 링웨이! 쏴라!"

"쏘겠습니다! 폭발!"

펑!!!

화염이 길게 내뿜어지고 반대편 벽에 있던 과녁 한곳이 그대로 뚫렸다.

"오!!!"

고글과 귀마개를 벗고 달려가는 나이 있는 짱개.

그리고 젊은 남녀 역시 귀마개를 벗고 그걸 보면서 뭔가를 서로 이야기한다.

"아. 역시 강선 없이 활강만으로는 이게 한계인가?"

"어쩔 수 없어. 염력으로는 강선까지 구현하기가 힘들다고. 모르지. 그것마저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는. 근데 나는 못하겠다. 그정도로 공차 없이 만들어내긴 힘들어."

"류쥔. 너보고 뭐라고 하는 게 아냐. 나는 활강포의 한계를 말하고 싶은 거라고."

"하아. 나도 알아. 그냥 답답해서 그러는 거야. 차라리 염력으로 총신을 만들지 말고 그냥 기성품을 쓰는 게 낫겠어."

"그럼 우리 연구의 의미가 없지. 순수 스킬만으로 총을 구현하는 건데. 기성품을 쓰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녀석들의 대화, 그리고 방금 한 테스트. 쓸모는 없어 보이지만 상당히 흥미롭긴 하다.

염력으로 총신을 만든 다음 투명화로 안 보이게 만든 탄환을 장전하고 폭발로 화약을 대체해서 탄환을 날린다?

진짜…. 존나 쓸데없어 보이네. 스킬 세 개를 조합해서 겨우 총알 위력을 내게 한다고?

"한 번 더 해보자!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잖아!"

나이든 짱개가 다가와서 다시 젊은 짱개들을 격려한다.

저 나이든 녀석이 교수나 뭐 그런 거겠지? 아니면 여기 연구소 소장일 수도 있고.

기척이 열 명 정도밖에 없으니 연구소장이라고 하기에도 우습다. 게다가 연구하는 수준을 보면…. 연구소라고 하기도 애매해다.

아마 저놈들에겐 고급 정보들이 제공되지 않으니 저런 삽질을 하고 있겠지.

솔직히 염력 산탄만 해도 저거의 위력에 몇 배는 강하니까.

근데 또 너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을 거 같다. 원래 인간의 기술이란 저렇게 발전했잖아?

저런 식으로 실험하고 결과를 만든 다음 거기에서 파생된 기술을 다른 곳에 적용하고….

그게 인류가 과학을 발전시킨 원동력이긴 하다.

아마 저놈들이 테스트 하는 저런 것들도 제1 연구소 소장 이런 놈들이 받아 본 다음 쓸만한 게 있나 살펴보겠지.

그리고 발상은 나름 신선하긴 했다.

비효율적인 게 가장 큰 문제긴 하지만, 저런 식으로 스킬을 조합해서 뭔가 다른 효과를 낸다는 건 나쁘지 않지.

근데 방향을 너무 이상하게 잡았어. 저걸로 저격 총의 효과를 내는 게 아니라면 아무 의미 없는 짓이잖아.

아니다. 저격 총? 가능하지 않을까?

어쨌든 살상력 있는 무언가를 압도적으로 멀리 날려버리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음…. 이건 조금 연구를 해봐야겠네. 염력 산탄이 아니고 염력 저격이라…. 왠지 멋지네.

역시 저격은 로망이지.

그렇게 염력 저격에 대해 생각을 하며 녀석들의 실험을 계속 지켜본다.

두어 시간을 그렇게 더 테스트하던 녀석들은 그제야 마무리를 짓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간다.

그런 그들을 보며 나는 나이든 남자를 따라갔다.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 남자는 책상에 앉아서 뭔가를 한참 쓰더니 가운을 벗고 그대로 침대에 눕는다.

에이. 드럽게 꾸물거리네. 기다리느라 힘들었잖아.

잠든 남자에게 무효화와 수면을 걸고 기억 읽기를 한다.

다른 정보는 필요 없다. 이놈의 상관. 이놈이 연구 성과를 보고하는 놈. 그놈만 찾으면 된다.

한참 그렇게 기억을 읽다가 드디어 원하는 녀석을 찾았다.

여기도 역시 중국과학보네. 하긴, 녀석들 역할이 이쪽이니 당연한 건가.

이 중국과학보라는 곳은 사실 그냥 과학 관련을 다루는 신문이다.

따지고 보면 신문사? 그런 곳이었을 뿐.

원래는 중국과학원이라는 곳이 있었다. 중국 내부에서 자연과학 분야의 최고 학술기관이자 자문기관이였던 곳.

하지만 상해당과 그 외 적대 세력의 집중 공격에 과학원은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제 역할을 못 하게 됐다.

그 후로 그나마 남아있는 조직 중에서 가장 이쪽을 수습할 수 있는 과학보가 과학원의 역할을 대체하게 된 것.

그럼 이름을 바꾸지 뭐하러 과학보로 계속하는 거야? 이해를 못 하겠네.

어쨌든 다음 목표를 찾았으니 됐다. 이제 이놈들은 볼일 없어.

하지만…. 죽일 수는 없다. 이놈들을 죽이면 왜 죽었나 조사가 올 거고 내 행적이 추적당할 수 있으니까.

뭐…. 어차피 이놈들 코인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냐. 그냥 놔두자.

생각보다 시간을 지체했으니 바로 넘어가자. 목표는 베이징에 있는 중국과학보 스킬 정보국 차장.

여기 연구소장이 직접 보고 하러 가는 상급자. 녀석의 기억을 뒤지고 하나씩 위로 올라가 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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