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49화 (54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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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

"이 오빠야! 일어나! 잘 만큼 잤으니까 이제 일어나서 빨리 궁금증 좀 풀어주라!"

그런 소리와 함께 내 몸을 짤짤 흔들고 있는 승희.

"그래. 나도 너 사랑해."

나는 승희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그대로 끌어안았다.

건방진 가스나. 감히 내 잠을 깨워? 승희 너라서 봐줬다.

음…. 미나랑 세아랑 안나도 봐주긴 했겠지만.

"나도 사랑하긴 하는데. 빨리 일어나보라고. 응!?"

내가 안고 있는데도 계속 나를 짤짤 흔드는 승희. 아. 진짜 시끄럽네. 입 좀 막고 싶다.

아. 그래. 입을 막으면 되겠네.

"읍…. 푸아! 왜 갑자기 키스야! 일어나라니까!?"

입만으로는 안되나? 그럼 윗입이랑 아랫입을 동시에 막으면….

그런 등신같은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승희에게 강제로 일으켜졌다.

멍하네. 얼마나 잤지? 시계를 보니 오전 11시. 음…. 열 시간 잤나? 아. 더 자야 하는데.

"다들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빨리! 빨리! 빨리!"

거실로 끌려나가자 미나, 세아, 안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음. 그래. 하긴, 궁금하겠지. 아. 근데 한 시간만 더 자게 해주지. 내 잠을 깨워? 두고 보자. 나쁜 계집애.

"빨리 말해봐요. 우리 이틀간 잔뜩 긴장하고 있었단 말이야. 코인은 막 엄청 들어오지.

오빠는 안 들어오지. 언제 나가야 할지는 모르지."

"아. 그건 내가 잘못했네. 미안."

일단 사과부터 박고 시작한다. 내가 신경 못 쓴 건 사실이니까.

연구소니 안가니 여기저기 다니느라 정작 벙커는 못 왔네. 하여간. 이렇게 멀티테스킹이 안된다니까.

"그러니 이제 좀 이야기해봐요.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에요?"

나는 연구소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했다.

어차피 한번 직접 본 여자들이다. 게다가 내 스킬도 전부 이야기했고.

따로 빼거나 숨길 거 없이 편하게 전부 말할 수 있었고 매혹 이야기가 나올 때는 살짝 뜨끔하긴 했지만 결국 있었던 일과 알아낸 히든 스킬까지 다 이야기했다.

"중국도 지독하네요…."

"이 오빠가 제일 지독하지."

세아의 말에 눈치를 보는 승희, 미나, 안나.

"맞아. 그렇지. 내가 제일 심하긴 해."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분위기는 더 이상해졌다. 아. 세아 저 가스나. 쟤를 어떻게 해야 하나.

"어우. 이제야 좀 속 시원하네. 그럼 오빠 이야기는 다 한 거죠?"

"어. 뭐 더 할 건 없지. 아니다. 너희 스킬은?"

"안 그래도 그 이야기 하려고 했어요. 저는 코인 탐지 배웠어요. 코인이 왕창 들어온 덕분에 패시브도 다 찍었고요. 이제 뭐 찍어요?"

"염력, 아니면 수납."

"염력? 수납?"

"아니다. 염력부터 하자. 폴터가이스트가 시급하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깔리면 쓸 수 있는 스킬부터 배워야지."

"좀 자세히 설명해줄래요?"

승희의 말에 나는 또 열심히 설명했다. 히든 스킬들이 딱히 탐나는 게 없기에 다음 내 스킬은 스킬 사용 불가 지대가 될 거다.

그럼 그 안에서 스킬을 쓸 수 있어야 하니 결국은 염력이 우선인 건 당연하다.

정확히 말하면 폴터가이스트지만.

채찍은 어떠냐고 물어봤지만, 인상을 쓰는 승희. 하긴, 효과는 좋지만 좀 꺼려지는 건 사실이지.

사실 성능 생각하면 저렇게 인상 쓸 필요는 없긴 하지만.

"염력. 알았어요. 다음은 미나 언니."

"저도 잠금 해제 다 배웠어요."

"오? 그럴 거 같았어. 그럼 패시브들 다 찍었어? 제약 해제도?"

"네."

"이야. 그럼 너 이제 우레 폭풍하고 눈보라 움직이면서 쓸 수 있겠다. 좋네."

이렇게 바로 쓸 수 있게 되다니. 아다리가 딱 맞네. 좋아 좋아.

"그럼…. 뭐 배워요? 저도 파이어 볼? 아니면 염력?"

잠시 고민. 하지만 효율을 생각하면 답은 정해져 있다.

"염력부터 하자. 천국의 문이 궁금하긴 하지만, 효과가 어떨지 모르는 스킬보다는 당장 한 개만 마스터 하면 되는 걸 먼저 배우는 게 낫지."

"알겠어요."

그리고 나는 세아를 바라봤다.

무심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세아. 그런 그녀에게 말을 건다.

"너도 코인 탐지 마스터 했어?"

"어."

"그럼 너도 염력 하자."

"그러던가."

승희, 미나, 안나의 표정은 또다시 아침드라마를 보는 아줌마들의 표정이 되었다.

하. 그래. 대답이라도 해주는 게 어디냐.

"안나는?"

"저도 잠금 해제 다 배웠어요."

"아. 진짜? 그럼 이럴 게 아니네. 제약 해제 찍었지?"

"네."

"그럼 데스 윈드 써보러 가자. 또 그 빌어먹을 각혈을 하는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는 안나. 다른 여자들도 전부 일어난다.

"아. 잠깐 기다려봐. 지금 베이징 저장이 연구소 근처라서. 가서 다른 곳 저장하고 올게. 금방이면 돼."

그렇게 말하고 연구소로 순간이동 한다.

비록 연구소랑 조금 떨어진 곳에 저장은 해놨지만, 뭐가 있을지 모르니 확인은 해야지.

그렇게 넘어간 중국. 연구소에서는 아직도 연기가 나고 있었지만, 기척은 없었다.

이미 확인을 다 한 건가? 하긴, 와서 뭐 확인해 봐야 뭐 볼 것도 없긴 하지.

어쨌든 저기는 이제 신경 끄자. 바로 블링크를 써가면서 기척이 많아 보이는 쪽으로 움직였다.

거리가 좀 떨어졌으니 이정도면 됐겠지? 그럼 일단 저장을 하고.

"게이트."

게이트를 열고 여자들을 불렀다. 그렇게 준비가 된 우리는 안나를 바라봤고, 심호흡을 한번 한 안나는 조용히 입을 연다.

"데스 윈드."

검은 원이 나타난다. 그리고 불어오는 불길한 바람.

오싹함, 소름, 섬찟함, 등줄기가 시큰거리는 기분. 그리고 조금 뒤 탐지로 느껴지는 기척에 거대한 빈 공간이 생긴다.

그래. 효과는 확실하지. 근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각혈을 하냐 안 하냐 그게 문제지.

"쿨럭."

"안나!"

씨발. 젠장. 좆같네.

여지없이 각혈하는 안나. 아. 제약 해제 씹새끼야! 대체 뭐 하는 건데? 존나 빠져가지고 이런 제약 하나 못 없애냐?

"괜찮아요. 별거 아니래도요. 피만 이렇게 나올 뿐 어디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

오히려 차분하게 승희와 미나, 세아를 안심시키는 안나.

하지만 내 마음은 착잡해졌다. 결국, 믿을건 상태 회복 뿐인가?

이걸…. 찍어봐야하나? 잘못하면 스킬 하나 그대로 날리는 건데.

데스 윈드를 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이 사기적인 스킬. 게다가 배우는 데 다른 잡다한 스킬들도 많이 썼고.

독무, 출혈…. 이런 스킬들. 그런 걸 생각하면 상태 회복 하나 더 배우는 건 크게 문제가 아닐 거다.

"안나."

내가 부르자 자기는 정말 괜찮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여자.

그래. 저게 문제야. 자신의 상태가 나빠지는 것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는 저런 마인드.

"한 번만 더 써보자. 상태 회복 찍고."

내 말에 다들 놀랐지만, 뒤의 말을 끝까지 듣고 궁금한 표정이 됐다.

"상태 회복요?"

안나 역시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물어봤고, 역시 전부 설명해준다.

"알겠어요. 바로 배우면 되죠?"

그렇게 스킬을 배운 안나. 우리는 자리를 옮겼고, 또 짱개들이 바글바글한 곳 위에서 잔뜩 긴장하고 섰다.

"상태 회복."

딱히 눈에 띄는 효과는 없다. 걸렸는지 안 걸렸는지는 외부 사람들이 알아낼 방도가 없어.

"쓸게요?"

"응."

"데스 윈드."

아까와 똑같은 바람이 불었고 얼마 있지 않아 대량의 사망자를 남긴 채 바람이 잦아든다.

제발. 제발. 각혈하지마라. 제발. 제발.

"오?"

자신의 몸상태를 보면서 신기해 하는 안나.

아무런 이상이 없다. 충분히 각혈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지만 안나는 멀쩡하다.

"오오오!"

그렇게 다같이 기뻐하는데 안나의 입가로 피가 주르륵 흘렀다.

"아!?"

자신의 입을 손등으로 쓰윽 닦는 안나. 근데 각혈까진 아니다.

"효과가 있는 거지? 아마 지금 상태 회복이 하급이라 이런 거겠지?"

"그런 거…. 같아요. 피도 그렇게 많이는 나오지 않은 거 같은데."

"아니. 피가 흘러내렸잖아. 그것도 안 돼. 근데 어쨌든 효과는 있는 거 같다. 상태 회복 마스터를 찍으면 아예 안 날지도?"

내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기는지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와. 씨. 그래도 다행이다. 효과가 없었으면 끔찍할뻔했는데. 그나마 다행이야.

"그럼…. 안나가 상태 회복 마스터할 때까진 데스 윈드 금지."

"아니. 이정도면…."

"안돼. 자꾸 우기지 마. 나는 분명 말했어. 다른 사람들이 몇만 명. 몇억 명이 죽더라도 나는 신경 안 써. 오히려 내가 죽이면 죽였지. 근데 너희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해서는 타협 없어. 나는 내로남불의 화신이니까."

단호한 내 말에 결국 여자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 나는 그런 놈이다. 지극히 이기적이고 논리에 맞지 않은 놈.

세상이 망하고 상식이 파괴된 이후부터 계속 이렇게 살아왔다.

지금도 그러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어.

"그럼 일단은 안나는 잘 해결됐고. 기왕 나왔으니 이제 미나의 우레 폭풍과 눈보라 테스트를 해보자. 먼저 까마귀부터 테이밍해서 밑에 코인부터 줍고."

"아니요. 오빠. 그게 급한 거 아니에요."

승희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본다.

"어? 뭐가 더 중요한 게 있어?"

"네. 있어요. 일단 집으로 들어가요."

단호한 승희의 태도에 더는 토를 달지 않고 게이트를 열었다.

승희는 어서 들어가자고 하고 다들 그 말에 순순히 따른다.

쟤도 되게 웃겨. 따지고 보면 승희는 이 중에서 가장 어리다. 세아랑 동갑이긴 하지만 어린 건 맞지.

근데도 이럴 때 보면 다들 순순히 승희의 말을 따른다. 어떻게 보면 쟤도 은근슬쩍 리더 체질이야.

"앉아요. 앉아."

게이트를 닫고 거실로 나가 앉았다. 그리고 다들 승희를 바라보자 목을 두어 번 정도 가다듬고 입을 연다.

"오빠."

"어?"

"윤세아."

"왜."

"두 사람 나가요."

"엑?"

"엥?"

갑작스러운 말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

"내가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더는 못 봐주겠어요. 두 사람. 나가서 확실하게 화해하고 와요. 아직 다 풀리지 않은 앙금, 속에 담아두고 있던 말, 다 하지 못한 이야기. 다 하고 오라고요."

"아니…."

"끝까지 들어요. 내가 이럴 권한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집의 구성원으로서 이정도 발언은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이대로 두면 세아는 혼자서 계속 구멍 파고 있을 것이고 둔한 오빠는 전전긍긍하다가 은근슬쩍 넘길 거라고요. 나는 그런 거 못 봐. 물론 오빠가 세아에게 한 행동이 결코 잘한 짓은 아니에요. 세아의 마음도 이해하고. 근데 서로 잔뜩 좋아하면서 그러고 있는 거. 더는 못 보겠다고요. 그러니 나가요. 나가서 풀고 들어와요. 풀기 전까진 들어올 생각 하지 말고."

폭풍 같은 승희의 말. 그리고 미나와 안나가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와 세아를 바라본다.

"어…."

"그렇게 멍한 표정 짓지 말고 당장 나가라고요. 코인도 잔뜩 들어왔고 당분간 숙련만 하면 되죠? 그러니 지금 중국인들 죽일 궁리할 때가 아니에요. 나에겐 이 집의 평화가 더 소중해. 그러니까 빨리 나가요. 나가서 다 풀고 돌아와서 다시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살아요."

승희가 말을 멈추자 거실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승희는 다시 정적을 깨고 말한다.

"세아랑 확실히 해결하고 돌아와서 미나 언니에게도 제대로 사과하고요. 이 언니는 사람이 좋아서 그냥 넘어갈 생각인 거 같아 보이는데…. 그러면 안 돼. 확실하게 마무리 지어요. 질질 끌지 말고. 지금 아니면 할 기회 없어요. 그러니 내 말 들어. 오빠도 세아도, 미나 언니도."

"씅희? 나는?"

"아잇! 안나는 좀 나중에! 그리고 넌 오빠한테 뭐 불만 없잖아!"

"그렇긴 하지…."

마무리가 조금 개그가 됐지만, 승희의 말은 틀린 게 없다.

하아. 역시 승희를 만난 건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일이었어. 하. 이쁜 가스나.

내가 일어서자 다들 나를 바라본다.

"게이트."

게이트가 열렸고, 나는 세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윤세아. 가자."

"왜."

"가자고. 빨리 와."

"하…. 진짜. 귀찮게…."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순순히 일어나는 세아.

하여간. 저 툴툴거리는 것만 좀 안 하면 좋은데 말이지. 근데 또 그러면 세아가 아니겠지. 매력이 줄어.

"다녀올게."

"그래요. 어설프게 마무리하지 말고 확실하게 하고 와요."

"알았어."

그렇게 대답하고 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결국은 내 손을 잡는 세아. 그렇게 게이트를 넘어가는데 등줄기가 따갑다.

아마 세 여자의 눈빛이겠지. 왜 드라마가 인기 있는지 알겠네.

"근데. 왜 내가 먼저가 아니고 세아부터야?"

등 뒤에서 들리는 소곤거리는 미나의 말.

"원래 이런 건 뒷번호가 더 좋은 거예요."

"그런가?"

그렇게 속닥거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게이트를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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