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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윈드
"신선한 발상인데?"
먼저 왔던 놈들은 우연히 발견했다고 치자.
두번째 왔던 놈들은 먼저 온 녀석들과 뭔가 연관이 있겠지. 파티로 묶여있었다던가, 추적이 걸려있었다던가…. 뭐 방법은 많다.
세 번째 왔던 놈들. 그놈들은 작정하고 온 거다. 와서 게이트까지 열었으니까.
그리고 게이트에서 넘어온 놈들. 그놈들은 심상치 않은 놈들이 맞을 거다.
물론 나오자마자 그대로 세아의 수납에 먹혀 아무것도 못 하고 죽어버리긴 했지만, 주는 코인이 달랐어.
"아까 게이트 연 여섯 놈이 250만이고 뒤에 게이트에서 나온 놈들이 420만 준거 맞지?"
"맞아요."
승희의 대답. 5로 나눴는데도 저 정도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
물론 코인이 많다고 무조건 강한 놈들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봐온 바로는 대체로 어느 정도는 비례했지.
"건너가? 음…. 고민인데."
그런 놈들이 있던 곳이면 제법 중요한 곳일 거다. 넘어가면 완전 별천지가 있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아까 그런 놈들이 우글우글 있을 수도 있고.
이런 모험을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건 유혹이 상당히 크다. 아. 안전하게 넘어가는 방법 없나.
"추적 같은 게 있으면 좋았을걸. 발신기라던가. 그런 걸 써서 게이트를 넘겨보면 어디로 통하는지 알 수 있을 텐데."
"무작정 넘어가기엔 조금 꺼림칙 하긴 하죠?"
그렇게 말하는 승희지만, 저 너머가 궁금하긴 한가 보다.
게이트는 건너편을 볼 수 있다. 물론 탐지가 되거나 그렇진 않지만, 천리안과 투시는 된다.
하지만 각도 때문에 그렇게 많은 걸 볼 수는 없었다.
그래도 볼 수 있는 곳은 뭐가 수상해 보이진 않다. 하. 이거 고민되네.
"좋아. 그럼…. 내가 넘어가 볼게."
"엥? 오빠가요? 차라리 우리 중 하나가 넘어가는 게 낫지 않아요? 우리는 보호막도 있고 데미지 감소도 있으니까. 미나 언니는 반사가 없으니 안 되겠지만 나나 세아, 안나가 가는 게 훨씬 낫죠."
"그게 정석이긴 한데. 게이트가 있는 내가 넘어가는 게 맞아."
"게이트?"
"넘어가자마자 블링크 써서 멀리 튄 다음 다른 쪽에서 게이트 열어서 너희를 안전하게 부르는 게 낫지."
"아…. 근데 괜찮겠어요? 넘어가자마자 세아 같이 누가 수납으로 휙 먹어버리면 어쩌려고요."
"내 블링크 속도를 믿어야지. 내가 또 입이 빠르잖아."
"뭐라는 거에요.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정색하며 핀잔 주는 승희. 너무 그러면 내가 무안하지 않겠니.
"나도 이런 모험은 절대 안 하는 주의긴 한데…. 이건 너무 궁금하네. 다른 사람의 게이트라니. 게다가 그게 녀석들의 심장부일 수도 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진짜 오빠답진 않네요."
그렇게 말해도 승희를 비롯한 다른 여자들은 나를 말릴 생각이 없어보인다.
그래. 쟤들도 궁금하긴 하겠지. 뭐, 나를 믿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후자였으면 좋겠네.
"일단 너희는 대기하고 있어. 내가 가볼 테니까. 게이트에서 내가 나와서 들어오라고 하지 않는 이상은 절대 들어가지 마."
고개를 끄덕이는 네 여자. 좋아. 어디 한번 가보자고.
승희 말대로 게이트 저쪽에서 매복하고 있는 놈들이 있을 수는 있지만, 들어오는 사람을 바로 잡아 죽일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아군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적어도 조금의 인터벌은 있을 거야.
그 빈틈을 노린다. 만약 녀석들이 매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피아식별을 위해서 확인하는 그 찰나. 그 순간을 노리는 거다.
블링크 한방이면 1킬로는 넘게 갈 수 있으니까. '블링크'라는 단어 한 번만 외칠 시간이면 돼.
"후우."
심호흡을 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현재 위치를 베이징 저장 위치에 덮어씌워 저장한다.
마음을 굳게 먹고 게이트를 향해 달려든다. 시속 275킬로미터의 속력으로.
"블링크!"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블링크를 했다. 그리고 지그재그로 블링크를 두어 번 정도 더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게이트 있는 쪽을 바라본다. 거리는 상당히 멀어졌지만, 천리안 덕에 환하게 보이는 게이트.
그 주변에 매복은커녕 아무도 없다. 다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 게이트 쪽을 바라보고 있는 몇 명의 짱개가 보일 뿐.
그리고 녀석들은 내가 나왔는지도 모르나 보다.
하긴, 천리안으로 보고 있거나 탐지를 돌리고 있던 게 아니라면 투명화를 쓰고 있는 내가 보일 리가 없지.
근데…. 여긴 어디지?
뭔가 심상치 않은 곳이다. 작은 분지처럼 되어있는 곳. 뭔가 딱딱해 보이는 건물들이 잔뜩 서 있다.
그리고 탐지에 걸리는 기척들. 조금 이상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오와 열을 맞춰서 있는 기척들.
뭐지? 숙소 같은 건가? 방 하나에 사람 하나씩 들어있는 건가? 근데…. 숙소라기보단 이건…. 감옥 같은 분위긴데.
건물에 있는 작은 창문들에 굵은 철창이 달려있다. 그것만 봐도 정상적인 건물로는 안 보인다.
건물 안을 투시해서 보자 어처구니없게도 안에 들어있는 건 전부 여자들이다.
알몸에 천 조각 하나만 걸치고 있는 여자들.
딱히 구속돼있거나 하진 않다. 단지…. 독방 같은 곳에 갇혀있을 뿐.
여긴 대체 어디지? 교도소인가? 근데 왜 여자들만 있지? 여자 전용 교도소?
근데 교도소가 필요한가? 음….
그렇게 조금 더 둘러본다. 저 멀리에 잡히는 기척. 아. 저건 승희, 미나, 세아, 안나네.
파티로 잡히는 기척이야. 근데 거리가 제법 돼 보인다. 상당히 먼 곳인가?
아까 왔던 짱개 놈들은 대체 왜 이런 곳을 열었지?
일단 산 쪽으로 내려가 내 키만 한 게이트를 열고 넘어갔다.
"왔다!"
"걱정했어?"
내 말에 피식 웃는 승희.
"아뇨. 파티로 오빠 기척이 느껴지는데 왜 걱정해요. 근데…. 되게 멀리 갔던데요?"
"그치? 나도 어딘지 모르겠어. 일단 다들 넘어와."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네 여자. 그렇게 넘어온 여자들은 각자 탐지를 돌리더니 인상을 쓴다.
"저건…. 뭐에요? 왜 저렇게 있죠?"
안나의 질문에 다들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탐지가 없는 미나만 무슨 소린지 몰라서 가만히 있을 뿐.
"몰라. 여자들 감옥 같아. 여자들이 잔뜩 잡혀있네."
"아. 감옥…."
승희가 그럴듯하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근데 안나가 나를 보더니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썽철. 이상한 게 있어요. 코인 탐지에…."
"코인 탐지?"
"네. 코인 탐지를 써봤는데…. 코인이 격자 모양으로 일정하게 놓여있는데요?"
"엉? 그게 어딘데?"
"저쪽이요."
안나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본다. 천리안과 투시로 이리저리 투시해본 결과 안나가 뭘 말한 지 알 거 같다.
근데 씨발. 저건 대체 뭐지?
간단하게 말하면 구덩이라고 볼 수 있을 거다. 단지 주변이 강철로 되어있는 우물 형태의 구덩이라는 것.
한 5미터 정도 되는 깊은 구멍. 폭은 그다지 넓지 않다. 사람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
그리고 그 구멍 밑에 코인들이 하나씩 놓여있다. 그런 구덩이가…. 씨발. 저게 몇 개야?
"하나, 둘, 셋, 넷…. 가로 열 개, 세로도…. 열 개네. 구덩이 100개."
"네?"
"하.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순간 머릿속에서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갔다.
예전에 흑해방에서 넘어온 그 여자들을 봤을 때 생각했던 것들.
코인이 들어있던 여자들.
그때의 나는 거래용 코인 여자를 만드는 것에 대해 여러가지를 상상하긴 했었다.
코인을 담은 사람을 금고 같은데 넣어놓고 닫아버리면 알아서 죽은 뒤 코인만 금고 안에 남아 보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그런 곳인 거 같다. 그렇게 사람들을 잡아서 코인을 농축하는…. 작업장.
"역시…. 짱개는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아. 내가 아무리 잔혹하고 인간 이하의 생각을 해도 녀석들을 따라가려면 멀었잖아?"
"무슨 말이에요? 그게?"
살짝 불안한 표정의 안나.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 나무 막대기 하나를 들고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내 그런 행동에 다들 몸을 숙이고 내 그림과 설명을 듣는다.
"저기는…. 이런 구덩이가 있어. 깊이가 꽤 되고 가로 열 개, 세로 열 개로 돼 있는 구덩이."
설명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이런 식이지.
짱개 새끼들. 창의성이 부족해서 맨날 파쿠리만 쳐 만드는 줄 알았는데.
창의성을 이런 데다 쏟아부으니 다른데 신경 쓸 여력이 없지. 어휴. 미친 새끼들.
"내가 전에 너희에게 코인 건넨 적이 있을 거야. 그때 남자 넷을 데리고 와서 한 명당 250만씩 먹었던…."
고개를 끄덕이는 네 여자. 그런 여자들에게 흑해방의 코인 전달 방식을 상세하게 설명해줬다.
인상을 쓰는 모습들.
그렇지. 인간을 코인 옮기는 수단으로 쓰는 건 나도 한 짓이지만, 녀석들은 그 방법을 공장처럼 찍어내고 있었잖아.
"여기가 그 공장인 거지. 내 상상일 뿐이지만, 저걸 보니 확실할 거 같다. 봐봐. 사람을 잡아 와. 그리고 잡아 온 사람들을 구덩이에 하나씩 밀어 넣지. 깊이가 꽤 되는 데다가 안쪽에 잡을게 없으니 저기에 떨어지면 뭐 답이 없어. 그냥 바닥까지 떨어지는 거지.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사람들은? 쿵. 퍽. 찍. 바닥에 있는 코인을 먹고 그 자리에서 죽겠지. 그럼 짠. 코인이 합쳐져서 하나가 되었지."
충격적이라는 여자들의 표정. 그래. 나도 말해놓고 헛웃음이 나온다. 저건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돼.
내가 흑해방에서 왔다는 그 50만짜리 여자들을 못 봤으면 이런 상상은 못 했을 거다.
근데 앞뒤를 전부 알고 있으니 가능하지.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해. 얼마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저 감옥에 있는 여자들이 뭔지 알 거 같다.
코인 지갑이네. 일정 코인이 모이면 저 여자들이 저걸 줍는 거지.
그리고 약물로 절여지고 잘 세척돼서 판매자에게 넘어가는.
모든 걸 설명하자 네 여자의 표정은 볼만해졌다.
혐오와 경멸이 잔뜩 담긴 표정. 으음. 약간 찔리네. 그래도 난 가소로운 수준이니까.
근데 역시 짱개 이 새끼들은 정말 클라스가 다르네.
구덩이 백 개라고? 하. 돌겠네. 그럼 저기 하나당 코인 50만인가? 아. 50만은 안 되겠지. 좀 더 적으려나?
하긴 50만이 됐으면 출하됐겠지. 저기 남아있을 이유가 없지.
근데….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여기 저런 게 왜 있냐는 거다.
그리고 왜 아까 그놈들은 여기 게이트를 열었느냐는 거고.
세아가 잡아먹은 놈들은 대체 뭐지? 궁금증이 많다. 일단…. 좀 알아봐야겠어.
"나는 지금부터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아보려고 해. 그러려면 페이즈 아웃을 써야 하니까 파티가 해제될 거야. 게다가 매혹과 기억 읽기도 써야 해서 시간이 좀 걸릴 거야. 그러니 일단 너희는 벙커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필요하면 내가 다시 부를게."
"하지만…. 하아. 알겠어요. 게이트 열어주세요."
승희를 비롯해서 다들 나를 돕고 싶은 눈치지만, 승희처럼 빠르게 포기한다.
자신들이 따라와도 방해가 될것을 아니까. 그 정도는 생각할 줄 아는 여자들이지.
근데 매혹을 이야기했을 때 세아의 표정이 약간 굳은 게 신경 쓰인다.
하아. 어쩔 수 없지. 세아의 화는 빨리 풀어줘야 하는데.
"게이트."
"무리하지 말고요."
마지막으로 들어가는 승희가 내게 다짐하듯 말한다.
"당연하지."
웃으면서 그녀를 보내주고 게이트를 닫았다.
적막. 그리고 남은 건 짱개들의 비밀장소와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나.
사실 생각해보면 이건 기회다. 저기 바닥에 깔린 코인들. 절대 적은 양이 아닐 거다.
안 그래도 코인 부족에 허덕이고 있는데 저걸 주워가면 당분간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지.
게다가 짱개놈들의 뒤통수를 친다는 점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이다.
시원하게 한 방 먹이는데 코인도 생긴다고?
이야. 이걸 어떻게 참아. 역시 미국의 음모 따위에 시간 쏟을 게 아니었어.
어휴. 미국 새끼들 조금 분발 좀 하지. 그게 뭐냐 그게. 히어로 놀이나 하고 있고.
짱개 새끼들처럼 이렇게 화끈한 짓을 해야지. 그래야 나 같은 놈이 옳다구나 하고 떡고물을 챙기지.
어쨌든 이제 움직일 시간.
저 코인들은 아직 내 것이 아니고 짱개들에게 한 방 먹이지도 못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그래야 저걸 다 쓸어가지.
하. 데스 윈드 써보러 왔다가 이게 무슨 일이야.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니까.
아. 이건 좀 아닌가. 너무 양심 없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