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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 윈드
꾸이이이익!
온몸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멧돼지. 그 크기가 심상치 않다. 거의 작은 소형차 수준의 덩치.
"이제 몇 번 남았지?"
"앞으로 세 번요."
"죽기 전에 어서 써. 근데 죽어도 출혈은 나오지 않나?"
"죽은 동물에게 쓰는 건 숙련이 안되더라고요. 그게 됐으면 벌써 마스터 했을걸요?"
"그런가. 그럼 빨리 써."
"네. 출혈! 출혈! 출혈!"
멧돼지의 몸에서 피가 세 번 뿜어져 나왔다.
사람의 피와 다르게 동물의 피는 몸에 묻으면 죽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다들 멀찍이 피해있었고 안나는 환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마스터 했어요!"
"근데 피 칠갑을 하고 웃으니까 좀 섬뜩하다."
어이없게도 출혈은 범위가 몹시 짧다. 그렇기에 어쩔 수 없이 피를 뒤집어쓴 안나는 앞서 말했듯 약간 무서운 모습이다.
근데 또 압도적인 미모를 가지고 있어서 그런가? 저것도 근사하긴 하네. 이게 문제야. 이쁜 게 최고라니까.
"그럼 이제 이건 죽여서 렉스 주고…. 아니다. 알아서 죽이고 잡아먹겠지."
렉스를 바라보고 턱짓을 한 번 하자 녀석이 컹하고 짓더니 멧돼지에게 달려든다.
그 뒤를 따르는 몇 마리의 들개들. 그리고 멧돼지는 금방 절명했다.
"똑똑한 놈이라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수건으로 피를 닦는 안나를 바라보고 말한다.
"나왔어?"
"아. 스킬요. 잠시만요. 어…. 네. 나왔어요."
"크. 그럼 바로 찍어야지. 패시브 먼저 다 찍고, 데스 윈드 찍고, 잠금 해제 찍으면 돼."
"알겠어요. 근데…. 저도 이제 코인이 없네요. 최대 수치 증가랑 한계 돌파는 지금 못 찍을 거 같은데요."
"아. 맞다. 그 생각을 못 했네. 어지간히 잔뜩 벌어야겠다. 어디까지 찍었어?"
"둘 다 2까지는 찍었어요. 3이랑 4 찍어야 해요."
"히익. 그것만 해도 천사백만이네. 너네도 나도 당분간은 중국에서 살아야겠구나."
앞으로 코인 드는 양이 장난이 아닐 텐데. 하아. 데스 윈드가 좀 효율 좋은 스킬이면 좋으련만.
"자. 그럼…. 이제 실전 테스트를 하러 가야지?"
그렇게 말하며 네 여자에게 파티를 초대했다.
아. 아직 세아는 마음이 덜풀렸나봐. 뭘 어떻게 해야하냐. 어렵다. 어려워.
"미나야. 역병은 거의 사그라들었다고 했지?"
"네. 지금은…. 5만 정도요."
"그 말은 다들 어지간히 죽고 격리한 다음 겨우 살아남은 놈들만 있다는 소린데."
"네."
"또 역병 풀러 가야 하나."
"또 한참 기다려야겠네요."
"아. 근데 이게 즉시 효과가 아니라서 별로란 말이지. 퍼지는 데 너무 오래 걸려. 역시 선행 스킬 정도밖에 안 되나."
내 말에 그저 빙긋 웃는 미나. 이런 거로 가책을 느낄 거 같진 않지만, 말을 아끼는 모습.
"암튼, 역병은 나중에 다시 생각하고 일단은 데스 윈드 테스트 하러가자. 다들 따로 준비할 거 없지?"
"네에."
세아만 빼고 모두 대답했고, 나는 그냥 게이트를 열었다.
목적지는 베이징. 만약 페널티가 있어서 한 번만 쓸 수밖에 없더라도 짱개놈들의 심장부에다 쏘는 게 낫지.
모두가 게이트에 들어갔고 나 역시 게이트를 넘어간 다음 바로 닫았다.
"파견대 놈들이 올 수 있으니까 발견하면 미나는 바로 우레 폭풍 써. 누구든 발견하면 바로 말해주고. 알았지? 자. 이제…. 사람 많은 쪽으로 가보자."
내가 앞장서고 다들 나를 따라온다. 그렇게 기척이 좀 많은 곳으로 간 우리는 자리를 잡고 데스 윈드를 쓸 준비 했다.
"안나 반경 증가는 10 찍었지?"
"네."
"데스 윈드가 반경이 어느 정도나 될지 모르겠네. 일단…. 써봐."
"후우. 데스 윈드."
피이이잉
우레 폭풍의 노란 선처럼 검은 선이 그려진다. 상당히 큰 반경. 아마 패시브가 적용돼서 그런 거겠지?
그리고 그렇게 원이 그려진 다음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토네이도의 바람과 비슷했지만, 지금의 바람이 훨씬 더 오싹한 느낌이 든다.
마치 소름이 돋는 듯한 느낌.
승희나 미나, 세아, 시전자인 안나 역시 마찬가지인지 자연스럽게 몸을 끌어안는다.
"근데…. 발동 된 거 맞지? 안나 움직일 수 있니?"
"네? 네. 되는 거 같은데요."
"뭐지? 적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페널티는 아닌가 보네. 그럼 발동이 느린가? 어? 그것도 아닌거 같은데."
바람이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바람은 내 몸을 핥듯이 스쳐 지나갔다.
굉장히 섬찟한 기분. 그리고 그건 기분이 아니었다.
"허…."
"왜요?"
내 탄성에 승희가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상에 있는 짱개가 갑자기 온몸에서 피를 뿜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그 짱개뿐만이 아니었다.
탐지를 켜놓은 상태인 데다가 천리안과 투시 덕분에 밑에 있는 짱개들의 모습은 하나하나 전부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어떤 짱개도 예외 없이 온몸에서 피를 뿜는다. 구멍이란 구멍에서 모두 피를 흘렸고 그 피는 점점 많아지기 시작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탐지에 걸리는 인간들이 급속도로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빛이 터지면서 코인주머니가 되버리는 짱개들.
그렇게 불길한 바람이 끝나고 내 탐지에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커다란 원이 그려지게 되었다.
“하. 이 미친…. 이 무슨 엄청난 스킬이….”
"쿨럭!"
"안나!"
미나의 비명 같은 외침. 그리고 갑자기 피를 한 움큼 토하는 안나.
그 양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안나는 그렇게 피를 잔뜩 토하고도 괜찮다는 듯 손을 들어 우리를 제지한다.
"크읍…. 하아. 괜찮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하아. 이건…. 그러니까 그런 거 같아요. 스킬의 반동. 확실히 그런 느낌이 나요."
그 모습에 우리는 어처구니없는 모습으로 안나를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하얀 애가 더 새하얗게 변한 거 같네.
"아니, 피를 저만큼이나 토하고 괜찮다는 사람이 어딨어. 일단 포션부터 먹자. 그리고 승희야. 힐을…. 근데 이게 힐로 회복이 되나?"
내가 내민 포션을 받아들긴 했지만 마시지는 않는 안나. 자신의 입가를 손등으로 쓰윽 닦으며 말한다.
"아마…. 안 통할 거 같아요. 이건 회복되는 그런 게 아니에요. 그렇게 느껴져요."
"아니 그게 무슨…. 야. 안 되겠다. 이 스킬은 꽝이다. 이건…. 쓸 수가 없는 스킬이잖아!"
씨발. 이게 무슨 페널티냐. 스킬의 효과가 좋으면 뭐해. 피를 저만큼이나 토해내는데.
무슨 씨발 수명 깎아서 사람을 죽이라는 건가? 본인은 괜찮다고 하지만 저만큼이나 피를 토해 놓고 멀쩡할 리가 없다.
내장이 다치거나 그런 게 아니더라도 최소한 빈혈로 쓰러지겠네.
"저기…. 그…. 한 번만 더 써보면 안 될까요? 하루에 한 번인지는 확인해 봐야 하니까요."
"아니! 피를 그렇게 흘리고도 또 쓴다고!? 제정신이야!!? 안돼! 됐어. 그 스킬은 이제 쓰지 마! 니가 앞으로 그 스킬을 쓰는 건 제약 해제 배우고 그 페널티가 사라졌는지 확인할 때, 딱 그때뿐이야!"
나는 진짜 화가 나서 안나에게 처음으로 소리 질렀다.
하지만 안 나 역시 전혀 지지 않고 나에게 말한다.
"내 몸은 내가 알아요! 한 번 정도 더 쓴다고 큰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한 번 더 쓸 거예요! 적어도 어떤 페널티가 있는지는 알아야죠! 그래야 나중에 제약 해제가 생겨도 어떤 게 사라졌는지 알 거 아니에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또박또박 말하는 안나. 하지만 저렇게 말한다고 내가 들을 리 없다.
그러자 안나는 완고한 나를 계속해서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하든 절대 안 된다는 소리만 반복했고 결국 안나는 어이없다는 말투로 나에게 말한다.
"아니. 보통은 반대 아니에요? 주변에서 한 번만 더 써달라고 하고 내가 거절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내가 쓰겠다는데 왜 당신이 이렇게 반대하는 거예요? 진짜 괜찮으니까 한 번만 더 써요. 제발요. 응?"
이제는 자기가 쓰겠다고 애원하는 안나.
"아냐. 돌아갈 거야. 그런 줄 알아. 게이트."
벙커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렸고 안나는 입을 앙다물고 나를 바라본다.
"어차피 쓰는 건 저예요. 내 맘대로 할 거야. 데스 윈…. 읍."
염력을 뻗어 안나의 입안에 넣어버렸다.
그렇게 입이 틀어막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안나.
"하아. 정말 그렇게 맘대로 굴래?"
그렇게 말하자 의외로 세아가 나와 안나의 사이로 끼어들더니 퉁명스럽게 말한다.
"오빠. 왜 뭐든지 오빠 말대로 하려 들어?"
세아의 말에 말문이 막혀버린 나. 어…. 뭐라고?
"나도 안나가 또 피를 토하는 건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는 자신이 가장 잘 알지. 게다가 안나의 말은 일리가 있어. 확인할 수 있는 건 해야지. 왜 뭐든지 오빠 말대로 하려는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아가 저렇게 말하니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리고 눈치를 보니 승희와 미나도 오히려 내가 잘못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다.
"하. 내가 뭐 나 잘되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줄 알아? 나는 안나가 걱정돼서…."
"알아. 오빠가 어떤 생각으로 그렇게 고집부리는지는 안다고. 근데 잊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나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 다 나름대로 각오를 하고 오빠를 따르는 거야. 그러니 우리 의견도 받아들여. 오빠 말만 들으라고 하진 말고. 그리고 사람을 이렇게 픽픽 죽이면서 우리 몸 축나는 걸 두려워하는 건 우스운 거 같아."
나는 세아의 말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막았던 염력을 빼내자 자신의 입안을 만져보는 안나. 그러더니 나를 보고 조용히 말한다.
"세아의 말이 맞아요. 오빠는 우리를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거 이해해요. 하지만 그렇게 위험한 거 아니잖아요. 그러니 이번엔 제 말대로 해요. 내가 열 번씩 쓴다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더 하는 건데 그렇게 극구 반대할 필요 없어요."
차분한 그녀의 말에 결국 나는 할 말이 없어졌다. 승희나 미나의 표정도 그렇고 세아나 안나의 뜻이 저렇다면 내가 더 고집을 피울 수가 없으니까.
"하아. 맘대로 해. 맘대로."
"기왕 쓸 거면 최대한 효과가 좋은 곳으로 가야죠. 앞장서주세요. 썽철."
안나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꾸하지 않고 스르륵 움직였다.
밤에는 안 들지만, 머리로는 방금 봤던 데스 윈드의 반경, 탐지에 걸리는 짱개들의 기척, 가장 기척이 많은 곳을 계산하고 움직인다.
그렇게 괜찮은 위치로 향한 나는 덤덤하게 안나를 보고 말했다.
"여기."
"고마워요."
웃으면서 말하는 안나. 하지만 나는 안나의 저 웃음이 처음으로 탐탁지 않았다.
자신을 축내면서 쓰는 스킬이라니. 진짜 죽어도 싫다. 안 그래도 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은 안나인데.
정말 끔찍한 조합이야. 처음부터 말리지 않으면 안나는 자기 몸이 축나는 걸 숨기고라도 쓰겠지.
"데스 윈드."
다시 한번 생긴 검은 원. 그리고 그 소름 돋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페널티를 본 다음 이 스킬을 보니 정말…. 흉악한 스킬이 아닐 수가 없다.
범위 안에 있는 인간들의 몸에서 피를 뿜게 만드는 스킬이라 출혈이 들어있는 줄 알았는데.
시전자도 피를 뿜게 하다니. 정말 악랄하네. 미친 스킬이야.
"수혈을 받으면서 스킬을 써야 할까?"
"그건 조금 힘들지 않을까? 근데 피 토하는 양이 너무 많던데. 정말 괜찮긴 한 거야?"
"막 속이 다쳐서 그런 건 아닌거 같아. 혹시 몰라서 일단 포션은 마셨어."
정작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안나 본인은 세아와 두런두런 대화한다.
그리고 바닥에서는 아까처럼 짱개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가기 시작했다.
웃기는 일이야. 짱개 몇백 명이 죽는 건 전혀 아무렇지도 않지만 안나가 피 한 번 토하는 게 더 걱정된다는 게.
근데 이건 나만 그런 건 아니겠지. 내로남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패시브니까.
타인의 목에 들어가는 칼날보다 내 손톱 밑의 가시가 더 아픈 법이잖아?
이건 당연한 거야. 내가 문제 있는 건 아니지.
어느새 바람이 멈췄고 그렇게 내 탐지에는 또 커다란 구멍이 생기게 됐다.
수많은 기척 사이에서 뻥 뚫려있는 공간.
이 스킬은…. 정말 엄청나다. 페널티만 사라진다면 정말 말도 안 되게 좋은 스킬. 개사기라는 말도 부족하다.
말 그대로 밸런스 붕괴의 급.
일단…. 바람이다. 선행 스킬에 토네이도와 독무, 출혈이 있던 게 이해가 간다.
아마 이 스킬은 보호막으로 막을 수 없을 거야. 보호막은 기체까지 막을 수는 없으니까.
유일한 회피 방법은 검은 원을 보거나 몸에서 이유 없이 피가 나기 시작할 때 재빨리 원 밖으로 나가는 것. 그것밖에 없을 거다.
미친 스킬. 근데 티어 16에 있는 스킬답다. 아마 현존하는 스킬 중에 가장 사람을 죽이는데 특화된 스킬.
하지만 그러면 뭘 하나. 본인조차 피를 토하는데.
만약 제약 해제로 저 각혈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영구히 봉인해둬야 하는 스킬일 뿐.
"코인 주워야죠? 테이밍 하러 갈까요?"
표정을 굳히고 있는 나를 보며 안나가 은은하게 웃으며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안나를 바라보지 않고 그 뒤편을 바라보았다.
아. 이런. 내 화풀이 대상이 오네. 고맙게도.
"아니. 그건 조금 이따가 하자. 잡놈들이 오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