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36화 (53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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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학살자

워싱턴 DC는 뭐랄까? 도시 자체를 랜드마크로 때려 박은 느낌이다.

펜타곤 옆에 있는 커다란 동산 같은 곳. 여기는 보니까 알링턴 국립묘지다.

그래. 내가 들어본 곳이면 유명한 장소지. 딱히 볼 건 없지만.

그렇게 다른 곳을 둘러보다가 간판을 보는데 뭔가 그럴듯한 이름이 보인다.

의회의사당? 오. 그래. 저기면 뭔가 높은 인간들이 있지 않을까?

간판이 가라는 대로 다시 강을 건너 넘어간 다음 계속해서 길을 찾아본다.

그리고 이제야 아까는 펜타곤 찾느라 적당히 넘겼던 건물들이 보인다.

링컨 기념관이라고 되어있는 곳. 그리고 그 앞에 있는 물. 쭉 따라가니 보이는 분수대.

저것도 뭔가 기념물인 거 같은데. 뭐라고 쓰여 있는 거야?

아. 2차 세계대전 기념비? 그렇구나. 대단한 거였네.

그리고 펼쳐진 잔디밭. 왼쪽에는 아까 허탕 친 백악관.

정면에는 워싱턴 기념탑이라고 돼 있는 탑이 있다.

참 부럽네. 기념탑 만들어 줄 수 있는 대통령도 있고.

그리고 뭔가가 계속 있다. 참 구경하기 좋네. 또 관광객 모드야.

벙커에 있는 여자들은 이런데 오면 좋아하려나?

한번 와서 구경해도 괜찮을텐데. 아. 저건 그거네 스미소니언 박물관?

그 옆에는 자연사 박물관, 그 옆에는 뭐냐. 저것도 뭔가 있어 보이는데.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예술의 전당인가?

맞은편에는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이야. 볼 거 많네. 시간 나면 안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둘러보고 싶을 정도야.

그리고 그 끝에는 상당히 익숙한 건물이 하나 있다. 내가 찾던 건물. 의회의사당.

근데…. 여기도 비었다. 역시나 기척이 있긴 하지만 역시 관리하는 인원 수준이야.

아이 씨바알. 이 썅놈들은 일 안하고 대체 어디 짱박혀 있는거야? 엉? 짜증나네.

화가 났지만 금방 가라앉히고 생각해본다. 그래. 그래. 이해할 수 있지.

나 같은 녀석도 세상이 망하고 벙커에 처박혀있었는데 미국의 대단하신 분들은 더하겠지.

대통령도 상하원의원도 안보를 핑계로 어딘가 안락한 곳에서 룰루랄라 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양주 까면서 헐벗은 여자나 주무르고 있겠지.

문제는 거기가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아니, 아는 놈들이 있긴 있겠지. 근데 그걸 아는 놈도 찾기 힘들 거야.

이건 우연으로라도 찾기 힘들걸? 그래도 미국의 최고 보안 사항인데 나 같은 놈에게 뻥뻥 뚫릴 만큼 허접하진 않겠지.

물론 정말 개고생을 하면 어떻게 찾을 수는 있을 거다.

잠입해서 기억을 읽고 또 꼬리를 물어서 알만한 놈을 찾고 또 기억을 읽고 또 사람을 찾아가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찾아낼 수도 있을 텐데…. 쉽진 않을 거다.

됐다. 이쪽은 신경 쓰지 말자. 돌아다니다가 발견하면 땡큐지만 애써서 찾아다니고 싶은 마음은 없다.

보이지 않는 윗대가리를 잡아내느니 훤히 보이는 밑에서부터 뒤집는 게 훨씬 편하지.

히어로 놈들이나 찾자. 그리고 빌런 놈들도 발견하는 족족 잡아보고.

근처로 날아가 혼자 있는 사람을 목표로 잠입해서 기억을 읽었다.

이 도시에는 어떤 히어로와 빌런이 있나 알아보려고.

근데 떠오르는 히어로가 하나밖에 없다. 페트리어트 화이트? 씨발…. 이름하고는. 돌아버리겠네.

그렇게 네 명의 기억을 읽고 나서야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곳 워싱턴 DC에는 히어로가 하나밖에 없다. 빌런은 없고.

으으으음. 상당히 작위적인데.

게다가 빌런이 없던 기간도 꽤 된다. 그 이유는 페트리어트 화이트가 엄청나게 강력해서 나오는 족족 무찔렀으니까.

으으으음. 각본이 너무 허접한 거 아냐?

결국엔 이곳 수도는 존나 짱짱맨인 히어로가 지키고 있다 이건가? 게다가 악당은 이곳에서 제대로 기세를 못 핀다는 설정이야?

재밌네. 재밌어. 이런 것도 나름 시나리오겠지. 마케팅이고.

우리나라가 짱짱이야! 우리는 안전해! 수도는 악에게 침범당하지 않아!

이런 걸 굳이 사람들에게 열심히 설명하는 것보다 이렇게 히어로의 상징성으로 퉁치는 게 더 편하긴 하지.

게다가 이건 효과도 확실하다.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게 빠르니까.

그렇다면 그 페트리어트 화이트라는 녀석을 잡아 죽이면 그만큼 충격이 크겠지?

그럼 이놈이 어디 있느냐가 문제인데.

문제라고 한다면 이 도시는 상당히 조용했다.

페트리어트 화이트라는 그 히어로놈이 정말 그렇게 강력해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소란 자체가 적은 느낌이다.

경찰차를 찾기도 힘들고 간혹 지나간다고 해도 그저 가벼운 순찰정도?

그래서 그런지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상당히 얼굴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적어도 빌런이나 범죄 때문에 고생하는 것 같지는 않아.

으음. 시간 낭비는 하고 싶지 않은데. 다른 곳으로 갈까?

그래. 언제 나올지 모르는 히어로를 기다리는 건 멍청한 짓이지. 다른 곳으로 가자.

워싱턴 DC 바로 옆의 볼티모어.

여기도 페트리어트 화이트의 영향권이라 그런지 다른 히어로도 빌런도 없다.

그럼 조금 멀리 가보자. 옆도시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필라델피아.

여기 히어로는 크림치즈 파이터 뭐 이런 놈일까?

아. 재미없네. 근데 먹고 싶다. 빵 발라 먹으면 좋은데. 쩝.

도시에 도착해서 또 사전 조사를 한다. 혼자 있는 사람들을 위한 방문 상담.

아무런 위해 없이 기억만 잠깐 읽고 떠나드립니다.

캬. 정말 사람 많이 변했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뎅겅뎅겅 이었을 텐데.

이곳에는 두명의 히어로와 빌런 하나가 있었다. 근데 빌런이 그다지 깽판을 부리거나 그러진 않는 거 같다.

약간 구색 맞추기 느낌이 나는 느낌? 뭐, 그거야 내 생가이니 그렇다 치고.

히어로는 캡틴 썬더와 아이스 위치. 이름만 들어도 대충 무슨 스킬인지 감이 잡히네.

근데 아이스 위치는 약간 내 스타일이네. 슬렌더 한게 제법 맘에 들어.

얼굴을 좀 자세히 봤으면 좋을 정도.

빌런의 이름은 패럴라이저. 아휴. 이놈도 무슨 스킬 쓰는지 안 봐도 알 거 같네.

얌전히 있는 이유가 있었네. 반사만 있어도 끝이잖아? 뭘 믿고 나대는 걸까?

정보 수집 차원에서 두번째로 혼자 있는 사람의 집에 침투한 뒤 기억을 읽는데 라디오에서 긴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잠시 속보를 알려드립니다. 콜링스 우드 파크 애비뉴 주변에서 새로운 빌런이 출몰하여 주변 일대를 봉쇄하였습니다. 현재 캡틴 썬더와 아이스 위치가 출동하여 제압 중이니 주민 여러분께서는 접근을 삼가시고 위험에 대비하여….]

그 소리에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와우. 나이스. 감사합니다. 새로운 빌런 친구.

바로 지도 어플을 키고 찾아본다 어디 보자. 지금 위치가 어디지? 아오. 위치 찾기 드럽게 힘드네. 검색도 쉽지 않냐.

오프라인 지도라 그런가? 외국 지명은 찾기가 힘들어.

콜링스 우드는 어디야. 아. 안 되겠다. 이건 물어보는 게 빠르겠네.

잠든 채로 기억 읽기 당하던 여자에게 무효화를 걸고 매혹을 걸었다.

부스스 일어나서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여자.

웃음이고 뭐고 여자의 앞에 지도를 들이민 다음 지명들을 말하고 그게 어디인지 물어봤다.

스마트 폰을 받아들고 현 위치와 콜링스 우드의 위치를 찾아준 여자. 어휴. 고마워라. 그럼 다시 잠들어.

그리고 방금 있던 기억을 지웠다. 그런 다음 바로 페이즈 아웃.

건물 바깥으로 나가 해제 후 버프를 모두 켜고 여자가 알려준 곳으로 날아간다.

콜링스 우드…. 파크 애비뉴. 아. 저긴가 보네. 경찰차와 소방차가 몰려있는 곳.

게다가 불바다? 알아보기 편해서 좋네.

높은 하늘로 올라가 천리안과 투시를 키고 상황을 살펴본다.

주변이 활활 타는 가운데 한 남자가 꽁꽁 얼어있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한 남자와 여자. 딱 봐도 남자 놈이 캡틴 썬더고 여자가 아이스 위치인가보다.

남자는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고 그대로 번개 한줄기가 얼어붙은 남자에게 작렬한다.

그대로 빛이 되어버리는 빌런. 이야…. 새로운 빌런이라며? 이름도 못 알리고 그대로 즉결처형 당한 거야?

불쌍한 새끼. 근데 저것도 시나리오겠지?

그렇게 상황이 끝나자 주변에 있던 소방차가 불난 곳을 진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가오는 경찰들에게 환한 미소를 짓는 캡틴 썬더. 아이스 위치는 도도한 모습으로 한발 뒤에 물러서 팔짱을 끼고 있다.

흐음. 그런 컨셉인가 보구나. 어쨌든 좋아. 딱 저놈들만 잡고 퇴근하면 되겠네.

그렇게 돌입하려다가 뭔가 떠오르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빌런이랬지? 그럼 분명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놈이 있을 거 같은데.

그 정장 놈. 그런 놈들이 있을 거야.

자기네들이 신규 런칭한 제품이 제대로 제 역할을 했는지 정도는 지켜보고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펴봤다. 탐지에 잡힌 녀석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고 내 예상대로 한 놈이 있었다. 조금 먼 곳에서 정장을 입고 공중에 떠 있는 녀석.

그래. 저놈이다. 히어로나 빌런이 중요한 게 아냐. 저 새끼를 잡아야 해.

바로 블링크를 하려고 했는데 녀석이 사라졌다. 어? 씨발. 블링크야? 순간이동인가?

뭔진 모르겠지만 그걸 알아낼 방법은 없다.

탐지범위 내에 사람이 아무도 없고 블링크를 한다면 기척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도 일정 범위 밖에는 기척이 우글우글하다.

뭐가 됐든 사라진 이상 녀석을 쫓아갈 방법은 없어. 아…. 씨발. 아깝네. 조금만 빨리 움직였어도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잔뜩 실망한 마음으로 아래를 향해 블링크 한다.

그리고 무효화를 뿌린 다음 캡틴 썬더와 아이스 위치에게 수면을 뿌렸다.

덤으로 옆에 있던 경찰 세 명까지.

바닥에 펼쳐지는 게이트. 목적지는 수원의 대호 벙커. 잠든 다섯 명이 게이트에 빠졌고 게이트는 바로 닫혔다.

바로 눈앞에서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난 걸 목격한 경찰들이 깜짝 놀라 게이트가 열렸던 곳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염력으로 만들어진 랜스.

순식간에 경찰들의 몸에 구멍이 나면서 빛으로 변한다. 거의 스무명 가까이 있던 경찰들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

불을 끄던 소방관들이 깜짝 놀라서 호스를 놓치고 뒤로 물러난다. 쟤들도 죽이나? 근데 쟤들은 코인이 없겠지.

놔두자. 쟤들 죽이면 불은 누가 꺼. 그냥 코인만 먹고 가자.

바닥에 떨어져있는 코인들을 모두 회수하고 수원으로 순간 이동했다.

경찰 스무명 정도를 죽이고 나온 코인 45만 정도.

음…. 차라리 경찰만 족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히어로 이놈들은 숫자도 적고 찾기도 힘들잖아.

근데 경찰은 찾기 쉽지. 경찰서 가면 있잖아? 이동할 때도 경찰차를 타고 다니고.

게다가 경찰 수가 확 줄면 치안도 안 좋아지겠지.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내일부턴 그렇게 해야겠다.

수원 벙커. 바닥에 쓰러져있는 다섯 남녀.

일단 경찰 셋은 그냥 죽인다. 뭐 딱히 정보를 캐낼 것도 없으니까. 순식간에 빛이 세 번 터지고 코인 주머니 세 개로 변했다.

자. 이제 히어로 나리들 차례인데.

먼저 기억부터 읽어보자. 기대는 안 하지만 혹시나 모르니까.

하지만 언제나 나를 맞이하는 건 뻔한 결과. 이야. 이놈들 정말 정보 통제는 확실하네.

똑같은 놈들이다. 히어로 협회에서 나오는 녀석들의 지시만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

됐다. 그래. 기대를 안 했으니 실망할 것도 없지. 그냥 죽어라. 먼저 캡틴 썬더 부터.

그렇게 캡틴 썬더가 죽고 쓰러진 아이스 위치의 양팔을 잡아 들어올렸다.

아. 아깝네. 코스튬도 그렇고 슬렌더한 몸매도 그렇고 다 내스타일인데.

얼굴이 아쉽다. 아니 원판은 나쁘지 않다. 근데 어울리지 않는 이 미국식 화장이 정말 깨는 느낌이야.

그리고…. 기분나쁘게 코끝을 스치는 이 묘한 냄새.

가까이 붙으니 알 수 있었다. 이 냄새. 나는 안다.

그때…. 러시아에서 느꼈었던 그 고통. 그 끔찍함.

암내. 씨발거.

씨발. 히어로씩이나 되면 데오…. 데오 뭐지? 데오도란트? 데오드란트? 암튼 그런 것 좀 빡쎄게 하라고.

기분이 확 나빠졌다. 정말 온몸이 거부하는 느낌. PTSD가 강하게 오는 느낌.

그대로 여자의 배를 찔렀다. 바로 빛이 되어버리는 여자. 그리고 냄새 역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거 맞지? 그치?

조심스럽게 심호흡을 해본다. 냄새는 안 나는 거 같은데…. 왜 자꾸 나는 기분이 들지.

씨발. 외국 여자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정말 쉽지 않아. 강간도 제대로 못 하겠네. 젠장.

바닥에 있는 코인들을 모두 회수한다. 다 합쳐서 22만. 으음. 역시 경찰이나 쳐 죽여야겠다.

경찰을 메인으로 잡고 히어로를 서브로 잡아야겠어. 수익성이 똥만이네. 찾기도 힘들고.

일을 모두 끝냈으니 집으로 귀환한다. 또 하루가 끝났으니 내일을 위해 쉬어야지.

집으로 돌아가 옷을 훌훌 벗고 몸을 씻는다. 그렇게 씻고 나와서 물이나 한잔 먹으려고 거실로 나왔는데 마침 안나가 있었다.

"안자?"

"아. 자려다가 당신 들어오는 거 보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 그래? 고맙네. 그럼 이제 자. 아니면…. 같이 잘까?"

내 말에 배시시 웃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안나.

나는 바로 물을 한잔 마시고 안나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내 품에 안기는 안나. 진짜 믿기 힘든 일이야 꿈만 같은 일이라고.

"아. 맞다. 잠깐만."

그러고 안나의 팔을 든 다음 겨드랑이에 얼굴을 박았다.

"으음? 왜 그래요? 혹시 몸에서 피 냄새나요?"

"아니. 그냥 해보고 싶었어. 별거 아냐."

역시 냄새는커녕 향기롭기만 하다. 이것만으로도 안나는 축복받은 존재야. 몇 번을 생각해도 그게 맞아.

"피 냄새…. 날지도 몰라요. 오늘 조금 무리해서. 근데 아쉽게 마스터는 못했어요. 아마 내일 아침엔 바로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 몇 퍼센트인데?"

"고급 95퍼센트요."

"오. 임박이네. 드디어 데스 윈드인가."

"네."

그러면서 빙긋 웃는 안나. 어휴. 이뻐라. 살 떨리게 이쁘네.

"그럼 자자. 빨리 자고 일어나서 스킬 마스터 하자."

"네."

그렇게 안나를 안고 있으면서 속으로 정했다. 이대로 10분만 안고 있다가 자연스럽게 잠이 안 들면 안나랑 섹스하기로.

그리고 나는 밤새 푹 자고 아침에 눈을 뜰 수 있었다.

허허.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거야 아쉬워해야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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