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30화 (53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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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온종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앉아서 염력 숙련을 했다.

이 거지 같은 빌런 새끼. 왜 등장을 안 하는 걸까?

보이기만 하면 되는데. 솔직히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무섭거나 하진 않다.

스킬이 20개 30개씩 있어도 땅에만 붙어있으면 잡을 수 있으니까. 그만큼 광역 스킬 무효화의 위력은 압도적이잖아.

하늘에 떠 있다고 해도 이젠 어느 정도 방법이 생겼다.

염력. 이걸로 보호막째로 잡아끌거나 보호막의 빈틈을 이용해서 공격할 수 있다.

미나랑 테스트 해본 대로만 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근데…. 나와야 말이지. 쓰레기 같은 놈들.

아니 빌런이면 열심히 악당 짓을 해야 할 거 아냐? 왜 이리 게으름을 부리지?

파괴자라며. 이름도 멋있네. 씨발 새끼.

빨리 쳐 나와서 뭐라도 때려 부수라고. 제발 좀.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녀석은 깜깜무소식이다.

천리안과 투시로 경찰차를 계속 쫓아보지만, 결국은 잡범들.

잡히면 죽는데 왜 저 지랄을 하는 걸까? 그정도로 절박한 걸까? 자신은 안 잡힐 거라는 확신이 있었나?

아무리 봐도 멍청한 놈들투성이네. 한심해. 진짜로.

모두가 강해지기 전부터 진작 힘을 길렀어야지. 아니면 나쁜 짓을 하질 말던가.

솔직히 말해서 이렇게 사회가 유지 되는 것 자체가 이해 안 된다.

내가 반사회적이라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말이 안 된다고 생각될 뿐이지.

이건 끝이 없는 소모전이잖아?

물론 그 소모율이 전체 인구에 비해 적은 수치기에 아직 유지가 되는 것이긴 하겠지만. 결국은 이 짓거리를 해서 얻는 게 없다.

미국은 뭔가 계획이 있는 걸까? 이 세상이 이렇게 된 거에 대한 무슨 소스라도 있어서 이걸 유지하는 걸까?

결국은 파멸로 수렴할 뿐인데. 그게 아니라는 걸까?

미국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랑 거래하고 있다던가.

아니면 이 모든 게 미국에서 계획한 것일 수도 있지. 솔직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야.

물론 모든 사람에게 띄웠던 메시지라던가, 지금 이 스킬 능력 같은 걸 생각하면 인간이 뭔가를 꾸밀 스케일은 아니다.

당연히 그렇지. 말이 안 돼.

하지만 역시 미국이라면…. 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봐.

이 새끼들 진짜 어딘가에 외계인이라도 잡고 고문하고 있는 걸 수도 있잖아?

아니면 신의 힘이라던가.

아니면…. 에이 됐다. 뭔 병신같은 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생각하냐.

어쨌든 얻은 성과는 없다. 빌런은 나타나지 않았고 경찰차는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인다.

염력은 고급 72퍼센트. 내일이면 마스터 찍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빨리 스킬을 마스터 해봐야지. 그래야 히든 스킬의 존재를 밝혀내지.

승희도 잠금 해제 마스터 할때가 됐을 텐데. 오늘 아니면 내일 할 텐데.

승희에게 제약 해제 패시브가 나오면 좋겠다. 그러면 바로 나도 잠금 해제 배워야지.

그럼 또 테스트해볼게 넘쳐나겠네. 바쁘다 바빠. 할 일이 끝이 없어.

성연과 민후, 그리고 신영은 오늘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영이는 살짝 심각한 느낌이다. 자신의 방이 된 곳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해. 어제 성연이 자기 입을 막은 게 충격이었을까?

하긴 쟤는 정말 답이 없는 상황이긴 하다. 사실 대호 그룹 벙커에 있었을 때도 그리 상태가 좋진 않았지.

삶의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 적어도 뭔가 바라는 게 있을 텐데.

성연은 자기 아들을 찾는다는 확고한 목표가 있었다.

그렇기에 남편이 바람을 피우든 시아버지가 쭉쭉빵빵한 여자 둘을 끼고 지랄을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운동만 했지.

그리고 결국 목표를 이뤘다. 물론 그게 자신의 약점이 되긴 했지만.

성연은 걱정 안 한다. 농익은 미시. 약점이 잡힌 저 여자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할 거야.

자식이 있기에 자살하거나 도망가는 멍청한 짓은 안 할 거고…. 그래서 오히려 안심이다.

하지만 신영은 아니다. 당장 자살한다고 해도 그럴만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

한번 진지하게 이야기해볼까? 근데 대화는 하려나?

모르겠다. 일단은 놔두자. 자살할 거였으면 어젯밤에 했겠지. 아니 한 나흘 전에 했겠지.

내 생각엔 쟤는 자살할 용기도 없어. 그저 망가질 뿐이지.

됐어. 신경 쓰지 말고…. 하루카나 보러 가자.

가면 새끼. 빨리 좀 나타나지. 대체 뭘 하는 데 아직 안 나타나고 꾸물거리는 거야?

빌런이나 가면이나 하여간 꾸물거리는 놈들 투성이네.

다들 게을러 빠졌어. 맘에 안 드는 놈들만 있다고.

홋카이도로 순간 이동했고 번잡한 도시가 사라지며 고요한 대자연이 나타난다.

시차. 진짜 웃기네. 방금까진 밤을 꼬박 지내 새벽이 되고 동이 텄던 뉴욕인데, 이곳은 밤이다.

이것도 민감한 사람이면 정신 돌아버리는 상황 아닐까 몰라.

그래도 나는 괜찮다. 이런 거엔 좀 둔한 편이니까.

둔한 게 이런 데선 도움이 되네. 고맙게.

하루카는 착실하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하루에 성장을 20번 밖에 못 쓰지만, 성장에만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는 모습.

아마 사람이 먹을 식량들은 이미 비축분이 있기에 가능한 거 같다. 쟤의 일과는 동물들을 먹이는 게 대부분이니까.

닭, 소, 돼지, 양.

말 그대로 동물농장이네. 보니까 고양이랑 개도 있던데.

비스트 마스터야? 테이밍이라도 배우게 해야 하나?

멀리서 보면 참 건실하고 생명력 넘치는 여자다.

그간 학대받고 스트레스받으면서 야위었던 모습이 이제는 보기 좋은 모습이 되었다.

피부도 광이 나는 느낌이야. 역시 젊음이 좋아.

아. 이렇게 말하니 무슨 노인네 같네. 나도 아직 한창인데. 쟤랑 나랑 나이 차이도 몇 살 안나고.

쟤도 시간이 조금 지났으니 나에 대해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을까?

천사님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그냥 살인마라는 걸 눈치챘을 수도 있을 텐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한번 모습을 드러내 볼까?

그래야겠다. 그리고 만약 이상 없으면 좀 더 위치를 확고하게 해놔야지.

선물 같은 거라도 줘야겠네.

블링크를 써서 하늘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밝은 쪽이 어디인가 살펴본다.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불들은 꺼지지 않고 있기에 도시 쪽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그렇게 찾아간 도시. 다행히 편의점은 있다.

안에 들어가서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나 물건들을 닥치는 대로 회귀를 썼다.

내 수납에도 먹을 건 많지만 그건 한국제품이다. 천사님이 한국 간식을 주는 건 모양이 조금 이상하지.

게다가 그런 식으로 의구심을 품게 하고 싶진 않다.

자고로 사기를 치려면 디테일해야지. 이상 한데서 빈틈을 보일 수는 없지.

그렇게 한가득 회귀한 물건들을 수납에 담고 다시 순간이동을 썼다.

슬슬 잘 준비를 하는 하루카. 그런 그녀의 집 안을 페이즈 아웃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해제. 어차피 얘 스킬은 성장과 괴력밖에 없으니 얘가 나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는 것만 아니면 조심할 건 없다.

"잘 지내니?"

"천사님!"

나를 보며 활짝 웃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 하루카.

연기야? 아니면 진심이야? 신기하네. 저게 연기면 정말 대단한 여자애야.

그런 하루카를 재웠다. 반가운 표정 그대로 풀썩 쓰러지는 하루카를 염력으로 받아든다.

근데…. 여긴 냄새가 쫌 심하네.

가축 냄새랑 분뇨 냄새. 잘도 이런 곳에서 사는구나. 얘는 이런 냄새가 이상하다고 느끼진 않나 보지?

하긴. 나랑은 다르겠지. 익숙한 냄새일 테니까.

근데 나는 정말 참기 힘들 정도다. 어느 정도냐면 여기서 섹스하라고 하면 꼬무룩해서 안 설정도로.

어차피 뭐 야한 짓 하러 온 건 아니니까.

그대로 하루카를 잡고 기억을 읽는다. 그렇게 나에 관한 기억을 읽고 약간 헛웃음이 나왔다.

기억이 미화될 수가 있구나. 뭔가 사실과 다른 느낌인데.

하긴, 그건 그렇네. 기억이란 완벽한 게 아니잖아.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그대로 기억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주관, 그때의 상황, 감정, 그런 것들이 잔뜩 반영될 수 있는 게 기억이지.

하루카의 기억에서 나는 정말 천사님이었다.

거의 신앙에 가까운 모습. 내가 이렇게 여자애 하나를 또 나락으로 보냈네. 맙소사.

얘도 진짜 이상한 애네. 어떻게 이렇게 나를 미화하지?

이런 애들이 사이비에 빠지고 재산과 몸뚱이도 죄다 상납하는 그런 부류인가 봐.

무효화를 걸어서 하루카를 깨웠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나를 보고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모습.

"제가…. 쓰러졌나요?"

"괜찮다. 내가 확인해봤으니까. 건강에는 크게 이상이 없는 거 같구나. 그래도 몸조심하렴. 먹는 거에도 신경 쓰고."

"그럼요! 저 진짜 잘 먹고 있어요! 날마다 고기도 먹고요."

"그래. 잘하고 있네."

날마다 고기를 먹는 게 자랑할만한 일인가? 싶지만, 지금 이 세상에선 자랑이 맞다.

아무렴. 고기는 소중하지. 결코, 우습게 볼 게 아니지.

"그 카멘사마라는 분은 아직 안 왔어요. 그리고…."

"다. 알고 있단다. 전부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이런. 믿음이 더 강해지겠네. 이렇게 또 기억이 날조되는구나.

"그가 오면 상냥하게 맞이해주렴. 하지만 하루카 몸에는 손대지 못하게 해. 너는 소중한 아이란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너의 몸을 소중하게 여겨."

더더욱 감격한 표정.

골때리네. 무슨 말만 해도 감동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알겠어요! 천사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여기는 하루카가 살기엔 환경이 그리 좋지 않구나. 너는 잘 못 느끼고 있는 거 같지만 머무는 환경은 중요하단다. 청결과 위생에도 신경 써야 해. 비위생적인 것들에 대해 조치를 조금 취해야겠구나. 특히 냄새라던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하루카. 그래. 뭐 이만큼 말했으면 알아듣겠지.

"뭐 먹고 싶은 거 있니?"

"네?"

갑자기 물어본 내 질문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 하루카.

그런 그녀에게 작게 수납을 열어 방금 편의점에서 회귀해온 물건들을 꺼내 건네준다.

그녀의 눈에는 내가 공중에서 물건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겠지?

라면, 초콜릿, 봉지 과자, 아이스크림, 뭐 그 외에도 잔뜩.

누가 봐도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 하지만 하루카는 그런걸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야말로 기적을 보는 듯한 모습들.

크. 리액션 좋네. 사실 이 시점에서 이런 물건들을 주면 눈이 돌아가지 않을 사람들은 없다.

아이스크림? 초콜릿? 라면? 꿈같은 일들이지. 특히 한국이나 일본처럼 서로를 죽고 죽여 사회가 엉망이 된 사람들에겐 특히 그렇다.

그러고 보니 미국 놈들에겐 안 먹히겠네. 아직 마트도 살아있고 돈도 쓰는 놈들이니까.

쳇. 미국놈들. 맘에 안 들어.

"씩씩하게 살아가렴. 나는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단다."

아. 그 뭐냐. 미스터 샤이닝? 그놈처럼 섬광 같은 걸 썼으면 더 죽여줬을 텐데.

이래서 연출이 중요하다니까. 사소한 차이가 큰 결과를 만들어내는 법이지.

하지만 굳이 거기까지 하지 않아도 하루카는 이미 반쯤은 혼이 빠진 모습이다.

나에게 받은 물건들을 내려놓은 탁자. 거기에 쌓인 물건들.

그걸 한번 바라보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 어이구. 동공 지진이라는 말이 왜 생겼는지 알겠다.

정말 딱 그 모습이네.

"먹어봐도…. 되요?"

"물론이지. 너를 위해 준비한 거니까."

초코바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무는 하루카. 그리고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어우. 좋아하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이 정도로 리액션이 훌륭한 애는 없었는데.

이러면 나도 주는 맛이 나지.

"맛있어요…. 흑."

"또 원하는 게 있니? 내가 줄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줄게."

"아니에요. 이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흑. 정말…. 감사해요."

"그래. 그럼 이제 어서 자거라. 내가 너의 시간을 너무 뺐었구나."

"흑….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천사님."

그러면서 나에게 와락 안긴다.

어쨌든 이쁘장한 여자애가 이렇게 안기는 건 나도 기분이 좋다.

아쉽네. 이놈의 소똥 냄새만 아니었어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 텐데.

안긴 하루카의 등을 몇 번 토닥여주고 우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줬다.

"이만 갈 테니 잘 지내렴. 다음에 또 오도록 하마."

"네. 천사님. 다음에도 꼭 오셔야 해요. 꼭이요!"

그런 그녀를 두고 입을 살짝 가리며 페이즈 아웃을 썼다.

온데간데없어진 나의 빈자리를 보더니 다시 탁자에 쌓여있는 물품들을 보는 하루카.

그리고 또 펑펑 울기 시작한다. 소리를 듣지 않아도 정말 서럽게 울고 있는 듯한 그 모습.

참나. 진짜 신기한 애야.

저런 모습을 보이면 계속 도와주고 싶어지잖아?

물론 최신영이 봤으면 뒷목잡고 쓰러질 장면이었긴 하다. 가증스럽고 악독하다고 욕을 한 사발 했겠지.

쯧. 생각해보니까 또 최신영 걔한텐 미안하네.

걔도 원하는 걸 들어주긴 해야겠어.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와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 뒤 버프를 걸고 하늘로 떠올랐다.

천리안과 투시로 하루카를 계속 바라본다. 울음을 그치고 정리를 마저 하고 잠자리에 드는 모습.

그렇게 누워서도 한참을 훌쩍거리다가 잠이 든다.

이야. 부럽네. 저렇게 금방 잠도 자고.

에효. 나도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물론 나는 수면을 왕창 걸어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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