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25화 (525/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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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흥흐흐으응."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눈앞에 있는 전리품. 그리고 기억 언박싱 시간.

그전에 먼저 억울하게 빌런이 되어버린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저 혼자 집에 있었을 뿐인데. 얼굴도 다 팔리고 하루아침에 폭발 빌런이 되어버린 여자.

이대로 놔두면 이 여자의 삶은 상당히 불행해지겠지? 쯧. 어쩌겠어. 그런 세상인걸.

마체테로 고통 없이 한 번에 보내줬다. 바로 빛이 되는 여자. 코인은 없다.

참 허무한 삶이구나. 그렇게 생존했는데 남기는 거 없이 이렇게 죽다니.

하지만 이미 죽었으니 뭐 어쩌겠어. 별수 없지.

자. 이제 본격적인 개봉시간.

이 매력적인 사이드 킥 언니부터 주물러보고 싶지만, 일단 그래도 메인부터 뒤져봐야지.

미스터 샤이닝. LA의 히어로.

기억을 읽기 시작한다.

과연 슈퍼 히어로의 진실은 어떨지…. 샅샅이 기억을 뒤지기 시작한다.

음…. 음…. 음…. 얼래?

내가 생각한 거랑 좀 다르네?

이놈의 스킬은 다섯 개다. 섬광, 비행, 번개 주먹, 보호막, 데미지 감소.

그리고 이놈은 정말 사명감으로 히어로를 하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같은 그런 기색은 없다.

그렇다고 정말 자기가 히어로라고 생각하는 철없는 인간도 아니다.

뭐랄까. 필요하기 때문에 약간의 연기와 과장은 필요하다. 그 정도?

어. 모르겠다. 하여간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어쨌든 진심으로 히어로 활동을 하는 녀석이야.

빌런이나 악당을 발견하면 섬광으로 시야를 제압하고 보호막과 데미지 감소를 두른 채 비행과 번개 주먹으로 제압하는, 그런 히어로.

빌런과 악당들만 잡고도 스킬을 다섯 개나 배운 건 좀 대단했다.

그 외의 다른 코인 수급은 없어보인다.

순수하게 히어로 일만 해서 저만큼 코인을 얻었다는 게 신기하다.

이게 되나? 어떻게 되지? 정말 이해할 수가 없네.

하지만 녀석의 기억에선 뭔가 협잡이나 쑈의 기색은 없다.

녀석은 순수하게 히어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기억을 뒤졌으니 이건 확실해.

또 뭐 건질거 없나? 기억들이 되게 담백하네.

아. 이 녀석은 국립 히어로 협회에 소속되어있었다. 줄여서 N.H.A

이 새끼. 초인등록법안에 넘어가다니. 미국 대장이 봤으면 통탄할 일이네.

아무튼, 이름에서 알다시피 이 나라의 히어로들은 나라에서 관리한다.

평상시의 대기라던가 생활 역시 각 파견지에서 제공하는 거주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알았다.

출동 명령을 받고 내가 매혹한 폭발녀를 막기 위해 나타난 녀석.

폭발녀를 즉결처형하지 않고 그냥 무력화시킨 것은 그런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의문을 가지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는 결국 순순히 따랐다. 지시는 절대적이니까.

그렇게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려 했는데 나한테 잡힌 거고.

이상하다. 히어로가 진짜 히어로라고? 뒤가 구린 연기자가 아니었어?

뭔가 좀 황당한 기분이다. 뭔가 생각한 거랑 다르잖아.

기억 읽기가 아니고 말로 들었으면 죽어도 못 믿었을 거 같다. 진짜 어이없네.

좋아. 그럼 여자의 기억을 읽어보자. 이 여자도 비슷한지.

이쁘장한 여자. 일단 마르고 가슴이 적당히 큰 게 합격이야.

게다가 전형적인 블론드,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히어로의 옆에 있을 만한 사이드 킥이다. 게다가 까만 전신 라텍스 타이즈가 정말 맘에 들었다.

역시 여자 캐릭은 이렇게 뽑는 게 FM인가? 누가 봐도 검은 과부 컨셉이잖아?

뭐면 어때. 눈이 즐거우면 됐지.

염력으로 여자의 양쪽 팔을 잡은 뒤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목에 있는 지퍼를 잡고 아래로 쭉 내린다. 지퍼가 열리면서 벌어지는 옷.

그렇게 배꼽까지 내리자 안쪽의 알몸이 보인다.

"오…."

튀어나오는 가슴. 생각보다 크네?

역시 사이드 킥은 가슴 큰 이쁜 여자지. 실력보단 외모! 남자 놈을 사이드 킥으로 삼는 건 상도덕이 없는 거야.

맘에 드는 건 이 여자는 안에 브라를 안 하고 있다는 거다.

어디서 배웠는지는 몰라도 제대로 배웠네. 기본이 됐어.

전신 라텍스를 입으면서 속에 브라 따위를 하면 그건 사문난적이지. 양심이 없는 거야.

음. 근데 모양은 좀 별로네. 크다고 전부가 아니지.

쯧. 감점 대상이네. 자고로 크기와 모양 모두 중요한 법인데.

그런 가슴을 잡고 기억 읽기를 시작한다.

저 남자 놈보다 기억 읽기가 길어지는 이유는 가슴에 손을 대고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다 이유가 있어. 음. 암튼 있다.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고.

이 여자는 미스터 샤이닝의 사이드 킥인 쉐도우.

스킬은 네 개. 투명화, 비행, 기절, 광역 스킬 무효화.

아까 폭발녀를 무력화시킨 건 이 여자였다. 근데 스킬 구성은 이 여자가 더 좋은데?

솔직히 샤이닝 저놈보다는 이 여자가 더 강할 거 같다. 둘이 싸우면 이 여자가 훨씬 유리하니까.

세상이 망한 이후로 바로 미스터 샤이닝의 사이드 킥이 된 여자.

히어로를 하는 것보다 옆에서 이렇게 사이드 킥 하는걸 더 선호하는 모습.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싫어하는 건가? 대충 그런 느낌이네.

어쨌든 이 여자도 그다지 특이한 건 없다. 충성심이 강한 타입. 임무와 지시에 크게 반발이 없는 모습.

실망이네. 왜 둘 다 이렇게 진심인 거지? 뭔가 구린 무언가가 없는 거지?

이래서야 내가 너무 음모론자 같잖아? 이거 좀 자존심 상하는데?

이렇다면 적어도 빌런과 짜고 치는 고스톱은 아니라는 이야기인데….

그래도 내 가설을 포기하진 않는다.

빌런을 잡아서 대가리를 휘저어보지 않는 이상 내가 틀린 건 아니니까.

어쨌든 이러면 이 두 명은 필요가 없어진다.

으음. 죽여야 하나? 어디 쓸모없나?

혹시나 해서 쓸만한 용도가 없나 생각해보지만, 마땅한 건 없다. 해봐야 타락? 내 부하로 쓰는 거?

히어로의 타락은 나쁘지 않은 스토리긴 하지.

근데 번거롭다. 남자 부하 따위는 필요 없고.

이 여자도 현지처 수준은 안 된다. 미달이야. 이 정도로는 안 돼. 부족하다고.

으음. 보자.

쉐도우 이 여자는 미스터 샤이닝을 좋아한다. 어우. 난리 났네.

저 남자는 크게 관심 없던 거 같던데.

으음. 스킬 구성이 좋은 데다가 외모도 괜찮으니 살려두면 분명 쓸모는 있다.

근데 기억을 조작하는 수고에 비해 쓸 곳이 없다.

사회를 혼란 시킬만한 일도 없고 매혹도 쉽지 않다.

이 여자는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니까. 언제 실수로 자기 매혹까지 풀지 모르지.

둘 다 블링크나 순간이동은 없으니 일단 감금은 될 거 같은데.

감금할 이유가 있나? 귀찮은데. 걍 죽여?

빌런의 위치도 모르고…. 별로 도움이 안되잖아?

근데 또 그렇다고 팍팍 죽이기도 조금 아쉽고…. 그럼 일단 보험을 들어두자. 언제라도 쓸 수 있게 가벼운 세공만 한 상태로.

미스터 샤이닝과 쉐도우에게 기억 조작을 한다.

내용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많이 할 필요도 없고.

먼저 기억하나. 앉아서 고문하고 당하고 있는 미스터 샤이닝과 쉐도우.

뭐, 디테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그럴듯하게만 조작하면 된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딱 봐도 세뇌당하는 것처럼.

그리고 두번째. 이름 모를 장소에서 사람들을 살육하고 있는 두 사람.

손에 든 대검으로 사람들을 찌르면 찔리자마자 바로바로 빛이 되어버리는 사람들.

시체나 잘린 몸, 피 같은 걸 하나하나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좋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 번째 기억. 일부러 흐릿하게 만들지만, 기억 저 깊은 곳에 넣어둔다.

정장 입은 남자들에게 잡혀가는 두 사람. 그걸 막으려다가 제지당하는 나의 모습.

됐어. 이 정도면 되지. 어려울 건 없다. 꼼꼼할 필요도 없고.

저 두 사람이 히어로와 사이드 킥이 된 게 비슷한 시점이었다는 게 다행이네.

자, 그럼…. 일단 이 여자의 옷을 다시 원래대로 해놓고.

어우. 이거 지퍼 왜 이리 안 올라가냐. 하여간 젖소 같은 년이네.

자. 준비는 끝. 이제 연기를 좀 해볼까?

두 사람을 바닥에 쓰러뜨려 놓은 다음 오피스텔 창문을 깼다.

통유리가 깨지면서 바람이 휙 하고 방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도망갈 준비도 됐으니 바로 무효화를 두 사람에게 썼다.

"크윽…."

"윽."

머리를 잡으며 몸을 일으키는 두 사람.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나를 발견한다.

"누구냐!"

나를 보고 소리치는 샤이닝, 그런 샤이닝을 따라 나를 바라보며 나를 경계하는 보이는 쉐도우.

"알렉스, 엠마. 미안."

자신들의 본명을 듣자 깜짝 놀라는 표정이 되는 두 사람.

"내 능력으론…. 아직 너희를 풀어주는 건 무리였나 봐."

그 말만 하고 나는 바로 바깥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투명화. 저 둘은 탐지가 없다. 그러니 내가 대놓고 투명화를 써도 내 모습을 볼 수는 없어.

"뭐였지?"

"글쎄요..."

알 수 없다는 듯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 하지만 이내 머리가 아픈 듯 살짝 머리를 짚는다.

"윽."

"머리가…."

그럴 만 하다. 개연성 따위는 무시하고 적당히 기억을 쑤셔 넣어놨으니까.

하지만 별로 대단한 기억은 아니기에 그리 심하진 않겠지. 하지만 그걸로 충분하다.

두통과 갑자기 떠오르는 기억들. 무시할 수는 없을 거다. 그리고 내가 말한 저들의 본명과 나의 아련한 연기.

이 정도면 됐다.

어차피 고작 저만큼으로 뭔가를 크게 꾸밀 생각은 없다.

원래 나를 알고 있었거나 자신들이 국가에 강제로 잡혀 와서 알 수 없는 고문을 받고 지금의 모습이 됐다던가, 사람을 죽이는 훈련을 했다던가, 기억을 조작당했다는 의심 같은 걸 바라진 않는다.

그저 의심.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면 나중에 나를 만나도 다짜고짜 공격하기보단 궁금증을 풀고 싶어지겠지.

그냥 죽이면 속 편한 걸 뭐하러 이렇게 복잡하게 하는지. 에휴. 나도 참 이상해졌어.

어쨌든 히어로와 빌런이 짜고 뭔가를 하는 게 아닌 이상 결국 빌런의 아지트 같은 건 알 수 없게 되었다.

시장. 그놈을 족쳐야겠지? 근데 소스가 하나 더 생겼다.

국립 히어로 협회. 사실 이쪽이 더 확실할 거다. 시장따리보다는 히어로를 관장하고 있는 곳이 더 확률이 높을 테니까.

문제는 협회의 녀석들이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것?

그들의 관계는 일방적이다. 직접 지시를 내리는 것도 아니고 언제나 대리 혹은 무전으로만 지시를 준다.

직접 만나는 건 한 달에 한 번도 안된다. 그래서야 타이밍 잡기가 쉽지 않지. 에휴.

일단은 됐다. 하던 일이나 마저 하자.

뉴욕까지 거리를 좁히고, 밤에 시장 기억이나 뒤지러 가자.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거 말고는 없으니까.

그렇게 다시 날기 시작한 비행. 어차피 그리 오래 날지는 못할 거다. 한 세 시간? 네 시간? 그 정도?

시장이 몇 시에 퇴근하는지 모르겠네. 그러니 조금 일찍 가서 지켜보고 있어야겠지. 설마 얘들도 야근 같은 걸 하려나?

LA를 나서자마자 땅 색깔이 바뀌었다.

분명 방금까지는 초록초록했는데, 갑자기 사막이 되어버렸어.

신기하네. 전에 중국에서 몽골 갈 때도 그러더니. 사막은 언제나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 건가?

한참을 날아가다가 이 사막의 이름이 뭔지 알고 싶어졌다.

지도 앱을 켜서 보니 모하비 사막이다. 아. 나 이 이름 들어본 적 있어. 차 이름으로도 있잖아?

어쨌든 신기해서 그렇게 보는데…. 눈에 띄는 도시 이름이 보인다.

라스베이거스!?

오…. 오…. 이건 또 그냥 넘어갈 수 없지.

호텔과 카지노가 넘쳐나는 도박의 도시잖아?

미국놈들은 거기도 정상화했을까? 상당히 궁금해진다.

마침 가는 길이기도 하니 조금만 돌아서 한번 들려보기로 했다.

많이 돌아가는 거면 모를까 이 정도 거리면 들렀다 가는 게 맞지.

사실 가서 뭘 하려 하거나 그곳에서 뭔가를 기대한 건 아니다.

그냥 궁금했다. 그 화려한 도시의 현재 모습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면 그것도 대단한 거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어땠는지 알아보는 건 나쁘지 않을 거다.

어쨌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였으니까. 그건 이견이 없지.

사막을 가로지르다 발견한 도로. 그리고 간판.

라스베이거스가 50마일 남았다는 간판. 50마일? 새끼들아…. 킬로미터 단위 좀 써라. 망할 새끼들.

대충 1.6을 곱하면…. 80킬로미터? 그래? 한 20분 가면 되나? 얼마 안 걸리겠네. 바로 가보자.

그렇게 도착한 라스베이거스.

기대했던 것과 다르게…. 이곳은 폐허나 다름없었다.

커다란 호텔들. 다양한 건물들. 그 흔적은 남아있지만, 눈에 보이는 건 관리 안 된 건물들과 모래에 반쯤 파묻힌 도시들.

근데 그런 호텔 안에는 많은 인기척이 느껴진다.

도시는 폐허인데 사람이 있는 거 보면…. 저 사람들은 관리 받는 게 싫어서 나온 건가?

식량 공급은 어떻게 하길래 이런 곳에서 살지? 신기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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