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24화 (524/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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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놀이공원이다.

분명 먼저 느낀 건 부조리가 맞다. 억울함, 어처구니없음, 황당함…. 그런류의 부정적인 생각들.

근데 웃긴 건 가까이 내려가서 보니 또 다른 마음이 들기도 했다.

여긴 나도 와볼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

가까이에서 본 놀이공원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 여기엔 백인만 있거나 그렇진 않았다. 동양인, 히스페닉, 흑인, 뭐 잔뜩 있다.

가족 단위도 있었고 커플도 있고 학생들도 있고 어른들도 있고…. 하여간 이제야 진짜 미국을 본 것 같다.

그럼 나도 여기 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놀 수 있는 거 아닌가?

승희, 미나, 세아, 안나를 데리고 와서 노는 거야. 걔들도 놀이동산이면 싫어하진 않겠지.

오지 않겠다고 할 리가 없다. 눈을 빛내고 뭐부터 탈지 고민하면 모를까.

흠. 나쁘지 않네. 한번 와보긴 해야겠어.

어쨌든 사람들이 저렇게 놀이공원에 자연스럽게 올 정도고 저렇게 모인 사람들이 서로를 거북하게 생각하거나 이상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면, 인종이나 문화 간에 서로 마찰이 있던 건 아닌거 같다.

핍박을 받은 거 같지도 않고.

내가 생각한 건 금방 망상이 되어버렸네. 하긴, 내가 그렇지.

그럼 또 궁금해진다. 샌프란시스코. 거기는 왜 백인만 있었을까? 빈집은?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지?

모르는 게 너무 많네. 또 이건 언제 다 알아내냐.

미국에 정통한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어보는 말에 다 대답해줬으면 좋겠네.

매혹해볼까? 대충 적당히 한적한 곳에서 여자 하나 매혹한 다음 물어보는 게 빠를까?

근데 뭐 민간인은 아는 게 없어. 뭔가를 아는 놈들을 만나야 하는데.

잠깐. 바본가? 뭐하러 아는 놈들을 찾아 헤매지? 그런 놈들이 튀어나오게 하면 되잖아?

내가 빌런이 되는 것도 뭐 나쁘진 않다. 근데 그건 문제가 되는 게, 내 모습을 노출해야 한다.

그건 안되지. 나는 방어 스킬 하나 없는 물몸이라고. 해봐야 반사 한 개밖에 없다.

게다가 나를 노출한다니…. 그건 말도 안 된다. 생각만 해도 소름 끼쳐.

절대 그럴 필요가 없지. 다른 방법이 많은데. 일단 생각했으면 바로 해보자. 시간도 많으니까.

일단 준비물을 찾아야 해. 폭발 스킬이 있는 여자. 그리고 비어있는 한적한 건물.

딱 그거면 된다.

먼저 비어있는 한 오피스텔처럼 보이는 건물 하나를 잡고 저장해뒀다.

이거야 뭐 금방 되니까 됐고.

이제는 폭발인데.

기본 스킬 중에 폭발만큼 화려한 스킬이 없지. 위력도 좋고, 사람들 이목 끌기도 좋고.

탐지를 돌리고 혼자 있는 기척을 찾아 돌아다닌다.

발견하면 바로 페이즈 아웃으로 침투한다. 그리고 무효화와 수면. 기억 읽기, 스킬 확인, 꽝이면 그대로 페이즈 아웃.

그렇게 반복하며 스킬이 폭발인 여자를 찾는데…. 어휴. 진짜 없네.

하나 정도는 있을법한데. 테러에 민감한 나라라서 그런가? 폭발 스킬은 없다.

그리고 보호막 숫자가 많다. 그래. 이건 뭐 우리나라도 그렇긴 했지.

힐이나 보호막 고르는 여자는 제법 있었으니까. 여기라도 다를 게 없겠지.

세 시간 정도? 거의 백 단위의 사람들을 확인한 결과 드디어 하나 찾았다.

이야. 폭발 있는 여자 찾기가 이렇게 힘이 든다니.

이 여자 하나 찾느라 오늘 LA에서는 혼자 있다가 기면증으로 쓰러진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졌잖아.

어쨌든 찾았으니 됐다. 매혹에 걸리니 나를 보고 웃는 여자. 역시…. 꼴 보기 싫어.

이쁜 여자가 매혹당해 웃어도 꺼림칙 한데, 이 여잔 이쁘지도 않다. 남자친구 없을 것 같이 생긴 30대 초반 여자.

어휴. 뭐 외모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일회용인데.

그런 여자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다. 매혹이 걸렸으니 멍청한 게 아니라면 내지시는 다 따를 거다.

이제 됐고…. 그럼 어디가 좋으려나. 사람 많은 곳이 좋은데.

"일단 나가자. 근처에 마트 있나?"'

"응. 있어."

"멀어? 걸어서 얼마나 걸려."

"걸어서 10분?"

"좋아. 거기로 가자. 거기로 가서 내가 말한 대로 하면 돼. 알겠지?"

"응. 알겠어."

건방지게 반말은…. 하긴 얘들이 존댓말이 있겠느냐마는.

그렇게 걸어간 여자. 금방 걸어서 마트 입구에 다다른다. 아. 우리나라에도 들어온 마트네.

여기 피자 싸고 맛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좁은 땅덩어리 때문에 주차장 들어가려면 한참 걸리는 마트지만 여긴 아니다.

그냥 존나 큰 주차장. 그것도 그냥 단층으로.

땅덩이 큰 나라다 이거지. 존나 부럽네. 우리나라가 수직적이라면 여기는 굉장히 수평적이야.

뭐든 큼직큼직하고 널찍하다. 사람들 덩치도 마찬가지고.

어쨌든 그렇게 마트 앞에 선 여자를 염력으로 들어 올렸다.

마치 비행을 쓴 것처럼 제자리에서 떠오르는 모습.

그걸 보고 기겁하는 주변 사람들. 뭔가를 느낀 건가? 바로 경계하면서 물러난다.

퍼엉!!!

내가 여자의 팔을 들어서 한곳을 가리키니 여자가 폭발을 썼다.

이번엔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자 여자는 또 스킬을 쓴다.

팔을 움직였다가 멈출 때마다 터지는 폭음.

아마 마리오네트 스킬이 이렇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마리오네트도 배우면 이렇게 빌런 짓 하기 딱 좋을 텐데.

어둠의 장막 뒤에 숨은 빌런 최흉으로 군림하기엔 그만한 스킬이 없잖아?

한번 생각해봐야겠어. 적어도 이렇게 염력으로 부자연스럽게 하는 것보단 나을 테니.

그래도 이렇게 하는 게 생각보단 나쁘지 않다. 어차피 단순한 지시와 단순한 움직임이니 가능한 일.

내 목적은 히어로라고 부르는 놈들을 끌어내는 것이니까. 굳이 더 복잡할 필요는 없다.

이정도면 충분해. 더 공들일 필요 없지.

멀리에서 웅성거리며 내가 조종하고 있는 여자를 바라보는 사람들.

도망 안 가나? 신기하네. 믿고 있는 게 있는 건가?

그런 사람들 근처로 슬쩍 끼어들었다.

평소라면 사람들 사이에서 이렇게 노출해있는 건 별로 맘에 안 들어 하지만, 뭔가 정보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다.

멀리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스킬은 왜 없는 거야? 어딘가 히든 스킬에는 있으려나? 있으면 좋겠는데.

웅성거리는 사람들. 아. 여기 이렇게 끼어있으려면 나도 표정 연기는 해야지.

보통 이런 데서 혼자 빌런을 보며 시니컬하게 웃고 있다가 히어로랑 눈 마주치고 정체를 발각당하잖아?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 필요 없지. 그래도 나름의 연기는 된다고.

"미스터 샤이닝이 곧 온대요!!!"

휴대용 라디오를 귀에 바짝 붙이고 듣고 있던 한 흑인 남자가 기쁜 표정으로 소리친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오오' 하면서 표정이 밝아진다.

일단 뭔진 모르지만 나도 같이 열광하는 척했다. 근데 미스터 샤이닝? 히어로인가?

그러면서도 여자를 조종해 조금씩 움직이며 주변에 폭발을 남발한다.

음. 더 얻을 정보는 없나? 그럼 슬쩍 자리를 피해야지?

일부러 여자를 조종해 내 근처에 폭발을 날렸다.

히어로를 기다리며 밝은 표정을 짓던 사람들은 혼비백산하면서 뿔뿔이 흩어졌고, 나도 그 무리에 섞여서 도망치다가 슬쩍 투명화를 쓰고 근처 빈 건물로 이동했다.

히어로라는 놈들이 탐지도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 이렇게 있다고 의심은 받지 않겠지.

자. 그럼…. 어디 기다려볼까? 미스터 샤이닝?

몇 번의 폭발을 더 쓰고 여자는 내가 준 포션을 하나 마신다. 벌써 스무 번을 썼나?

그럼…. 포션도 먹었으니 조금 더 화려하게 해볼까?

펑! 펑! 펑!

연속된 폭발. 마트 주변은 난리가 났다.

황급히 도망가는 차 한 대에 폭발을 쓰자 차가 그대로 터지면서 안에서 빛이 터져 나온다.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고약한 일들. 근데 이정도는 돼야 빌런이지.

그냥 폭죽놀이 하듯 빈 곳에다가 폭발 찔끔 써봐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멈춰! 더 이상의 악행은 허락하지 않는다!!"

갑자기 큰 목소리가 들리고 마트 쪽 하늘에서 빛나는 사람이 내려왔다.

어우. 근데 대사 뭐냐. 진짜 저러고 말한다고?

근데 그 남자가 나타나자 주변에서 열광하는 소리가 들린다.

숨어있거나 피해있던 사람들이 머리를 내밀고 환호하는 모습.

와. 진짜로? 정말 히어로에 대해서 저렇게 열광하는 거야?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게 제대로 된 건지.

어쨌든 공중에 떠 있는 남자. 다행히 스판쫄쫄이를 입고 있진 않았다. 새하얀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

머리는 가르마를 타고 까만 뿔테 안경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의 머리 뒤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후광.

"샤이닝! 샤이닝! 샤이닝!"

맙소사. 나는 이런 분위기…. 진짜 모르겠어.

히어로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저놈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여자를 내려다보고 있다.

아. 존나 보기 싫네. 공중에 떠 있는 거로 봐선 일단 비행 스킬은 있는 거 같은데….

근데 저 머리 뒤에 빛나는 건 뭐지? 장비인가? 스킬인가? 스킬중에…. 아. 설마 섬광이라고 있는 그 스킬 그건가?

세상에. 난 저 스킬 쓰는 사람 처음 봤다. 진짜 지금에 이르러서도 왜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스킬인데.

저걸 저런 식으로 쓰는 거야?

아무리 봐도 미친놈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럼…. 일단 벌써 스킬이 두 갠데. 다른 스킬은 뭐가 있지?

확인해 보자.

여자의 손을 들어 미스터 샤이닝을 가리켰다.

퍼엉!

공중에 떠 있는 남자의 발밑에서 폭발이 터졌지만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폭발의 후폭풍으로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엄청나게 나부꼈지만,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남자.

오…. 폭발의 범위가 자기에게 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건가?

하긴 그렇다. 폭발은 공중에 있는 사람을 맞추진 못해.

지면 대상 스킬이잖아. 단점 중에 하나지만…. 그걸 알고 있다고 해서 저렇게 대범하게 있는 건 좀 대단하네.

충분히 쫄만한데 말이지.

"적당히 해라! 네 공격은 빛에 닿지 못한다!"

어우. 씨발. 항마력 딸려. 미치겠네. 저 새끼는 왜 저러는 거야?

"빛으로 감화시켜주마! 샤이닝!"

그러더니 하늘로 조금 높게 솟구치는 히어로.

그리고 그가 여자를 가리키자 여자의 몸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어? 뭐지? 뭔 스킬이야?

정말 눈부시게 빛나는 빛. 여자의 몸이 안보일 정도.

그렇게 빛이 강렬하게 폭사하더니 순간 팍!하고 빛이 사라졌다.

그러자 어이없게도 여자의 몸을 잡고 있던 염력이 사라졌다. 그대로 땅으로 떨어지는 여자.

기다렸다는 듯 미스터 샤이닝은 몹시 빠르게 날아와 떨어지는 여자를 붙잡았다.

땅에 떨어지기 직전에 정말 아슬아슬하게 붙잡았지만, 그 자세는 굉장히 안정적이다.

"빛이 승리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오오오오!"

주변 사람들이 열광한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화답하는 미스터 샤이닝.

하지만 나는 어이없을 뿐이었다. 뭐지? 저 스킬은? 처음 보는 스킬인데?

몸이 빛나더니 염력이 풀려? 걸려있는 스킬을 해제하는 다른 스킬이 있는 거야?

아니다. 말이 안 돼. 적어도 나는 티어20까지의 스킬을 모두 봤다.

물론 히든 스킬은 뭐가 있는지 모르지만, 히든 스킬의 발현은 내가 알기로는 티어13이다.

그럼 저 새끼가 티어13 이상이라고? 게다가 내가 모르는 히든 스킬을 가지고 있고?

저 섬광? 저 스킬의 히든 스킬인가? 아냐. 섬광은 삭제할 수 있었어. 저거에 파생되는 스킬은 없다.

씨발. 대체 영문을 모르겠네. 이게 어찌 된일이야?

주변에 폴리스 라인이 쳐지고 경찰들이 주변을 통제한다.

그리고 내가 매혹한 여자를 땅에 내려놓은 미스터 샤이닝이 다른 여자 하나와 진지한 표정으로 대화하고 있다.

사이드 킥 같은 건가? 저 여자는 제법 이쁘네. 잠깐…. 그래. 이제야 알겠다.

티어13이나 히든 스킬일리가 없어. 내가 존나 순진했네.

협업이구나. 협업이야. 단순하게 히어로라는 놈들이 빌런을 무찌를 필요가 없는 거야.

히어로는 그저 얼굴마담. 연기력 좋은 연기자일 뿐이다. 분명히 그래. 물론 기본 액션은 할 수 있겠지.

공격이 가능한 스킬도 있을 것이고. 하지만 본인이 혼자 다 할 필요는 없다.

미스터 샤이닝 저놈이 시선을 끌면 주변에서 사이드 킥이든 누구든 간에 아무나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고 기절이든 마비든 써버리면 그만인 거지.

이해했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네.

그럼 결국 저 남자와 저 여자가 한팀이라는 소린데. 더 있나? 더 있을 수도 있지?

조금 더 살펴본다. 근데 미스터 샤이닝과 그 사이드 킥이 빌런이 되어버린 여자를 데리고 이곳을 뜨려 하는 거 같다.

으음. 그럼 안되지. 어떻게 만난 히어로인데.

일단 저들만 납치해보자. 일단 쟤들에게 물어보면 되겠지. 기억에 직접.

공중으로 블링크. 그리고 멀리서 광역 스킬 무효화. 차례로 수면을 거는데 사이드 킥 여자가 흠칫했지만 내 수면이 빨랐다.

미스터 샤이닝, 사이드킥, 그리고 빌런 여자의 바닥에 아까 저장해둔 건물 게이트를 열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진행된 납치.

주변에 깜짝 놀라는 경찰들. 하지만 게이트는 이미 닫혔다.

황당한 표정으로 게이트가 사라진 바닥을 바라보는 경찰들.

예. 납치 성공. 안타깝게도 히어로는 최흉의 빌런에게 납치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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