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17화 (51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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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번째 스킬

"공중에 떠보자. 위험할 수 있으니까 너무 높게 뜨지는 말고. 그래. 그 정도. 그리고 보호막 써봐."

3미터 정도 떠서 마주 보는 나와 미나. 미나는 보호막을 썼고 내 눈에도 보인다.

희뿌연 보호막, 어떤 각도로 보면 투명해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어두운 곳에 있으면 썼는지 안 썼는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자연광 아래서는 확실히 보인다.

"내가 너를 방금 했던 것처럼 염력으로 붙잡을 거야. 한번 떨쳐내 볼래?"

"한번 해볼게요. 해보면 이해되겠지."

"그래. 해본다."

염력을 써서 미나의 보호막을 붙잡는다.

물리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건 물리력으로 붙잡을 수도 있다는 말.

보통은 동그란 모양을 선호하는 데다가 크기가 커서 보호막을 붙잡거나 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염력 역시 형태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크기도 상관없고 구형인 것도 크게 상관없다.

하다못해 세 개만 동원해도 인형 뽑기 크레인처럼 집을 수 있으니까. 게다가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염력은 총 아홉 개.

아니지. 중급 됐으니 열 개지. 모양이 원형이라도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어…. 어?"

"움직여봐! 뿌리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 미나. 하지만 그리 쉽지는 않은 거 같다.

덜컥거리는 움직임.

앞으로 나가려다 갑작스럽게 뒤로 움직이고 좌우로 흔들다가 다시 위로 솟구쳐보지만 계속해서 내 염력에 붙잡힌다.

"으으."

그러더니 어느 순간 휙 하고 몸을 빼낸다. 오. 보호막 모양을 바꿨네. 순간적으로 놓쳤어.

뿌리쳤다고 생각했는지 씨익 웃는 미나. 하지만 금세 다시 잡힌다.

또다시 모양을 바꿔서 탈출해보려 하지만 이번엔 나도 예상했다.

어차피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염력 숫자가 많기 때문에 나에게 유리하다.

만약 내 염력이 눈에 보인다면 아마 문어 같은 이미지일 거야.

아. 동원할 수 있는 게 열 개니까 오징어려나? 대왕오징어. 그런 느낌?

"어어? 꺅!"

보호막을 변형해가면서 탈출하려던 미나는 오히려 내 염력에 붙잡혔다.

아마 내 염력이 있는 위치엔 보호막이 안 생겼겠지. 그래서 보호막이 벌어진 거 같다.

그 틈을 타서 내 염력이 미나의 몸을 붙잡았고 나는 그녀의 입에다가 염력을 집어넣었다.

"에엑!? 에엑!???"

아. 염력을 시각적으로 구현화 할 수 있으면 상당히 야한 모습일 텐데.

지금 모양은 대충 이런 느낌이다. 투명한 촉수 플레이를 당하는 미나.

내 염력이 미나의 벌려진 입에 들어가 혀를 붙잡고 있는 모습.

완벽하게 구속한 상황. 혀가 붙잡혀 있기에 스킬도 쓸 수 없고.

"후후후."

"에에에! 에엑! 에에!?"

"뭐라는지 모르겠다. 근데 좀 야하네."

입을 다물지 못해 침이 조금 흐르는 미나.

게다가 내 염력은 이미 그녀의 몸을 꽉 붙잡고 있다.

가슴과 다리. 엉덩이…. 모든 부분을 바짝 밀착하고 있기에 옴짝달싹 못 한다.

"에에에엑!"

"풀어달라고?"

눈으로 끄덕이는 미나. 근데…. 풀어주기가 싫네. 이거 왠지 되게 맘에 드는 상황이야. 속박 플레이라니.

"흐음. 그럴까?"

그러면서 미나의 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손에 잡히는 맨가슴. 미나의 얼굴이 금방 빨개진다.

"푸하. 켈록. 켈록."

손을 빼고 염력을 풀어주자 기침을 하는 미나. 그러더니 나를 살짝 쏘아보며 말한다.

"너무해요!"

"어? 왜? 내가 뭐 심한 짓 한 것도 아니고."

"그래도요! 이거…. 느낌 이상하단 말이에요!"

"그래? 어떤 느낌인데?"

"으. 별로 좋지 않아요. 강제로 당하는 느낌이라…."

아. 맞다. 미나는 이런 거에 안 좋은 기억이 있지.

"미안. 내가 좀 심했네."

이럴 땐 빨리 사과 박는 게 상책이지. 괜히 뻗댈 필요 없어.

"아니에요. 어차피 오빠인 거 아니까 크게 상관은 없는데…. 이거 너무 사기 아니에요?"

"그치? 그렇게 생각되지?"

"네. 제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지만…. 뿌리치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요."

"더 해볼래?"

"으…. 느낌이 좀 그런데…."

"싫으면 그만두고."

"음. 한 번만 더 해볼까요? 좀 살살 해줘요. 대신."

"근데 살살하면 그게 의미가 있나?"

"으. 알았어요. 그럼. 다시 해봐요."

또다시 시작된 미나와 나의 술래잡기. 이번엔 미나가 요리조리 몸부림을 친다.

보호막을 풀지 않으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을 감싸는 걸 소홀히 하지 않는 미나.

그래서 움직임을 제지하고는 있지만, 그녀의 몸은 건들지 못했다.

한참을 그렇게 서로 공방을 벌였고 갑자기 미나가 보호막을 변화시키더니 쑤욱 하고 내 염력을 빠져나갔다.

"헤헤!"

드디어 빠져나갔다고 웃는 미나.

보호막을 뾰족하게 바꿔서 한쪽으로 재빨리 빠져나갔어. 머리가 좋아?

하지만 바로 내가 덥석 잡았고, 방심한 틈을 타 미나의 보호막을 감싼다.

"꺅!"

보호막의 빈틈이 생겼고 내 염력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안으로 밀고 들어간다.

보호막 특성상 한번 모양이 흐트러지면 그다음엔 답이 없다.

순식간에 염력에 붙잡힌 미나는 블링크라고 외쳤지만, 내 염력에 붙잡혀서 그런지 발동되지 않는다.

또다시 온몸이 속박당했고 미나는 입을 꽉 다문다.

아까처럼 혓바닥을 잡히고 싶진 않은듯한 몸부림.

하지만 이 상황만 돼도 내가 이긴 거다. 입을 벌리지 못하면 스킬은 못 쓰니까.

게다가 이 정도 했으면 강제로 입을 벌리는 것도 가능할 거 같다.

더 하면 미나에게 별로 안 좋을 거 같아서 안 하는 것뿐.

그래서 그냥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만약 미나가 아니고 적이었다면 그대로 코까지 틀어막아 버릴 수도 있겠네.

이야. 씨발. 염력 사기다. 개사기야.

이 좋은 거로 무기나 날리고 있었다고? 제정신인가?

아. 아니네. 내가 이렇게 쓸 수 있는 건 전적으로 패시브 빨이 크다.

반경 증가, 지속 시간 증가, 한계 돌파, 최대 수치 증가의 패시브가 모두 적용이 되는 스킬이라 효율이 조온나 좋아진 거니까.

아마 패시브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겐 염력은 이 정도 활용이 불가능하겠지.

일단 거리도 짧고 쓰는 힘도 약하고 개수도 적은 데다가 지속시간도 똥망일테니까.

"으으음."

나를 보고 풀어달라는 듯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는 미나.

아. 또 저런 모습을 보면 내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잖아.

"풀어줘?"

이번에도 눈으로 끄덕이는 미나.

그렇게 풀어줄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저쪽에서 세아와 승희가 날아온다.

"오. 나이스. 다음 타겟이 알아서 오네."

"뭐해요?"

"뭐해?"

나와 미나가 있는 곳까지 다가온 두 여자.

나는 미나를 풀어주고 염력으로 승희와 세아를 붙잡았다.

"꺄악! 뭔가가 몸에!"

"엑!?"

꼼짝없이 잡힌 승희. 하지만 세아는 거칠게 몸을 털며 내 염력을 한번 뿌리쳤다.

오올.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공격을 완벽하게 방어하긴 힘들다. 바로 다리가 붙잡히고 몸이 구속된다.

"켁! 이게 뭐야!"

그러더니 힘으로 내 염력을 풀어버렸다.

와. 괴력인가? 괴력으로 염력을 푼 거야? 쟤도 정말 대단하네.

마침 잘됐네. 이런 것도 테스트해볼 수 있으니까. 괴력으로 염력을 풀 수 있다고?

아니, 굳이 괴력이 아니더라도 어쨌든 힘이 있으면 풀 수 있다는 뜻이겠지?

승희는 놔주고 모든 염력을 세아에게 집중했다.

내가 집중하자 세아도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고 바로 내 공격을 푼다.

당황하거나 비명 같은 걸 지르는 일 없이 묵묵히 공격을 벗겨내는 세아.

순간순간 블링크로 도망가려 하지만 내가 붙잡고 있기에 그건 불가능하다.

세아도 그걸 눈치챘는지 자신을 붙잡는 염력을 푸는데 집중하는 모습.

아마 내가 붙잡은 걸 모두 풀어내는 순간 블링크로 도망가겠지?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집요하게 어느 한 군데라도 붙잡는다.

하지만 확실히 괴력은 쉽지 않다. 그냥 발을 털기만 해도 염력이 그걸 못 잡고 뿌리쳐질 정도니까.

그렇다면 결국은 힘을 못 쓰게 붙잡아야 한다는 건데. 일단 약점을 먼저 찔러서 힘을 빼야 하나?

"꺅!"

염력으로 가슴을 움켜잡자 갑자기 확 당황해하는 세아. 오케이. 역시 이건 쉽지 않겠지.

바로 그다음엔 허벅지. 옆구리. 목. 민감한 부분을 연속해서 붙잡는다.

하나씩 뿌리치지만 동원할 수 있는 염력이 내가 더 많다.

그렇게 민감한 부분 위주로 공격하다가 남은 염력을 전부 팔과 어깨 부분으로 집중했다.

"으윽…. 이거 뭐야!"

오. 드디어 곤란해지셨네.

손으로 잡아 뜯지 못하게 팔과 어깨에 염력을 집중한 게 효과가 좋았다.

결국,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된 세아.

"이거 뭐야! 어!? 이상해! 에엑!?? 어딜 만져!!"

속박 후 촉수 플레이. 아홉 개의 염력으로 세아를 속박하고 자유로운 염력 하나로 세아의 몸을 간지럽힌다.

"꺄하하하. 간지러! 간지러! 아악! 거긴 왜! 야이 변태야!"

"재밌지?"

"아! 놔봐! 이거 뭐야! 느낌 이상해! 꺄하하."

좀 더 심한 짓을 하고 싶긴 하지만…. 보는 눈도 있고 하니 여기서 멈췄다.

"풀어줘?"

"풀어줘! 이게 뭐야!"

"하나만 약속하면 풀어줄게."

"뭔데!?"

"풀어주면 나한테 보복하지 않기."

"으…. 그게 되겠냐!?"

"그럼 뭐 못풀어주지."

그러면서 염력으로 계속 간지럽힌다.

"꺄하하하. 그만 간지럽혀! 아악! 아악! 알았어! 안 할게! 보복 안 할게!"

염력을 모두 거뒀다.

몸이 자유로워진 세아가 나를 슬쩍 바라보자 나는 속으로 움찔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웃으며 세아를 바라본다.

"흐으. 흐으. 진짜. 오빠는 언제 한번 두고 봐라. 어느 날 나한테 철저하게 당해도 군말 없이 있으라고."

"그래. 절대 방심하면 안 되겠네."

"이거 뭐에요? 뭐한 거예요?"

나에게 다가온 승희. 처음부터 꼼짝없이 당했던 그녀라 그런지 궁금한가 보다.

눈을 빛내고 나에게 물어보는 모습.

"아. 염력."

"염력? 그거 기본 스킬이잖아요? 기본 스킬인데 이렇게 강력하다고요?"

"패시브 빨이 잘 받거든. 나도 놀랐어.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서."

"헤에."

그렇게 염력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는데 세아가 나를 보고 말한다.

"오빠."

"어?"

"오빠 스킬 정확하게 몇 개니?"

세아의 질문에 나는 순간 굳었다.

스킬이 몇 개냐고? 이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솔직하게 스무 개라고 말하면 되긴 하지만…. 그렇다면 무슨 스킬이 있는지 물어볼 거다.

그럼…. 내가 가진 스킬들에 대해서 말해줘야 한다. 비밀은 없으니까.

말한다 말한다 했지만, 사실 아직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다.

매혹, 그리고 기억 트리의 스킬들에 대해서.

내가 대답을 바로 안 하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 세아.

그리고 승희와 미나 역시 비슷한 표정이다.

"너무 많아서 몇 개인지도 헷갈리는 거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거나 뭔가 의심스러워서 하는 투는 아니다. 오히려 농담도 할 정도니까.

그래. 얘들은 나에게 그런 시선을 가지지 않지.

찔리는 건 나다. 아니. 찔리는 짓을 하기도 했고.

"그거. 그래.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 했는데."

갑자기 진지해진 나의 모습에 세 여자는 '이 오빠 왜 이러지?' 하는 표정을 짓는다.

그럴만하겠지. 그렇게 진지한 질문이 아니었으니까.

"이따 저녁에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안나까지 오면 넷 전부."

"어? 어…."

세아도 대답은 했지만 얼떨떨한 표정이다. 승희와 미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왜이러는지 모르겠지. 모를만하지. 감 잡히는 게 없을 테니까.

"그럼 나는 조금 나갔다가 올게. 저녁 먹을 때쯤 다시 올게."

"그래요. 다녀와요."

의외로 웃으면서 승희가 대답했고 나는 바로 순간 이동을 썼다.

위치는 멀티 벙커. 염력을 배우고 쓴 이후에 그대로 나갔기에 성연과 신영이 아직도 그대로 누워 잠들어 있는 곳.

"하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결국은 이날이 오는 건가.

매혹, 그리고 기억 트리.

기억 트리야 뭐 크게 걱정은 안 한다. 실제로 쓴 게 없으니까. 기억 읽기야 다들 있는걸 알고 있기도 하고.

안나같은 경우는 자기한테 쓰면서 숙련하라고도 했으니까.

하지만 기억 삭제와 기억 조작. 이게 문제다. 단순하게 읽는 것과 그걸 변조할 수 있다는 건 차이가 크니까.

나를 얼마나 믿어주냐의 문제. 그래도 그나마 그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근데 매혹은 다르다. 그 믿음의 근원이 매혹으로 시작됐다면? 과연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까?

물론 내가 거짓을 말할 수도 있다. 스킬을 얻은 시기를 바꾸는 건 어렵지 않잖아.

너희를 만나고 나서 매혹을 배웠다. 그리고 너희에게 쓴 적은 없다.

이래 버리면 끝이긴 하다. 근데…. 그걸 믿을까?

뭐가 됐든…. 결국 올게. 오고야 말았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게 오히려 안 좋은 거였을까?

모르겠네. 어떤 게 가장 현명한 대처였을지는.

머리가 복잡하다. 일단…. 차분히 정리를 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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