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510화 (51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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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

"그러니까. 이건 상대에게 투명화된 천을 뒤집어씌우는 화살이군요."

내가 말하자 정 부장과 최 박사는 기쁜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한 번에 의도한걸 알아맞히니 좋아하는 거야? 둘 다 완전 애 같네. 저렇게 좋을까?

확실히 엄청난 물건이긴 하다.

투명화된 천이 상대를 감싸면 그 사람은 말을 할 수는 있어도 스킬이 안 나갈 거다.

실제로 보이긴 하지만 천이 시야를 막고 있는 거로 돼 있으니 목표 타겟이 안되는 걸로 될 테니까.

방출형 스킬은 나가지 싶지만, 블링크도 안될 거고…. 암튼 괜찮은 물건이다.

소름이 돋을 만해. 근데….

"이거…. 원리가 뭡니까? 어떻게 이게 터지면서 천 같은 게 확 뒤집어씌울 수 있죠?"

"아. 그건요."

최 박사가 신나는 표정으로 말한다.

"에어백. 아시죠?"

"네. 당연히 알죠."

"그럼 그 원리도 아시나요?"

"원리요? 원리…. 아. 이거 어디서 봤지? 교재에서 봤나?"

"교재요?"

"아. 화학과였거든요."

"대학교? 오. 그래요? 어디 대학교요?"

"큼. 박사님."

옆에서 정 부장이 헛기침을 하자 최 박사가 아차 싶은 표정으로 말을 삼킨다.

"그냥 설명해주세요."

"흠흠. 네. 에어백은 아지드화나트륨이 산화철이랑 반응하면서…."

"아. 맞다. 순식간에 질소가 나와서 부푸는…. 맞죠?"

"네. 맞습니다. 잘 아시네요."

이런 걸 아직 기억하다니. 나도 진짜 웃기네.

"아…. 그럼 화살이 목표에 맞는 순간 충격으로 산화철이 이지드화나트륨과 반응하면서 확 펴지고 그로 인해 천이 씌워지고…. 그런 거죠?"

"뭐, 비슷합니다. 정확하게 그런 건 아니지만요."

"으음…. 신기하네요. 신기해. 근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최 박사의 표정에 호기심이 어린다.

그 표정이 살짝 무섭다.

뭐랄까…. 뭔가 이야기를 해봐! 문제점을 말해봐! 개선점! 피드백! 내놔! 이런 표정이야.

"문제점이 많은데요. 일단…."

"잠시만요. 잠시만."

그러더니 후다닥 가서 펜과 수첩을 가지고 온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고 부담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말한다.

"자. 됐습니다. 말해보세요."

어우. 이 사람 좀 무서워. 약간 맑은 눈의 광인 같은 느낌이야.

"먼저, 천이 고정 안된다는 거."

"아."

"거봐요. 이건 문제 될 거라 했죠?"

"그걸 바로 짚으시네. 역시 부장님 말대로 눈썰미 있는 사람이야."

"그렇다니까요. 성철 씨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인데."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렇게 이야기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어쨌든 나는 둘이 이야기 하는 건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천이 고정 안 되는 건 뭐 크게 문제가 안 될 수도 있어요. 순간의 공방. 진짜 1초가 아쉬운 상황에서 스킬 한번 못 쓰게 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거니까. 근데, 뭐 하나 물어보죠.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단 근본적인 질문인데. 이거 만든 목적이 뭐에요?"

"이거요? 이건 그때 성철 씨가…."

"그래요. 제가 이걸 말했던 목적은 '포획용'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거죠. 그쵸?"

"맞아요. 그래서 이거 화살 이름도 포획 화살이라고…."

"근데, 자. 이건 제 생각이니 일단 들어만 보세요. 이걸 왜 화살에 달고 쏘죠? 그냥 투명 화살을 쓰면 죽일 수 있는데?"

"???"

"네?"

"아니, 그렇잖아요. 포획…. 그래요. 뭐. 포획할 수 있으면 좋기야 하겠죠. 정보도 얻을 수 있고 고문도 할 수 있고, 이래저래 필요할 수 있으니까. 근데 화살에 달고 쏘는 건 목적이 뒤바뀐 느낌이에요. 그냥 죽이고 말지."

"으음…."

"흠."

둘은 진지한 표정이 돼서 내 말을 곱씹는다.

"게다가 상대가 보호막이 있으면?"

"아. 그건 아직…. 근데 이걸 크기를 조금 더 키우면 되지 않을까요? 좀 더 광범위한 면적을 덮으면 보호막 위라도 덮여서 시야를 가릴 수는 있으니까."

"그럼 이거 공이 더 커져야 할 텐데요? 이 크기의 천으로는 어림없을 텐데? 그럼 화살이 날아가긴 하나요? 게다가 보호막은 모양도 만들기 나름이라."

내가 조금 말을 사납게 따지듯이 하는 느낌이 있지만,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한다.

일단 이 최 박사라는 사람은 까이고 있으면서도 기분 나쁘다기보단 문제점을 확인한 게 더 기뻐 보이니까.

"발상은 좋았어요. 원거리에서 상대를 포획, 혹은 빈틈을 만드는 방법. 근데 너무 포획에 포커스를 두신 거 같은데요. 차라리…."

점점 실망한 표정이 되는 최 박사와 정 부장은 내가 차라리…. 라고 말하자 다시 눈을 빛낸다.

이 사람들 조금 이상해. 왜 이리 열성적이야?

"이렇게 하죠. 그거 아세요? 보호막의 특성?"

"네? 보호막의 특성이요?"

"보호막은 기체는 못 막아요."

"아. 그건 알고 있습니다."

"그럼 화살 끝에 이런 걸 만들 수 있다면, 차라리 상대에게 맞은 다음 마취제나 최루탄을 뿌리는 화살을 만드시죠? 이 에어백의 원리 이런 것도 적용하실 수 있으면 그편이 더 낫지 않을까요?"

짝!

"아. 깜짝이야."

내가 말하자 최 박사는 손뼉을 짝하고 쳤다.

그러더니 이 산적 같은 아저씨는 내 손을 덥석 잡더니 '오오오오'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네! 차라리 그게 더 효과가 있겠어! 굳이 이 투명 천을 고집할 필요가 없어! 우리가 너무 이거에 얽매여 있었네!"

그렇게 갑자기 뭔가를 막 수첩에 적는 최 박사. 이 사람…. 진짜 박사 맞아? 약간 매드 싸이언티스트…. 그런 거 아니지?

"그 펜타닐? 마약 중에 그거 있잖아요? 그건 농도 짙은 거 만지거나 냄새만 맡아도 쓰러진다면서요. 화살이 상대를 맞추면 그게 확 퍼지게 안 될까요? 화살을 맞으면 뭐 죽는 거고, 화살이 보호막에 막혀도 기체는 보호막을 통과하니까. 분명 피해는 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수첩에 쓰던 자세 그대로 잠시 굳은 최 박사. 그러더니 박 부장의 팔을 잡고 약간 뒤로 물러나더니 내 쪽을 힐끔거리며 뭐라고 속삭인다.

아니…. 저사람 진짜 이상해. 저런 걸 당사자 앞에 두고 하는 거 맞아? 아니지 않나?

하는 짓이 너무 만화 같은 데서 나오는 행동인데?

"하하. 걱정 마세요. 우리 편이에요. 든든하죠?"

정 부장이 크게 웃으며 말하자 최 박사가 아직도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힐끔거린다.

대충 정 부장 말로 유추하면 '저 새끼 악마 아니냐? 괜찮은 새끼 맞냐?' 대충 이런 의미의 말을 속삭인 거 같은데.

"미안해요. 내가 살아온 게 이런 식이어서. 근데 마약 중독은 걱정하지 마요. 질병 해제로 다 풀리니까."

다시 나를 의심스럽게 바라보는 최 박사. 음. 이건 내가 좀 오해의 여지가 있게 말하긴 했네.

"크흠. 암튼…. 그 성철 씨가…. 아. 성철 씨라고 불러도 될까요?"

아이고. 일찍도 물어보네.

"네. 그러세요. 괜찮습니다."

"성철 씨가 말한 것들은 한번 시도를 해봐야겠네요. 이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지? 역시. 연구 윤리 이런 건 진작에 개나 줬어야 한다니까."

"아. 그리고."

"또 있어요?"

"화살은 그렇다 치고. 제가 관심 있는 건 이건데요."

하얀 공을 하나 들어 찬찬히 바라본다. 이야.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하지?

이렇다니까. 스킬이 만능이 아냐. 기술과 과학은 아직 살아있다고.

사라진 건 고작 통신과 화약. 그 두 가지뿐이다.

물론 그 두 가지의 비중이 너무나 엄청나기에 모조리 뜯겨나간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아니다. 이런 것들. 이런 기술들. 이런 게 남아있으니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어.

"이걸 굳이 화살에 달아서 쓸 필요가 있나요?"

"네?"

"여기에다가 뭐 좀 놔도 돼요?"

사격장 옆쪽 빈 곳. 비어있는 창고처럼 생긴 곳. 그곳을 보고 말하자 정 부장과 최 박사 둘 다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수납을 열고 안에 있는 것들을 비우기 시작했다.

지난 부산에서 레테와 SG의 사냥개들을 싹 죽여버리고 전리품으로 얻었던 공기총들, 그리고 그 외 장비들.

수납에서 무언가 우수수 떨어지는 걸 보고 내 쪽으로 다가온 두 사람은 그게 공기총 같은 물건들인 걸 보고 깜짝 놀라 하나씩 집는다.

바닥에 잔뜩 쌓인 흉기들. 그걸 하나 집어 들고 말했다.

"공기총이죠?"

홀린 듯 고개를 끄덕이는 두 사람.

"공기 대포는 없나요?"

"미친!"

"아우. 놀라라."

"아이고. 죄송합니다. 그. 성철 씨가 미쳤다는 뜻이 아니고 획기적이란 뜻으로…."

"알아요. 그런 오해는 안 해요. 암튼, 차라리 그런 걸 만들어서 쏘시죠? 그럼 굳이 이렇게 작게 만들 필요도 없을 것이고 화살보다 더 멀리 날릴 수도 있을 것이고, 화망을 갖춰서 아예 지역을 덮어버릴 수도 있고…."

최 박사는 손이 날아갈 듯이 자신의 수첩에 뭔가를 계속 적는다. 내 말을 받아적는 건 아닌거 같고, 내 말에 뭔가가 생각났나 보다.

"또. 또요. 계속 말해봐요. 빨리요."

"네? 아. 그래요. 음…. 또…."

어우. 눈빛 부담스러워. 근데 나도 약간 신났다.

이 미친놈 같은 남자는 뭔가 말만 해도 비슷한 걸 뚝딱 만들어줄 것 같은 사람이다.

평상시에는 생각만 했던 거, 아니면 내 머리만으로는 절대 실현 불가능했던 것들.

그런 걸 이야기 할 수 있는 기회잖아?

그러니 나도 약간 두서없지만 마구잡이로 아이디어를 쏟아낸다.

"그러니까. 오물폭탄이죠. 굳이 오물일 것까지는 없고. 끈적거리는 거, 점성이 많은 거. 시야를 가리거나 입을 떼기 힘들게 하는 거. 투명화를 써도 의미가 없게 몸에 덕지덕지 달라붙는 것들요. 화학적으로 유해하면 더 좋겠네요. 아무튼, 그런 것들을 투사하는 거죠. 공기 대포든 공기총이든 에어 신기전이든 뭐든 해서요. 그럼 일정 범위에 있는 사람들을 죄다 무력화시킬 수 있잖아요?"

"오오오!"

"소리. 소리를 이용한 공격. 그건 영화만 가능한 거예요? 어쨌든 공중전의 핵심은 그거에요. 상대의 보호막을 깨는 거. 보호막 깨는 스킬이 있긴 한데. 결국은 맞춰야 하거든요. 근데 소리를 이용해서 상대의 방향감각이나 균형감각을 조금이라도 무너뜨리는 거죠. 진동파라고 비슷한 스킬이 있는데 역시 그것도 보호막에 막히니까."

"더! 더요!"

"지금 이 세상에 화약 없는 거 아시죠? 근데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불꽃놀이 안에 보면 화약 남아있거든요? 근데 테스트해보니 일정량 이상 화약을 모으면 사라져요. 그럼 적은 양의 화약은 어떻게든 쓸 수 있다는 소리거든요? 그것도 활용해보세요."

"모어! More!!!!"

"아까 펜타닐 이야기 한 거 농담 아니에요. 마약? 합성할 수 있잖아요? 상대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면 마약 농축액이라도 뿌려야죠. 아군 피해는 방독면이랑 질병 해제로 완벽하게 막을 수 있도록 조치하면 될 거에요. 아. 질병 해제는…."

진짜 그 자리에서 이런 식으로 최 박사와 거의 세 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했다.

옆에서 같이 듣던 정 부장마저도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온갖 것들을 이야기했고, 최 박사는 새로운 수첩을 두 개나 더 가져왔다.

"어…. 이 정도면 일단은 생각난 건 다 말한 거 같네요."

"정 부장님아! 나 없어도 개성 공략 할 수 있지? 당분간 나 찾지 마라잉. 나 바쁠 예정이다. 니도 이거 다 들었으면 나 찾을 생각 안 하겠지?"

그러더니 후다닥 아까 나왔던 쪽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갑자기 우뚝 멈춰 서더니 다시 내 쪽으로 우다다 달려온다.

"고맙소. 참말로 고맙소!"

내 손을 덥석 잡고 몇 번 흔든 최 교수는 다시 뛰어서 나간다.

그야말로 바람처럼 사라진 남자. 참…. 정신없네. 진짜.

"진작 만나게 해줄 걸 그랬네요."

"되게 신난 거 같네요."

"저런 사람이 5년 동안 농사짓고 있었으니까요."

"아…. 안 미친 게 다행이네요. 그래도 어떻게 저런 사람을 발견했네요."

"말했잖습니까. 우리 펜스에는 온갖 사람들이 다 있다고. 최 박사 저 사람이 있는 건 진작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근데 식량 생산에는 딱히 필요 없는 능력이니까요. 근데 이렇게 북쪽으로 오게 되면서 그 능력을 쓰게 된 사람이죠."

"흐음. 다행이네요. 미치기 전에 자신의 능력을 쓸 수 있게 돼서. 근데 걱정되는 건."

"네?"

"나 같은 놈이 생각하고 있는 건 이미 어디에선가는 쓰고 있을 거라는 거?"

"아. 그거요. 물론 그래 보이는 건 몇 개 있어 보였지만,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네? 어째서죠?"

"단순히 첨단 과학 기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방금 두 분이 나눈 대화나 거기에 들어가는 기술들은 삼박자가 갖춰져야 합니다. 스킬에 대한 이해력, 기술에 대한 이해력, 그걸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 과연 이렇게 된 세상에서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요?"

"흐음. 그건 그렇네요. 쉽지는 않겠네."

"없다고는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있다고 해도 몇 군데 안될 겁니다. 일단 스킬에 대한 이해도는…. 성철 씨 따라갈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이니까요."

"어휴. 왜 갑자기 그런 칭찬을. 암튼…. 뭐 도움이 됐으면 다행이고요."

"도움요? 다행? 과연 겨우 그 정도일까요? 짧은 소견이지만…. 아마 이건 미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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