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99화 (49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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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해제

좋아. 그래. 수납이 이정도니…. 다른 것도 더 씹사기인게 있겠지?

뭐가 있을까. 어디 보자. 회귀. 회귀. 회귀.

씨발. 이것도 존나 무궁무진하잖아? 회귀야말로 제약이 엄청난 스킬이잖아.

생명체는 안되고 복합적인 물체는 안되고,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암튼 안되는 거투성이였는데.

미치겠네. 이것도 제약이 풀리면 어디까지 풀릴지 가늠이 안 된다.

수납 트리가 상상력이 많이 들어가긴 했지. 그래. 이해한다.

존나 기대되네. 회귀. 아마 이거 테스트할 때는 머리 좀 빠개지겠네.

암튼…. 회귀도 그렇다 치고.

블링크나 순간이동. 거기에 게이트. 이건 뭐…. 제약이 그리 많지는 않으니까.

아닌가? 생각해보면 이것도 엄청 많을 수도 있고.

또 뭐가 있지? 파티? 파티는 제약이 있나? 이건 별거 없을 거 같긴 하네.

기억 읽기. 기억 삭제. 기억 조작. 이 스킬들은 제약이라고 할 게 별로 없고.

천리안? 투시? 이것들도 별거 없겠네. 워낙 직관적인 스킬들이니까.

어쨌든 지금 생각나는 건 이정도다. 근데 또 막상 써보면 뭔가 기상천외한 것들이 줄줄 나오겠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제약 해제 저 패시브는 개씹사기라는 거다.

수납 하나만 봐도 이미 뽕은 뽑는 스킬.

게다가 매혹이나 페이즈 아웃 같은 걸 생각하면 포텐셜이 엄청나다.

문제는 조건.

가장 의심 가는 스킬은 역시 잠금 해제다. 이름이 그렇잖아? 게다가 스킬 성격도 얼추 그럴듯하고.

문제는 단지 그것뿐이냐는 거다. 잠금 해제를 배우고 티어13을 찍는 것.

그것만으로 이렇게 엄청난 패시브를 준다고? 스킬 효과에 비해 조건이 너무 쉽다.

뭔가 조건이 더 있을까? 근데 세아의 스킬에 특별한 건 별로 없다.

잠금 해제, 그리고 강화 주먹 정도? 다른 이들이 안 배운 스킬은 그거 두 개밖에 없으니까.

하아. 조건을 확실하게 알고 싶은데. 역시 더 알만한 방법은 없겠지.

직접 몸으로 테스트해보는 수밖에 없잖아? 언제나 그래왔듯 이번에도 그렇겠지.

"오빠."

"어?"

"그럼 나 스킬은 뭐 배우지? 동물 탐지 배우면 되나?"

"어? 아. 아까 그거 패시브였지. 음…. 그래. 어차피 코인 탐지까지 배우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지금 당장 배울만한 스킬도 없고."

"흐음. 그래. 일단 배워. 앞으로 테이밍 하기 편해지겠네."

"알겠어. 아. 그리고…."

"어? 뭐 더 할말 있어?"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는 세아.

"아냐. 이따가 말할게. 그러니까…. 밤에."

"그래? 알겠어."

뭔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지만 이따 말한다고 하니 뭐…. 이따 듣자.

그렇게 세아가 가고 제약 해제 패시브에 대해서 더 생각해본다.

GPS가 안됐으니 결국 이 세상에 걸려있는 제약은 못 푼다고 보면 될 거다.

GPS, 인터넷, 총기, 임신…. 그런 것들. 세상에 걸려있는 제약.

그게 풀렸으면 정말 좋긴 했을 텐데. 하다못해 GPS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아?

GPS는 왜 안될까? 분명 지금도 하늘에는 인공위성이 떠 있을 텐데.

방법이 정말 없을까? 아니 뭐 GPS에 그렇게 목맬 필요는 없지. 있으면 좋은 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사는 거니까.

그럼 다른 제약들은? 특히 총기나 폭탄.

근데 그건 제약이 풀려도 문제다. 세상에 이미 총은 없다. 폭탄도.

한다면 불꽃놀이 화약을 잔뜩 모으는 정도?

근데 그건 전문가가 아니니 그다지 효과는 볼 수 없을 거다.

그런 건 화약 같은 걸 잘 아는 사람들이나 유용하겠지.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제약이 풀려도 어떻게 쓰진 못할 거야. 오히려 당하면 당했지.

그러니 차라리 제약이 안 풀리는 게 낫다.

스킬이면 대응이라도 할 수 있지. 총이나 폭탄은…. 모르겠다.

저격 같은 건 상상하기도 싫으니.

그리고 임신.

솔직히 이건 좀 아쉽긴 하다. 이 제약이 풀렸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든 다시 굴러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거잖아?

그렇기에 절대 임신 불가의 제약은 풀리지 않을 거라 확신한다.

이 세상은 이미 사망 판정을 받은 세상이다. 그걸 굳이 다시 살릴 이유가 없어.

그래도 아쉬운 건 사실이야. 아기라니.

근데…. 내가 아기를 낳고 오순도순 사는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다.

아니. 그럴 자격이 있나? 모르겠네.

'지금 살고 있는 모든 인류는 살인자의 자식이다.'라는 과격한 문구 같은 건 본적이 있다.

남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누군가를 짓밟고 올라서서 생존한 인간들.

그들의 후손이라는 것. 뭐,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하지만 너무 비약적이지. 궤변이고.

어쨌든 나는 내가 한 짓들에 대해서 절대 정당화하지 않을 거다.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대가. 분명 언젠가는 치르게 될 거다. 어떤 식으로 치르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부터 머리 썩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건 그때 가서 담담하게 마주하면 되는 거고.

지금은 그저 내가 내키는 대로 살 거야.

살인? 강간? 기만과 농락? 얼마든지 할 거다. 거기에 대한 죄책감은 없어.

이런 복잡한 생각은 안 하기로 했는데…. 방심하고 있었더니 또 하고 있네.

역시 방심이 문제야. 방심이. 언제든지 방심하면 안 돼. 몸이든 정신이든 다.

"나 다녀올게!"

내가 말하자 안나가 내 목소리를 듣고 빠르게 내 쪽으로 온다.

"지금 나가요?"

"어. 가야지. 블라디보스토크."

이고르의 현 위치에 대해서는 모두에게 이미 알려줬다.

블라디보스토크라는 이야기를 듣자 안나의 표정은 의외라는 얼굴이 되었다.

그렇게 가까이 있을지는 안나도 몰랐겠지. 물론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직선거리로도 700킬로가 넘으니.

그래도 모스크바에 비하면 정말 가까운 곳이다. 비교가 안 되지.

"매번 말하지만, 조심히 다녀와요."

"당연하지. 그리고 어차피 오늘은 위치 저장하고 살펴보기만 하러 가는 거니까. 오늘은 가서 별거 안 할 거야. 가는 데도 한참 걸리니까."

"알겠어요. 다녀와요."

그러면서 고개를 살짝 틀어 내게 키스해 준다.

찐하고 달콤한 키스. 꽃향기가 나는 것 같은 숨결.

그렇게 키스해 준 안나가 나를 보며 싱긋 웃어준다. 역시 안나는 웃는 게 이뻐. 그냥도 이쁘지만 웃는 게 최고야.

그렇게 벙커를 나서고 북동쪽을 향해 날아간다.

졸지에 북한을 훑어보고 가게 생겼네. 뭐, 좋지. 녀석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확인도 할 수 있고 좋네.

아. 아니다. 홋카이도에서 가는 게 빠른가? 한번 봐야겠다.

지도를 켜서 거리를 재본다. 홋카이도에서 더 가까울 줄 알았는데…. 그게 그거네.

근데 저쪽은 바다 위를 날아야 하잖아? 오. 노우노우. 싫다. 바다는. 차라리 북한을 훑고 가는 게 낫지.

아. 근데 하루카도 봐야 하는데. 요 며칠 못 갔네.

아직은 가면 녀석이 올 때가 아니니 괜찮겠지만…. 생각난 김에 지금 잠시 들렀다가 오자.

홋카이도에 사는 하루카(21세) 양은 별일 없이 잘살고 있었다.

뭐, 한 사흘 안 본 거니 그사이에 무슨 일이 있진 않았을 거라 생각은 했다. 주변은 내가 다 정리했으니까.

남아있는 식량, 그리고 그녀를 심심하게 해주지 않을 만큼 잔뜩 있는 동물들.

솔직히 쟤는 종일 동물들 밥 주다가 일과가 끝날 거 같네.

근데 해맑게 웃고 있는 거 보니까 별걱정은 안된다. 하긴, 쟤한텐 지금 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겠지.

괜히 가서 말 걸고 싶진 않으니 그냥 멀리서 지켜보기만 한다.

지금은 그냥 저렇게 두자. 아니면 더 내버려 둬놔도 상관없지. 어차피 가면 녀석을 잡기 위한 미끼니까.

그렇게 잠깐을 더 지켜보다가 다시 벙커로 돌아갔다. 이젠 본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가야지.

700킬로미터.

비행 속도가 시속 190킬로로 늘어난 나에겐 4시간이 안 걸리는 거리.

이 속도로 날아가는데 내가 멀쩡한 게 신기하다. 역시 스킬은 좋아. 말도 안 돼.

아무 문제 없이 자연스럽게 존나 잘 날고 있는 나 스스로가 신기할 정도다.

지면 가까이 날면 휙휙 바뀔 풍경이었겠지만, 조금 높게 날고 있어서 그런지 그리 빠른 느낌은 안 든다.

생각해보니 지금의 나는 거의 정찰기와 마찬가지다.

탐지 거리 1010미터. 즉, 1킬로미터. 게다가 천리안으로 인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거리는 그것의 몇십 배는 된다.

거기에 투시 기능 탑재. 자체 클로킹 가능. 블링크 가능. 시속 190킬로로 비행 가능.

날아다니는 재앙 급이네. 내가 생각해도 씹사기야.

대량학살 스킬만 하나 기가 막힌 거로 탑재하면 참 좋을 텐데. 맘에 드는 광역 스킬이 없단 말이지.

아. 저 제약 해제 스킬이 된다면…. 맘에 안 들었던 광역 스킬들도 좀 나아지려나?

생각해보니 그렇다. 일단 메테오, 우레 폭풍, 눈보라. 이 스킬들이 떡상한다.

존나 치명적이었던 이동 불가 페널티만 풀린다면 그것만으로도 개떡상이잖아?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다는 페널티가 없는 저 스킬들은 이동 불가 제약만 사라지면 정말 마음대로 싸 갈기면서 다닐 수 있는 거니까.

어? 아니네? 하루 한 번 그 페널티가 풀리기만 한다면 티어 높은 스킬이 여전히 좋겠구나?

잠깐만. 토네이도 같은 게 제약이 풀려버리면…. 너무 심한 거 아냐?

지구 망하겠는데? 아니지. 지구는 멀쩡하지. 좆되는 건 인간일 뿐이지.

하늘을 날아가며 토네이도를 연발한다? 어우. 생각만으로도 아찔하네.

또 뭐가 있지? 페널티가 극복되면 씹사기 스킬이 되는게?

데스 윈드의 성능을 빨리 보고 싶은데. 그게 아무래도 사기일 거 같단 말이지?

아. 그 카타스트로피. 그 스킬도 있네. 그건 진짜 재앙이잖아? 말 그대로 재난을 몰고 오는 남자가 될 수 있겠어?

하…. 진짜 제약 해제. 그 스킬 정말 앙큼하네.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들을 그 뿌리부터 뒤집는 거잖아? 스킬 삭제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 참 의도가 고약해.

실컷 판을 짜놨더니 판을 뒤집어? 근데 또 그게 맘에 든단 말이지? 없던 빈틈이 마구 생기는 거니까.

빈틈 성애자인 나는 침을 줄줄 흘릴만한 상황이다.

정말…. 이 세상은 참 재밌어. 머리 쓸 일이 많단 말아.

그렇게 스킬 생각을 하면서 날아가니 시간이 잘 간다.

지루하지 않아서 좋네. 역시 망상만큼 좋은 게 없어.

그러다가 지상을 한번 내려다봤다.

지상에 보이는 북한 주민들. 역시 생각했던 대로 잘살고 있다.

저놈들에겐 지금 세상이 훨씬 좋을 거다. 돼지 삼부자가 독재하던 시절보단 지금이 훨 낫겠지.

적어도 전기는 빵빵하게 쓸 수 있잖아? 굶어 죽을 일도 없고.

게다가 분위기도 짱개들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다. 중국은 땅덩이를 틀어막고 봉쇄한 다음 사육하는 느낌이었는데.

저들은 뭐랄까. 방목하는 느낌이다. 아마 강력한 억압과 통제를 할 대상이 없어서 그런 거겠지.

여유가 있으면 좀 자세히 보고 갈 텐데 지금 내 관심 대상은 아니다.

일단은 이고르부터. 그놈부터 해결하고 천천히 신경 써보자고.

아. 그러고 보니 펜스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북진은 잘 하고 있을까?

북한이 저렇게 태평한 상황이라면 북진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텐데. 잘 하고 있나 몰라.

그리고 의정부도 가봐야 하는데. 휴. 큰일 날뻔했네. 또 민희에게 혼날뻔했어.

오늘 블라디보스토크 찍고 의정부도 가봐야겠다. 생각난 김에 신경 쓸건 다 체크 하고 가야지.

게다가 민희에게는 물어볼 것도 있고.

블라디보스토크를 직진 거리로 빠르게 가려면 바다를 관통해야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고 동해안을 따라 쭉 올라갔다.

원산, 함흥 이런 곳을 눈으로 봐두고 싶었다. 그나마 그쪽이 북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이니까.

가는 김에 다 보고 가야지. 다시 와서 보려면 귀찮을 테니.

한결같이 평화로운 북한 땅. 모내기를 위한 묘판을 들고 이동하는 북한 남자가 보인다.

이야. 드디어 이제 쌀밥 먹는 거야? 수령님 그 새끼가 없으니 드디어 쌀밥도 먹나 보네?

보니까 소나 돼지들도 꽤 보인다. 아마 저기도 성장 스킬 있는 녀석들이 있겠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까 정말 웃긴다. 세상이 하향평균화되니까 오히려 살기 좋아지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 웃겨 정말.

그렇게 거진 세 시간. 북한 땅을 거슬러 올라간 나는 드디어 두만강을 넘어 러시아 땅에 들어섰다.

그렇게 30분 정도 더 날아갔고, 커다란 도시를 마주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이고르가 있다는 도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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