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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해제
세상이 이렇게 되기 전에는 손에서 떨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스마트 폰인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시계와 메모장, 사진기. 그 이상의 역할은 거세당해버린 비운의 전자기기.
자신의 방에서 스마트 폰을 찾아온 세아. 그러더니 나를 보고 물어본다.
"어…. 이제 어떻게 하지?"
"일단 지도를 켜봐. 만약 그게 제약을 해제해주는 거라면 GPS를 쓸 수 있을 거야."
"지도? GPS? 어…. 잠깐만!?"
바로 어플을 켜서 써보는 세아. 나와 다른 여자들은 궁금함에 그런 그녀의 스마트 폰을 본다.
"어…. 안 되는데?"
그녀 말따라 GPS는 작동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인터넷을 켜보라고 했지만, 그것 역시 안됐다.
통화는 물론이고 뭐든지 되는 건 없다. 이전과 다를 게 없는 상태.
"뭐야? 왜 안돼?"
자신의 스마트 폰을 계속해서 이리저리 만져보는 세아. 그리고 다들 실망스러운 표정.
"진짜…. 더럽네. 더러워. 스킬 설명 하나 없는 건 정말 짜증 나."
내가 투덜거리자 다들 동의하는 눈빛이다. 근데 투덜거려봐야 아무 의미가 없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그저 직접 찾아내는 수밖에.
"뭐지? 왜 안 되는 거야? 뭐야…. 괜히 기대했잖아."
시무룩한 세아. 되게 기대가 컸나 보네.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었나?
진짜 생각할수록 신기하네. 세아가 엄마가 된다는 건 정말 상상이 안 돼.
"안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럼 진짜 뭘까? 무슨 제약을 해제한다는 거지?"
다들 말없이 곰곰이 생각한다. 그렇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안나가 갑자기 손가락을 튕겼다.
"아!?"
"왜? 뭔가 알아낸 거 같아?"
"혹시…. 그런 거 아닐까요? 내가 쓰는 토네이도요."
"토네이도? 그게 왜?"
"그 스킬은 하루에 한 번 밖에 못 쓰잖아요? 그런 제약을 풀어주는 거 아닐까요?"
"어?"
안나의 말에 다들 그럴듯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제약…. 제약. 그래. 그것도 제약이지. 말이 된다. 그럴듯해.
"잠깐. 만약 그거라면…. 세아 니가 가진 스킬중에 제약 있는 스킬이 뭐가 있지?"
"어? 나? 어…."
"잠금 해제. 이건 잘 모르겠고. 투명화. 투명화 제약이 뭐가 있지? 괴력, 이것도 잘 모르겠고. 블링크도 그렇고. 수납, 강화 주먹도…. 잘 모르겠다. 반사도 제약이라고 할 건 없지? 테이밍은? 탐지는 뭐가 있어? 보호막도 그렇고. 데미지 감소도 제약이 뭔지는 모르겠고…."
세아가 가진 스킬에는 딱히 제약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아. 이거 뭐 확인하려고 해도 할 게 없네.
"우레 폭풍 때 못 움직이는 것도 제약이죠?"
"어! 맞아! 그래. 그런 것도 제약이지. 아주 큰 제약. 아. 미나였으면 바로 확인해봤을 텐데."
"뭐 없나? 하긴, 나는 그렇게 막 높은 티어 스킬을 배운 게 없으니까."
"으음. 진짜 없네. 사실 그런 제약이 없는 스킬들을 가지고 있는 게 좋은 거긴 하지만…."
세아는 자기가 가진 스킬을 한 번씩 써보기 시작했다.
잠금 해제로 자기 스마트 폰의 화면 잠금을 한번 풀어보더니 잠시 생각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그녀.
그리고는 투명화를 써본다. 그리고 투명화를 풀었다가 갑자기 소리 질렀다.
"어!?"
"왜?"
"잠깐만! 투명!"
다시 투명화를 써보는 세아. 그러더니 외친다.
"내가 보여!"
"엥?"
"내가 보인다고! 내 몸이 보여!"
"엥? 세아씨? 설명 좀?"
"아니! 그러니까! 내 몸이 보인다니까!? 투명화 쓰면 원래 자기 몸 안 보이잖아! 내 몸인데도!"
"어? 어…. 얼래? 그럼 너는 지금 투명화 썼는데 니 몸이 보인다는 소리야?"
"나 지금 안 보이지?"
"안보이지."
"그럼 맞아! 맞는 거 같아! 나는 내 몸이 보여."
한 번도 그런 걸 제약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투명화 자체는 워낙 압도적으로 좋은 스킬이니 투덜거릴 생각이 전혀 안 들었던 게 사실이지.
내 몸이 나한테도 안 보이는 거? 그런 건 신경도 안 썼지. 그런 거에 불만을 가지면 정말 양심 없는 거니까.
"아…. 그럼 스킬 제약을 푸는 게 맞나 보네."
"근데 이건 오히려 내가 불안한데? 투명화를 썼는지 안 썼는지 확인이 힘들잖아?"
"게다가 그건 패시브라 앞으로 계속 헷갈릴 거고."
"뭐 이래? 제약 해제가 오히려 제약이 되네."
그렇게 투덜거리는 세아. 그러면서 다른 스킬들의 제약도 찾아본다.
승희나 미나, 안나도 하나씩 자기 스킬들을 써보기 시작했고, 나 역시 내 스킬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제약. 뭐가 있을까? 사실 나도 거의 기본 스킬 위주라서 크게 제약 같은 걸 느껴 본 적은 없는데.
수면. 솔직히 잘 모르겠고. 탐지. 마찬가지고.
매혹…. 매혹? 잠깐만. 매혹의 제약은 아주 큰 게 있다. 이성만 가능하다는 제약.
근데 그게 풀리면? 동성도 가능한 거야? 와 씨발. 소름 끼치네? 여러 가지로?
함부로 테스트하기도 겁나잖아?
암튼 매혹은 그렇고…. 반사도 뭐 없고.
광역 스킬 무효화. 이거의 제약은 내 버프도 풀린다는 점? 근데 이걸 제약이라고 할 수 있나?
원래 스킬 효과잖아?
좀 애매하네. 이건 정확하게 모르겠다. 제약이라고 할 수 있는 건지.
투명화랑 비행은 뭐 넘어가고…. 페이즈 아웃.
페이즈 아웃!? 이건 있다. 존나게 큰 제약이.
페이즈 아웃 상태에서 스킬을 못 쓴다는 제약. 소리를 못 듣는 제약, 만지지 못하는 거…. 그 외에도 넘친다.
그야말로 제약 of 제약인 스킬이잖아?
씨발…. 말도 안 되는데? 솔직히 말해서 저 중에 아무거나 하나만 풀린다고 해도 춤을 출 수 있을 거 같다.
와. 미쳤네. 후. 그래. 진정하자. 아직 스킬 많아. 더 생각할 게 많다고.
수납. 수납도 제약은 별로 없지. 없나? 잠깐만.
"세아야!"
"왜?"
"너 포션 아무거나 하나 사봐. 빨리."
"웬 포션?"
"아. 사봐. 빨리. 그리고 수납에 넣어봐!"
그제야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깨달은 세아. 냉큼 상점에서 포션 하나를 사서 수납을 연다.
원래대로라면 수납에는 상점에서 산 물건은 안 들어간다. 하지만 지금 세아는?
"들어갔어!"
"오오."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별거 아니지만 어쨌든 수납의 제약도 풀린다는 거다.
"잠깐만…."
"어? 왜?"
"수납에는 살아있는 생명체는 안 들어가잖아? 근데…. 지금은?"
내 말에 다들 그대로 굳은 채 눈동자만 움직이며 서로를 바라본다.
나는 내가 말해놓고도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저 수납 안에 살아있는 게 들어갈 수 있다면?
"어…. 난 안 들어가. 난 안 해. 난 무서워서 안 할 거야. 시키지도 마."
세아가 손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뒤로 물러난다.
"풉. 야. 아무리 그래도 위험할 수도 있는데 설마 너보고 들어가라고 하겠냐?"
"그치? 그렇지? 내가 들어갈 필요는 없지?"
"당연하지. 근데 테스트는 해봐야겠다."
"어? 안 들어가도 된다며?"
"너 말고. 다른 생명체로."
"아…."
그렇게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수납에 넣어볼 생명체를 찾으러.
동물 탐지와 테이밍이 있기에 생명체를 잡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다만 뭘 잡아넣을지는 다소 격렬한 선정 과정이 있었다.
곤충은 징그러운 데다가 수납에 넣었다가 빼서 죽은 건지 아니면 그냥 죽은 것인지 확실히 알기가 어렵다.
집 위에 있는 들개들은 건드릴 수도 없고 고양이는 이야기도 못 꺼냈다.
무슨 험한 소리를 들으려고….
결국, 산을 뒤져 멧돼지 한 마리를 잡았다.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는 멧돼지. 하지만 괴력 쓴 세아가 몇 번 어루만져주니 얌전해진다.
개나 고양이는 안되고 멧돼지는 되다니…. 불쌍한 놈들. 다음에는 유해조수로 태어나지 말거라.
완전한 성체는 아닌 거 같지만 어쨌든 덩치가 제법 있는 멧돼지.
그런 녀석을 크기가 별로 차이 나지 않는 세아가 한 손으로 들고 있는 게 참 믿기지 않는 광경이다.
"그럼…. 한다?"
"어."
분명히 살아있는 멧돼지다. 우리를 보고 눈알을 디굴디굴 굴리고 있는 녀석.
그리고 그런 멧돼지가 세아의 수납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런 저항 없이.
"들어갔어!"
"이제 꺼내봐."
상당히 결과가 궁금한 상황이다. 들어갔던 그대로 다시 나올까? 아니면…. 죽을까?
세아는 수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다시 멧돼지를 꺼냈다.
그리고…. 멧돼지는 죽어있었다. 그 짧은 시간 안에.
"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저 물건을 담아 놓는 편리한 도구였던 수납.
그게 패시브 하나로 공격 스킬이 되었다.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상황.
"이게…. 하."
말을 못 잇는 세아.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
하지만 나는 그녀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으니까.
동물이니 죽었어도 사체가 남는다. 그렇기에 꺼낼 수 있었겠지.
근데 사람은? 어떻게 되지? 들어가는 순간 죽는다면 그걸로 끝이다. 말 그대로 저승행 게이트가 되어버리는 거다.
그럼 코인은? 수납 안에 들어가나? 원래 코인은 스킬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 그랬지.
그럼 코인도 수납 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인데? 궁금하다. 해보고 싶어.
"사람은…."
내가 조용히 말하자 다들 흠칫하는 표정이다.
그래. 다들 궁금할 거야. 근데 좀 소름 끼치긴 하겠지.
나야 정신병자 같은 놈이니 이젠 사람 죽는 거에 별 감흥을 못 느낀다지만…. 이들은 아니잖아?
하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이 여자들의 손에 피가 묻은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물론…. 그건 내가 그렇게 만들었지. 그렇다고 후회 같은 건 안 한다. 어차피 다들 동의한 내용이야.
게다가 이들 역시 인제 와서 깨끗한 척, 아무 죄도 없는 척 할 정도로 뻔뻔하진 않다.
"잠깐 기다려봐."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바로 우한으로 넘어갔다.
진작 사람으로 해볼걸. 어차피 그게 간단했을 텐데.
우한에서 한쪽으로 블링크를 계속했다. 탐지에 기척이 느껴질 때까지.
얼마 가지 않아 잡히는 기척. 바로 그쪽을 살펴보니 짱개 하나가 보였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려가 무효화와 수면을 건다. 덩치가 조금 있는 짱개 남자.
바로 게이트를 열려다가 그러면 이놈을 데리고 벙커 안에 들어가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아. 그러고 싶진 않아. 어딜 짱개가 내 집에.
우한의 게이트를 열고 나 혼자 벙커로 돌아왔다.
그런 다음 밖에 나와 우한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를 두 개 통과하니 쓰러져있는 짱개가 바로 보인다. 녀석을 들고 바로 게이트를 넘는다.
내가 하는 짓을 보고 있던 네 여자의 표정에 떠오르는 긴장감.
"자."
게이트를 모두 닫고 바닥에 쓰러져 자는 짱개를 가리키며 세아에게 말했다.
나를 약간 원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는 세아. 하지만, 침을 꿀꺽 삼킨 뒤 바로 가까이 다가온다.
"한다?"
"어."
쓰러진 짱개의 바닥에 수납을 연다.
예전 같았으면 저렇게 수납을 열어도 살아있는 생명체는 수납에 빠지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치 게이트에 빠지는 것처럼 그대로 빨려 들어가는 짱개.
"어…?"
"왜?"
"코인이 들어왔어."
"아. 그래? 바로 너한테 코인이 들어오는구나. 그럼 니가 수납으로 코인도 삼킬 수도 있다는 뜻이네."
"아. 그렇겠다. 예전엔 수납에 코인이 안 들어왔으니."
"그래. 그렇단 말이지…. 이거 상당히 좋은데?"
"으으. 더 할 일 있어?"
"아냐. 일단은 됐어. 아. 미나야. 질병 해제 좀 써줄래? 나랑 우리 전부다."
"알겠어요."
"아 참. 역병은 어떻게 돼가고 있지?"
"거의 2천만요."
"아. 그래? 화끈하네."
나부터 질병 해제를 써주는 미나. 몇 번을 그렇게 쓰더니 바로 세아에게 질병 해제를 쓴다.
그나저나. 2천만이라니. 어지간히 많이 걸렸잖아?
게다가 걸린 게 2천만이면 죽은 놈들은 훨씬 더 많다는 뜻이다.
결국, 킬수가 가장 많은 건 역시 미나네. 무시무시하구먼.
간단하고 사소한 테스트가 끝나고 다시 다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일단 수납만으로도 저 제약 해제 패시브는 배울만한 가치가 있다.
수납이 즉사 스킬이 되어버리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급이잖아?
게다가 내 수납은 크기가 조금 크다.
이번에 패시브를 하나 더 찍었으니 음…. 15.4미터네. 아니다. 15.2미터구나.
15미터라고 치고. 가로세로 15미터의 수납. 그걸로 누구든 덮어버리면 그대로 끝이다.
반항이고 뭐고 없다. 그냥 끝. 아마 수납에 머리만 들어가도 그냥 죽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존나 개씹사기네. 도망이고 뭐고 없다. 그냥 덮어씌우면 그대로 코인이 되는 거야.
완전 암살 특화잖아? 그 누구보다 조용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뜻인데.
단점은 기억을 못 읽는다는 거? 뭐, 그거야 내가 알아서 하면 되는 거고.
아무튼.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네. 황당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