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97화 (497/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제약 해제

"야. 오빠! 일어나봐! 빨리!"

분명 나는 곤히 자고 있었다.

이고르가 블라디보스토크에 있다는 걸 확인하고 모스크바의 일을 마무리 지은 뒤 집으로 돌아와 잠들었었다.

근데 아침.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타서 나를 짤짤 흔들고 있는 세아.

"뭐야…. 누가 쳐들어왔어?"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아…. 근데 내 잠을 깨우다니. 용감하네…. 별일 아니기만 해봐라."

잠에 대해서 민감한 나다. 그리고 그건 세아 뿐만 아니라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선 내가 자연스럽게 깨기 전까지는 이렇게 깨우는 경우가 거의 없다.

내가 말했듯 누군가 쳐들어온 정도가 아닌 이상은 내 잠을 깨울 리가 없을 텐데…. 뭐지?

"오빠. 혹시 '제약 해제'라는 스킬 알아?"

"뭐…?"

덜 깬 잠을 억지로 쫓으며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급한 일은 아닌거 같으니 적당히 느긋해도 되겠지.

내가 몸을 일으키자 내 위에 올라탔던 세아를 마주 보게 되었다.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 딱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기 좋은 각도.

"아으…. 간지러워! 따가워!"

"후하후하후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이잖아? 간지럽다고 몸을 빼는 세아의 목덜미에 열심히 턱을 비비며 숨을 불어 넣는다.

나에게 잡힌 채로 까슬한 수염과 숨결의 간지러움에 당하는 세아.

"하지 마! 간지러워! 꺄흐윽."

한참을 그렇게 장난치고 눈물이 그렁할 정도로 당해버린 세아를 바라본다.

아. 재밌어. 이상하게 괴롭히고 싶단 말이지.

어떻게 복수하고 싶지만, 방법이 없어서 분한 표정을 짓는 세아.

딱 표정이 ‘괴력을 써볼까?’ 하는 얼굴인데? 하지만 그건 의미 없잖아? 서로 체력낭비만 할 뿐이다.

"우씨. 말 안 해."

"하게 될걸?"

내가 약 올리는 표정으로 바라보자 결국은 한숨을 푹 쉬고 포기하는 표정이 된다.

"아. 정말. 두고 봐라. 다 기억해둔다."

"그러시던가. 근데…. 뭐라고? 제약 해제?"

"아. 맞다. 스킬. 오빠가 준 스킬 표에는 그런 스킬이 없던데? 뭔지 알아?"

"제약 해제. 제약 해제…. 그러게 처음 듣는데? 그런 스킬은 없어."

"아냐. 있어. 나한테 나왔거든."

"엥?"

"나 방금 데미지 감소 마스터 했거든? 근데 스킬 목록 보는데 그런 스킬이 있어!"

"정말? 이름이 제약 해제야?"

"어."

"잠깐. 너 지금 티어13인가?"

"어…. 스킬 열두 개 마스터 했으니 티어13 맞지?"

뭐지? 정말 모르는 스킬이다. 티어13에 나오는 스킬이면 내가 놓쳤을 리도 없다.

그 이후로 스킬 목록을 몇 번을 봤는데…. 그걸 놓쳤으면 내 눈깔이 문제 있는 거겠지.

내 문제가 아닐 거다. 그럼 생각해볼 수 있는 건….

"히든 스킬?"

"어?"

"아니…. 잠깐만 생각 좀 해보자."

나에겐 없고 세아에게만 나온다? 그럼 결국은 조건부라는 거다.

근데 지금 스킬중에 저런 식으로 누구는 나오고 누구는 나오지 않는 스킬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모든 사람의 스킬 목록을 본 건 아니니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승미세안 네 여자를 봐왔기에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어.

스킬 목록에는 나오고 선행 스킬이 필요하다는 고지는 떴었지. 근데 이렇다고?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근데…. 어? 잠깐.

"나가자."

거실에 나와 승희와 미나, 안나까지 불렀다. 다들 세아의 제약 해제 스킬 이야기를 해주자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다.

"너희는 그런 거 없었지?"

"없었죠."

"네."

"저도."

내가 모스크바에서 열심히 작업하는 동안 승희는 탐지를 마스터하고 동물 탐지를 찍었다.

미나 역시 얼음 화살을 마스터하고 소규모 동결을 찍었고 안나 역시 테이밍을 마스터하고 지금은 독무를 숙련하고 있다.

세 여자 전부 티어13. 이들이 티어13이 되었을 때는 저런 이야기가 없었어.

그럼 나랑 마찬가지라는 이야긴데.

결국, 생각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특정 스킬을 가지고 있을 때만 배울 수 있게 나타나는 스킬.

결국, 히든 스킬이라고 보는 게 맞겠네.

남들은 나오지 않고 자기만 나오면 히든 스킬 맞지.

"잠금 해제 때문일까요?"

승희의 말. 다들 그 이야기를 듣고 그럴듯하다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다.

"잠금 해제가 특별한 스킬인 걸까요?"

"글쎄. 조금 특이한 스킬이긴 하지? 근데 정확하겐 모르겠네."

"음. 하긴, 우리는 잠금 해제 같은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없죠."

고개를 끄덕이는 승희. 그녀의 말이 맞다.

나도 그렇고 승희, 미나, 안나는 군더더기라고 부를 수 있는 스킬이 없다.

물론 승희의 힐과 미나의 질병 해제도 있지만 그건 따지고 봤을 때 활용도가 높고 선택 비중이 높은 스킬이긴 하다.

잠금 해제는 진짜 특별한 케이스의 스킬 범주이긴 하지. 생성 스킬과 비슷한 느낌이니까.

"잠금 해제 때문에 이 제약 해제 스킬이 나왔다고?"

"아무래도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나도 승희도 미나도 안나도 안 나왔는데 너만 나오는 이유는 그것 때문일 거엔 아냐. 혹시 키가 150이 안 넘으면 나오거나 이런 조건은 아닐 테니."

"캬악! 왜! 거기서! 키! 이야기가! 왜! 나와!"

나에게 붙어서 막 꼬집는 세아.

내가 이니시를 걸었으니 잠자코 맞아준다. 뭐…. 그리 아프진 않으니까.

물론 괴력 쓰고 꼬집었으면 살이 뜯어져 나갔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잖아? 그럴 리도 없고.

"그래. 뭐 조건이야 그렇다고 치자. 근데…. 제약 해제라니. 뭘까?"

제약 해제.

상당히 두루뭉술한 스킬 이름이다. 근데 심상치 않은 이름. 제약 해제라니.

"제약이라고 하면 여러 개가 있잖아요? 그 처음에 봤던 그 메시지…."

"70세 이상 죽는 거랑 임신 안 되는 거?"

"네."

미나의 말에 다들 묘한 분위기가 흐른다.

나도 약간 가슴이 두근거린다. 70세. 뭐 그건 신경 쓸 필요 없다. 아직은 멀고 먼 이야기니까.

그리고 내가 알기론 70세가 되면 죽는 건 아니다. 그건 처음 그날에만 적용된 룰.

중요한 건 두번째다. 임신.

"설마…. 그 스킬을 배우면 임신이 된다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미나의 말. 그래. 그거다. 임신 불가능의 제약을 푼다고? 진짜로?

"좋아. 이런 건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 없지. 세아가 그 스킬을 배워보면 되겠네. 그리고 내가 세아에게 열심히 해서 임신이 되는지…."

세아가 내 옆구리를 때렸고, 승희가 내 허벅지를 찰싹하고 때렸다.

미나는 나를 째려봤고 안나마저 나를 그건 아니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쫌! 생각 좀하고 말해라! 생각 좀!"

"아니…. 그것만큼 확실한 게 어딨어…."

"임신이 애 이름이냐!? 어? 막 그렇게 가볍게 이야기할 내용이야?"

확실히 내가 좀 가볍게 말한 건 사실이네. 임신을 무슨 테스트 하듯 말한 건 좀 선 넘긴 했지.

"미안."

"아무리 오빠라고 해도 그렇게 생각 없이 말하는 건 안 돼요. 조심해요."

"알겠어."

승희의 따끔한 말에 나는 빨리 꼬리를 내렸다.

아무리 내가 막 나가는 놈이라도 1대4는 무리지.

게다가 내가 잘못한 건 맞으니 얌전히 입 다문다.

"근데…. 내 생각에는 임신이 되거나 하진 않을 거 같아."

상황을 모면할 겸 내 생각을 말하자 네 여자는 조금 전 내 말은 잊어주고 귀를 기울인다.

"왜요? 왜 그렇게 생각하는 데요?"

"승희야. 이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가 뭘까?"

"어…. 그건 예전에 오빠가 말하지 않았어요? 인간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걸 보고 즐기는 놈들이 있는 거 같다고."

"맞아. 내 추측이긴 하지만 모든 의도가 그래. 시체가 남지 않는 것과 사람을 죽여야 코인이 나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지. 스킬들이 상대를 해치는 스킬 위주인 것들도 그렇고."

"근데 생존 스킬도 있잖아요? 생성 스킬들이나…. 오빠가 가진 회귀 스킬이나."

"빨리 죽어버리면 재미없을 거 아냐. 그리고 먹고 사느라 정신없어서 서로 죽이는 걸 소홀하게 하면 안 되니까. 전기나 물이 무제한인 이유도 그거지. 어느 정도 인프라는 깔아줘야 서로를 죽이는데 몰두하지."

다 아는 이야기지만 다시 한번 들어도 진저리 처진다는 듯 네 여자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다.

"그런 녀석들이 가장 처음에 걸어놨던 제약이야. 그게 풀릴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무엇보다…. 임신이 된다면 그건 새로운 코인이 생성된다는 말이 되는 건데…. 그게 될 리가 없어."

"왜요?"

"사람 하나를 죽이면 500코인이 생기지?"

"네."

"아기는?"

"아…."

"천명을 임신시키면? 만 명을 임신시키면? 10만 명을 임신시키면? 아기는 자기를 방어할 수 없어. 무의미하게 죽을 거야."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왜? 아기 공장이 너무 잔혹한 생각처럼 들려?"

내가 말한 아기 공장이라는 단어에 네 여자는 진심으로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 제대로 된 인간이 생각할만한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이 망하고 온갖 추한 것들을 잔뜩 본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효율이 개똥망이긴 하지. 열 달이나 걸려서 비인간적인 짓을 하고 겨우 500코인.

하지만 인류가 거의 동난다면? 코인을 얻을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모르겠다. 정말로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어.

"근데…. 그럼 여자가 티어13까지 올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조건이 너무 힘든 거 아니에요? 티어13의 여자가 그리 많지는 않을 거 같은데."

"모르지. 남자가 그 스킬을 배우면?"

"아?"

"임신이 안되는 게 남자 문제인지 여자 문제인지 모르잖아? 만약 남자가 문제라서 그 스킬을 가진 것만으로 임신이 가능해진다면?"

"아…."

"정확한 조건을 모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는 거지. 물론 다 추측이긴 하지만."

무거워진 분위기. 내가 너무 필터링 없이 다 말했나? 하긴 네 여자가 아무리 험한 일을 당했어도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 여자들이다.

이런 이야기는 너무 가혹하지. 가벼운 이야기는 아니니까.

"근데, 난…. 아기 낳아보고 싶어."

갑자기 뜬금없이 말하는 세아.

그런 그녀의 말에 다들 으잉? 하는 표정으로 세아를 바라본다.

"나도 나 아이를 낳아보고 싶었다고! 나도 언젠간 엄마가 됐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 말야! 근데 우리는 그게 안 되잖아! 그러니 됐으면 좋겠어."

굉장히 의외다. 승희나 미나가 저런 말을 했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해가 됐을 거야.

근데 세아가? 상상이 잘 안 되네.

"세아야. 그렇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스킬을 찍는 건…."

승희가 약간 당황한 말투로 세아에게 말한다. 당황스럽긴 해도 조심스러운 말투.

"나도 알아. 그리고 나도 솔직히 임신이 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어. 이 거지 같은 세상에 아기가 다시 태어나는 일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래도 다른 효과가 있을 거 아냐? 다들 너무 임신에만 집중해있는 거 같은데…. 다른 제약도 얼마든지 있다고."

"다른 제약?"

미나가 물어보자 세아가 바로 대답한다.

"인터넷도 안되지. 스마트 폰도 안되지. 총도 안되고 폭탄도 안되고 안되는 게 한둘이야? 그런 거일 수도 있잖아?"

"아…."

그러네. 그 생각을 못 했네. 너무 임신에 정신이 팔렸어.

하다못해 GPS가 안된다는 제약만 풀려도 쓸만한 스킬이잖아?

인터넷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근데 인터넷이 풀리면 대박이네.

새로 생성된 정보는 없겠지만 예전에 있던 정보만 검색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게 어디야.

"그럼 배워. 어차피 너 지금 따로 급한 스킬 없잖아. 배워보면 되지."

"어차피 다들 말리더라도 배울 생각이었거든?"

그러더니 손을 들어 허공을 누른다.

"야. 그래도 패시브는 배우고 스킬 배워라."

"아. 진짜. 나를 너무 바보로 아는 거 아냐?"

그렇게 말하며 허공을 누르던 세아.

"어?"

"왜?"

"이거…. 50만인데?"

"뭐?"

"스킬 배우는 데 50만이라고."

"패시브야!?"

대답 없이 바로 허공을 힘차게 누르는 모습. 그러더니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패시브 맞네."

생각해보면 패시브가 조금 더 말이 되는 거 같긴 하다. 매번 스킬을 써서 제약을 일일이 풀 수는 없으니까.

어쨌든 완전 개꿀이네. 패시브라니. 그럼 저건 뭐가 됐든 필수 스킬이 되는 거잖아?

"근데…. 이거 뭘 어떻게 확인해야 하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바라보는 세아. 나는 그런 그녀에게 바로 말했다.

"일단 스마트 폰부터 꺼내봐!"

"아…."

그러더니 허둥지둥 자신의 폰을 찾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녀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