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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흐으윽!"
가슴과 어깨 사이가 뻥 뚫린 핏맨이 신음을 낸다.
아. 깜작이야. 그래도 깬 건 아닌가 보다. 그냥 통증에 신음을 낸 것뿐.
일단 포션을 하나 사서 녀석의 상처에 냅다 들이부었다.
어차피 죽일 놈이지만 기억을 다 읽기 전까진 깨거나 죽으면 안 되잖아. 그러니 이정도 투자는 해준다.
무려 회복 포션 대 짜리라고. 고맙게 여겨라. 자식아.
구멍 난 상처가 메꿔지거나 그런 엄청난 회복은 아니다.
아마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신체 복구 스킬을 써야겠지?
그래도 통증을 많이 줄이긴 해주는 듯 녀석의 표정이 그나마 편해진다. 물론 아직 잔뜩 찡그린 미간은 그대로지만.
어쨌든 이럴 시간이 없다. 빨리 기억을 읽자.
녀석에 대한 정보는 별로 알 필요가 없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녀석들의 회사. 녀석의 동료. 그놈들의 스킬. 숫자. 위치. 그런 것들.
전부 싹 읽는다. 녀석이 깨거나 죽기 전에 빠르게.
기억 읽기도 이젠 익숙해져서 요령이 생겼다. 굳이 다 기억하고 이해하려고 천천히 보고 다시 볼 필요가 없다.
그저 받아 적으면서 빠르게 넘긴다.
무슨 뜻인지는 나중에 다시 곱씹어보면 되는 거고.
얼추 읽을 걸 다 읽은 핏맨. 이제 이놈은 죽어도 상관없어.
뭐…. 분명 나중에 기억 좀 더 읽을걸…. 하고 후회하겠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기억을 아무리 읽어도 그 후회는 언제든지 하겠지.
마체테를 들고 녀석의 목을 겨눈다.
눈앞에 있는 보물상자. 적어도 허접하진 않겠지?
마체테를 역수로 들고 체중을 실어서 그대로 목을 찍었다.
칼끝에 걸리는 목뼈의 감촉. 그게 부러지는 느낌. 그리고 터지는 빛.
[9,427,481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942만. 크. 쏠쏠하네.
스킬 개수에 비해 코인 양은 조금 적은 느낌이야. 아쉽게.
근데 그건 내가 눈이 높아져서 그렇고 사실은 엄청 많은 양이다.
그만큼 엄청난 숫자의 사람을 죽인 거니까.
녀석의 기억에서 본 살인과 학살의 현장.
어지간히 씹새끼같은 짓을 잘도 하고 다녔다고 생각한 내가 봐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이 많았다.
세상이 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보이는 대로 학살하고 다녔던 인간 병기 같은 자식.
본인도 이렇게 아무 능력 없는 여자한테 허무하게 당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을 거야.
그래. 그게 이 녀석을 잡아낸 핵심이다. 방심.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언제나 최고의 공격이라고 생각하는 방식.
상대의 방심을 끌어내는 것. 빈틈의 빈틈을 찌르는 것.
단순해 보이는 작업이지만 나름 여러 개의 트릭을 썼다.
나는 철저하게 올가가 매혹에 걸린 척을 하게 했다. 물론 실제로 매혹도 걸었다.
그렇기에 녀석이 무효화를 썼을 때 올가가 매혹에서 풀린 실감 나는 연기를 할 수 있었지.
아니, 실제로 걸었으니 연기가 아니고 진짜 받은 느낌이라고 하는 게 맞지.
그러니 저 녀석도 껌뻑 속았고.
게다가 올가가 공격 스킬을 배워서 자신을 공격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안 했을 거다.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방심은 하지 않는 녀석이니 그렇게 한번 트릭을 쓴 거다.
조금이라도 틈을 만들도록.
적수를 고른 것도 중요하다. 가장 싼 스킬. 그리고 가장 확실한 스킬.
목표를 선택하는 스킬과 투사체 스킬은 애초에 생각도 안 했다.
반사와 보호막에 막히잖아? 그렇다고 올가에게 광역 스킬 무효화까지 배우게 하는 건 완전 무리다.
가능은 하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핏맨 녀석이 무효화를 쓰게 하는 걸 유도하는 게 나았다.
이런 좁은 실내에서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면 어쨌든 녀석 역시 잠시나마 모든 버프가 날아가니까.
하지만 그렇게 어려운 빈틈을 노리느니 차라리 보호막이고 나발이고 그냥 꿰뚫어버리는 적수가 낫다.
번개 주먹과 썬더 킥도 있지만, 데미지 감소를 쓰고 있다면 효과가 그리 크진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제외했고.
어쨌든 보기 좋게 성공했다. 스킬 열네 개 있는 놈을 잡는 것 치고는 들인 수고나 노력을 생각하면 거의 없는 수준이다.
말 그대로 거저 잡은 셈. 그 대가는 이바노비치와 942만 코인. 그리고 아직 죽이지 않은 경호원들.
경호원 녀석들을 마저 정리한다. 전에 녀석들을 보니 거의 한 명당 100만씩은 가지고 있던데.
이놈들은 어느 정도려나?
경호원 일곱. 바로바로 처리한다. 그렇게 얻은 8백만 코인. 이야. 행복하네. 정말 행복해.
역시 천연자원이 풍부한 러시아답다. 아낌없이 퍼주다니. 고마운 새끼들이야.
자. 이제 거추장스러운 건 벗겨냈다.
탐지를 돌려 주변의 상황을 한 번 더 체크 한다. 음. 아직은 괜찮네. 그래도 빨리 서두르자.
이제 남은 건 이바노비치의 기억을 읽는 것뿐.
하. 힘들었다. 이고르 그 씨발놈의 현 위치를 찾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어쨌든 이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이 넓은 땅덩이에서 사람 하나 찾는 게 그리 쉬울 리는 없으니까.
이바노비치의 기억을 읽기 시작한다. 키워드는 이고르 트미트렌코.
제법 많이 나오는 기억들. 크. 좋아. 맘에 들어.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읽기 시작한다.
이바노비치가 이고르와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잖아? 이고르 녀석의 현 위치만 알면 되니까.
게다가 나는 시간이 별로 없다. 그렇게 시간이 넉넉하진 않아. 빠르게 읽어야 한다. 필요한 기억만 빠르게.
어차피 죽일 생각은 없으니 필요한 부분은 나중에 와서 또 읽으면 된다. 살려놓으면 그런 장점이 있어.
그렇게 기억을 읽다가 결국 원하는 기억을 찾았다. 지금 녀석의 위치.
"씨발. 블라디보스토크?"
아주 익숙한 지명. 러시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상당히 많이 들어봤을 장소.
정확한 지명을 말하기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은 도시. 블라디보스톡 혹은 블라디보스토크.
러시아의 부동항. 동해와 맞닿은 도시. 대한민국의 코앞. 보따리 장사꾼들의 성지.
아니. 코앞은 아니지. 거리가 꽤 되니까.
어쨌든 어처구니없다.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네.
계속해서 기억을 읽는다. 이고르 트미트렌코와 더불어서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 기억도 읽었다.
빠르게 기억을 읽은 것 치고는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냈다.
머리가 빵빵할 정도로 지식을 얻어서 그런가? 배가 부른 느낌이네.
자. 이제는 기억 조작 차례.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준 올가와 많은 정보를 준 이바노비치.
게다가 앞으로도 얼마든지 조력을 얻을 수 있는 고위 정치인.
기억 조작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간을 많이 쓸 수는 없어. 서둘러야 해.
올가의 기억부터 건드린다. 아까 핏맨을 찌르고 난 뒤 그에게 당해서 기절한 것처럼 기억을 조작했다.
크게 어려운 일이 없는 조작.
그리고 이제 이바노비치의 차례.
잠깐 고민하다가 큰 틀은 올가의 기억에 맞춰서 따른다.
'내 딸아이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소리가 나올 정도로 기억을 만들어 넣는다.
나에 대해서 호의적이게.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의심이나 무슨 의도를 가진 게 아니고 정말 이바노비치와 올가를 위해 한 몸 다 바친 것처럼 헌신적인 사람으로.
잘 돼야 할 텐데. 일단 뭐 크게 상관없다. 의심하기 시작하면 나중에 에프터서비스를 해주면 되니까.
살려놨으니 얼마든지 손 볼 수 있다. 자. 이제…. 얼추 됐지?
"아무도 없어요!?"
그렇게 몇 번을 크게 소리친다. 그리고 무효화를 쓴 다음 이바노비치는 다시 재운다.
"으윽…."
"올가!? 괜찮아!?"
"드미트리…. 으으. 나는…."
"괜찮아!? 그저 기절을 당한 것뿐이야! 크게 이상은 없을 거야! 혹시 뭐 안 좋은 곳 있어?"
"아니…. 아. 그 남자는!?"
"죽었어! 아니. 내가 죽였어. 남은 경호원도. 근데 네 아버지가…."
아버지 소리를 듣자 퍼뜩 정신을 차리는 올가. 그러더니 허둥지둥 이바노비치에게 다가온다.
때마침 문이 열리고 사용인들이 들어왔다. 쓰러져있는 이바노비치와 그를 붙잡고 있는 우리를 보고 깜짝 놀라는 사람들.
재빨리 무효화를 썼다. 사용인 중에 버프가 있는 사람은 있으려나? 일단 각도를 최대한 틀긴 했는데…. 걸리진 않겠지.
걸렸으면 뭐, 나중에 기억 한 번씩 읽어보면 되겠지.
"으윽."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는 이바노비치. 그리고 그 뒤의 상황은 상당히 정신없었다.
소란스러운 사용인들. 정신을 차린 이바노비치. 올가의 걱정. 와글와글와글.
결국, 한참 뒤에 이바노비치가 나와 올가만 남겨두고 모두를 나가게 하자 좀 조용해졌다.
기억 조작 때문인가? 머리를 살짝 짚고 있는 중년의 남자.
하지만 실패는 아닌거 같다. 아마 그냥 혼란스러운 거겠지.
나는 별말 하지 않았지만, 올가가 알아서 핏맨과 경호원들의 계획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한다.
기억 조작으로 내가 의심스러운 것들을 잔뜩 집어넣었기에 그는 딸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자네. 드미트리라고 했나?"
"네. 의원님."
의원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나? 으. 이런 디테일이 조금 부족하네.
"자네가 나와 내 딸아이를 구했군."
무슨 드라마야? 실제로 들으니 진짜 웃기네. 진짜 저런 식으로 말하긴 하나 봐.
"아닙니다. 모든 건 따님의 공이 크지요. 저는 그저 그녀를 도왔을 뿐입니다."
이바노비치가 나를 보는 눈빛이 되게 듬직한 부하를 보는 모습이다.
아. 부담스럽네. 조작을 너무 했나? 이거 조금만 과했으면 사위 보듯이 봤겠네.
"올가가 말한 게 사실인가?"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 경호를 맡겼던 스멜리 코퍼레이션…. 그들의 실체를 알고 있으니까요."
"그들이 거친 놈들인 건 알지. 그렇지만 실력이 좋아서 쓰는 거고. 자네는 그런 그들과 원한이 있는 거 같은 표정이군?"
"그렇게…. 티가 납니까? 제가 허술한 건가요? 아니면 의원님의 안목이 예리하신 건가요?"
내 말에 이바노비치가 피식 웃는다.
"복수에 절어있는 눈빛이군. 게다가 자네의 이야기는 올가에게서 꽤 들었지. 하나밖에 없는 딸아이라 이 아이가 남자 이야기를 할 때마다 상당히 궁금하긴 했거든."
"올가 양의 아버지시라면 걱정하실 만 합니다."
은근슬쩍 아부를 섞어주니 이바노비치의 표정이 흐뭇해지는 게 보인다.
어쨌든 의도했던 대로 분위기가 흘러가니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야.
방금도 어떤 멍청한 놈이 방심했다가 골로 갔잖아?
이 상황을 잘 마무리 짓고 후속까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관건이다.
"스멜리 코퍼레이션. 그들이 무슨 문제가 있나?"
"그들은…. 선을 넘었습니다. 더는 충성심만으로 일하지 않아요. 개들을 야생에 너무 풀어놓아 버리면 원하지 않는 야생성이 되살아나는 법입니다. 그들은…. 고기 맛을 너무 들인 거 같습니다. 보통의 고기로는 만족 못 하는 녀석들이 되었죠."
"그건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걱정이었어. 그렇기에 그에 대한 대비는 되어있지."
"인질 정도로는 그들을 제어하기 힘들 겁니다. 그들이 인질을 구하지 못할 것 같은가요?"
"그들에 대해서 잘 아는군? 게다가 다른 것도?"
딸 가진 아버지의 표정에서 냉혹한 권력자의 눈으로 변한 이바노비치.
역시 저 자리를 동전 던지기로 얻은 건 아닌가 보다. 확실히 위압감은 있네.
역시 사람은 스킬이 전부가 아닌가 봐.
문제는 스킬이 모든 걸 다 무시할 수 있다는 거지만.
"최후의 판단은 역시 큰 시야를 가지신 의원님이 하시는 게 맞습니다. 저같이 복수에 눈이 먼 일개 학생은 어찌 됐든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내 말을 듣고 잠시 입을 다물고 나를 바라보는 이바노비치.
내가 그의 기억에 경호원 녀석들에 대한 부정적인 기억을 적게 넣은 편이 아니었으니 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손볼 거다.
똑같은 행위라도 호의를 가지고 있을 때와 악의를 가지고 있을 때의 평가가 달라지는 법이다.
이제 그는 스멜리 코퍼레이션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별거 아니었던 것들이라도 전부 거슬리고 신경 쓰이게 될 거야.
게다가 스멜리 코퍼레이션의 교관과 경호원 녀석들은 이미 저지른 짓들이 많다.
뒤져보면 실수나 과실 같은 게 없을 리가 없다.
그러니 결국은 놔둬도 알아서 잘라낼 것이다. 거기까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나중에 필요하면 기억 조작 몇 번 더 하면 될 거고.
"어쨌든…. 큰 은혜를 입었군.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도."
"아닙니다. 저는 의원님과 올가 양이 무사하신 것만으로도 충분한 보답을 얻었습니다."
내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나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이바노비치.
저자가 보는 나는 정말 더없이 충성스럽고 훌륭한 이 시대의 청년으로 생각되겠지.
내가 생각해도 웃기네.
"그런 거 말고. 내가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것 말일세. 자네의 복수라던가 그런 걸 도와줄 수도 있잖는가?"
"그렇다면…. 요청을 드릴 게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말해봐. 자네 말인데 설마 안 들어줄까?"
이바노비치의 말에 올가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런 부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웃었지만, 겉으로는 자못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괜찮으시다면 종종 찾아뵙고 안부 인사드려도 될까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여러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자주 들락날락하면서 한자리해보겠다는 야심 어린 말일 수도 있다.
아니면 올가에게 관심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두고두고 눈도장 찍으면서 복수를 도와달라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 말도 그에겐 맘에 들었나 보다.
기억 조작 때문에 좋게 보여서 맘에 든 건지 아니면 야망이 있어 보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흡족해하는 모습.
"물론이지. 마카로프 가문은 자네를 언제든지 환영하네."
이정도면 훌륭하지? 그럼 이제 슬슬 마무리해야지.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더 있습니다."
호기심 어린 이바노비치의 눈.
"말해보게."
"카밀라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얼마 전에 의원님께서 직접 걷어차셨던 여자죠."
생각이 났는지 약간 눈살을 찌푸리는 이바노비치.
그리고 올가 역시 갑자기 여자의 이름이 나오자 흠칫하는 반응이다.
"그녀는…. 저와 함께 복수하다가 당한 동료의 동생입니다. 본인은 그 오빠가 그런 일을 했다는 것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녀를 조금 돌봐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마음 같아서는 친구 때문이라도 제가 도와줘야 하는 게 맞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어서요."
내 말을 듣자 의아함이 더 커지는 듯한 이바노비치의 표정.
"그 여자는…. 막심을 죽인 여자 아닌가?"
"그 일은 제가 천천히 설명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막심 그자 역시 스멜리 코퍼레이션이랑 엮여있고 불손한 마음을 품고 있던 자입니다. 그리고 그는 제가 죽였습니다."
그래. 이것 때문에 기억 조작에 시간이 더 걸렸다.
내가 카밀라 그 여자에게 이정도 의리를 지켜야 할 필요는 없지만, 어쨌든 그녀에게도 공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
내 말을 들은 이바노비치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어쨌든 그 역시 막심을 곱게만 보고 있던 건 아니다. 그 부분은 기억 읽기로 봐서 알지.
다소 어설픈 부분들이 있긴 할 테지만, 그거야 두고두고 조작하면 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잖아? 어쨌든 이정도면 나도 할만큼은 했어. 남은 건 시간을 들이는 일뿐.
"알았어. 자네는 정말…. 관심이 많이 가는 친구로군."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더 하고 나는 그의 집을 나올 수 있었다.
흡족한듯한 이바노비치. 나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올가.
이정도면 성공적이다.
어차피 더는 여기 올 일이 없을 수도 있지만, 기왕 이렇게 된 거 여지를 남겨두는 건 나쁘지 않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