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90화 (4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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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맨

이바노비치가 어디 있는지는 핏맨만 알 거다.

그 말은 결국 핏맨을 제압해야 한다는 소리. 그리고 매혹으로 조종해서 게이트를 여는 수 밖에 없다.

아니면 이바노비치를 이쪽으로 오도록 하던가.

뭐가 됐든 쉽지 않은 일이다. 저 핏맨 저놈을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 없는데.

일단 지상에 내려가는 건 금물이다. 언제 무효화 당해서 제압될지 모르니까.

그렇다고 공중에 항상 떠 있어서는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딸을 녀석들의 시야에 노출하는 것도 무리. 딸을 노출하는 순간 나도 지킬게 생겨버린다.

멍청한 짓이지. 스스로 약점을 만드는 짓이야.

인질을 잡았지만,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인질극과는 다른 방식이 될 거다.

내 인질극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할 거야. 가만히 있을수록 초조해지는 건 저쪽이잖아?

딸을 납치당한 아버지가 제 풀에 지쳐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고 있는 거다.

이바노비치의 저택은 난리가 났다. 하늘에서 떨어진 덤프트럭과 차들 때문에 생긴 폭음.

그건 무슨 미사일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으니까.

경찰처럼 보이는 놈들과 군인처럼 보이는 놈들이 저택 주변으로 몰려오는 게 보였다.

근데 경찰이랑 군인이 있어? 세상이 망할 때 다 사라졌을 텐데? 아. 그 이후에 새로 뽑았나?

뭐, 그럴 수도 있겠다. 공백이 컸겠지만, 그만큼 지켜야 할 범위도 좁아졌을 테니까.

날아오는 헬리콥터와 다가오는 수많은 차량.

하지만 함부로 저택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아마 이바노비치가 직접 얼굴을 내밀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

그래. 내가 노리는 것도 그런 거다. 이바노비치는 언제까지고 숨어있을 수 없다는 것.

빈틈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핏맨 녀석도 과부하가 걸리겠지.

녀석이 얼마나 철인인지는 몰라도 24시간 365일 이바노비치의 곁에서 풀로 경호할 수는 없을 테니까.

장기전까지 생각해야지.

최후의 수단으로는 기억 조작을 배우고 그걸로 딸의 기억 조작을 한 다음 풀어줘 버리는 방법도 있다.

기억 조작이 내가 생각했던 그런 스킬이라면 방법은 얼마든지 생긴다.

하다못해 딸이 핏맨에게 몰래 강간당했다고 기억을 조작할 수 있어도 이바노비치 곁에서 녀석을 떼어놓는 건 일도 아니니까.

지금 기억 삭제는 고급 67퍼. 그리 많이 남지 않았잖아?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서 숙련한다고 해도 오늘 아니면 내일 마스터 찍을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지켜보자. 지켜보다가 더 좋은 방법이 없으면 미련 없이 기억 삭제를 마스터하러 가자.

그렇게 저택을 지켜본다.

경찰과 군인의 책임자인듯한 녀석이 저택 입구에서 이바노비치 녀석 곁에 붙어있던 경호원과 뭐라고 대화를 하는 모습.

단순한 경호원이 아닌가 보네. 비서나 대변인의 역할도 하나 보다.

하긴, 항상 옆에 붙어있었지. 차도 함께 탔고.

그렇게 대화를 한 이후 경찰과 군인은 그대로 물러났다. 생각보다 순순히 물러나네. 그만큼 이바노비치의 입김이 센 건가?

경호원은 대화를 마치고 핏맨에게 향했다. 뭐라고 대화를 하더니 핏맨이 게이트를 열어줬고, 둘 다 그리로 들어간다.

오. 기밀구역을 저렇게 쉽게 열어준다고? 저 경호원 녀석은 그만큼 믿을 수 있다는 건가?

그럼 이바노비치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저 경호원 녀석도 아는 거잖아? 흐음. 이거 굳이 일을 복잡하게 할 필요가 없겠는데?

일단 저녀석의 기억도 읽어봐야겠네. 의외로 단순하게 일이 끝날 수도 있겠어.

가만히 기다리며 이바노비치의 방을 계속 지켜본다.

핏맨 녀석의 저장 위치는 저 방이었으니까.

아. 차라리 저기 매복해있을까? 녀석도 게이트 나오는 곳에 내가 숨어있을 거라는 생각까진 못할 텐데.

아니다. 위험한 짓은 하지 말자. 안전하게 하자. 안전하게.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이바노비치의 방에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거기에서 나오는 핏맨과 경호원.

무덤덤한 표정의 핏맨이지만 경호원의 표정은 지친다는 표정이었다. 가서 신나게 닦달당하고 왔나 보지?

경호원은 핏맨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고 그런 경호원을 잠시 지켜본 핏맨은 그 자리에서 사라진다.

아. 왜 또 사라지는 거야. 찝찝하게.

확실히 녀석은 치밀한 놈이다. 모습을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한 이점을 잘 알고 있어.

저 경호원 녀석을 납치해서 기억을 읽고 싶어도 핏맨이 모습을 숨기고 있는 한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돌아가자. 똥줄이 타는 건 저놈들이지 내가 아니야.

안전한 방법으로 하자. 녀석들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일단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멀티 벙커로 향했다.

자물쇠와 방을 손본 다음 이곳을 저장하고 마피아 아지트가 있던 곳으로 순간 이동했다.

테이프에 묶인 채로 아직 잠들어있는 이바노비치의 딸. 올가.

그런 그녀를 안아 들고 게이트를 연 다음 멀티 벙커의 방안에 얌전히 입주시킨다.

크. 오랜만에 여기저기 꽉 차네. 만실이야.

테이프를 모두 제거해주고 문을 닫은 뒤 문단속을 한다.

이바노비치의 딸. 올가. 스킬은 꼴랑 투명화 하나밖에 없는 여자.

이해를 못 하겠어. 딸의 안전을 위해서 스킬을 잔뜩 배워놓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차마 딸에게 살인은 시키지 못한 거야?

굳이 직접 죽이지 않아도 코인을 전달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을 텐데. 모르겠다. 이놈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살짝 불안감이 들기도 했다. 의외로 이바노비치 그놈은 딸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

에이 설마. 그래도 딸인데. 그 정도는 아니겠지.

그냥 본인처럼 경호 받으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걸 거야. 정작 이바노비치 그 녀석 역시 스킬 자체는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하긴, 어느 정도는 스킬에 대한 반발감 같은 것도 있을 거다.

어차피 스킬이나 총이나 한 대 맞으면 죽는 것은 똑같으니까.

그렇게 올가를 두고 본진 벙커로 간다.

오늘하고 내일. 전력을 다해서 기억 삭제를 마스터 해야지.

올가라는 소재로 강력한 핏맨을 잡을 방법. 그걸 위해서.

본진 벙커에 도착하고 최신영의 상태를 슬쩍 살펴본다.

문에 난 창. 그 안에 있는 최신영. 알몸으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침대 위에 앉아있는 모습.

무릎을 세우고 끌어안고 있기에 그녀의 아래쪽이 환하게 보인다. 음. 자세 참 야하네.

근데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냐.

바로 무효화와 수면. 그렇게 신영을 재우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안정된 자세여서 그런지 잠이 들어도 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내가 톡 치니 그대로 침대에 쓰러지는 여자.

알몸을 훤히 드러내고 무방비 상태로 잠들어있는 모습. 음. 보기 좋네. 역시 이쁜 게 최고야.

세상이 망했어도 이쁜 것에 대한 가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남자라는 생물이 존재하는 한 미에 대한 가치는 변할 리가 없겠지. 그건 뭐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그렇게 잠든 신영의 가슴을 움켜잡고 기억을 지운다.

지난번에 반쯤 지웠으니 마저 지워야지. 숙련이 목적이니 거리낄 게 없다. 남김없이 싹싹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다.

내가 신영의 오빠를 죽였을 때의 기억과 마주친 건 밤늦은 시각이었다.

이제 이 기억만 지우면 신영은 그날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게 되는 것. 근데 내 숙련 상태가 조금 미묘하다.

고급 82퍼센트. 생각보다 많이 남았어.

하긴, 딱 맞춰서 숙련을 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했으니까. 이거야 뭐 아무나 잡고 지우면 되지.

신영의 기억에서 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지웠다. 이 여자 역시 이제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아니 나뿐이 아니다. 이 여자는 내가 그날 대호 그룹의 최씨 일가를 모두 죽인 그날 이후의 기억이 아예 없다.

그야말로 시간의 공백이 생긴 것. 그거야 뭐 내가 하기 나름이니 상관없고.

다시 수면을 리필해주고 이젠 수원으로 향한다.

고성연. 그 여자의 기억도 마저 정리해야지. 기억이란 눈뜨고 있으면 계속 생기는 거니까.

탐지를 킨 채로 수원으로 순간이동 하고 바로 기척부터 살핀다.

아까 내가 했던 생각. 게이트나 순간이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덮친다는 계획이 생각났다.

저장 위치는 조금 신중하게 정해야겠어. 매번 위치도 바꾸고.

생각난 김에 지금도 위치를 바꾼다.

성연은 자기 방에서 운동하고 있는 거 같으니 로비 안쪽 으슥한 곳으로 저장 위치를 바꿨다.

그리고 성연을 지켜본다. 매혹을 걸면 또 머리가 아프다고 할 수 있으니 함부로 매혹은 못 걸어.

운동을 마치고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드디어 끝났네. 운동 진짜 열심히 하는 거 같단 말이지.

물론 그게 체력을 올리려는 목적보다는 머리에 떠오르는 잡념을 태우려는 의도가 크긴 하겠지만, 그래도 대단해.

나도 운동 좀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하기 싫지?

투시가 있기에 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건 참 좋다.

남자라면 무조건 배워야 할 스킬은 투명화 따위가 아니야. 투시라고.

티어11씩이나 되는 스킬답다. 그 효과는 정말 그 어느 스킬보다 가장 훌륭하잖아?

저렇게 멋진 바디에 샤워기의 물이 쏟아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건 그 자체로 축복이다.

이건 그 누구도 반박 못 하지.

그렇게 내가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샤워를 마친 성연.

그녀가 욕실 밖으로 나와 화장대 앞에 앉더니 머리를 말린다.

거울이 내 쪽 벽에 붙어있어서 그런가? 거울을 보면서 머리를 말리는 그녀의 시선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다.

느낌이 묘하네. 신기한 기분이야.

적당히 머리를 다 말렸는지 매번 하던 대로 곱게 화장을 하기 시작한다.

여자의 얼굴이 화사하게 변하는 과정은 참 신비롭기까지 하다.

안 그래도 본바탕이 이쁜 여자가 자기에게 가장 어울리는 화장을 해서 더욱 이뻐지는 광경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야.

화장을 다 하고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 그녀는 다시 지우기 시작한다.

그렇게 화장을 지우는 게 다 끝나가자 나는 몸을 일으켜 방으로 다가갔다.

내가 문을 벌컥 열자 소스라치게 놀라는 여자. 그럴만하지. 그녀에게 나는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아무도 없는 거로 알고 있던 벙커다. 그런 곳에서 갑자기 누가 들어온다면 저렇게 놀랄만하지.

바로 무효화와 수면. 앞으로 쓰러지려는 그녀를 잡아주고 알몸의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

신영과 마찬가지로 가슴을 잡고 기억을 지우기 시작한다. 남은 18퍼센트. 딱 지울 수 있으면 좋겠는데.

신나게 기억을 지운다. 근데 아무래도 오늘은 힘들 거 같다. 아. 포션 멀미가 오네.

남은 건 5퍼센트 정도. 성연의 기억은 다 지웠다. 그 이전의 기억은 함부로 건드릴 수 없으니 이 여자도 이제는 그만 지워야겠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간다.

남은 숙련도는 고작 5퍼센트. 아. 오늘 마저 찍었으면 좋았을걸.

근데 뭐…. 오늘 찍으나 내일 찍으나 크게 차이는 없지. 차라리 빨리 자고 내일 상쾌하게 마스터 찍는 게 낫겠지.

바로 씻고 침대에 눕는다.

승희가 와서 고생했다고 안아준다. 아. 좋네. 수면…. 안 써도 될까?

근데 한참을 안고 있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으. 날마다 되는 건 아니네. 귀찮게.

결국은 나에게 수면을 걸었다.

수면을 나에게 걸 때마다 죽는 기분이 이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수면을 걸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는 거 아냐? 하는 쓸데없는 생각.

그리고 매번 일어날 때마다 피식하고 웃겠지.

역시 잠에서 깨고 말끔하게 사라진 포션 멀미를 느끼며 피식 웃고 활기찬 아침을 시작한다.

포션 멀미의 원리는 뭘까? 단지 잠을 자는 것만으로 사라지는 걸까?

이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굳이 잠을 안 자도 포션 멀미를 없앨 수 있을 텐데. 그럼 무제한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뜻이잖아?

모르겠다. 내가 머리가 조금 더 좋았으면 이런 연구부터 했을 텐데. 아쉽네.

어쨌든 바로 일어나 러시아로 향한다.

남은 기억 삭제 숙련도 5퍼센트. 그걸 채워야 하니까.

적당히 아무나 잡고 기억을 지워버리면 되니까 큰 고민은 없다. 오. 그래 저 여자다. 저 여자로 하자.

제법 좋아 보이는 집. 방 안에 혼자 있는 여자. 페이즈 아웃으로 침투해 해제하고 무효화와 수면으로 재운다.

무단으로 기억을 지우는 거니 서비스나 해줘야지.

여자의 기억에서 안 좋은 기억, 끔찍한 기억, 다시는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을 찾아봤다.

음. 어우. 좀 그렇네. 남자한테 맞는 기억이 나오냐. 바로 기억 삭제.

어우. 이건 또 뭐야. 왜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조롱당하는 건데. 이것도 삭제.

아. 이건 본인이 실수했건 기억인가? 삭제.

그렇게 마구잡이로 기억 삭제를 한다. 근데 생각해보니 내 딴에는 친절을 베푼 건데 이런 기억을 막 지우는 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다.

뭔가 심하게 고장 날 것 같기도 한데…. 사람 일이란 거 그렇잖아?

복수심을 가지고 그걸 위해서 살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근원이 되는 기억이 사라지면?

음…. 내가 괜한 짓을 한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뭐, 어쩌겠어. 이미 지웠는데. 게다가 내가 이 여자의 인생을 책임질 필요도 없고.

계속해서 지워갔다. 근데 궁금하긴 하네. 안 좋았던 기억을 모두 제거당한 사람은 성격이 변할까?

조금 더 긍정적이고 밝아질까? 모르겠네. 오히려 엉망진창이 될 거 같은데.

그렇게 잡생각을 하면서 기억 삭제를 썼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 삭제를 마스터했다.

크. 좋아 좋아. 힘들었다.

이제 돌아가자. 돌아가서 새로운 스킬을 확인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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