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89화 (489/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핏맨

"너. 어떻게 잡혀 왔는지 아냐?"

"네?"

"니가 어떻게 잡혀 온 지 아냐고."

"아…. 아뇨. 몰라요. 저들이 갑자기 들이닥쳤어요. 마치 제가 어디 있는지 뻔히 아는 것처럼."

"당연하지. 막심 그 녀석의 차에 발신기가 붙어있었으니까."

"네?"

놀라는 카밀라. 뭐, 그녀의 반응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감탄한 것은 녀석들의 관리 체계가 생각보다 촘촘하고 치밀하다는 것.

게다가 이바노비치에게 우호적인 막심이었다고 해도 그 역시 감시와 관리의 대상이었다는 것도 재밌다.

아니, 이해한다. 아군이라고 생각하는 놈들을 더 자세히 지켜보는 건 맞지.

적에 대한 대비는 언제나 하잖아? 대신 아군인 줄 알았던 자가 적이 되면 피해는 극심하다.

플러스였던 것이 마이너스가 되어버리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니까.

새끼들. KGB 같은 거 운영하던 놈들 아니랄까 봐…. 역시 프로야?

"한 번 더 기회가 생겼어. 그리고 이번엔 다시는 못 구해줄 거야. 그러니 잘 도망가봐. 막심 녀석의 집에 데려다줄 테니 다시 도망가보라고."

"아…."

저 여자의 동의 같은 건 필요 없다. 언제 내가 허락받고 뭘 꾸몄나?

게다가 지금은 저 여자를 보호해주고 자시고 그럴 여력이 없다.

게이트에 광역 스킬 무효화를 썼던 놈. 녀석의 정체를 알았으니까.

게이트를 열어 다시 막심의 집 근처로 왔다.

뭔가 말을 하고 싶은 게 있는 듯 주저하는 카밀라. 하지만 듣지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를 두고 그대로 날아올랐다.

"고마워요!"

아. 저 미친년. 왜 소리를 지르고 지랄이야. 다행히 주변에 사람은 없다.

조금 멀리에서는 기척이 느껴지지만, 저 정도 거리면 상관없겠지.

나를 향해 손을 흔드는 카밀라. 어휴. 존나 해맑네.

잡혀와서 폭행당하고 강간당한 여자가 뭐가 저리 해맑아? 이해할 수가 없네.

어쨌든 좋아. 이제 가보자고. 잔뜩 경계하고 있을 녀석들에게.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쓴 녀석. 녀석의 정체는 '핏맨'이라 부르는 교관급의 녀석.

경호원만 순환 근무를 하는 게 아니었다. 교관급도 순환 근무를 하면서 주요 인사의 일거수일투족을 경호하는 역할을 한다.

러시아의 모든 고위층이 다 그런 '서비스'를 받는 건 아닌거 같았다. 그만큼 이바노비치 이놈이 상당히 중요한 녀석이라는 것.

그 핏맨이라는 놈은 방금 나한테 죽은 경호원들이 알기로는 스킬이 열네 개였다. 다행히. 생각보다 그리 많지는 않다.

적어도 나보다 티어가 낮다면 내가 방심하지 않는 이상은 먼저 선공 당하진 않을테니 나만 조심하면 된다.

문제는 그놈은 사람 죽이는 데에는 전문가라는 것.

대학교 다니다 운 좋게 살아남아서 스킬을 잔뜩 얻고 뻐기고 있는 나와는 조금 다르다.

오래전부터 러시아의 용병대와 이런저런 군사작전을 모두 경험한 녀석. 스킬이 없어도 인간 병기라고 부를 수 있는 괴물.

조금 쫄리는 기분이 들지만…. 그래도 겁나거나 그러진 않는다.

아무리 인자강이라고 해도 수면에 걸리면 잘 테니까. 너도 한방 나도 한방인 세상에서는 나같이 패시브 많은 놈이 유리하지.

어쨌든 그건 내 희망 사항이고…. 녀석이 경호하는 위치는 이 경호원 놈들도 모른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다. 이놈들의 기억에서 핏맨은 그런 존재였다.

상당히 영악한 방법. 대놓고 공포심을 유발하는 것보다 어디 있는지 모를 때 공포는 더 커지잖아?

그러니 피곤하다. 피곤한 상대야. 근데 가장 큰 약점이 있지.

이바노비치.

경호할 대상이 있다는 것.

그 녀석 정도면 어디 가서도 상당히 꿀릴 거 없이 살 수 있을 텐데.

야쿠자의 왕 그놈보다 강한 놈이잖아? 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바노비치의 경호 같은 걸 하고 있을까?

모르겠다. 그건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거지.

어쨌든 나는 녀석의 약점을 집요하게 후비면 된다.

한번 보자고. 누가 더 악랄한지.

이바노비치의 저택. 아슬아슬하게 그곳을 탐지 범위에 넣은 나는 천리안과 투시로 저택을 주시한다.

경호원의 보고를 받은 이바노비치가 길길이 날뛰고 있는 모습이 훤히 보인다.

막심의 저택에 있던 놈들이 사라졌다는 소식이라도 들었나? 뭐, 그건 시작일 뿐이야. 벌써 그렇게 흥분하면 안 되지.

이바노비치를 계속 체크하며 주변을 살펴본다.

저택 전부가 탐지 범위에 들어있기에 투명화든 뭐든 그곳에 존재한다면 무조건 존재를 알 수 있다.

하지만 핏맨인듯한 녀석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 있지? 어디에 숨어있지?

여러가지 가능성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먼저 생각나는 것은 페이즈 아웃. 그건 어쩔 수 없지. 이바노비치의 바로 옆에 있다고 해도 내가 발견할 수 없어.

아니면 공중이나 먼 곳. 티어14에 패시브를 다 찍었다면 블링크 한 번으로 960미터를 갈 수 있잖아?

그러니 만약 녀석이 나처럼 천리안을 가지고 있다면 멀리에서 지켜보다가 언제든지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거다.

근데 둘 다 아니라고 생각된다.

녀석은 차 바로 밑에 깔아놓은 게이트에서 차가 빠지기도 전에 해제했다.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거나 블링크를 쓰고 무효화를 쓰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스킬을 한 개 쓰느냐 두 개 쓰느냐는 천지 차이니까.

아마도 녀석은 이바노비치 근처에 있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변신도 아니다. 변신 상태에서는 스킬을 못쓰지.

축소. 혹은 일반 경호원으로 변장. 그런 거 말고 또 있나?

축소면 골치 아프다. 이렇게 먼 거리에서 십 분의 일로 줄어든 기척은 찾기도 힘들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붙어있다면 더더욱 알 방법이 없다.

생각해보면 참 좋은 스킬이란 말이지. 기동력이 확보된다면 그보다 좋은 스킬은 없다.

어디든 침투할 수 있고 당당하게 탐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이 좋아.

게다가 타겟 되는 면적까지 줄어든다는 건 상당히 매력적이잖아? 방출형 스킬을 피하는 데도 유리하고.

기억 조작까지 배우면 배워봐야겠어. 사생활 침해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다른 경호원으로 변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 경호원 말고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장할 수도 있고.

그렇기에 아까 이바노비치와 같이 탔던 경호원과 운전기사, 그리고 뒤따라왔던 여섯. 그들 모두를 의심하고 지켜봤다.

그들의 위치는 계속해서 확인해두고 틈틈이 지켜본다.

의심 가는 행동을 하는지, 뭔가 특별한 건 없는지.

경호원 여섯 중 넷은 주변을 순찰하고 있고 둘은 쉬고 있다.

으음. 3교대 같은 건가? 아무래도 그런 거 같지?

차에 같이 탄 경호원 녀석은 이바노비치의 방안에서 항상 같이 있다.

나가더라고 하더라도 문 앞에서 대기하거나 바로 옆방에서 머문다.

운전기사 녀석은 차를 세차하고 있고.

으음. 미묘하네. 어떻게 보면 전부 다 의심스럽고, 어떻게 보면 다 아닌거 같기도 하고.

어쨌든 됐어. 이제 손을 써보자.

약점인 이바노비치. 그리고 그의 약점인 딸.

적어도 딸은 소중하게 여기겠지. 그러니 저렇게 꼭꼭 싸매고 있는 거잖아?

아까도 딸이 밖으로 나갈 준비를 하려다가 이바노비치에게 저지당하고 잔뜩 화를 냈다.

졸지에 외출하지 못하게 된 딸은 잔뜩 심통을 부렸고, 이바노비치는 그런 딸에게 쩔쩔맸다.

존나 가부장적으로 생긴 녀석인데 제 딸에게는 저렇게 어찌할 줄을 몰라 하네. 녀석도 아버지라 이건가.

어쨌든 나에겐 좋다. 핏맨 녀석이 아무리 유능하다고 해도 혼자인 이상 경호대상을 전부 마크하진 못하겠지.

자 이제 출발…. 하기 전에 준비물을 챙긴다.

근처에 보이는 조금 멋지게 생긴 스포츠카. 일단 이건 내가 압수. 수납으로 삼켰다.

그리고 이번엔 조금 더 큰 SUV. 역시 수납에 집어넣었다.

이제 가보자. 작업하러.

저택 위. 한참 높은 곳. 저택이 조그마하게 보일 정도로 높게 올라온 나는 벌벌 떨면서 수납을 열었다.

내가 떨어뜨리려는 것은 아까 넣어놨던 덤프트럭. 거대한 수납의 문에서 덤프트럭이 나오는 모습은 상당히 박력 있다.

그렇게 트럭이 완전히 수납을 벗어나자 나는 더 위로 블링크 했다.

이번엔 SUV와 스포츠카.

내가 비록 메테오는 쓰지 못해도 미니미니 하게 비슷한 건 할 수 있거든.

그렇게 차 세 대를 떨어뜨리고 블링크를 연속으로 해서 지상으로 내려갔다.

아. 씨발. 춥네. 역시 하늘 위는 추워.

그렇게 지상으로 내려온 나는 곧 떨어질 덤프트럭 스트라이크를 기다린다.

휘유우우우우

오. 보인다. 그러니까 저게 떨어져서 여기 꼬라박는다는 거지?

저게 어느 정도 위력을 낼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저택에서 조금 빗겨서 떨어뜨렸으니 뭐…. 저걸 맞고 죽지는 않겠지?

죽으면? 어쩔 수 없고. 그게 지들의 운명인 거겠지.

점점 커지는 덤프트럭. 그리고 그 뒤에 점으로 보이는 SUV와 스포츠카.

하늘로 떠올라 돌입 준비를 한다. 이제 슬슬 다 와 가네. 과연 위력은?

콰아아아아아아앙

오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위력이 강하다.

저택을 벗어나 옆의 정원 같은 곳에 떨어진 덤프트럭. 그 충격에 저택의 창문이 모조리 깨졌다.

좋아. 그럼 나는 간다.

바로 블링크. 딸의 방은 이미 한번 다녀와서 알고 있다. 바로 페이즈 아웃으로 벽을 넘고 달린다.

소리가 들리지 않기에 조용한 세상을 뛰어가 딸의 방에 도착했다.

고개를 숙인 채 귀를 막고 있는 딸.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바로 무효화와 수면을 날렸다.

콰아아앙

SUV인지 스포츠카인지는 몰라도 또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비행을 쓰면서 바로 잠든 딸을 붙잡고 그 밑에 게이트를 열었다. 그대로 들어간 뒤 바로 게이트를 닫는다.

후후. 성공. 납치 완료.

마피아 아지트가 있던 곳으로 온 나는 아까 카밀라가 씻고 나왔던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비어있는 방으로 들어간 다음 딸이 입고 있는 옷을 전부 벗겼다.

옷뿐만 아니라 반지, 액세서리, 머리핀…. 암튼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은 전부 떼어냈다.

그리고 우한 게이트를 열어서 거기다 집어 던졌다. 이러면 혹시 모를 위치 추적기 같은 건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졸지에 알몸의 여자와 함께 있게 됐네. 음. 나쁘지 않은데?

처음에 이바노비치의 정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쁘장한 여자다.

그런 여자를 벗겨놨으니 눈이 즐겁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냐. 일단은 팔과 다리를 테이프 질 한다. 입까지.

기억은 이미 어제 읽었지만, 그때는 핏맨에 대한걸 모를 때였다.

이 여자는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혹시나 하고 한번 읽어본다. 음. 별로 아는 게 없네.

됐어. 크게 기대도 안 했어. 적당히 덮을 거로 여자를 덮어놓고 다시 순간이동 한다.

자. 이제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대놓고 공격을 했는데 말이지. 게다가 딸이 없어진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바노비치의 집은 난리가 났다.

안에 있던 이들이 제법 있었기에 다들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 그들 사이에서 이바노비치를 찾아본다. 근데…. 안보인다. 어디 갔지?

어디 방공호 같은 피난처라도 있나? 하지만 지하나 그 어디를 살펴봐도 사람의 기척은 없다.

그가 있던 방은 전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는데. 어디로 간 거지? 아 씨발. 딸을 납치하면서 좀 봐둘 걸 그랬나?

근데 그런 방안에 어떤 남자가 뿅하고 나타났다.

그걸 보고 나는 바로 알 수 있었다. 아. 순간이동이구나.

그래. 그러면 이해 가지. 순간이동이 있으면 게이트도 있겠지. 그래. 그러니까 그렇게 재빠르게 무효화를 걸 수 있었구나.

남자는 운전기사였다. 그래. 저놈이 핏맨이었어.

게이트를 알고 있는 데다가 자기가 운전대를 잡고 있었으니 그렇게 재빨리 반응할 수 있었던 거야.

좋아. 핏맨의 정체는 알았다. 근데 이바노비치는? 내 목표는 니놈이 아니라고.

방으로 돌아온 핏맨은 밖으로 나오더니 주변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경호원들은 그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것 같지만, 이바노비치의 차에 탔던 그 경호원, 그놈은 아는 거 같다.

그 경호원이 핏맨에게 와서 뭐라고 보고하는 듯한 모습이 보였으니까.

녀석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지만, 보고를 받자마자 바로 딸의 방으로 갔다.

그리고 비어있는 방을 보면서 잠시 우두커니 서 있더니 관자놀이를 꾹꾹 누른다.

오…. 빡치나보다. 그래. 거지 같겠지. 눈앞이 캄캄할 거다.

그러더니 녀석은 갑자기 사라졌다. 음. 순간이동 했나 보네. 이바노비치에게 보고하러 갔나?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는 이상 나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 딸을 미끼로 녀석들을 어떻게 협박할지에 대해서 생각이나 해야지.

어쨌든 이쪽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녀석들.

머리 좀 아플 거다. 짜식들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