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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스타르체바 저택을 나와 하늘로 솟아오른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저택은 확실히 웅장만 맛이 있었다. 정말 크긴 크네.
폐허가 된 게 조금 아쉽다. 저런 저택에서 살면 좋긴 할 텐데.
아니다. 관리하기 힘들겠지. 저 넓은 집을 대체 누가 다 쓸고 닦아? 무리야 무리.
아까 읽었던 기억에 따르면 마피아 놈들은 비정기적으로 순찰을 돌았다.
의외인 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마피아에 대해서 그렇게 혐오감을 표출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다.
오히려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느낌? 적당히 식량을 주고 그걸로 평화를 얻을 수 있다면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하는 녀석들.
그래. 식량 뜯어가는 게 혹독하지만 않다면 나쁜 삶은 아닐 거다.
펜스나 캐슬이랑 크게 다를 게 없잖아? 뭐…. 세상이 망하기 전에 국가라는 개념도 이런 거랑 마찬가지였고.
자신의 안전을 누가 어떻게 챙겨주느냐의 차이다.
얼마나 싸고 공평하고 안전하게 지켜주느냐의 문제지.
게다가 마피아는 지켜주는 존재가 아니다.
뭔가 뉘앙스가 조금 다르다. 어…. 정확하게 말하면 억제기라고 볼 수 있다.
마피아 놈들은 경찰이 아니잖아? 일어날 사고를 예방해주는 사람들이 아니야.
자신들에게 보호를 요청한 이들, 그들이 무슨 일이 나면 가서 복수해주는 징벌자 같은 개념이다.
그게 무서워서 그들의 보호를 받는 이들을 막 건드릴 수 없는 그런 존재들.
그렇기에 마피아의 순찰은 과시성이 짙었다.
녀석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 요란하고 화려하게 다니는 놈들.
그러니 녀석들을 찾기는 어렵지 않을 거다. 문제는 범위가 너무 넓다는 거지.
이 동네만 다니는 건 아닐 테니까.
한 놈. 딱 한 놈만 찾으면 되는데. 그럼 줄줄이 기억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니 한 놈만 찾으면 되는데…. 어디 가서 찾나.
일단은 도심 쪽으로 가본다.
식량을 일반인들에게 징발하고 있으니 굳이 외곽에서 살 필요가 없겠지?
게다가 녀석들도 가오는 드럽게 잡는 놈들이잖아? 찌질하고 구차하게 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제일 화려하고 그럴듯한 곳을 찾으면 될 거다. 아마도 거기에 녀석들이 있겠지.
이스트라 시내에 도착해서 탐지를 돌리며 도시를 탐색한다.
조용한 도시. 인기척은 없다. 으음. 너무 조용하네. 예상 밖이야.
뭐, 이제 막 찾아 나서기 시작했으니 조금 더 찾아봐야지. 조급해할 필요는 없어.
그렇게 한참을 돌다가 천리안에 뭔가가 잡혔다. 움직이는 차 한 대. 오오. 사람이야. 드디어 사람을 발견했어.
차 안에 타고 있는 남자 하나. 이야…. 혼자라니. 고맙게.
바로 차를 따라간다.
운전하고 있는 녀석을 아무 피해 없이 세워서 멈춘 다음 기억을 읽고 기억 삭제로 아무 일 없었던 거로 만드는 건 어렵다.
그냥 따라가서 내릴 때를 기다리는 게 낫지.
차는 한참을 달리더니 한 건물로 들어갔다. 기척이 세 개 더 느껴지는 곳.
자동차 정비소라고 되어있는 곳이다. 간판이 그렇네. 생긴것도 그렇고.
그렇게 차를 주차한 남자는 안에 들어가더니 한 남자와 다시 나와 차를 둘러본다.
신기하네. 자동차 정비공이라는 직업이 유지가 되는구나.
하긴 아무리 스킬이 일상 대부분을 대체했어도 저런 자동차 수리 같은 건 스킬로 불가능하지.
근데 차를 정비할 필요가 있나? 그냥 필요하면 멀쩡한 차를 하나 새로 찾는 게 빠르지 않아?
아. 내가 너무 내 편의적으로 생각했네. 자신의 차에 애착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구나.
저 남자 역시 그런 부류인가보다. 뭐라고 뭐라고 대화하더니 정비소에서 나온 남자가 차를 타고 몰더니 정비소 안쪽으로 입고시킨다.
으음. 시간이 조금 걸리려나? 차라리 이 정비소를 먼저 발견했었으면 좋았을걸.
차를 몰고 온 남자는 정비공 남자 옆에서 알짱거리며 뭔가 계속 대화를 하고 있다.
천리안과 투시는 다 좋은데 소리를 못 들어서 문제야.
도청 같은 스킬은 왜 없지? 있을법한 데 없네.
독순술을 배우고 싶어도 생각해보면 외국인에게 그게 통하지는 않을 것 같다.
통역은 말이 통역되는 거지 입 모양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
어쨌든 내가 저 둘을 기다려줄 필요는 없다. 저 두 놈은 놔두고 정비소에 있던 다른 두 명을 먼저 확인해보면 되잖아?
다른 두 명의 기척 쪽을 살펴본다. 정비공의 부인인 듯한 나이 있는 여자, 그리고 좀 젊은 남자 하나.
아들인가? 어쨌든 젊은 남자 역시 정비공인가보다. 기름때가 묻어있는 작업복을 입고 있다.
수요가 제법 있나? 신기하네. 정비공이 둘이나 필요할 일이 있어?
나이 있는 여자와 이야기 하는 젊은 남자. 기억을 읽어야 하는데 틈이 안나네.
그냥 무시하고 가서 읽을까? 그래. 내가 이들의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지. 안 죽이는 게 어디야.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인정을 베풀고 있는 거라고.
마침 아들이 엄마랑 이야기를 끝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좋아. 타이밍도 좋네.
2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는 남자. 그리고 주방 쪽으로 움직이는 여자.
누구부터 할까? 아무래도 젊은 남자 놈이 아는 게 많겠지?
블링크와 페이즈 아웃을 써서 먼저 방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녀석이 방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페이즈 아웃을 풀고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바닥에 쓰러지는 녀석.
이크. 소리가 조금 컸는데. 밑에서 들렸으려나?
잠깐 멈춰서 탐지를 키고 아래쪽에 귀를 기울인다. 음. 별 반응은 없네.
바로 기억 읽기. 키워드는 마피아.
알고 있는 게 꽤 있다. 의외네. 뜻밖의 수확이야.
기억 읽기를 마치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써서 방을 나섰다.
자기가 왜 넘어졌는지 제대로 이해 못 하는 녀석. 하지만 관심 없다. 이제 이 정비소에 있는 녀석들은 관심 없어.
남자의 기억에서 알아낸 정보. 남자는 마피아 녀석들의 아지트 같은 곳에 가본 적이 있다.
수리를 맡긴 차를 가져다주러 갔던 기억이 있었다. 운이 좋네. 일이 술술 풀리는 느낌이야.
아지트는 여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차를 가져다주고 걸어서 돌아올 수 있을 정도였으니까.
거리가 멀었으면 기억을 봤어도 찾아가기 힘들었을 텐데. 정말 다행이네.
바로 하늘로 올라가 남자가 갔었던 곳을 가늠해본다.
음. 그러니까 저쪽인 거 같은데. 가보자. 가면 뭐라도 기척이 있겠지.
마피아 녀석들의 아지트는 강가에 있는 고급 주택단지였다.
으음. 이쪽은 그렇게 중심지 쪽은 아닌데. 뭐하러 이쪽으로 온 거지? 신기하네.
그렇게 주택단지로 가니 바로 기척이 느껴졌다. 천리안으로 살펴보니 딱 봐도 마피아스러운 놈이다.
빡빡 깎은 머리, 목에 있는 커다란 문신. 저건 거미인가? 거미 문신이야?
근데 정말 놀라운 건 녀석이 데님 소재의 멜빵 작업복을 입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녀석이 밭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도.
얼래? 뭐야? 식량은 징발하는 거 아니었어? 왜 농사를 짓고 있는 거야?
얻어오는 거로는 부족한가? 신기하네. 왜 저러고 있는 거지?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식물이다? 이거 밀 같은 게 아니네. 이건 설마….
어차피 혼자 있는 녀석. 바로 가서 무효화와 수면을 먹였다.
풀썩 쓰러지는 녀석. 주변에 기척이 있지만 조금 거리가 있다. 바로 붙어서 빠르게 기억을 읽었다.
키워드는 대마. 그리고…. 역시 내 생각이 맞았다.
캬. 이놈들. 대마를 키우고 있네. 이렇게 당당하게.
하긴, 누가 이걸 막겠어. 뭐라고 할 사람도, 제재할 사람도 없는데.
이놈의 정체는 마피아가 맞았다. 그리고 망해버린 세상에선 마피아가 대마 농사를 짓고 있었다.
결국엔 마약이구나. 그래. 뒷감당을 전혀 할 필요가 없는데 안 하는 것도 웃기지.
뒷감당이 어마어마했을 때도 했었을 놈들이잖아? 지금 세상은 천국이겠지. 그러니 이렇게 직접 농사도 짓는 거고.
그래도 이 새끼들은 다른 마약 안 하고 대마를 피네. 자연 친화적인 새끼들이야.
그 뭐지? 매스 암…. 암…. 암페타민? 뭐 암튼 그런 거나 여러 가지 마약이 있을 텐데.
이게 구하기 가장 편해서 그런가? 뭐 그것까진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고.
어쨌든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마피아인 걸 확인했으니 정보수집을 본격적으로 해야지.
다시 기억을 읽었다. 이번 키워드는 이고르.
떠오르는 기억이 없다. 그럼 다음 키워드는 마피아.
어우. 너무 많네. 다 읽을 시간은 없는데.
어쨌든 빠르게 훑어본다. 여기가 아지트가 맞는지만 확인하면 되잖아.
어차피 저 앞에 있는 기척들도 다 이놈 일행이겠지? 그럼 농사나 짓고 있는 말단 놈은 필요 없지.
조금 더 높아 보이는 녀석을 찾아보자.
바로 쫄따구 녀석을 찍어 죽였다. 코인은 소소하게 만이천 정도.
만이천이라니. 착하게 살았나 보네. 소박한 녀석이야.
바로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갔다.
고급 주택들. 거기에 뿔뿔이 흩어져있는 녀석들.
주택단지의 정원이었던 곳은 이미 다 대마밭이 되어있었다. 거주와 기호품을 둘 다 잡은 합리적인 생활공간.
이야. 멋지다. 멋져. 그렇게 마약이 좋을까?
어차피 다 죽여도 되는 놈들. 외곽부터 하나하나 잡아먹기 시작했다.
과연 언제쯤 눈치를 챌까?
하나하나 기억을 읽고 잡아 죽이면서 쌓이는 지식이 늘었다.
여러명의 정보가 섞여서 조금 정신 없긴 하지만 오히려 파악하는 데는 편하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으로 회상이 가능 하니까.
이놈들이 마지막으로 격렬한 전투다운 일을 한 건 반년 전이다.
그 이후로는 평화롭게 겨울을 나고 이제야 슬금슬금 대마 농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놈들.
그래서 그런지 스킬은 많아야 네다섯 개 수준이었다.
한심한 놈들. 고작 그정도로 이렇게 느긋하게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단 말야?
웃긴 건 성장 스킬과 질병 해제 스킬을 가지고 있는 놈들이 많았다.
이야. 이놈들 진짜 대마 재배에 본격적이네. 진심이 느껴질 정도야.
하긴, 스킬 한두 개로 평생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생기는 셈이니 식량만 충족되고 적만 없다면 이놈들의 선택은 나쁘지 않았을 거다.
게다가 그 오락거리가 기분을 뿅가게 만들어주고 후유증도 없다면 투자할 만하지.
근데 너무 안일했어. 아무리 그래도 외부에서 적이 올 거라는 생각은 안 하는 거야? 진짜 느긋한 새끼들이네.
지들이 마피아면 뭐하냐고.
그게 무서운지 모르는 나 같은 놈에겐 그저 스킬 몇 개 없는 좆밥으로 밖에 보이질 않는걸.
복수? 보복? 니들이 뭘 어떻게 할 건데? 내가 누군지 알고 복수나 보복을 한 다는 거야?
하여간 다들 세상을 너무 편하게 살려고 한다. 나는 절대 이해하지 못할 감성이야.
다들 달리는 호랑이 위에 타고 있다는 것을 까먹나 보다. 움켜잡고 있는 등을 놓치면 그대로 떨어져서 잡아먹히는 건데.
진짜 이해할 수 없어. 어휴. 멍청한 놈들.
외곽부터 하나씩 쳐 죽였지만, 막상 얻는 정보는 그다지 영양가가 없다.
중요한 놈일수록 안쪽에 있는 건가?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놈들이 전부 다 이고르 그놈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아직 서른 명 정도는 더 남아있는 상황. 이제 슬슬 몇 놈은 잡아서 제대로 기억을 읽어봐야겠다.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 읽기만 해선 뭐 나올 게 없을 것 같다.
근데 이놈들 되게 둔하네. 사람을 벌써 스물 이상 잡아 죽였는데도 아직 눈치를 못 채는 거야?
존나 빠졌네. 새끼들. 하여간 평화에 찌든 놈들은 이게 문제라니까. 언제라도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긴장하고 살아야지.
마피아라고 해서 상당히 걱정했는데, 정말 이놈들은 조폭이랑 크게 다를 게 없어보인다.
하는 짓이 마트에 있었던 영철이파랑 크게 다를 게 없어. 아. 그래도 영철이 그 새끼는 대마 농사는 안 했지만.
한 놈은 죽이고 한 놈은 테이프 질 하는 것을 반복했다. 크게 어려울 것이 없는 작업.
단순한 노가다같은 느낌이다. 게임 같은 거에서 하는 '뿔난 버섯 30마리 처지' 이런 거랑 크게 다를 게 없다.
위험도 없고 어려움도 없다. 가진 스킬을 사용해서 몹을 하나하나 잡는 귀찮은 작업.
이제 남은 녀석들은 세 군데 집 안에 있는 열 명 정도.
특이한 건 이놈들의 거주지 여기에는 여자가 없었다.
뭐지? 보통 이런 놈들은 여자들 잡아놓고 낭낭하게 강간하는 게 일상 아닌가?
왜 여자가 없지? 신기하네.
일단 집 한 채. 네 명의 남자가 테이블에서 카드를 하고 있었다.
한 손에는 담배 든 손으로 보드카를 쥐고 다른 한 손엔 카드 패를 쥐고 있는 녀석들.
캬. 팔자 좋네. 어떤 놈들은 밖에서 농사짓고 있는데 이놈들은 팔자 좋게 카드놀이나 하고 있어.
기세 좋게 베팅하는 한 녀석. 근데 녀석은 트리플이다. 이야. 트리플이면 애매한데. 저렇게 베팅을 한다고?
새끼. 블러핑 쩌네. 어디. 궁굼한데? 다른 놈들은 무슨 패를 가졌으려나.
빙 돌아서 다른 녀석들의 패를 살펴본다. 한 놈은 A 원 페어. 막 베팅을 포기하고 다이하는 모습.
다른 놈은? 오. 똥패네. 하트 한 장만 더 들어왔어도 플러시인데. 하지만 손에 든 패는 메이드 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살짝 고민하는 듯한 모습. 아마 바닥에 하트 석 장이 깔려있으니 고민하는 거겠지?
새끼. 그럴 거면 바로 블러핑을 했어야지. 고민하는 모습이 너무 어설프잖아.
역시 다이하는 녀석. 바로 다음 녀석이 웃으면서 콜을 하더니 자신의 패를 내려놓는다.
오. 풀 하우스. 제대로 짓밟혔네. 트리플 들고 있던 녀석이 아쉽다는 듯 패를 던진다.
웃으면서 칩을 가져가는 남자. 겔겔거리면서 웃는 머리 벗겨진 갈색 수염 녀석.
그리고 녀석들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다. 내가 난입했으니까.
카드놀이 하던 그대로 탁자에 얼굴을 처박는 넷. 들고 있던 보드카 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조각난다.
쯧. 불쌍한 놈들. 그래도 신나게 놀다 죽게 되었으니 여한은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