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69화 (46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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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까야

기분 좋게 아침을 시작해서 그런가 오늘은 비행이 그나마 덜 지루하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네. 날마다 이렇게 온기 충전을 하고 오는 게 나으려나?

어차피 가만히 떠서 움직이는 거니 몸이 힘들거나 하진 않잖아.

그래. 좋은 생각이야. 아침마다 해피타임을 보내고 오자고. 불끈불끈 할 때 말야.

그렇게 다시 시작한 비행. 아래에 보이는 풍경들도 조금 바뀌었다.

지루한 대자연만 보다가 슬슬 사람 사는 구역으로 넘어온 거 같다.

일단 도시들 같은 게 많아졌다. 그 전까지는 사람 없는 깡촌 마을만 나오다가 이제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보인다.

탐지에도 기척이 꽤 잡히기에 이래저래 자극이 된다. 근데 놀랍네. 생각보다 사람이 많아.

비행 속도를 줄이지 않으며 천리안과 투시로 아래를 살펴본다.

술 취한 중년 남자.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는 노파. 움직이는 게 신기한 고물 같은 차. 그 안에 타고 있는 수염 난 남자.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이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이는 도시의 풍경.

다소 의외다. 아무렇지 않게 살아간다고? 몽골도 그러더니 러시아도 그러나?

5년간 복마전 같은 세상을 살아온 나로서는 밑의 저런 분위기를 이해할 수 없다.

대체 왜 이들은 서로 싸우지 않지? 왜 서로 죽이지 않는 거야?

이놈들이 인류애가 넘쳐서 서로 잡아 죽이지 않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내려가서 기억 읽기로 한번 훑어볼까 했는데 마땅한 타겟이 없다.

젊은 여자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근데 있다고 해도 쉽지 않을 거다.

기억 읽기는 특정한 키워드에 대한 기억을 보여주는 거지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게 아니다.

키워드를 잘 쓰면 읽을 수 있을까? 아. 내가 멍청했네. 왜 기억 읽기를 할 생각을 하고 있냐? 더 편한 방법이 있는데.

매혹을 걸고 물어보면 되잖아? 하여간 생각이 점점 굳어지는 거 같네. 좀 더 유연하게 머리를 굴려야지.

좋아. 방법은 찾았으니 타겟만 찾으면 되겠네. 그나마 쓸만한 젊은 여자를 찾아보자. 매혹해도 거부감이 없는 여자로.

그렇게 천리안과 투시를 쓴 눈으로 주변을 계속 살펴본다.

탐지로 잡히는 기척을 하나하나 확인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대부분 마땅한 타겟이 아니라는 거다.

의외로 젊은 놈들이 없네. 다들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

이놈들도 고령화 사회인가? 이렇게 젊은 놈들이 없다고? 뭔가 이유가 있을 거 같은데.

한참을 둘러보다가 드디어 타겟을 찾았다.

성냥갑처럼 생긴 아파트. 거기에 있는 한 커플. 커플…. 맞지?

신나게 섹스하고 있는 한 남자와 여자. 커플이 맞나 의심되는 이유는 여자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어서다.

뭐지? 강간당하나?

근데 조금 더 지켜보니 강간은 아닌거 같다. 그냥 조금 하드하게 당하는 느낌?

보기에 조금 눈살이 찌푸려지긴 하는데 여자가 반항하거나 하진 않는다.

자세히 보니 즐기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겠다. 존나 혼란하네.

잠시 멈춰서 저 아파트에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해본다.

아까 양쯔강에 승희와 세아의 물고기 테이밍을 돌리고 와서 페이즈 아웃을 쓰기는 싫다. 파티가 풀리잖아. 번거롭다고.

근데 생각해보니 페이즈 아웃을 안 쓰고 저길 침투하는 게 더 번거로워 보인다.

귀찮아도 그냥 페이즈 아웃 쓰는 게 낫겠네. 그게 더 깔끔하지.

아파트 옥상에서 페이즈 아웃. 목표로 하는 층으로 두 개 층을 바닥을 뚫고 내려간다.

천리안과 투시로 봤던 하드한 섹스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

여자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거칠게 당기며 보지에 딜도를 쑤시는 동시에 애널에 박아대고 있는 남자.

으음…. 역시 서양 포르노는 내 취향이 아니야. 나는 좀 더 일본 스타일의 차분한 야동이 좋아.

구석진 곳에서 페이즈 아웃을 풀고 바로 반사와 비행, 투명화를 건다.

그리고 무효화. 수면과 매혹. 남자 놈이 쓰러지면서 여자의 애널에 박고 있던 자지가 흉물스럽게 뽑힌다.

어우. 씨발 새끼. 크기는 존나 크네.

투명화를 풀자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 여자.

씨발. 거 밑에 꼽혀있는 딜도나 뽑고 웃어라. 어휴.

분명 알몸이긴 하지만 내 거시기는 미동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완전 내 스타일이 아니니까.

일단 생김새부터 영 아니다. 분명 못생긴 편은 아니야. 아니 이쁜 편이라고 봐야지.

근데 뭐랄까. 서구적인 얼굴이야. 아. 이거 정말 표현을 못 하겠네. 그냥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밖에 할 말이 없어.

게다가 문신. 팔뚝과 옆구리, 허벅지에 있는 이런저런 문신들.

꼬무룩하게 하는 요소가 잔뜩 들어있는 여자.

벗고 있는 괜찮은 몸매의 여자가 나를 보면서 성적인 추파를 잔뜩 보내고 있지만…. 싫다. 싫어. 절대 하고 싶지 않아.

"옷부터 좀 입어라."

내 말에 여자는 부랴부랴 옷을 입기 시작한다.

팔짱을 낀 채 옷을 입고 있는 여자를 지켜본다. 오히려 옷을 다 입으니 그나마 보기 좋아졌다.

솔직히 아까는 좀 그랬어. 지금도 물론 그런 기색이 없지는 않지만.

"여기 동네 이름은 뭐냐?"

"여긴 아바칸이야."

"아바칸?"

스마트 폰을 꺼내 지도를 켜서 살펴본다. 아바칸…. 지도에서 지명검색을 해보니 위치가 뜬다.

이런 기능은 남아있어서 좋네. 뭐, 이런 건 인터넷이 없어도 가능하니까.

아. 여기네. 음. 어느 정도 경로는 맞게 오고 있네. 아주 조금 틀어지긴 했지만, 이정도야 뭐 문제없고.

"여기 사람들은 왜 서로 죽고 죽이질 않지?"

"응?"

"못 알아듣나? 통역 되는 거 아냐? 너희는 왜 서로 안 죽이냐고. 코인을 얻기 위해 서로 죽이는 짓을 안 하냐고."

"아하. 그거 말하는 거야? 그러던 놈들은 다 자기들끼리 싸우다 죽었어. 지금 남은 사람들은 싸우기 싫은 사람들."

대화는 통하는 거 같은데 뭔가 조금 어색하다.

뭐지? 이상하네. 분명 안나하고는 대화가 잘 됐는데.

게다가 일본에서도 잘 통했잖아? 하루카 하고도 대화가 잘 됐다고.

그리고…. 얘는 왜 반말이지? 그것도 웃기네. 아. 얘들은 존댓말의 개념이 없나?

아닌데? 분명 안나랑 대화할 때는 존댓말로 통역이 됐는데?

음. 모르겠다. 이건 나중에 안나에게 물어보도록 하고.

"싸우다 죽었다고? 분명 남은 놈들이 있을 텐데? 그런 놈들이 전부 다 서로 싸우다가 한 번에 꽥하고 뒤지진 않을 거 아냐? 이긴 놈이나 살아남은 놈이 있겠지."

"있긴 있었지. 그런 놈들은 다 마피아에게 죽었고."

"아아…."

이해했다. 마피아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모든 게 이해됐어.

그러네. 이놈들은 애초에 먹이사슬 최상위에 있는 놈들이 있었구나.

마피아라는 것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지만 안나의 기억에서 읽었던 것들과 그나마 평소에 알고 있던 것들을 조합해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마피아. 그 제대로 정의할 수 없는 녀석들의 존재에 대해서.

"그래. 그럼…. 그놈들은 어딨는데?"

"마피아? 없어. 여기엔 없지. 이런 촌 동네에서 뭐 볼 게 있다고 여기 남아 있겠어."

"그래? 그건 또 왜지?"

"음? 왜냐니? 뭘 물어보고 싶은 거야?"

"아니…. 마피아 놈들의 목적도 코인 아냐? 그러려면 보이는 대로 다 죽여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놈들이 정의의 사도라서 사람들을 살려놓은 게 아닐 텐데? 아니면 500코인 같은 자잘한 코인은 안 건드는 건가?"

"코인? 그런 거 없어. 이미 오래전에 다 썼지."

"썼다고?"

"그거 얼마나 있다고 아껴놔. 코인 같은 건 없어. 있는 사람들은 손에 꼽을걸?"

그 말을 들으니 대충 이해가 됐다. 청주, 그러니까 SG시티를 봤잖아?

코인이 없으면 사람을 죽이는 의미가 없다. 그래. 그렇네. 그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

"그건 그렇고…. 당신 나랑 하지 않을래? 내가 입으로 빠는 건 진짜 잘하는데. 대체 왜 옷을 입으라고 한 거야? 이상한 질문 같은 건 나중에 하고 먼저 나랑 한판 하자."

그러면서 당장이라도 나에게 달려들 것 같이 다가오는 여자.

순간 날파리년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수면을 썼고 여자는 그 자리에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아. 씨발…."

저절로 나오는 욕지기. 아. 진짜 존나 싫네. 트라우마를 건드리다니. 씨발 년.

뭐 이딴 년이 다 있지? 아무리 매혹이 그런 스킬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대놓고 들이대는 거 아냐?

기분이 나빠졌기에 그냥 찍어 죽이려고 했지만 그래도 막 죽일 수는 없다.

적어도 기억 읽기는 해봐야지.

적당히 손을 대고 이것저것 키워드를 대가면서 기억을 읽어본다.

하지만 그다지 영양가 있는 정보들은 없다. 시간이 아까울 정도.

에이. 그냥 죽여야겠다.

바로 마체테를 꺼내 찍어 죽였다. 덩달아서 옆에 있던 남자까지.

둘 다 죽였지만 나오지 않는 코인 주머니. 여자가 했던 말이 사실인가 보다. 진짜 아무것도 안 나오네.

페이즈 아웃으로 건물 벽을 통과한 뒤 바로 해제하고 비행을 써서 자유낙하 하는 걸 막는다.

그리고 저장. 현재 위치를 저장하고 바로 순간 이동을 썼다.

벙커로 돌아가 네 여자와 다시 파티를 걸고 러시아로 돌아왔다.

잠시 뒤 코인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떴고, 나는 다시 가던 길을 간다.

찝찝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충 분위기는 알았다.

욕심을 버리고 남은 인생의 존속을 선택한 이들. 웃긴 건 이들의 스킬들이다.

여자의 기억에서 읽은 바로는 대부분의 스킬들이 생산 쪽에 치우쳐져 있었다.

기름 생성, 보드카 생성, 담배 생성, 음료 생성 등등등.

그래. 생각해보면 이들의 삶이야말로 이런 현실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삶이다.

전기와 물이 무제한. 거기에 생성 스킬들로 살의 편의를 높인다.

식량만 해결할 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생활.

생각과는 다르게 이놈들은 식량에 대해서 크게 걱정을 안 했다.

의외로 잘 먹고 잘살고 있는 놈들.

이들은 생산 스킬로 얻은 물품으로 농사짓는 사람들과 물물교환을 하는 형태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의 경우는 방금 여자처럼 가볍게 몸을 대주는 것만으로도 먹고 사는 거에 큰 불편함이 없었고.

방금 여자도 그런 여자였다. 하드한 것까지 받아주는 콜걸.

남자는 농부. 제법 큰 밀 농사와 감자 농사를 짓는 녀석.

식량을 대가로 주기적으로 이런 플레이를 하던 놈들.

신기한 놈들이네. 이런 게 가능할 줄이야.

아마 세상을 이렇게 만든 놈들이 가장 싫어하는 타입이 아니었을까?

기껏 서로 죽이라고 이런저런 스킬을 잔뜩 만들어줬는데 그런 의도 따위는 좆까라고 하고 생산 스킬만 줄창 쓰면서 지들끼리 알아서 잘살고 있으니까.

사회주의와 자유경제를 모두 맛본 녀석들이라 그런가? 의외야. 정말.

어쨌든 대충 알았으니 됐다. 이놈들은 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어.

지상에서 느껴지는 기척들을 적당히 무시하고 다시 비행을 나선다.

생각해보면 러시아 놈들만 이러는 건 아닐 거다.

전기와 물이 무제한인 순간부터 자급자족의 난이도는 급격히 하락했으니까.

서로를 죽일 수 있다는 위협만 무시할 수 있다면 사실 생존하는 데는 크게 문제없다.

한국인들만 유독 심했던 걸까? 아니 일본도 한국이랑 상황은 비슷했잖아?

뭔가 공통점이 있나? 국민성이나 사회 구조 때문일까?

조금 더 많은 곳을 둘러볼 필요가 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곳에서 5년을 지냈던 나로서는 해외의 상황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살인이 일상이 된 한국과 일본.

억제와 봉쇄, 감시와 통제로 유지되던 중국.

의외로 멀쩡했던 몽골에 이상주의적 삶을 사는 러시아까지.

역시 가장 궁금한 건 미국이다.

그놈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것도 곧 알아볼 수 있겠지. 열심히 가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러시아로 가는 4시간의 비행을 마쳤다.

비행 속도가 빨라져서 이동 거리가 늘어난 게 좋네. 조금 더 일찍 갈 수 있겠어.

마지막 위치를 아까 위치에 덮어씌우고 이번엔 일본을 잠시 들린다.

하루카. 나를 천사로 알고 있는 여자.

탐지를 돌려보고 바로 천리안과 투시로 살펴본다.

소를 끌고 어디론가 이동하고 있는 하루카.

어디 가지? 소는 어디다 쓰려고?

잠깐 가만히 공중에 떠서 뭘 하는지 지켜본다. 그녀가 가는 쪽을 살펴보니 어제 누워있던 그 큰 집 쪽이다.

그리고 그 뒤쪽에 있는 외양간에 잔뜩 메인 소들.

아. 동네에 있는 동물들을 다 한데 모으는구나.

근데 소 숫자가 제법 많네. 저걸 다 혼자 관리할 수 있나?

게다가 먹이는? 감당 가능한가?

조금 더 지켜보고 싶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보고 있어야 할 거 같아서 그냥 자리를 떴다.

뭐, 내일 또 와서 보면 되지. 아니면 직접 가서 물어봐도 되고.

어제 마지막으로 비행했던 위치로 순간 이동한다.

바다 위. 다시 시작되는 비행.

이번엔 동쪽이다. 재미없는 바다 위의 비행.

생각해보니 이렇게 재미없는 비행을 계속할 필요가 없다. 내일부턴 스마트 폰에 영화라도 하나씩 넣고 와야겠네.

아니, 두 개씩 넣고 와야겠구나. 영화 두 편 딱 보면 하루 비행을 마무리할 수 있겠어.

바람이 문제긴 한데 등지고 날거나 그러면 되겠지. 뭐, 방법이야 어떻게든 만들면 되니까.

그렇게 지루한 네 시간의 바다 위 비행을 마치고 위치를 저장한다.

후우. 길었다. 힘들었어.

이제 그럼 수원으로 가야지. 기억 삭제 숙련하러.

하. 정말 힘들다. 하루를 쪼개서 이렇게 열심히 살다니.

누가 좀 칭찬해줬으면 좋겠다. 이런 망해버린 세상에서 나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놈은 없을 거야.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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