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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거리 비행
부산에서 아침 해를 바라보고 돌아온 뒤, 하루를 꼬박 잤다.
딱히 피곤하거나 지치는 건 아니었는데도 이상하게 많이 잤다. 뭔가 긴장이 풀렸나? 그런 느낌까지는 안 드는데.
어쨌든 허리가 아플 정도로 많이 잤더니 느낌이 새롭다. 마치 새로운 아침 같은 느낌이야.
한국에서 위험한 녀석들은 어느 정도 처리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평화로워진 것은 아니다. 아직 대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계림과 BFV 놈들이 남아있으니까.
게다가 어딘가에서 모습을 감추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은둔 고수가 있을 수도 있고.
사실 그게 더 무섭지. '나 강해요!'라고 외치면서 다니는 놈들보다 훨씬.
그렇긴 하더라도 내가 한 짓이 별거 아닌 것은 아니다. 나름 대단하다고 생각해도 될 거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접었다. 해이해지면 안 되지. 자만과 방심이야말로 가장 큰 적이야.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해야 할 일도 많고.
느긋한 아침.
숙련을 하는 네 여자. 그리고 투시를 쓰고 지켜보고 있는 나.
으음. 아침부터 불끈불끈하게 해주는 스킬이야. 이렇게 소중한 스킬을 이제야 알았다니. 그동안 헛살았어.
제법 능숙해져서 깔끔하게 옷만 투시한 상태로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내가 보는 세상은 조금 특별하다. 나체족들이 사는 세상과 다를 게 없어.
네 여자 모두 외모에 있어서는 어디에도 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효과는 더욱 극대화된다.
어어…. 미나야 거기서 그렇게 쭈그려 앉으면…. 너무 야하잖아. 훤히 다 보인다고.
나 참. 숙련해야 하는데. 이렇게 계속 보고만 있으면 안 되는데.
코인도 많아졌으니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숙련할 수 있을 거다. 물론…. 이 많은 코인도 금방 다 쓰겠지.
빌어먹을 패시브.
그래도 크게 걱정은 안 한다. 테이밍을 마스터한 세아 덕분에 지금도 계속해서 코인이 들어오고 있으니까.
내가 잠든 하루 동안 코인이 77만이 더 들어왔다.
다섯이서 엔빵했는데 저 정도면 훌륭하지.
세아가 네 마리, 승희가 두 마리. 합쳐서 여섯 마리의 테이밍 된 동물들이 열심히 주워온 코인.
동물보호협회가 있었으면 길길이 날뛰었을 일이다. 물론, 살아있다면 말이지. 꼬우면 따져보던가.
77만이면 385만 코인. 상당히 많은 숫자지만 해봐야 7,700명 분량 밖에 안된다.
아직 양쯔강에는 무궁무진한 코인이 쌓여있다고 봐도 된다. 아마 물고기가 하류로 내려갈수록 코인 양은 많아지지 않을까?
물에 휩쓸렸다고 해도 바로 뒤지는 것은 아니었을 테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겠지. 지금 주운 코인들은 발버둥이고 뭐고 급사한 놈들이 대부분일 거야.
어쨌든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종일 SG 센터에서 사냥했던 코인 만큼 들어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역시…. 사람은 불로소득을 좋아할 수밖에 없어. 그냥 얻는 코인보다 몇 배는 더 이득 본 느낌이잖아?
테이밍으로 오토코인파밍이 가능해졌으니 이젠 학살의 방법을 조금 바꿀 때가 됐다.
하나하나 돌아다니면서 잡아 죽이는 것보다 대규모로 죽이고 코인을 회수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어.
하루에 한 번 쓸 수 있는 안나의 토네이도. 일단 이건 날마다 베이징에 뿌려주자.
지속시간이 짧긴 하지만 그래도 피해는 누적시킬 수 있다. 어차피 공짜로 쓰는 스킬인데 안 쓰는 게 손해지.
역시 지금까지 가장 좋은 효과를 보였던 건 산샤댐 박살이다.
결국은 그런 재난 급 사건을 여러 번 터트려야 한다는 소리. 근데…. 또 그런 기가 막힌 방법이 있나?
원자력 발전소 같은 걸 터트리는 방법을 생각해봤지만, 솔직히 별로다.
화약도 없앤 놈들이 방사능을 놔뒀을까? 확인해 본 적은 없지만, 절대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그게 됐으면 이 세상은 지금과 같은 세상이 아니고 폴 아웃 세상이 됐겠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산샤댐 같은 재난 급을 유발하는 건 마땅한 게 없다.
그래도 크게 걱정 없는 게…. 미나의 역병이 잘 작동하고 있다는 거?
"미나야. 지금 역병 감염자 몇 명이지?"
"지금요? 잠시만요."
역병 패널을 확인하기 위해서 손을 움직이는 미나.
덕분에 가슴의 잔잔한 움직임이 확 눈에 보인다.
으음. 그렇게 봤던 몸인데 어떻게 이렇게 볼 때마다 좋지?
난 참 행복한 놈이야. 두고두고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아마 저 네 여자는 할머니가 돼도 이쁠 거 같다. 그렇지 않을까? 근데 우리가 과연 노인이 될 때까지 살 수 있을까?
"717만요."
"오우. 엄청 늘었네?"
"근데 어젯밤보다 줄었어요."
"어?"
"잠깐만요. 적어놓은 거 있는데…. 어젯밤에 750만 넘었었어요."
"뭐지? 엄청 줄었네?"
"네."
33만이라는 숫자가 줄었다. 단순한 수치로 보이지만 33만 명의 인간이다. 아니지 짱개니까 인간은 아니구나.
근데 어떻게 저만한 숫자가 밤사이에 사라지지? 다 죽은 건가? 물론…. 죽었으니까 숫자가 빠졌겠지.
그럼 결국 그만큼의 코인이 발생했다는 거잖아.
33만. 하나당 500코인이면 단순 계산으로도 1억 6,500만.
소름 끼치는 양이긴 하다. 역시 대가리 숫자만 많은 짱개다워.
물론 저 코인을 한사람이 전부 독식한 것은 아닐 테니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엄청난 속도로 코인이 소멸하고 있겠지.
주변의 사람들이 픽픽 죽어 나가고 그 코인들은 결국 누군가가 획득한 다음 스킬 배우는 데 썼을 거다.
아니면 포션이라도 사 먹겠지. 당장 뒤질 거 같으면 그런 짓이라도 할 테니까.
어차피 내가 다 못 먹을 코인이면 차라리 사라지는 게 낫다.
가장 걱정해야 하는 건 중국 공산당들이 체계적으로 역병 걸린 놈들을 죽이는 게 가장 무섭다.
자잘한 잡놈들. 스킬 한두 개 있는 놈들이 코인을 써서 스킬을 얻는 건 상관없다.
막 열 개 넘게 있는 놈들이 저 코인을 전부 획득해서 스킬 배우고 숙련하는 데 쓰는 게 문제지.
아니면 단순히 치료됐을 수도 있다.
많은 인간이 죽어서 코인을 얻게 된 일반인들. 그런 이들이 스킬을 배우면 뭘 배울까?
질병 해제를 배울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다른 스킬들을 배우고 싶겠지만…. 당장 죽기 직전인데 선택지가 있을까?
아마 그런 경향이 없진 않을 거다. 아마 짱개놈들 중엔 질병 해제 배우게 된 놈들이 엄청 많을 수도 있어.
뭐, 그거야…. 천천히 알아보자. 어차피 짱개놈들이 좆되고 있는건 확실하니까.
그렇게 대량 학살에 대한 생각을 하며 느긋하게 점심까지 있다가 슬슬 나갈 준비를 한다.
이제 슬슬 장거리 비행을 할 시간이다. 러시아. 그 멀고 먼 길을 갈 시간.
"다녀올게."
내가 러시아로 길을 열러 가는 걸 아는 안나는 나를 꼭 끌어안아 준다.
"혼자 날면 심심하겠어요. 같이 날아가기라도 할 수 있다면 대화라도 할 텐데."
"그럼 빨리 한계 돌파 찍어."
"전 이거 번개 주먹 마스터 하면 다음에 찍을 수 있죠?"
"응. 어차피 한계 돌파1 찍어도 비행 속도는 시속 55킬로라 크게 효과는 없다는 게 문제지."
"아쉽네요. 조심히 다녀와요."
나는 손을 흔들고 바로 순간이동을 써서 베이징으로 갔다.
베이징에서 출발하면 거리를 800킬로 정도 줄일 수 있다.
그래도 남은 거리는 5700킬로미터. 지금 비행 최고 속도는 시속 125킬로미터.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날아간다면 4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
하루에 4시간씩 날아가도 열흘이 넘게 걸린다. 진짜 끔찍한 거리야.
게다가 그건 방향을 헤매지 않고 갈 경우를 말하는 거다.
나침판을 하나 구하긴 했지만…. 이러한 나침반으로 제대로 방향을 잡고 최단거리로만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한다.
솔직히 쉽지 않지. 그러니 시간은 조금 더 걸릴 거다.
그래도 도전은 해야지. 안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
발밑에 보이는 베이징. 아래로 내려가서 상황을 조금 보고 싶긴 했지만, 괜히 내려갔다가 퍼뜨린 역병에 걸리고 싶진 않다.
그리고 굳이 내려갈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의 나는 탐지와 천리안, 투시가 있으니까.
어차피 투시 스킬 숙련도 해야 하잖아? 그렇기에 투시를 쓰면서 계속 밑을 보고 간다.
날아가는 길이 전혀 심심하지 않을 정도. 볼거리가 넘쳐난다. 별로 아름다운 모습은 아니었지만.
구질구질한 삶. 짱개놈들의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왜 저러고 사는지 궁금할 정도. 어째서 욕심을 안 내지? 화를 안 내지? 병신들인가?
목숨만 부지하고 하루 세끼 먹을 밥만 있으면 된다 이건가?
나로서는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녀석들에게는 일말의 동정심도 생기지 않는다.
저러고 사는 건 가축이나 다름없잖아? 어쩌겠어. 본인들이 선택한 삶은 본인들이 감당해야지.
비행을 시작한 지 두 시간째.
바닥의 색이 바뀌었다. 어느 정도 녹색 빛이 보이던 산지에서 평평한 황무지로 바뀌기 시작한다.
급격하게 변하는 주변의 풍광에 신기해져 지도 앱을 켜봤다. 여기는 대체 뭐 하는 곳이야?
지도에 보니 내몽골자치구라고 되어있다. 아. 그렇구나. 알게 뭐람.
몽골이든 내몽골이든 짱개 놈들의 땅 욕심에는 관심 없다. 내가 관심 있는 건 딱 하나.
고비 사막.
여기가 그 유명한 고비 사막이라는 거다. 나는 그런 고비 사막의 초입에 들어선 거고.
이야…. 그럼 여기 사람들은 그럼 모래 조종은 기본으로 배웠을까?
지천에 깔린 게 모래잖아? 아주 개꿀이겠네.
근데 내가 생각했던 그런 사막이 아니다. 뭔가 좀 불그스름한 땅. 그리고 모래의 그런 느낌이 아니다.
고도를 낮춰 땅으로 내려가 본다. 그리고 내가 뭔가 잘못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뭐지. 모래가 아니고 죄다 돌이네. 아직 고비 사막이 아닌 건가? 내가 잘못 왔나?
여긴 사막이라고 하기보단 돌밭 같은 곳이다. 내가 생각한 거랑 뭐가 다르네.
이런 것도 사막이라고 하나? 으음…. 잘 모르겠다.
위치를 잘못 온 건 아닌거 같다. 그냥 여기 땅이 이런 건가 봐.
사막이라고 전부 모래만 있는 건 아니네. 그럼 모래 조종은 못 쓰겠어.
다시 하늘을 날아 나침반을 보고 방향을 잡는다.
비행. 비행. 비행.
재밌는 건 간혹 사람의 기척이 잡힌다는 거다.
유목민들. 아마 그렇게 부르겠지? 저런 사람들을 유목민이라고 부를 거야.
처음에 발견했을 땐 하도 신기해서 잠시 멈춰 지켜보기까지 했다.
세상이 망하든 말든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
멸망 따윈 조까라 이거지. 어차피 저들에겐 조금 더 이득이잖아? 스킬을 쓸 수 있게 됐으니까.
저런 사람들은 무슨 스킬을 골랐을까? 술 생성? 그것만으로도 개이득 아닐까?
짱개, 한국인, 일본놈을 전부 기억 읽기 해본 결과 재밌는 것을 확인했다.
우리나라에 있는 소주 생성. 그게 짱개랑 일본놈에겐 없다.
대신 짱개는 빼갈 생성, 일본놈에겐 사케 생성이 있다. 뭐, 빼갈 생성은 지난번에 알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웃기네. 스킬의 로컬라이징이라니.
지난번에도 들었던 의문인데…. 진짜 독일 가서 꼭 기억 읽기 해본다. 그놈들은 생맥주 생성과 캔맥주 생성이 같이 있는지.
근데…. 그럼 여기 사람들은 무슨 스킬이 나오지?
몽골이면 마유주인가? 짱개놈들 땅이니 빼갈이 나오나?
그건 좀 궁금하네. 뭐, 굳이 알아보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지만.
뭐가 됐든 저런 유목민들에게 술을 마음껏 생성할 수 있는 스킬이 생긴다면 세상 사는 맛이 날거다.
한 놈은 술 생성, 한 놈은 질병 해제. 그리고 존나게 먹는 거지.
크. 술을 잘 안 먹는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 데.
술을 물처럼 입에 달고 다니는 놈들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정말 세상 살맛 나지 않을까?
그런 잡다한 생각을 하면서 계속 비행한다.
정확하게 네 시간. 비행을 마치고 저장한다. 마음 같아서는 더 가고 싶지만, 다른 할 일도 있으니까.
이번엔 의정부로 간다. 옛 펜스 자리에 자리 잡은 캐슬. 민희가 있는 곳.
그사이 제법 정리된 캐슬.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며 내 방이 있던 곳으로 간다.
느껴지는 기척. 이건 민희겠지?
바로 가서 짠하고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이런 거로 놀라지도 않는 민희.
"와. 이번엔 금방 왔네요?"
"근처 지나갈 일이 있어서 들렀어."
자연스러운 포옹. 그러면서도 민희는 궁금한 표정을 짓는다.
"어딜 가는데 여길 지나가요?"
"아아. 미국."
"미국?"
"어."
"아니 거긴 갑자기 왜요?"
"세계정복을 하려면 미국부터 점령해야지."
"농담도."
그러면서 눈을 흘기는 민희.
얼래. 농담처럼 들렸나? 진심인데.
"그럼 바빠요? 바로 가야 하나?"
그러면서 내게 팔짱을 낀다. 아. 이거 고민이네. 바로 가야 하나? 잠깐 있다 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