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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와 브런치가 참 개성 있네."
"조용히 먹어."
고기 비슷한 무언가와 알 수 없는 수프, 유사 샐러드를 앞에 둔 내 말에 세아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한마디 한다.
"아냐. 괜찮은 거 같아. 그래도 설탕 대신 소금을 넣었다던가 고춧가루를 치사량으로 넣었다던가 그런 건 아니잖아."
"그래도 미나 언니가 있으니까요."
승희가 한마디 하자 세아가 살짝 째려봤지만, 승희는 모른 척하고 음식을 먹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웃는 미나. 불평불만 없이 맛있게 잘 먹는 안나.
"안나는 입에 맞나? 되게 잘 먹네."
"음. 세아의 요리는 약간 러시아 음식 맛이 나서요."
"응? 그게 무슨 뜻이지? 칭찬인가?"
"제 입맛에는 맛있다는 거예요."
"그래? 그렇구나."
그런 안나를 향해 세아가 따듯한 눈길을 보내다가 다시 수저를 가져간다.
저러니까 세아가 안나를 잘 따르나? 하여간 재밌는 애들이야.
약간은 독특했던 브런치를 먹고 다들 각자의 숙련을 하기 시작한다.
여지없이 밖에서 이뤄지는 숙련.
어차피 테이밍 때문에 밖에서 할 수밖에 없다곤 하지만, 그래도 얘들 은근히 밖을 좋아하는 거 같아.
하긴, 내가 스킬 숙련하던 때랑은 다르지.
나야 불안감에 벙커 안에서 숨죽이고 살았지 얘들은 그럴 필요 없으니까.
세아만 숙련 패스 한 스킬이 없는 데다가 테이밍하느라 조금 늦어서 티어9지 승희와 미나, 안나는 티어11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보다 막강한 조합이 있나 싶다.
기본기가 확실하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조합. 약점이 거의 없는 파티잖아.
내가 없어도 앞으로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파티. 내가 있으면 더더욱 강해지는 파티.
그러니 마음 놓고 나다닐 수 있게 된 거지만.
점심이 지날 무렵, 세아가 테이밍을 마스터했다.
뿌듯한 얼굴로 나에게 다가와 자랑스럽게 말하는 세아.
"나 뭐 배우면 되나?"
"아. 넌 배울 거 많지."
"뭐? 말해봐. 탐지 트리?"
"탐지 트리도 찍어야지. 인간 탐지, 동물 탐지, 코인 탐지. 그리고 보호막이랑 데미지 감소도 찍어야지."
"많네."
"어. 그리고 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건 없어."
"으음. 뭐 부터 찍어야 하나?"
"어차피 너 코인은 많잖아? 내 생각엔 인간 탐지, 보호막, 데미지 감소 배운 다음 패시브 찍고 동물 탐지랑 코인 탐지. 이 순서로 가면 될 거 같은데."
"인간 탐지 정말 좋아하네."
"필수야. 게다가 인간 탐지만큼 패시브 빨 잘 받는 스킬이 없으니까."
"알았어. 그럼. 인간 탐지 배우지 뭐."
바로 스킬을 배우고 숙련하기 시작하는 세아.
이제 세아도 됐고. 이젠 안나만 남았는데.
"얼마 남지 않았다고 그랬지?"
"네."
"그래. 아까 말한 대로 찍으면 돼. 알겠지?"
"네. 어디 또 나가나 봐요?"
"어. 부산 마무리 지어야지. 그리고 러시아 갈 준비도 해야 하고."
내 말에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안나.
그 눈빛에 담겨있는 신뢰와 기대감은 어지간히 둔한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요."
"음?"
"모스크바까지 어떻게 갈 생각이에요?"
"아. 그거? 날아가야지."
"네? 날아간다고요? 거기까지?"
"물론 너희는 내가 가서 포탈 뚫어 줄 거야. 걱정 마."
"아니. 당신이 걱정 돼서 그렇죠. 거리가 엄청난데."
"6,700킬로 정도 되는데. 뭐 내가 이번 스킬 마스터 하면 비행 속도가 시속 125킬로 정도 되니까. 54시간만 날아가면 되겠네."
"순수하게 이틀이 넘는 시간이잖아요."
"어쩌겠어. 방법이 없는데. 조금씩 조금씩 훑으면서 가야지. 그래서 시간이 조금 걸릴 수도 있어."
"차라리 저희도 게이트를 배워서 번갈아 가면서 가는 건 어때요?"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닌데. 그건 조금 나중에 하자. 안나 너는 데스윈드 배운 다음에 바로 순간 이동이랑 게이트 배우면 되니까."
"네…."
"걱정 마. 나는 오히려 너무 늦어져서 니가 아무런 복수를 못 하는 게 더 걱정되는걸."
"아니에요. 복수…. 야 하고 싶긴 하지만, 나는 지금 이렇게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요."
그런 안나의 뺨에 손을 가져다 대자 고개를 기울이며 내 손에 머리를 기댄다.
더 일찍 했었어야 하는 일인데. 너무 꾸물거렸나.
아니다. 지금 고작 국내랑 일본의 실력자도 깔끔하게 쓸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함부로 나댈 수는 없었잖아.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야. 안나도 어느 정도 강해지긴 했고.
네 여자에게 인사를 하고 청주로 넘어간다.
서민준을 만나야 하는데…. 매번 만나는 자리 거기는 인제 그만 가야겠어.
좋은 자리를 물색해본다. 혹시라도 서민준이 다른 마음 먹고 수작을 부리지 못할 곳.
블링크로 언제든지 자리를 피할 수 있게 하늘이 열려있는 곳.
그리고 다른 놈들이 매복하기 힘든 곳.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기습적으로 깔지 못하는 곳.
그러려면 지하가 없어야 한다. 지하 깊은 곳에서 써도 그 위쪽까지 모두 금지 구역이 되니까.
생각해보니 딱 한곳 좋은 장소가 생각났다.
청주 공항. 그리 멀지도 않고 인적도 없다.
탁 트인 곳이라 매복 걱정도 안 해도 되고 바닥에 지하실 같은 것도 없는 곳.
맘에 드네. 거기로 해야겠다.
먼저 청주 공항으로 가본다. 지난번에 두 무리가 서로 치고받고 하던 그곳.
생각해보니 수원도 비행장이고 여기도 공항이네. 하긴 활주로 만큼 탁 트인 곳이 거의 없지.
아무도 없는 기척. 혹시 몰라서 페이즈 아웃도 한번 써봤다.
맨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지만 시야가 좋아서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좋아. 그럼 됐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SG 센터로 향했다.
헬기 떠 있나? 오. 있네.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쓰니 서민준이 보인다.
"야."
"일찍 왔네요."
"청주 공항으로 와라. 지금 당장. 꾸물거리지 말고."
"네?"
나는 내 할 말만 하고 바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 다음 반사부터 썼다.
그리고 블링크. 공중에서 떨어지기 전에 비행. 그리고 또 블링크. 다음에 투명화와 천리안.
청주 공항으로 블링크와 비행을 병행해서 날아갔다.
활주로 한복판. 아무도 없기에 투명화를 풀고 활주로 한복판에 서있는다.
얼마 뒤에 이곳으로 날아오는 헬기 한 대.
내 근처까지 다가온 헬기는 서서히 활주로 한복판에 착륙했고 서민준이 내렸다.
다가오는 녀석. 바람이 불어와 녀석의 머리를 날리자 무슨 화보 같은 느낌이 든다.
어우.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새끼. 세상 존나 불공평하네.
"아니, 갑자기 여긴 왜 오라는 겁니까?"
"야. 너 비행 없냐?"
"그건 왜요?"
"물어보는 거나 대답해."
"흠. 그건 비밀인데요?"
어쭈? 새끼가?
"비행이랑 블링크 있으면 그냥 날아오면 되지 무슨 헬기까지 타고 와."
"비밀이라니까요. 왜 자꾸 물어보세요."
"별거 아닌 거로 존나 비싸게 구네. 그래. 니가 비행이 있든 말든 무슨 상관이냐. 암튼, 이야기 했던 건?"
"페이즈 아웃 안 쓰고 그냥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까?"
"왜? 불만 있어?"
"멀리서 누가 천리안으로 보고 있으면 어쩌려고요?"
"왜. 너 무슨 불륜하냐? 누가 보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어차피 무슨 이야기 하는지 듣지도 못하는 데 무슨 상관이야."
"독순술이라고 몰라요? 말하는 입 모양만 봐도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는데?"
"하아. 너도 중증이구나?"
생각해보니 저놈의 말은 틀린 게 없다.
나도 천리안을 쓰고 있으니 그 효력은 얼마든지 안다. 서민준 저놈이 하는 말은 전부 실현 가능한 이야기들.
그렇다고 입을 가리고 말하는 것도 웃긴다. 그래. 페이즈 아웃을 쓰고 이야기 하는 게 가장 안전하긴 한데.
찝찝하단 말이지. 저놈이 뭔가를 유도하는 느낌이 조금이라도 들면 찝찝함이 느껴질 수밖에 없다.
페이즈 아웃을 쓰면? 탐지를 못 쓰니 주변에서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없다.
게다가 소리도 안 들리니 헬리콥터 같은 게 다가와도 알 방법이 없어.
음…. 수상한데. 저놈은 왜 페이즈 아웃을 고집하는 거지?
아니 반대일 수도 있나? 페이즈 아웃을 억지로 요청해서 반발심이 생기게 하려는 셈인가?
녀석의 입장은 무시하고 내 기준으로 봤을 때 편한 걸 생각해본다.
결국은 페이즈 아웃을 안 쓰는 게 유리하다. 나에겐 최종 탈출기인 순간 이동이 있으니까.
진동파가 깔리든 모래 결계가 깔리든 스킬 사용 불가 지대만 깔리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스킬.
"그냥 하자."
"맘대로 하세요."
페이즈 아웃을 더 요구할 줄 알았던 서민준은 의외로 그냥 넘어간다.
웃기는 놈이네. 이미 2안, 3안이 있는 건가.
"말했던 건 어떻게 됐지?"
내 말에 서민준은 자신의 뒤쪽을 향해 손가락을 튕긴다.
헬기에서 한 놈이 튀어나오더니 서류 파일을 하나 건네줬고 서민준은 그걸 받아보더니 말한다.
"레테를 치기 위한 인원은 확인했습니다. 앞으로 사흘 뒤. 자정에 칠 겁니다."
"엥? 뭐 그리 오래 걸려."
"저희도 디테일한 정보 수집이라는 걸 해야 하니까요. 당신이 준 정보들을 토대로 계획을 짜지만 상세한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너무 오래 걸리는데."
"그래야 쓸모없는데 탐욕만 가득한 놈들을 남김없이 다 보낼 수 있습니다. 그정도는 기다려주세요."
"자신은 있는 거야?"
"승률은 85퍼센트라고 계산이 나왔습니다."
"승률이 무슨 의미가 있어. 이기면 이기는 거고 지면 지는 거지."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저 새끼 저거 은근히 계속 나를 꼽주네. 지금도 나보고 단순하다고 까는 거잖아?"
"사흘. 어휴. 굼벵이 같은 놈들. 알았어. 다음?"
"다음요?"
"내가 말한 건 그게 다가 아니잖아."
"아. 다음이 뭐였죠? 미국이었던가요?"
"어."
"미국이라. 가능하긴 합니다. 가는데 시간이 조금 많이 걸릴 뿐이죠."
"얼마나 걸리는데."
"최소 한 달 반요."
"엥? 그렇게나 걸려?"
"GPS가 없어서 육지 연안으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는군요. 사실 저희도 항해에 전문가들은 아니라서…. 지금 나온 방안으로는 그렇습니다."
"한 달 반이라. 씨발. 내가 직접 날아가는 게 더 빠르겠네."
"네?"
"아냐 됐어. 미국행은 신경 쓰지 마라."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녀석. 뭔 생각을 하는 걸까.
"사토 히데모리 대책은 있는 거지?"
"물론이죠. 그걸 감안한 승률입니다. 뭐, 어차피 야쿠자 나부랭이일 뿐이라 크게 위협도 안 되지만."
녀석의 말에 약간 흥미가 생겼다.
스킬이 그렇게 많은데도 야쿠자라고 괄시하는 녀석.
뭐지? 왜 저렇게 자신만만한 거지? 이해가 잘 안 가네. 그렇게 만만한 놈들이 아닐 텐데.
"아무튼. 사흘 뒤 자정이라고 알고 생각하세요. 저희가 레테와 야쿠자들을 정리하는 것은 커다란 변수가 없으면 무리 없이 진행될 겁니다. 당신은 그런 그들을 상대할 수 있나요?"
"글쎄. 봐야 알겠지? 정보 같은 건 없나? 그래야 깔끔하게 정리해줄 수 있는데?"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합니까?"
"너 은근히 사람을 긁는다?"
"어휴. 제가 뭘 어쨌다고. 겨우 이 정도도 긁는겁니까?"
생글생글 웃는 서민준. 아. 진짜 싫어. 기생오라비 같은 새끼가 싱글거리는 걸 좋아하는 남자가 어딨겠어.
"이 파일은 이번에 레테를 습격하러 가는 이들의 간략한 신상정보와 작전 개요 같은 게 들어있는 파일 복사본입니다. 음. 상당히 중요한 정보죠. 근데…. 어이쿠. 저는 지금 방금 그 파일을 잃어버렸네요."
그러면서 바닥에 파일을 내려놓는 녀석.
몸을 다시 일으킨 녀석은 내 쪽을 보고 다시 말한다.
"어우. 저는 이만 잃어버린 중요한 파일을 찾으러 가봐야겠습니다. 이거 참. 난감하네요. 근데 뭐. 복사본이라 다 읽은 사람이 불에 태워버리기만 하면 크게 상관없긴 할 거 같고요. 그쵸?"
그러더니 몸을 돌려 헬기로 걸어간다.
으음. 대범한 놈이네. 내 앞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다니.
그렇게 헬기에 오른 녀석은 나를 보면서 또 윙크했다.
아. 저 눈깔 진짜. 뽑을 수도 없고.
헬기가 떠나면서 바람이 거칠게 불었지만, 파일은 비행장 바닥에 찰싹 붙어서 제자리에 있다.
그렇게 떠나간 헬기. 그리고 나는 그 파일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안에 이상한 장치나 추적기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면 극독이라던가 심각한 질병이라던가. 암튼 뭐 그런 건…. 됐다. 작작해야지.
그래도 추적기 같은 건 방심할 수 없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파일을 읽기 시작했다.
흥미진진한 내용. 와. 이 새끼들 봐라?
간략하게 다 읽은 나는 바로 수납에 파일을 넣었다. 이러면 뭐 추적기도 의미 없겠지.
어쨌든 저 내용대로라면 상당히 기대할 수 있겠어. 녀석의 승률 85퍼센트는 헛소리가 아닐 수도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