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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는 아침
다음날.
잠에서 깼지만, 눈을 뜨기 싫은 아침.
옆에 누군가 있는 게 느껴진다. 오. 누굴까. 눈을 뜨지 않고 손으로 만지기만 해서 누군지 맞춰보기로 한다.
음…. 일단 세아나 안나는 아니군. 세아는 좀 작지. 안나는 크고.
승희 아니면 미나인데.
그 둘이라면 허리와 아랫배를 만져보면 알 수 있지. 후후.
미묘하게 애교 있는 뱃살이 잡히면 승희.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허리라면 미나.
으음. 손에 걸리는 것 하나 없이 늘씬한 허리인 거 보니 미나로구나!
그렇게 확인을 하고 가슴으로 손을 가져간다.
아아. 좋다. 일어나자마자 가슴을 만질 수 있다니. 이렇게 좋을 수가.
"눈도 안 떴는데 가슴부터 만지는 거예요?"
미나의 달짝지근한 목소리.
이럴 때면 그녀가 노래하던 사람이라는 게 실감 난다.
뭐, 아이돌이긴 하지만…. 아이돌도 가수는 가수지.
"행복함을 만끽하는 중이야."
"후후. 그렇게 좋을까."
그러면서 내가 만지기 좋게 몸을 돌려서 내 품에 안겼고 미나의 등이 내 가슴에 닿으면서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간지럽힌다.
별거 아니지만, 나에겐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아. 미나 너무 좋아.
"아참. 나 어젯밤에 보호막 마스터 했어요."
"그래? 고생했네. 스킬은 아직 안 찍었지?"
"네. 말하고 찍으려고."
"패시브 찍고 데미지 감소 찍으면 되지. 뭐. 코인은 많이 있지?"
"네. 517만 정도?"
"당분간은 문제없겠네. 아으으. 일어나기 싫다."
"그럼 이대로 조금 더 있어요."
속삭이는 듯한 미나의 목소리는 달콤한 유혹 같다.
그럴까? 어차피 서민준이는 오후에나 보러 가면 되니까 오전은 느긋하게 있을 수 있잖아?
나도 스킬 숙련은 해야 하긴 하지만…. 30분만 더 이러고 있어야지. 30분 게으름 피운다고 누가 뭐라고 하진 않겠지.
그러는 중에 스킬을 찍는 미나. 다 찍었는지 손 움직이는 것을 멈춘다.
"근데요. 이거 데미지 감소요."
"어."
"공중에서 이걸 쓰고 있으면 어쨌든 한 번에 죽거나 하지는 않는 거잖아요?"
"아마도? 광역 스킬 무효화나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 걸려서 버프가 사라지지 않는 한 그렇게 되겠지? 본적은 없지만."
"그러면 데미지 감소가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요? 사람의 목숨은 게임이 아니잖아요? HP 바가 모두 사라지면 죽고 그러는 게 아닐 텐데."
"글쎄…. 그러게."
생각해보면 그렇다. 막연히 한방에 안 죽는다고만 알고 있지 어떤 방식으로 되는지는 본적이 없으니까.
"데미지를 감소시킨다고 해도 목이 잘리거나 심장을 찔리면 죽는 건 어쩔 수 없을 텐데. 그런 걸 막아주나? 그것도 조금 웃기는데."
"그러게요. 어렵네요."
"테스트를 해볼 수 없으니 원…."
그렇게 누워서 계속해서 미나의 가슴을 만진다.
스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말이 줄어드는 미나. 살짝씩 비음이 섞이는 걸 보니 느끼고 있나 보다.
그래? 그럼 어디….
손을 빼서 아래쪽으로 슬그머니 내렸는데 그 순간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나는 화들짝 놀라 손을 빼고 똑바로 누웠고 미나 역시 이불을 덮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슬그머니 열리는 문. 그리고 목소리를 낮춘 세아의 목소리.
"미나 언니. 일어났어?"
"으응? 세아니?"
"아. 내가 깨웠나?"
"아냐. 일어났어. 으음. 근데 왜?"
"아니. 뭐 좀 만들고 있는데…. 작은 냄비가 어딨는지 몰라서…."
"어? 뭘 만들어? 요리?"
벌떡 일어나는 미나. 그러더니 바로 밖으로 나간다.
아무리 그래도…. 세아가 요리한다는 소리에 그렇게 벌떡 일어나서 나가면 안 되는 거 아냐? 세아 상처받겠네.
그렇게 미나가 나가고 살짝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아. 좋았는데. 괜히 아쉽네. 쩝.
바로 나가기는 조금 그래서 가만히 누워 천리안 숙련을 했다.
그냥 말만 하면 숙련할 수 있는 스킬은 이래서 좋아.
물론 파티처럼 말을 많이 해야 하면 귀찮긴 하지만…. 천리안 정도면 뭐 무난하지.
고급 42퍼센트. 근데 이건 고급이 돼도 뭐가 달라진 지 크게 모르겠다.
거리가 늘어나는 거겠지? 지속시간은 늘어난 걸 확인 하긴 했는데…. 지속시간 증가 패시브 때문에 크게 의미는 없다.
한번 쓰고 나면 언제 썼는지도 까먹을 때까지 지속되니까.
정확하게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도 잘 모르겠다. 범위가 너무 넓어서 확인이 안 된다.
언제 한번 제대로 확인해봐야지. 사실 어지간한 건 다 보이니 상관없긴 하지만.
그렇게 10분 정도 누워서 스킬 숙련을 하다가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배를 긁으며 거실로 가자 승희와 안나가 나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다들 말이 통하게 된 이후부터 확실히 수다스러워진 안나.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말이지.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오면서 말을 못 했던 설움을 인제 와서 다 풀고 있는 느낌이야.
"근데. 이건 무슨 냄새야?"
"탄내 나죠?"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승희가 대답한다.
"어. 너도 나니?"
"그럼요. 세아가 요리하고 있어서 그래요. 조금만 참아요."
"거 주방에 후드 있지 않아? 후드를 켰는데도 이 정도라고?"
승희와 안나는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 평온한 모습이다.
보아하니 한두 번 이런 게 아닌가 본 데? 나야 매번 늦게 일어나거나 없거나 해서 몰랐나 보다.
근데 대체 뭘 하는데 이렇게 탄내가 나?
주방에 슬쩍 들어가 보니…. 이게 내가 알던 주방이 맞나 싶다.
어. 그러니까…. 그래. 승희가 여기에 폭발을 한방 갈기면 이런 느낌일 거 같은데.
"물의 양이 너무 적었어. 괜찮아. 이 정도 탄 거는 크게 문제없으니까. 수세미로 잘 닦기만 해도…. 아. 오빠 왔네. 닦을 필요도 없겠다. 오빠. 이거 회귀 한 번만 써줄래요? 이런 것도 되려나?"
바닥이 새카맣게 탄 궁중팬 하나를 나에게 내미는 미나.
나는 그걸 받아들고 바로 회귀를 썼다.
새 궁중팬을 돌려주자 받아 들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 그리고 탄 냄새도 싹 사라졌다.
"냄새가 사라지는 건 신기하네."
"근데 왜 탄 재료는 안 돌아올까요?"
"글쎄. 회귀의 주체가 궁중 팬이라서?"
"으음. 어렵네요. 세아야. 이거 원래대로 돌아왔으니 그만 침울해하고 다시 해봐."
"아니…. 근데 재료를 낭비했잖아. 더 낭비하면 안 되지."
"괜찮아. 어차피 오빠가 식재료는 많이 구해오는걸. 그쵸?"
"어? 어. 마음껏 해. 뭐가 문제야. 식재료를 몽땅 다 날린 것도 아닌데."
"어…? 진짜? 더 해도 된다고?"
"해야 늘지. 똑같은 실수만 반복 안 하면 되잖냐."
"그래?"
환해지는 표정의 세아. 그러더니 미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으음. 쟤는 밖에서 혼자 어떻게 살아남았던 거야? 신기하네. 정말.
그렇게 바쁜 두 여자를 놔두고 거실로 나왔다.
내가 나오는 걸 보며 승희가 나에게 바로 말을 건다.
"아. 오빠. 나 반사 마스터 했어."
"얼? 미나도 마스터 했다더니 너도? 잘했네. 그럼 너도 이제 티어 11인가?"
"응!"
생각해보니 둘이 숙련 올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비슷했다.
게다가 티어도 같다. 미나가 우레 폭풍으로 단계를 한번 뛰어넘긴 했지만, 승희도 EMP로 역시 뛰어넘었기에 다시 따라잡았으니까.
"그럼 그거 배울 수 있지? 강한 의지랑 생존 의지."
"어? 어. 있어. 이것도 패시브예요?"
"응. 좋은 거야. 효과는…."
간단하게 효과를 알려주자 신기해하는 승희. 옆에 있던 안나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말을 듣는다.
"잠깐만. 나 배웠거든요? 그럼 수면 한번 써봐요."
"자라."
바로 고개를 푹 숙이는 승희. 엥? 뭐야. 아무리 확률이라지만 한방에 자는 거야?
무효화로 깨우니 벌떡 고개를 든다.
"잤어!"
"어. 자더라."
"뭐지? 확률이 그리 높은 건 아닌가 봐요?"
"해보면 알겠지."
그렇게 승희에게 다시 수면을 걸었다. 근데 이번엔 잠이 들지 않았다.
"오."
"진짜 되네. 자라."
승희는 다시 고갤 떨궜고, 나는 무효화를 써줬다.
그렇게 열 번 정도 수면을 썼고, 승희는 여섯 번을 잠들고 네 번은 잠이 들지 않았다.
"40퍼센트? 열 번 중에 저 네 번 안 잤죠?"
"근데 표본이 너무 적어. 고작 열 번으로는 모르지. 한 백번 해보면 그나마 알 수 있을 거 같은데."
"엑? 백번이나 한다고요? 지금?"
"아니. 말이 그렇다는 이야기지. 굳이 백번이나 할 필요가 있냐. 어차피 그거 믿고 뭔가를 할 건 아니니까 놔둬. 그건 보험 같은 거니까."
"흐응. 그래요. 그럼 일단 패시브 배우고…. 나 이제 뭐 배워요?"
"너? 이제 탐지 배우면 되겠다."
"오. 근데 그거 테이밍은?"
"아. 테이밍 부터 할래? 어차피 넌 단독으로 다니는 경우가 없을 테니 상관없어. 어차피 테이밍 배운 다음엔 탐지니까."
"그럼 나 테이밍 부터 할래요."
"그래. 그럼."
바로 스킬을 배우는 승희. 그러더니 안나의 무릎에 있는 고양이에게 바로 테이밍을 쓴다.
"테이밍!"
"어…. 걔 세아 고양이 아니었어?"
"후후. 이젠 내 고양이죠."
"하다 하다 고양이를 NTR 하네."
그렇게 고양이를 안고 세아에게 가는 승희. 웃긴다니까. 그걸 자랑하러 가는 거야?
승희가 주방으로 들어가자 거실에 둘만 남게 된 안나는 싱긋 웃더니 자신의 옆자리를 손으로 톡톡 친다.
그렇게 안나 옆에 앉으니 바로 몸을 기대온다. 팔에 닿는 안나의 체온. 서늘할 것 같지만 따듯한 감각.
"안나는 얼마나 남았어? 코인 탐지?"
"저도 오늘이면 될 거 같아요."
"그래? 좋네."
"나도 테이밍 배우죠?"
"어. 안나는 지금도 완성형이니까. 그리고 너는 앞으로 배울 스킬들이 다 정해져 있어. 아. 내가 데스윈드 말 안 했나? 했지?"
"했어요. 출혈이랑 독무 배워야 한다고."
"어. 거기에 보호막 깰 수 있는 스킬도 하나 배우고. 너도 아까 승희 배운 그 패시브 두 개 배울 수 있으니 그것도 배우고."
"보호막 깨는 건 뭘 배우죠? 여러 개 있잖아요?"
"글쎄. 세아처럼 강화 주먹 배워도 되고. 적수도 있고. 아니면 보호막을 깨는게 아니고 통과해서 상대를 공격하는 번개 주먹이나 썬더 킥 배워도 되고. 아니면 공간 절단도 괜찮고. 아 근데 공간 절단은 빛의 검도 배워야 한다. 그건 좀 오래 걸리겠네."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강화 주먹은 보호막을 완전히 부수고 적수는 맞은 부분만 보호막이 깨진다고 했으니까. 근데 적수랑 번개 주먹, 썬더 킥은 따지고 보면 보호막 깨는 용도가 아니잖아."
"그럼 강화 주먹을 배워야 할까요?"
"아무래도 그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 어쨌든 지금 안나의 역할은 미나가 광역 스킬을 쓸 때 보호막 쓰고 달려드는 놈들을 저지해야 하는 역할이니. 게다가 바람 칼날로 처리하려면 너도 보호막을 깨야 하고."
"근데 굳이 보호막을 깨서 우레 폭풍에 맞게 하거나 바람 칼날로 처리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냥 적수나 번개 주먹, 썬더 킥 같은 거로 보호막 쓴 사람을 제가 처리해도 되는 건데?"
"어? 그러네? 내가 바보같이 생각하고 있었구나?"
나를 보고 빙긋 웃는 안나.
그래. 굳이 보호막을 깨고 다음 공격으로 처리할 필요가 없지. 그냥 바로 처리해버리면 끝이잖아.
이래서 혼자 생각하면 사고가 경직된다니까.
"그럼 마음에 드는 거로 골라. 가장 그럴듯한 거로."
"그럼 저는 번개 주먹 할래요."
"번개 주먹? 이유는?"
"멋있잖아요. 한 손엔 바람. 한 손엔 번개."
"미시마 가문이냐? 초풍이랑 뇌신권 쓰게 되는 거 아냐?"
"네?"
"아냐. 게임에 그런 캐릭이 있어서."
"아하."
"그럼 테이밍 부터 배울래? 아니면 번개 주먹부터 할래?"
"혹시 일주일 안에 싸울 일 있어요?"
"없을 거 같은데."
"그럼 테이밍 부터 할게요."
"그렇게 해. 테이밍은 많을수록 좋지. 어차피 들개들은 많으니까 숙련하기도 어렵지 않고."
"맞아요."
그렇게 말하고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안나.
주방에서는 뭔가 복작복작하는 소리가 나더니 승희가 고양이를 안고 쌩하니 방으로 도망간다.
"야! 최승희!"
그리고 국자를 들고 있던 세아가 주방에서 나왔다가 문이 잠긴 걸 알고 잠금 해제를 쓰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금방 고양이를 안고 나오는 세아.
어휴. 쟤는 요리하다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게다가 지금 저 고양이는 승희한테 테이밍 되어있는 거 아냐?
그리고 국자는 또 어디 갔데?
세아가 고양이를 안고 주방으로 들어갔고 이번엔 승희가 주걱을 들고 주방으로 간다.
그리고 이번엔 고양이 혼자서 주방에서 뛰쳐나온다.
난리네. 난리야.
"쟤네 맨날 저러니?"
"맨날은 아니고요. 종종."
"아항."
내가 모르는 집안의 풍경이야. 되게 정신없네.
근데 보기 좋다. 잘 지내는 거 같아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