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49화 (44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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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작업

고성연은 바라는 게 확실하게 있으니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다.

하지만 최신영. 저 여자는 모르겠다. 뭘 원하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알 수가 없어.

그저 이곳을 나가겠다는 생각뿐이다. 나가서 뭘 어쩌겠다는 계획도 없다.

내가 기억을 못 찾은 거겠지.

아무리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 해도 키워드를 모르면 읽을 수가 없으니까.

예전에 지연이에게 했던 것처럼 풀어놔 볼까? 예전보다 훨씬 능숙하고 세련되게 따라다닐 수 있을 텐데.

뭐가 됐든 쟤는 일단 놔두자. 이미 들끓었던 성욕은 고성연이 식혀줬으니 됐잖아.

아니다. 한 번 더 할까? 또 은근히 자지에 힘이 들어가는 데?

재워놓은 최신영. 얘도 이쁘장해서 보는 맛이 난다.

뭐…. 그러니 안 죽인 거긴 하지. 물론 매혹 스킬이 좋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수면을 당해서 자고 있는 여자. 그야말로 무방비한 모습.

손을 뻗어 만지려다가 그냥 거뒀다.

그리고 무효화를 뿌리고 빠르게 반사를 걸었다.

"으음…."

잔뜩 인상을 쓰면서 일어나는 최신영. 그리고 바로 앞에 서 있는 나를 보더니 흠칫 놀란다.

자신의 몸을 한번 살피더니 다시 나를 노려보는 여자.

"다시 아까랑 비슷한 상황이 됐네."

그러면서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나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갈색 눈동자.

아깝네. 이 여자가 사랑스럽게 바라봐주면 그것도 참 즐거운 일이 될 텐데.

하지만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으니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시작이 틀어진 관계는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었어.

그러기 위한 기억 삭제와 기억 조작 스킬이다.

나는 내심 그 스킬들에게 기대를 하고 있다.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바로 끼울 기회.

과연 영구적인 기억 삭제와 조작이 가능할 것인가?

안 좋았던 기억들을 마음대로 삭제하고 편집한 다음 내게 유리한 쪽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살려두는 여자다. 재료로는 최상의 재료잖아. 이쁘고 몸매도 좋고 성격은…. 뭐 잘 모르겠고.

질리지도 않고 나를 계속 노려보는 최신영. 나는 그런 그녀에게 한마디 했다.

"너 눈싸움 잘하겠다."

"하."

내 헛소리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한숨을 내쉰다.

그런 그녀에게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본다.

"야. 너는 원하는 게 뭐냐?"

"뭐?"

"너도 원하는 게 있을 거 아냐.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도 자살 안 하고 살아있는 거겠지."

나를 노려보는 게 한층 더 매서워졌다.

어차피 언젠간 지워버릴 기억이라고 생각하니 딱히 말조심하거나 배려를 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근데 이러다가 기억 삭제가 내가 생각하던 그런 스킬이 아니면?

뭐…. 어쩔 수 없지. 포기하는 수밖에.

아깝긴 해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네놈이 나한테 한 짓. 다 넘어가 줄 테니 날 풀어줘."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을 했는데?"

"진짜…."

뻔뻔한 나의 표정에 할 말을 잃은 듯 나를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본다.

"진짜. 뭐? 말해봐. 내가 너한테 뭘 어쨌는데."

"개자식아! 니가 밤마다 나한테 그런 짓 한 거 모를 것 같아!?"

"밤마다 뭐? 그런 짓이 뭔데? 자세히 좀 말한 다음 화낼래?"

내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약간 당황한 모습.

아마 내가 밤마다 수면 걸고 섹스한 것 때문에 저러는 거 같은데…. 내 반응을 보더니 긴가민가한 표정이 된다.

"크크크"

"놀리냐!"

내가 웃자 놀림당했다는 걸 알아챘는지 벌떡 일어나 내 뺨을 때리려고 손을 휘두른다.

근데 그걸 맞아주기엔 너무 엉성하다.

아무리 내가 격투기 같은 걸 안 배웠다고 하더라도 평범한 여자의 손 정도는 잡아챌 수 있다.

내가 팔을 잡아버리자 깜짝 놀라는 최신영.

그런 그 팔을 잡아당기자 내 쪽으로 와락 안겨 버렸다.

"그렇게 좋냐? 와서 안길 정도로 좋아?"

"놔! 놔! 이 새끼야!"

내게 안긴 채로 발버둥 치지만 뿌리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냥 힘으로도 안 되는데 나는 신체 능력 향상 패시브도 있잖아.

솔직히 이정도 여자라면 별다른 힘을 안 들이고 제압할 수 있어.

의자에 앉은 채로 최신영의 두 팔을 등 뒤로 모아 한 손으로 잡았다. 순식간에 꼼짝 못 하게 되자 당황하는 모습.

다리를 마구 발버둥 쳐보지만 내가 양쪽 다리로 두 다리를 꽉 잡자 결국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건 머리. 그런 머리를 마구 흔들면서 나에게 박치기를 하려 하길래 그냥 가만 놔뒀다.

아니 오히려 머리를 가져다 댔다.

제법 강하게 머리를 박고 아파하는 여자. 바본가? 지가 박아놓고 더 아파하면 어쩌자는 거야.

아파하는 머리를 만질 수도 없는 그녀에 비해 나는 한 손이 자유롭다.

나는 그런 손으로 최신영의 아파하는 머리를 손으로 비벼줬다.

"어우. 아프겠다. 호 해줄까? 호오."

"아으…. 치워! 개새끼야!"

"그래? 그럼 치우지 뭐."

그리고 손을 그녀의 배에 가져다 댔다.

아픈 도중에도 움찔하는 모습. 윗옷 안으로 손을 집어넣으니 바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빼! 이 새끼야! 빼라고!"

"빼라니…. 어우. 야하네."

"미친놈아!"

"빼라니까 더 넣고 싶잖아."

그러면서 손을 가슴까지 집어넣었다.

손에 스치는 브라. 그 위로 가슴을 움켜잡는다. 음. 역시 브라는 싫어. 이런 걸 왜 하고 다니나 몰라.

손을 빼서 윗옷과 브라를 잡고 위로 쑥 올려버렸고 이쁜 가슴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 마! 씨발! 하지 말라고!"

"아. 거참. 되게 땍땍거리네."

그대로 휙 밀어버리자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바닥에 무릎을 찍었을 텐데도 엉거주춤 일어나 옷부터 정리하는 모습.

그런 그녀에게 무효화와 매혹을 걸었다.

옷 안에 손을 넣어 브라를 내리던 최신영이 나를 보고 환하게 웃는다.

"너. 옷 좀 다 벗어봐."

"네."

내 말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옷을 훌훌 벗는다. 지체하거나 망설임 같은 건 없다.

그저 1분 1초라도 빨리 내 말을 들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을 테니까.

순식간에 알몸이 된 최신영. 나는 잠깐 일어나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잠깐 그거 몸 좀 부대꼈다고 자지가 빨딱 서 있다. 어휴. 그래. 뭐 이해한다. 너도 어쩔 수 없겠지. 똘똘이 새끼야.

"이리 와 볼래?"

"네."

눈에 하트가 들어있는 듯한 모습. 황홀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온다.

"앉아."

내 무릎을 턱으로 가리키자 재빨리 앉더니 나에게 안긴다.

"어떻게 해줄까?"

"가슴 만져주세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말하는 최신영.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뻔뻔하게 말하는 거 봐라.

매혹이 이렇게 무섭다니까.

손으로 가슴을 만져주자 몸을 잔뜩 움츠리며 야한 신음을 낸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내 자지에 손이 간다. 어느새 손으로 잡고 살살 흔들기 시작한다.

그런 그녀를 놔두니 알아서 자신의 보지에 슬슬 비빈다. 그리고 이미 충분히 젖은 보지에 바로 집어넣는다.

"아. 너무 좋아. 아아."

앉아있는 내 위에 올라타 몸을 꾸물거리는 여자.

몸 안에 들어온 나의 자지를 느끼면서 계속 쾌락에 들뜬 신음을 낸다.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나를 바라보더니 입술에 키스를 퍼붓는다.

마치 내 입술이 달콤한 사탕인 듯 쪽쪽 빨더니 자신의 가슴을 내 입에 가져다 댄다.

하하. 정말 끔찍한 스킬이야. 매혹은.

혼자 보기엔 아까운 장면이다. 그렇기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다.

맨정신의 최신영에게.

무효화를 쓰고 바로 반사를 썼다. 이 여자는 매혹만 조심하면 되니까.

내가건 매혹이 사라지자 한껏 느끼고 있는 상태에서 제정신을 찾는다.

바로 내 가슴을 거칠게 밀며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선다.

"하아…. 하아…."

잔뜩 느끼던 중이라 붉어진 얼굴. 거친 숨결.

아래쪽에선 야한 애액을 줄줄 흘리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가리려 애쓴다.

"쓰레기 새끼…."

"좋다고 신나게 느껴놓고선. 인제 와서."

"네놈이 이렇게 만들었잖아!"

"그거 알아? 매혹에 걸려도 상대에게 호감이 없으면 막 자기 스스로 안기거나 하진 않는 거?"

물론 개소리다. 매혹에 그런 게 어딨어. 그냥 상대방을 강제로 조종하는 거랑 마찬가진데.

하지만 내 말에 최신영은 상당히 동요한다.

어라 요것 봐라? 대충 개소리를 던졌는데 거기에 이렇게 덜컥 반응하면 어떻게 하냐?

이거 또 흥미진진해지네. 웃기는 상황이 됐어.

문제는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호감이 있는지 알 방법은 없다.

매혹으로 물어보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매혹은 이미 호감이 최대치라 물어보는 의미가 없지.

그렇다고 기억 읽기로도 무리다. 기억을 읽는 거지 감정을 읽는 건 아니니까.

고성연처럼 기억을 섬세하게 읽어볼까? 나에 대한 기억만 읽어보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나?

근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어차피 지워질 기억들.

이러고 있는 건 다 없던 일이 될 텐데.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를 챙겨 입었다.

내가 하는 걸 긴장하며 바라보는 최신영. 나는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그냥 순간이동 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뭐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고성연이랑 너무 열심히 했나? 현탐이 온 느낌이네.

내가 온 곳은 부산. 왜 다시 이리로 돌아왔는지는 모르겠다.

네 여자가 있는 벙커도 아니고 민희가 있는 의정부도 아니다.

왜 이리로 왔을까?

높은 건물 옥상에 앉아 물끄러미 레테의 본거지를 바라본다.

약간 붕 뜬 것 같은 기분.

천리안 숙련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가만히 백화점과 호텔을 지켜본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백화점과 호텔의 불빛은 휘황찬란하게 빛난다.

"이쁘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왜 갑자기 이러는 걸까.

중동에서 숨죽이면서 따먹을 여자나 찾고 다니던 나였는데.

이제는 이 여자 저 여자 죄다 집적거리고 다니면서 여기저기 정액이나 싸지르고 있다.

그리고 전혀 연고도 없는 이런 부산에서 사람들을 죽일 궁리나 하고 있고.

웃기네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방금 최신영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

내가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종잡을 수가 없어졌다.

이러고 있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스케일이 커져버린 생활.

부산 말고도 할 일은 많다. 중국도 마저 공략해야 하고 러시아도 가야 한다. 게다가 미국까지.

러시아. 모스크바 근처였는데. 어쨌든 거리로 6700킬로미터.

미국. 뉴옥. 여기에서 11,000킬로미터.

옆 나라인 중국 1,000킬로도 겁나 길게 느껴졌는데. 저쪽은 차원이 다르네.

어차피 한번은 다 가봐야 하는 곳들. 결국에는 들러야 하는 곳들.

그렇기에 하기 싫다거나 그런 건 없다. 다만…. 내가 너무 주제넘은 짓을 하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을 다 죽이지 않아도 지금 정도면 여생은 네 여자랑 이름 모를 섬 같은데 짱박혀서 느긋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힘든 건 아니겠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그럴 순 없다. 아마 그렇게 살더라도 내가 편안하게 못 살겠지.

겨우 잡은 우위다.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모두의 수준은 계속해서 올라갈 테니까.

그렇게 타이밍을 놓치면 결국은 나 혼자 뒤처져서 누군가에게 짓밟힐 게 분명하다.

적어도 이놈의 스킬이 뭐가 있는지는 끝을 봐야 해. 그래야 어떤 방법으로든 안전하게 살 방법을 생각할 수 있어.

이제는 어두워진 주변. 그제야 머리가 조금 맑아졌다.

갑자기 찾아온 현탐. 아니면 번아웃? 그래도 무난하게 넘긴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은근히 부담을 느끼고 있었나 보네. 하긴,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만큼 나는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잖아.

한 번 더 레테의 본거지를 한번 쓱 둘러보고 바로 의정부로 순간이동 했다.

밤이 늦었지만, 아직도 정리하고 있는 사람들. 한참을 둘러보다가 민희를 발견하고 다가갔다.

"금방 왔네요!?"

"틈나는 대로 들린다 그랬잖아."

"흐응."

"한번 실수했으면 알아서 기어야지."

내가 웃으면서 말하자 민희는 피식하고 웃는다.

"아. 잠깐 나 좀 볼래? 나 따라와 봐."

민희는 내 말을 듣고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나를 따라온다.

세상이 망하기 전엔 교주였고 세상이 망한 후에는 이사장이라 불렸던 놈의 방.

펜스가 된 이후로는 내가 쓰고 있던 그곳. 거기로 민희를 데려간다.

"여긴 뭐에요? 대장 방?"

"아. 내 방."

"어머. 대장이라고 불렸어요?"

"뭐라고 부르든 신경 안 쓴 게 정확하지."

"대장이라. 재밌네요. 생각해보니 나는 당신을 그렇게 많이 아는 게 아니란 말이죠."

"그건 나도 마찬가진데."

"에이. 나보다 더할까."

그러면서 팔짱을 낀다. 그리고 눈웃음치는 민희.

"여기 있을 땐 이방 써."

"흐음. 그거 말하려고 부른 거예요? 아니면 다른 뜻이 있거나?"

그러면서 살짝 야한 향기를 풍긴다. 비어있는 방. 둘만 있는 남녀. 색기 넘치는 여자.

무슨 일이 있을지는 뻔한 전개지만,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한번 토닥이고 말했다.

"아쉽지만, 또 나가봐야 해. 진짜 아쉽네."

"흐응. 유혹에 안 넘어오다니. 상처받았어."

"상처는 무슨. 유혹해놓고 내가 홀라당 넘어가면 자기가 먼저 튕기려고 그랬으면서."

"어머. 이젠 그런 것도 눈치채요?"

"언제나 야한 짓만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방금까지 바빠 보이던 여자가 그렇게 느긋하게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

"왜 할 수 없다고 생각하죠?"

그러면서 내 몸에 바짝 몸을 밀착하는 민희.

몸의 굴곡이 생생하게 전신에 느껴진다. 아. 이런 걸 보고 아찔하다고 하는 건가.

할까?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을 때 민희가 풋 하고 웃으면서 말한다.

"바쁘다면서요. 가봐요."

그러더니 한걸음 뒤로 물러난다. 방금까지 느껴졌던 야한 기운 같은 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모습.

이야. 진짜 요물이네. 요물이야. 아마 이 여자랑 붙어있으면 평생을 휘둘리다 살 것 같아.

"결국, 당했네. 하여간."

그렇게 민희와 키스를 한번 하고 손을 흔들며 순간이동 했다.

시야가 바뀔 때까지 남아있던 민희의 얼굴.

아. 이게 그건가? 데이트하고 집에 데려다줄 때 느낀다는 아쉬움이?

내가 뭐 느껴봤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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