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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작업
"그리고."
평소처럼 내가 휙 가버릴 거라고 생각한 서민준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웬일로 안 가시나요?"
"아직 시킬 게 더 남았으니까."
"그럼 그렇죠. 말해보세요."
"미국. 갈 수 있나?"
"미국요? USA? 아메리카 대륙요?"
"거기 말고 또 미국이 있어?"
"아니 갑자기 지구 반대편은 왜 가려는 거죠?"
얼굴에 또렷하게 나타나는 호기심. 하긴, 나라도 갑자기 미국이 나오면 저런 반응을 보이겠지.
"갈 수 있어, 없어. 대답이나 해."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최대한 빠른 시일에 여자 둘. 아니, 혹은 하나. 방법은 상관없어. 갈 수 있어?"
"미국이라. GPS가 안돼서 비행기나 배가 멀리 못가는 건 알고 있으시죠?"
"대호는 갔던데? 시간은 꽤 걸린 거 같더만."
"대호가요? 흠.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내일 올 때 답변 드리겠습니다."
눈썹을 살짝 실룩이며 말하는 서민준. 의외로 이런 거에 민감하게 반응하네?
대호가 했는데 우리가 못할 건 없다. 그런 건가?
"그래. 그리고."
"또요? 오늘은 용건이 많군요?"
"불만이야?"
"아뇨. 저야 당신이랑 오래 대화하면 좋죠. 말해보세요. 귀를 활짝 열고 듣고 있으니."
"아. 진짜 그러지 마. 그런 말투나 대화 내용 정말 싫어."
"제가 설마 당신이 싫어하는 걸 모르고 이런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빌어먹을 새끼."
잠시 녀석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다시 이야기한다.
"사토 히데모리. 그 새끼 스킬은 페이즈 아웃이랑 스킬 사용 불가 지대야. 둘의 효과는 알지?"
내 말을 들은 서민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한다.
"야쿠자라 그런가? 몸 쓰는 데는 어지간히 자신 있나 보군요."
"그래. 어떻게든 스킬을 못 쓰게 하고 주먹질이나 칼질로 해결하려는 거 같더라. 그거에 대한 대책은 알아서 해라."
"흐음…. 육탄전이라니. 야만적이네요."
"하지만 가장 확실한 대화수단이지. 상대를 납득시키는 가장 간편한 방법이고."
"의외네요? 당신은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할 것처럼 보이는데."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동경 같은 거지."
"아항."
그렇게 서민준이 대꾸하고 정적이 흐른다.
아. 이제 갈 시간이네. 어차피 할 이야기는 다 했으니까.
"갈 거죠?"
"어."
"내일 이 시간쯤 다시 오세요."
"싫어. 내 맘대로 올 거야."
"제가 없으면 어쩌려고요."
"그런 일 없게 일찍 와서 기다리고 있어라."
"저도 회장이라고요? 그렇게 여유 있는 사람이 아닌걸요."
"그 정도 여유도 못 만들어 내면서 무슨 회장이야. 간다."
애새끼나 할만한 억지를 부리고 바로 뒤돌아 걸어나간다.
뒤에서 작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해주자. 저 정도는 봐주지 뭐.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바로 반사부터 켠다. 그리고 블링크. 블링크. 블링크.
슬슬 녀석이랑 만나는 장소도 바꿔야겠네.
저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같은 걸 깔아버린 다음에 공기총을 갈겨버리면 내가 막을 방법이 없다.
저놈이 계속 내 장단에 맞춰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정보? 그런 건 나를 무력화 시키면 매혹으로도 얼마든지 캐낼 수 있다.
그래. 매혹이면 나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도 있지.
저놈은 유용하지만 완전히 믿을 수는 없어. 방심하면 안 돼. 신경 써야지.
블링크 한 건물 위에서 투명화와 비행, 천리안을 걸고 수원으로 간다.
미국. 괜히 물어본 건 아니다. 머릿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고성연. 그 여자의 사정.
기억 읽기 씨발…. 그때 고성연의 기억을 너무 깊게 읽었다.
신경 안 쓰려고 해도 아직 그때의 감정이 남아있다.
아들에 대한 그리움. 아무것도 못 하는 무력감.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
기껏 그렇게 외면하려고 했는데도 쉽게 떨쳐 지지가 않는다. 흡사 마음속에 주박이 걸린 것처럼.
그렇게 도착한 수원.
이제 남양주에 있는 캐슬의 집무실은 더 필요 없지. 비행장을 그 자리에 저장했다.
그리고 탐지. 두 여자의 기척이 느껴지는 걸 확인하고 페이즈 아웃을 쓴다.
벙커 안으로 들어간 나는 반사만 쓰고 발소리를 일부러 내며 걸어갔다.
여전히 인공 정원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최신영.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나에게 강간당하고 눈앞에서 오빠까지 죽는 걸 본 여자.
나를 바라보는 눈빛. 생기 없던 그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그리고 떠오르는 표정. 또렷하게 나타나는 원망과 증오.
나는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최신영. 약간 야위었나?
"앉아. 뭐하러 일어서."
"너…."
"안 앉을 거면 가서 고성연이나 데려와라."
내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아버린다. 하. 어처구니없네. 반항기야?
"고성연!!!!"
나는 크게 소리치고 최신영의 맞은편에 앉았다.
매섭게 나를 노려보는 모습. 이런 시선이야 익숙하니 뭐 상관없다.
이 여자는 나를 어떻게 할 순 없잖아.
해봐야 수납에서 날붙이 같은 걸 꺼내서 나를 찌르는 방법밖에 없는데…. 그 정도에 당할 거라면 나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겠지.
잠시 있으니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바깥으로 나오는 고성연.
여전히 운동복 차림.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딱 붙는 스판 재질의 분홍색 상의와 회색 레깅스.
역시 몸매 좋네. 눈이 즐거울 정도야.
"와서 앉아."
내 말을 들은 고성연은 차가운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샤워하고 올 테니 기다려."
그리고 돌아서는 여자. 캬. 방금 조금 설렜다.
민희와는 또 다른 도도함.
완벽하게 상대를 깔아보는 말투와 눈빛. 자신의 처지가 어떻든 할 말은 한다는 태도.
그저 매혹을 걸지 않았을 뿐인데 이렇게 사람이 달라질 줄이야. 이거…. 흥분되는데.
고성연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성연의 방 쪽으로 향했다.
그런 나를 보며 최신영이 조용히 중얼거린다.
"쓰레기 새끼."
그런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고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오지랖 넓은 아가씬 잠시 자고 있으라고.
벌컥 하고 방문을 열자 알몸의 고성연이 나를 벌레 보듯이 바라본다.
슬그머니 자신의 가슴과 아래를 가리는 모습. 그런 모습이 더 꼴린다.
나도 모르게 발기되는 자지.
와. 사람을 순식간에 짐승 새끼로 만드네. 역시 이 여자가 미시 최강인가?
"꺼져."
나에 대한 혐오감이 짙게 배어있는 말투.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기개는 좋았으나 그런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눈빛 역시 마찬가지.
그런 거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너…."
내가 손을 뻗으려고 하자 팔로 내 손을 쳐낸다. 그리고 나는 그런 그녀의 팔을 잡았다.
내 손을 빼내려는 고성연의 반대 손. 그쪽 팔도 잡고 팔을 위로 올렸다.
무방비하게 두 팔이 만세 포즈가 되고 훤히 드러나는 가슴.
발로 나를 차기 위해 발버둥 치려 했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침대로 밀어 버렸다.
"짐승…. 새끼…."
배 위에 올라타 팔을 침대에 붙이자 이를 악물고 나를 밀어내려 한다.
하지만 지금 자세에서는 이 여자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저 무의미한 발버둥. 고성연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땀내가 은은한 향수 향이랑 섞여서 묘한 자극을 준다.
힘으로 이기지 못하면서도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여자.
나는 그런 여자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미국…. 가고 싶지 않아?"
내 말에 거짓말같이 발버둥이 멈춘다.
지금 이 여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
미국은커녕 밖에도 못 나가게 갇혀있지만, 머릿속으로는 한시도 잊지 않고 있는 것.
"미국 가서 니 아들. 너 스스로 찾아보고 싶지 않냐고."
그렇게 말하면서 고성연의 잡은 팔을 놨다.
팔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여자는 내 말에 사로잡혔다. 꼼짝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정말로 이뤄질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이 여자가 내 말을 거절할 수는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데. 니 아들이 있었던 뉴욕. 맨하탄의 165 찰리 스트리트. 거기로 보내줄 수 있다고."
커지는 고성연의 눈. 그리고 물기 어린 눈빛.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그녀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인다.
하. 이런 걸 악용해서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정말. 나는 내가 생각해도 씹쓰레기 새끼야.
"가고 싶어? 언제든지 보내줄 수 있는데."
부들거리는 그녀의 손이 얼굴을 덮는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어떤 마음일까? 정말로 가고 싶은 곳. 하지만 그걸 보내줄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시아버지와 남편을 죽인 남자다.
아무리 최씨 일가에 악감정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죽인 남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여자는 그런 걸 생각할 정신 같은 것은 없다.
광기와도 같은 집착. 그녀가 이를 악물고 운동을 하는 이유.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고성연의 몸 위에서 일어나서 침대 앞에 섰다.
자신의 얼굴을 가리던 손을 내리고 눈물을 훔친 채 몸을 일으키는 여자.
그리고 눈빛. 자기 아들을 찾을 수만 있다면 어떤 짓이라도 하겠다는 각오가 담긴 모습.
내 바지춤을 풀고 속옷을 내린다. 이미 단단하게 발기돼있는 자지.
눈을 질끈 감더니 그걸 입안으로 넣는다. 마치 벌레를 입에 넣는 것처럼.
하하. 내가 생각해도 정말 개쓰레기같은 짓이네.
뭐, 상관없다. 이건 전부 지워질 기억들.
원래대로라면 기억 삭제를 배운 다음에 해야 할 짓이었다. 어차피 기억을 지워버리면 무슨 쓰레기 짓을 해도 다 없던 일이 되니까.
조금 이르지만, 미리 알아두고 싶었다. 과연 그만큼 미국엘 가고 싶은지.
미국. 언젠간 가야 할 곳. 미리 선발대를 보내서 맵을 밝혀 놓는 것도 좋을 거다.
비록 스킬은 세 개밖에 없는 여자지만 알짜배기 스킬들만 가지고 있는 여자.
게다가 매혹이 있다. 불리함 같은 것은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는 스킬.
광역 스킬 무효화만 들고 있다면 어떤 남자들도 노예로 만들 수 있잖아.
쭙 쭙 쭙
증오와 갈망을 품고 있는 여자가 나의 자지를 빨고 있는 소리.
그다지 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상황 자체가 자극적이다.
게다가 이 여자는 의외로 열심히 하고 있다. 이게 자신이 미국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걸 아니까.
한참의 펠라 끝에 느껴지는 사정감. 고성연의 뒷덜미를 잡고 목구멍까지 깊숙이 찔러 넣은 뒤 마음껏 사정한다.
"콜록. 콜록. 콜록."
기침하면서 내 정액을 뱉어내는 여자.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고성연을 침대에 밀었다.
나를 바라보는 복잡한 눈빛.
입가에 묻은 침과 정액을 손등으로 닦으며 아직 빳빳하게 서 있는 자지로 시선이 내려간다.
바로 다리를 벌리고 자지를 그녀의 보지에다가 밀어 넣는다.
약간만 젖어있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금방 젖게 돼 있어.
필사적으로 이를 악물고 신음을 내지 않기 위해 참는 여자.
하지만 오히려 그게 더 꼴린다. 섹스와 강간 사이의 그 무언가. 배덕감과 쾌감이 동시에 느껴지는 행위.
"으윽…."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신음. 하지만 역시 참는 모습.
그런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잡는다. 탄력적인 가슴. 손안에 가득 들어오는 풍만함.
이 여자의 만족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은 그저 내 성욕만 풀면 되는 편한 섹스.
퍽퍽 소리와 윽윽 거리는 고성연의 목소리만 들린다.
웃긴 건 이 여자도 약간씩 느끼고 있다는 거다.
굶주려 있던건 어쩔 수 없겠지. 아무리 거지같은 상황이라도 몸에 느껴지는 쾌락은 막을 수 없다.
머리로는 어떻게든 부정하겠지만, 몸은 그렇지 않다. 파들파들 떨리는 몸. 젤리처럼 흔들리는 가슴.
매혹을 안 쓰고도 함락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내 관뒀다. 어차피 지워질 기억. 굳이 그렇게 귀찮은 짓을 할 필요는 없지.
바라는 게 확실한 여자긴 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다. 스킬이 더 편해. 귀찮아.
게다가 잘못 꿰기 시작한 단추는 어떻게 해서든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다.
이미 그건 충분히 알고 있잖아? 많은 경험으로?
몇 번 더 허리를 흔들고 다시 올라오는 사정감을 느낀다.
두번째인데도 금방이네. 역시 떡감이 좋아.
질 안쪽에 정액을 왕창 써재끼고 그대로 자지를 빼내 고성연의 허벅지에 쓱쓱 문질렀다.
숨을 헐떡이며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고성연.
아. 씨발…. 존나 이쁘네. 아니 이쁜 것도 이쁘지만 매력적이야.
어디 가서도 이런 분위기는 못 느끼지. 최신영 저 여자가 한 다섯 살 정도 더 먹으면 이런 분위기가 날까?
"내일 다시 올 거니까 준비하고 있어."
내 말에 죽은 동태 눈깔 같던 그녀의 눈에 총기가 떠오른다.
"바로…. 미국을 갈 수 있어?"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피식 웃었다.
"장난해? 그냥 그대로 가서 아들을 찾기는커녕 그냥 죽으려고?"
내 말에 급속도로 실망하는 여자. 약간의 속았다는 표정.
"걱정 마. 미국은 확실히 보내줄 테니까. 가서 바로 죽지 않게 준비할 게 있으니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아직 의심을 거두지 않는 모습. 하지만 기대감 역시 사라지지 않았다.
저 이글거리는 눈빛. 무섭긴 하네. 근데 저건…. 기억 삭제로 지워지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