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47화 (44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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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작업

두 시간 동안 서면에서 지켜본 결과 얻은 건 딱 하나다.

아무것도 건질 게 없다는 사실.

상당히 조용한 곳이다. 아무런 움직임도 별다른 이상도 없다.

이놈들은 아직 남양주로 간 녀석들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는 거 같다.

만약 알았으면 뭔가 소란이 있었겠지. 아니…. 있었다고 해도 밖에서는 알 수 없겠지만.

페이즈 아웃을 써서 들어가 볼까 했는데 상당히 꺼려진다.

저 안에는 야쿠자의 왕. 사토 히데모리가 있다. 그리고 그놈의 일당들까지.

페이즈 아웃과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쓰는 놈들.

아. 진짜 제일 싫어. 모든 스킬 중에서 저 스킬 두 개가 가장 싫다.

페이즈 아웃을 존나게 잘 쓰고 있는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막말로 사토 새끼가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안에서 가만히 있으면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굶어 죽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 근데 또 부하들이 있으니 그것도 쉽지 않을 것이고.

공기총을 믿어봐? 하지만 그것도 만능은 아니다.

방탄복 같은 걸 입고 돌진하면 결국은 내가 당할 거야.

방탄복이 없는 머리만 노려서 헤드 샷을 날릴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게 되겠냐고.

결국, 저 안은 내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괜히 들어갔다가 발각이라도 돼서 건물 전체에 스킬 사용 불가 지대가 깔리면 나는 그대로 갇혀서 사냥당하게 될 거다.

끔찍해.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게다가 녀석들도 나의 능력을 알기에 방심할 리 없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깔아버리겠지.

녀석들을 튀어나오게 할 방법이 필요해.

뭐가 있을까?

스킬로 뭔가를 할 방법은 없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그런 스킬이니까.

스킬이 아닌 것들을 생각해봐야 해. 으음….

싸그리 불 질러버릴까? 쉽지 않겠지?

소방 시설도 다 있으니 활활 타도록 놔두진 않을 거다.

바닷물을 들이 부어버려?

근데 그건 별 효과가 없지 싶다. 귀찮게 만들 수는 있을 텐데 살상력은 없지.

아. 민희에게 받은 전염병들. 이걸 물탱크 같은데 풀어버릴까?

근데 물탱크가 어딨지? 옥상에 있으려나? 아니지. 물 무게가 있는데 지하에 있을까? 뭐가 됐든 이건 민희에게 한번 물어봐야겠다.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네. 근데 어차피 질병 해제를 써버리면 아무런 효과가 없잖아?

따까리 놈들이나 치료가 늦어져서 죽을 수 있을 테지만 윗대가리들을 질병으로 죽이기는 쉽지 않을 거다.

으음…. 그래서야 의미가 없지. 그래도 일단 이건 킵.

가장 좋은 건 집단과 집단을 서로 싸움 붙이고 중간에 껴서 뒤통수를 치는 건데.

이놈들은 이미 부산의 패자다. 이 근처에는 이놈들을 공격할 만큼 강한 놈들은 없을 거야.

레테하고 사토 그 새끼가 서로 싸우면 가장 좋은데.

그렇게는 안 되겠지? 쉽진 않을 거야. 이건 공을 들인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외부 세력. 그것도 레테 정도에 비빌 수 있는 세력.

일본에 있는 절대 강자인지 뭐시기 놈들 중에는 사토랑 원한 있는 놈은 없나?

있으면 좋을 텐데. 근데 또 외부인을 끌어들이는 건 할 짓이 못되네.

레테랑 사토가 서로 싸우게 하는 것보다 힘들겠어. 실현하기 쉽지 않은 일이야. 이것도 패스.

잠깐…. 있잖아? 레테랑 비빌 수 있는 세력.

그것도 내가 아는 놈. 게다가 국내에 있어.

서민준. 그래. 이제는 SG의 회장이 된 녀석.

게다가 이유도 있다. 이번에 부두목 놈의 기억에서 읽어낸 것. 그거면 되겠네.

좋은 생각이 났으면 바로 해야지.

일단 바로 벙커로 돌아간다.

두 시간 뒤에 돌아간다고 했으니 일단 벙커로 가야지.

"왔어!?"

내가 벙커로 가서 밖으로 나가자 세아가 바로 나에게 다가온다.

"두 시간 동안 13만 코인 나왔네."

"그걸 세고 있었어?"

"뭘 세. 지금 가지고 있는 코인에서 두 시간 전 코인을 빼면 되잖아."

"아. 그렇네."

"바보야?"

"으악. 오빠한테 바보 소리를 듣다니! 자존심 상해!"

"그게 왜 자존심 상하지? 너 좀 이상해."

"으악. 오빠한테 이상하다는 소리를 듣다니! 자존심 상해!"

"어휴. 됐다. 암튼. 넌 테이밍 숙련이나 해라. 두 시간에 13만이면 일단 테이밍 숙련하는 게 낫겠다."

"근데 그럼 그 까마귀는?"

"음…. 테이밍 한번 하면 너랑 사이가 좋아지나?"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뭐, 알아서 해. 어차피 까마귀야 어디서든 잡을 수 있겠지. 그냥 여기서 다른 거 테이밍 해버리면 그 까마귀들은 알아서 테이밍 풀리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맘대로 해."

"으음. 알았어."

바로 파티를 풀었다. 세아는 테이밍 숙련을 하러 갔고 나는 여자들에게 다시 나간다고 말하고 이번엔 청주로 향한다.

SG 센터.

확실하게 봐도 사람들이 줄었다.

잡아 죽인 효과가 이제야 나오는 건지, 아니면 오면 죽는다는 소문이 돌아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소문이 안 돌 수가 없지. 생필품이 목숨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

찝찝하면 몸을 사리는 게 맞겠지.

서민준은 대충 이 시간엔 항상 있다고 했으니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쓴다.

역시나 있는 녀석.

이제 고개를 돌리겠지? 저 새끼는 내가 오는 걸 항상 귀신같이 알아낸단 말야.

"오셨군요."

거봐. 저 새끼. 저거 웃는 거봐라. 왜 저놈은 남자를 보고 웃을까. 저거 완전 위험한 새끼야.

"작작 좀 웃어라. 왜 웃냐? 세상이 즐거워?"

"당신을 보니 반가워서 그렇죠."

"어우. 씨발. 그러지 마. 니가 여자였으면 모를까 남자한테 그런 소리 들으면 미쳐버릴 거 같아."

"그런 반응을 보이면 안 할 수가 없잖아요."

"미친놈. 그냥 간다?"

"저한테 볼일 있어서 온 거 아니에요? 그냥 가시면 아쉬운 건 당신일 텐데?"

교활한 새끼. 눈치 빠른 새끼. 하여간 저 새끼는 오래 살 거야.

"야. 너 조재진이라고 아냐? 레테의 조재진."

"조재진이요?"

그렇게 반문하는 녀석의 눈썹이 찡그려진다.

저렇게 대놓고 싫어하는 표정을 짓다니. 의외네.

"그 새끼 기억 읽으니까 너도 나오던데. 서로 아는 사이 아냐?"

"아는 사이는 무슨…. 그딴 쓰레기랑은 엮이고 싶지 않아요. 근데…. 기억을 읽다니요? 무슨 소리죠?"

"그런 게 있어. 암튼 그 조재진이는 죽었다."

"그놈이 죽는 거야 알 바 아니고요. 그 기억 읽기나 뭔지 알려주세요."

"궁금하냐?"

"당연하죠. 뭔가 심상치 않은 스킬 같은데요."

"그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라."

"하아. 또 부탁입니까."

"싫어?"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표정이 약간 처량하다.

웃기는 놈. 저건 다 연기일 거야. 저 새끼는 항상 저런 식이지. 감정 과잉이 너무 심해.

"말해보세요. 어차피 저는 하게 되겠지만."

"그래. 그렇게 바로 수용하는 자세 좋아. 너한테도 손해 보는 거 아냐. 다 거래라고. 그 정도는 맞춰준다니까?"

"당신. 아무리 봐도 사기꾼 같은 말투인데요."

"그런가? 하지만 지금껏 니가 손해 본 적은 없잖아?"

그래. 이게 저 녀석과 내가 대화가 되는 이유다.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관계. 내가 일방적으로 녀석을 이용하지만, 녀석에겐 콩고물이 두둑하게 떨어진다.

그러니 성립되는 관계. 철저한 비즈니스적 마인드.

"근데 사기꾼들이 보통 이렇게 조금씩 이득을 주면서 꼬시다가 마지막에 크게 한탕 하잖아요?"

"아. 거참. 사내새끼가 말 더럽게 많네."

"에휴. 말해보세요. 듣고 있으니까."

웃기는 대화다. 저놈이랑 대화하면 항상 나는 되게 남자다운 듯이 말한다.

약간 콤플렉스 같은 걸지도? 스킬 말고는 저녀석 보다 더 나을 것 없는 내가 센 척하는 느낌이야.

"대호 그룹도 씹어 삼킨 SG그룹의 회장님은 레테에 관심이 없나?"

"레테요. 거긴 뭐 그렇게 먹을 게 없는 데요."

"없어? 왜?"

"왜냐니요. 거기는 무역과 거래를 중점으로 하는 곳이에요. 거길 얻는다 하더라도 그들의 거래처를 얻는 건 아니니까요. 그러니 레테가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고요."

"그런가? 말을 들어보니 언제든지 잡아먹을 수 있었다는 투네?"

"그렇게 쉽진 않았겠죠. 하지만 대호보단 쉬웠을 겁니다. 그만큼의 노력을 해서 얻을 게 없으니까 안 한 거고요."

"흐음. 그래? 그럼 이야기가 안 되겠네. 쩝."

"근데 레테는 왜 갑자기?"

서민준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래. 사실 레테를 쳐죽일 이유 같은 건 없다. 그저 고영준을 잡다가 엮였기에 마저 때려잡는 것일 뿐.

물론 위협이 되는 놈들이니 언젠간 잡아 죽여야 하는 건 맞지만…. 또렷한 이유는 없다.

음…. 뭐라고 대답하지? 딱히 할 말이 없네.

"거슬려서."

"거슬린다고 그냥 다 잡아 죽이는 겁니까?"

"내 맘이야."

"어휴."

"너 한 번만 더 한숨 쉬면 입 찢어버릴 거야."

"찢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어쨌든 거슬린다면 한숨은 쉬지 않을게요."

저 새끼 저거 은근히 한마디도 안 진단 말이지. 그러면서 하라는 대로는 다 하고.

그러면서 잠시 생각하는 듯한 녀석.

난 잠자코 녀석을 바라봤다. 그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윙크를 한다.

"미친놈 아냐?"

"당신의 그런 반응이 재밌어서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

"미친놈 맞아. 너는."

"음. 하죠. 레테."

"엥? 뭘?"

"레테를 끝낸다는 거 아닙니까?"

"맞아."

"그거 하자고요."

"어? 왜?"

"아니. 당신이 하자면서요. 그걸 왜 저에게 물어봅니까?"

"별로 얻는 이득은 없다면서. 근데 왜 갑자기?"

"저도…. 처치 곤란인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겸사겸사 처리하면 되겠네요."

"처치 곤란인 사람?"

"네."

"누군데?"

"궁금해요?"

그러면서 씨익 웃는 녀석. 와. 새끼. 은근슬쩍 자신의 페이스로 몰고 가네. 교활한 새끼. 어휴. 넘어가 준다.

"어."

"그럼 다 들으면 거기에 상응하는 정보를 알려주겠죠?"

"그러자."

"얼래? 너무 간단하게 대답하는 거 아닙니까?"

"말했잖아. 그만한 대가는 준다고."

"으음. 재미없네요. 너무 그렇게 빨리 수긍해버리면 재미없는데."

"뭐라는 거야. 뭐 어쩌자는 건데."

"아니에요. 으음. 처치 곤란인 사람들은 좀 있죠. 아버지와 형님의 사람들. 대호에서 넘어온 사람들. 은근히 제게 시비 거는 사람들."

"왜 그런 놈들을 다 안 죽이고 아직 품 안에 끌어안고 있는 거야?"

"하아. 아. 한숨 쉬지 말라고 했죠. 미안해요.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이라."

"너 은근히 나한테 꼽주는 거 같은데."

"맘에 안 든다고 명분 없이 사람들을 팍팍 죽여서는 아무것도 안 돼요. 저는 리더지 백정이 아닙니다."

녀석의 말. 옳은 말이다.

그래. 명분. 아주 중요한 거지. 뭔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 특히 저놈처럼 큰 조직을 이끈다면 더없이 중요한 것이다.

상당히 귀찮고 번거롭지만, 꼭 필요한 거잖아. 저게 없으면 아무리 유리하다고 해도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다.

"그럼 레테를 치는 건 명분이 있나?"

"그건 이제 만들어야죠."

"다행이네. 그 명분은 내가 만들어 줄 수 있어서."

"네?"

"레테는 일본에서 절대 강자라고 하는 놈 중에 야쿠자의 왕이라는 놈을 한국에 들였어. 그리고 그 이유는 니들을 치기 위해서고."

내가 그 야쿠자 부두목 놈의 기억을 읽은 게 그거다.

녀석들이 크루즈를 타고 잔뜩 한국으로 넘어온 이유.

단순히 마약난교섹스파티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온 게 아니다. 그건 그저 애피타이저일 뿐. 진짜 목적은 그거였다.

"일본…. 절대 강자. 들어본 적 있습니다. 레테가 그런 이유로 그들을 들였다고요."

"어. 그 야쿠자의 왕이라는 놈. 이름은 사토 히데모리. 그놈의 부두목 놈을 조져서 알아낸 정보야. 그러니 정확한 정보라는 거지."

"그 정보. 더 있습니까?"

"있지."

나는 호텔과 크루즈의 일을 전부 다 이야기해줬다. 추가로 기억 읽기 스킬의 효과까지.

내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듣는 녀석. 눈이 반짝반짝 하는 게 무슨 영웅담을 듣는 꼬마 아이 같은 모습이다.

"이야…. 정말. 당신이랑 알고 지내면 평생 심심하지는 않을 거 같네요."

"이정도면 되겠냐?"

"물론이죠. 됩니다. 되고 말고요. 이정도 소재가 있으면 얼마든지 스토리 텔링이 가능하겠네요."

"재밌어하는 거 같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런 걸 듣고 어떻게 재밌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언제면 되겠냐?"

"일단, 내일 이 시간에 다시 오시겠어요?"

"내일? 그렇게 빨리?"

"사안이 늦장 부릴 사안은 아니니까요."

"뭐, 빠르면 나야 좋지. 아. 그리고."

"네?"

"거기 가는 놈들은 다 죽는다고 생각해라. 죽어도 되는 놈들만 보내라고."

"물론이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히려 제가 고맙죠. 다 죽어준다면야."

저 새끼. 저거…. 괜찮나 몰라. 아무리 생각해도 저놈은 살려두면 나중에 내가 피곤해 질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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