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46화 (446/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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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작업

일단 바로 의정부로 순간이동 했다.

다소 소란스러운 옛 펜스의 부지. 이제는 캐슬이라고 불러야 하나? 혼란스럽네.

몇 명에게 물어본 뒤에야 민희를 찾을 수 있었다.

시설들을 둘러보고 있던 민희는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맞이한다.

"잘 해결됐어요?"

"어. 일단은. 이제 시작이지만."

"당신이 무사하면 됐죠."

담담한 듯 걱정해주는 그녀의 마음이 느껴진다.

나 때문에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하게 됐는데도 불평불만 없이 움직여 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고마운데 말이지.

"근데. 여기는 진짜 체계가 잘 잡혀있었네요. 시설 배치나 흔적만 봐도 상당히 효율적으로 배치되어있어요. 깔끔하고."

"그래? 하긴. 정 부장이 그렇긴 하지."

"정 부장?"

"여기는 원래 펜스라는 곳이었어. 거기를 이끌고 있는 게 정 부장이라는 사람이고. 내가 몇 번 이야기 했잖아?"

"아. 그래요. 펜스는 들어봤죠. 캐슬의 전신이잖아요."

"그러고 보니 정 부장도 정 씨네. 혹시 오빠나 사촌 오빠 있는 건 아니지?"

"없어요. 사촌은 언니만 있는데."

"그래? 하긴 세상에 정씨가 한둘이겠니. 그럼 지금은 시설 돌아보는 거야?"

"네. 뭐가 있는지,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는 알아야죠. 바로 생산을 이어서 해야 하니까."

"당분간 바쁘겠네. 주변엔 아무것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경계는 소홀히 하지 말고."

"안 그래도 도현이가 나갔어요."

"그래? 걔가 갔으면 뭐 어느 정도는 괜찮겠지."

그럼 여기는 됐고.

"가려고요?"

나에게 물어보는 민희. 내가 그렇게 티를 많이 내나?

"응. 말했잖아. 이제 시작이라고."

"당신에게 느긋함이 생기는 날은 언제쯤 될까요?"

"글쎄. 나도 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네."

내 말에 약간 쓴 미소를 짓는 민희.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가볍게 포옹한다.

"다녀와요. 몸조심하고."

민희의 말은 약간 뭐라고 해야 할까. 자신의 소망이 투영된 것 같다.

그저 일반적인 인사일 뿐인데. 꼭 다시 오라고 당부하는 느낌이다.

도도한 여왕님 같던 그녀가 미묘하게 의존적으로 된 거 같아.

"알겠어. 틈 나는 대로 들릴게."

그렇게 말하고 바로 벙커로 순간 이동했다.

오자마자 바로 탐지를 돌렸고, 역시 밖에 나가 있는 네 여자가 느껴진다.

얘들은 요즘엔 집에 붙어있는 날이 별로 없네.

내가 나가자 세아가 바로 나를 보고 말했다.

"오빠. 이거 코인이…."

"아. 파티 풀려서 너한테만 들어오고 있지?"

"이래도 돼? 나 지금 800만이 넘었어!"

"그래도 돼. 코인 아직 들어오니? 이제 슬슬 그만 들어올 때 안됐어?"

"아직 가끔 들어와. 막 몇만씩."

"거기 있던 놈들이 어설픈 놈들은 아니었으니까. 일단 초대받아."

파티를 만들어서 세아에게 초대를 한 다음 승희랑 미나, 안나에게도 초대를 준다.

그렇게 파티를 만들자마자 2만 코인을 얻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야. 이거 정말 좋네.

"자. 그럼…. 게이트 타자."

"또 어디 가요?"

승희가 물어봤고, 나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코인 주울 곳은 많으니까."

일단 부산. 크루즈에 얼마나 남아있는지 봐야지.

"잠깐 있어 봐."

먼저 크루즈 근처로 간 다음 탐지로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는 기척. 차마 코인을 수거할 생각은 못 하는 건가? 하긴 그게 쉽진 않겠지.

물에 잠수하는 건 스킬로도 어떻게 안 되니까.

"아무도 없네. 안나 와서 코인 탐지 써봐."

"네."

"세아도 이리와. 둘이 위치 확인해서 남은 코인들 마저 회수해 봐. 얼마나 남았어?"

"잠시만요. 한 서른 개…. 정도 남은 거 같은데요."

"그래? 거의 다 먹긴 했네. 물고기들 제법 쓸모 있어. 그거 위치들 다 파악해서 회수해 봐. 최대한 빠르게."

"알았어요."

"응."

역시 생각해보면 테이밍과 코인 탐지는 한 사람이 가져야 할 스킬이 맞다.

둘이 대화가 통하게 됐다 하더라도 위치를 정확하게 표시해주는 건 쉽지 않잖아.

안나도 코인 탐지를 마스터 하면 테이밍을 배우라고 해야하나?

안나가 지금 티어11. 데스 윈드는 티어16. 배워야 할 스킬은 독무와 출혈만 있으면 되니까 여유가 있어.

근데 또 방어막 깨는 스킬도 하나 배워야 하는데. 으음. 일단 코인 탐지 숙달하면 생각해봐야겠네.

코인 찾는 건 생각보다 빠르게 금방금방 진행된다.

아마도 물고기를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고 어느 정도는 알아서 움직이니 이런 게 가능한 거 같다.

물고기가 기억력 3초니 이런 소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멍청하거나 한 건 아니니까.

그렇게 한 30분이 지나자 세아와 안나가 끝났다고 말한다.

"고생했어. 60만 정도 더 들어왔네."

"이제 뭐 하면 돼?"

코인 맛을 알아버린 세아가 눈을 반짝이고 물어본다.

크크. 그래.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지. 얼마나 재밌고 신나겠어. 효과가 바로바로 나오는데.

"자. 그럼. 다음 지역으로 가자."

"다음 지역?"

"다음 지역요?"

나는 대답대신 게이트를 열었고 네 여자는 바로 게이트를 탄다.

"어. 여기는…."

미나가 중얼거렸고,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우한이지. 지금 역병은 얼마나 됐어?"

"역병요. 420만요."

"420만?"

"네."

"어우. 많이 퍼졌네. 그럼 어지간히 죽었다는 소린데."

"그렇죠. 치사율이 제법 높았으니까."

"근데 아직 짱개놈들에겐 티도 안 난다는 게 슬프네. 10억 중에 420만이라고 해도 0.4퍼센트 밖에 안 되는데."

"저는 이제 숫자 감각이 없어요."

"아무튼, 미나는 여기 머물 때랑 벗어난 다음에는 항상 질병 해제 좀 계속 걸어줘. 알겠지?"

"네."

그리고 세아와 안나를 바라본다.

"세아랑 안나는 여기서도 똑같아. 일단 물고기 한 마리부터 테이밍 하자."

"한 마리? 세 마리가 아니고?"

"어. 두 마리는 까마귀 할 거야."

"아아. 알았어."

다 같이 내려가 물고기 한 마리를 테이밍 한다.

그렇게 양쯔강에 바닷물을 섞었지만, 그런 건 티도 안 나나 보다.

강은 다시 유유히 흐르고 크게 변한 것은 없어보인다.

우한의 도시가 물이 차 있을 때는 물고기만 했어도 크게 문제가 없었을 거다.

전부 물에 휩쓸려서 물 밑에 코인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제는 거의 물이 빠졌고 물 밑에 있는 것도 많이 주웠을 거다.

차라리 역병으로 죽은 녀석들의 코인을 줍는 게 더 빠르겠지.

[1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10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지속해서 들리는 코인 획득 메시지.

100코인이라니. 500코인이 다섯 명에게 나뉘어서 들어오니 그런 거겠지?

메시지 하나에 짱개 하나라고 생각하니 조금 기분이 이상하다.

휩쓸리며 코인을 먹을 새도 없이 죽었다는 거잖아.

"자. 물고기는 이제 놔두고. 까마귀 한번 찾아보자."

안나의 동물 탐지에 의지해 주변을 돌아다녀 본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찾았고, 세아는 바로 두 마리를 테이밍 했다.

"와. 생각보다 귀여운데?"

테이밍한 까마귀를 보면서 맘에 드는지 계속 바라보는 세아.

"색깔이랑 이미지 때문에 평가가 안 좋아서 그렇지 까마귀는 멋진 새라고. 영어 이름도 봐. 크로우잖아. Crow. 얼마나 멋져."

"그럼 얘들도 코인 주우라고 시키면 되는 거야?"

"어. 아. 근데 그거 한번 해봐. 소환이랑 전송."

"그건 왜? 렉스로 많이 해봤는데."

"아. 그래? 안 보이는 곳도 할 수 있어?"

"안 보이는 곳? 어디?"

"벙커에 있으면서 여기 중국까지 보낼 수 있냐고."

"그정도로 멀리는 안 해봤는데."

"해봐. 지금. 바로. 벙커로 보내봐."

"벙커로…. 잠시만. 음. 전송."

까마귀 한 마리가 사라졌다. 와우. 신기하네.

"세아 완전 마술사네. 다음엔 모자에 넣고 보내. 어디로 보냈어?"

"벙커 마당으로요."

나는 게이트를 열었고 바로 벙커로 가서 마당으로 나가봤다.

땅바닥에 멀뚱멀뚱 서 있는 까마귀. 주변의 렉스와 들개들이 깜짝 놀라 경계하고 있는 모습.

다시 우한으로 순간 이동하고 여자들이 있는 쪽으로 블링크 했다.

"다시 불러봐."

"소환."

다시 나타난 까마귀. 렉스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을까?

갑자기 눈앞에서 경계하고 있던 까마귀가 뿅 하고 사라졌으니까.

"잘 되네."

"근데 이건 왜?"

"아. 까마귀들도 질병 해제 해 줘야지. 역병 걸릴 수 있는데."

"아아. 오빠 진짜 치밀하다. 그런 걸 다 신경 쓰냐."

"조류 독감 모르냐? 괜히 골치 아픈 것보단 낫지."

"아니. 근데 여기 중국에서 조류 독감 옮기는 건 상관없잖아."

"어. 그렇긴 하지. 근데 까마귀가 죽으면 또 테이밍 하러 와야 하잖아."

"한국에서 잡아서 여기로 보내도 되지."

"아. 그렇네. 세아 똑똑한데?"

"오빠가 생각을 이상하게 하는 거 같은데."

"그런가. 암튼 됐어. 걔들 코인 찾아 주우러 가라고 해. 한 마리만."

"한 마리만?"

"어. 다른 한 마리는 베이징에 보내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갔고 나는 베이징 근처의 게이트를 열었다.

바로 넘어가서 다시 남은 까마귀 하나를 날리는 세아. 좋아. 이제 어느 정도는 됐고.

"돌아가자."

벙커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고 다 같이 들어간다.

메시지는 계속해서 뜨고 있지만 거의 다 백 단위의 코인들.

그래도 상당히 많이 뜨고 있어서 모아 놓으면 양이 제법 될 거 같다.

"니가 이러고 있으면 테이밍 숙련이 힘든 게 문제네."

"그렇긴 해도 코인 먹는 게 우선이니까."

"아니지. 숙련이 먼저지. 일단 두 시간 정도 돌려보자. 얼마나 모이는지 확인하고 숙련을 먼저 할지 계속 파밍을 할지 보자고."

"알겠어."

"그럼 우리는 우리 숙련하면 되죠?"

승희가 물어봤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 승희 반사 거의 다 했지?"

"네. 얼마 남지 않았죠."

"그래. 빨리빨리 찍자. 테이밍 잔뜩 올려서 다 같이 코인 수집하자고. 미나도 보호막 얼마 남지 않았지?"

"네."

"미나는 데미지 감소부터 해야 하니 어쩔 수 없네."

"저도 테이밍 찍어요?"

"어. 많을수록 좋잖아?"

"그…. 저는 천국의 문인가 그거 찍어야 하는 거 아닐까요? 아니면 지옥이나."

내가 물끄러미 미나를 바라보자 그녀는 뭔가 자기가 실수한 게 아닌가 싶어서 약간 당황한다.

"그럴래?"

"어차피 테이밍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럼 그렇게 하자. 데미지 감소만 찍고 미나는 광역 스킬 위주로 가자고."

"알겠어요."

"안나는 뭐 트리가 정해졌고. 아. 맞다."

나는 안나에게 다가갔다. 내가 다가오자 약간 의아해하는 모습.

"내가 부산에서 하는 것만 마무리하면 바로 러시아 가자."

내 말에 살짝 움찔하는 안나.

"많이 기다렸지?"

"아니에요. 가는 게 어디에요."

그러더니 해맑게 웃는 안나. 하지만 여느 때처럼 해맑지만은 않다. 그 웃음 뒤에서 나오는 서늘함.

저 미소를 뚫고 나올 정도의 원한이라니. 무섭네.

"그럼. 나는 금방 다녀올게. 할 일 하고 있어. 두 시간 뒤에는 돌아올게."

그렇게 말하고 부산으로 이동한다.

레테 놈들의 본거지는 서면이라는 곳에 있는 백화점.

호텔과 백화점이 모두 있는 곳. 기억으로 봤을 땐 크기가 제법 컸었다.

그리고 서면 그곳은 극진파 찌끄레기들이 있는 곳.

전부 다 잡아 죽여야 하는 놈들이다. 기억 읽기로 정보는 어느 정도 얻었으니 이제 확인을 해봐야지.

크루즈가 침몰한 곳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가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도시. 아마 레테랑 극진파 놈들에게 다 죽었겠지.

레테 놈들은 SG처럼 도시를 만들거나 그럴 생각은 별로 없어 보였다.

그저 소수정예. 총인원이라고 해봐야 호텔에 머무는 놈들이 전부다.

그나마 대기업 재벌가 놈들 중에는 가장 머리가 잘 돌아가는 놈들.

그래도 규모가 너무 크다. 그리고 너무 눈에 띄어.

진짜로 살고 싶었으면 더 소수로 뭉쳤어야지.

하여간 다들 욕심을 못 놓는다니까. 왜 그렇게 부질없는 것들을 포기 못 하고 움켜잡고 있는지.

주변 높은 건물에 올라 탐지범위 안에 레테 놈들을 전부 놓고 천리안 숙련을 하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들어오는 코인. 티끌 같은 금액이지만 양이 많다.

진짜 티끌 모아 태산이네. 물고기 한 마리랑 까마귀 두 마리로 모으는 거 치고는 생각보다 자주 올라와.

스킬을 뭐부터 올릴지 고민하는 것보단, 그 시간에 숙련을 더해서 전부 다 찍는 게 낫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레테 녀석들과 극진파 찌그레기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계속 천리안 숙련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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