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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밍
캐슬의 가장 높은 건물. 그러니까 민희의 집무실이 있던 건물의 옥상.
거기에 앉아서 잠시 생각해본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캐슬은 이제 괜찮다. 게이트를 열어놨으니 캐슬 주민들의 이동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저 정도 크기면 차도 통과할 수 있으니까.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겠지.
게다가 펜스의 건물들은 온전하게 남아있다.
동물들을 위한 축사나 비닐하우스, 그런 것들이 그대로 있기에 캐슬에 있던 사람들이 저쪽으로 넘어가서 바로 정착할 수 있을 거다.
음…. 이번 기회에 그냥 합칠까?
굳이 두 군데를 나눠서 할 필요는 없잖아.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정 부장이라면 캐슬의 사람들을 그대로 흡수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이건…. 조금 더 생각해봐야겠다. 지금 생각할 일은 아냐. 지금은 캐슬의 주민들을 무사히 대피시키는 거로 만족하자.
아. 부산. 크루즈 근처도 확인 해야 하는데.
그래. 거기도 야쿠자의 왕 그 새끼가 다시 올 수도 있다. 게다가 바닥에 넘쳐나는 코인들. 그것도 빨리 회수해야지.
어디 한번…. 테스트해보자. 세아의 그 테이밍. 좋은 타이밍이야. 더 늦기 전에 빨리 테스트해봐야겠어.
바로 벙커로 순간 이동했다. 평화롭게 하루를 보내고 있는 네 여자.
졸지에 외박하고 왔기에 약간 찔리긴 했지만 뭐…. 이런 게 하루 이틀인가.
벙커 밖으로 나가니 바로 안나와 눈이 마주쳤다.
탐지가 있어서 그런가? 바로 알아채네. 쟤도 주기적으로 탐지를 돌린다는 뜻이지? 좋은 태도야. 항상 주변은 신경 써야지.
나를 반갑게 맞이해주는 네 여자. 이 느낌이 좋다.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느낌.
"세아야."
"응?"
"테이밍 아직 마스터 못 했지?"
"어. 아직 좀 남았는데. 오늘 밤이나 내일 오전?"
"그래. 그럼…. 그거 테이밍 물고기도 되나? 당연히 되겠지?"
"물고기? 엑…. 해본 적은 없는데."
"안나."
"네?"
"동물 탐지에 물고기도 잡히지?"
"네. 되요."
"그럼 바로 해보자. 다들 나갈 준비해."
참 고마운 여자들이다. 내가 갑작스럽게 뭔가를 하자고 해도 두말하지 않고 잘 따라주는 여자들.
전부 나갈 준비를 마치자 모두 파티를 걸었다. 그리고 부산으로 게이트.
모두 함께 부산으로 넘어간 우리는 크루즈가 잠긴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테이밍 세 마리 되지?"
"응."
"그럼 물고기 세 마리만 테이밍 해봐."
"음…. 알았어. 잠시만."
세아는 안나와 함께 바닷속을 열심히 바라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뿌듯한 표정으로 내게 말한다.
"했어. 그다음은?"
"물고기들로 저기 크루즈 잔해를 돌아다니면서 코인 회수해보라고 해봐."
"아…."
내 말에 넷 다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래. 이게 가능하다는 시점에서 테이밍은 존나 좋은 스킬이 되었다.
뭐하러 사람이 일일이 주워? 동물 시키면 끝인데.
말 그대로 자동 파밍 시스템. 대량 학살 이후에 문제가 되는 귀찮은 코인 회수를 해결해 줄 방법.
그걸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다는 건 앞으로의 코인 수급에도 중요한 일이다.
"이야…. 이런 잔머리는 정말 세계 최고인 거 같아."
"칭찬이지?"
"당연하지! 세계 최고라니까!?"
"그래. 암튼…. 될 거 같나?"
"어…. 될 거 같은데…. 어 간다. 오."
물고기의 위치를 모르지만, 세아의 시선으로 대충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얼마 뒤.
[8,472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오."
내가 놀라는 동시에 다른 모두도 똑같이 놀란다.
그래. 테이밍한 물고기가 물 안에 있는 코인을 먹었고, 그게 파티 효과로 엔빵해서 들어온거잖아?
크. 자동파밍 시스템 완성이네. 기가 막힌다. 정말.
"이게 되네?"
"안될 건 없지. 내가 어제 니말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알아?"
"아니…. 그걸 듣고 이런 걸 바로 생각해냈다고?"
"니 말대로 나는 잔머리 세계 최고니까."
그러고 씨익 웃자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본다.
얜 지가 지입으로 말해놓고 왜 인제 와서 저렇게 보냐.
"그럼 물에 빠진 코인은 물고기로 하고…. 땅에 있는 건 뭐로 하지? 쥐? 좁은 공간을 가야 하니 쥐가 좋나?"
"까마귀."
"엥?"
"까마귀가 최고야. 물론 까마귀가 안 되면 쥐겠지만…. 베스트는 까마귀라고 생각해."
"아니. 왜?"
"제일 똑똑하니까. 그리고 날아다닐 수 있으니 기동성도 좋지. 게다가 그놈들은 반짝이는 걸 모은다고. 코인 주머니가 빚을 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반짝반짝하는 느낌은 있잖아."
"이야…. 잔머리 세계 최고 맞네."
"근데 테이밍 하기가 귀찮을 수도 있어. 그러니 집 주변에 좀 키워야 할지도. 문제는 계절을 탄다는 건데."
"그래?"
"나도 그렇게만 알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 너무 추운 겨울엔 못 다니겠지."
"근데 그건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 않아?"
"그러니 계절을 안 타는 동물을 써야 할지도 몰라. 계절 따라 바꿔야 할지도 모르고. 암튼 그건 나중에 생각하고."
이렇게 대화하는 도중에도 코인은 계속 들어온다.
좋네. 벌써 10만 코인을 넘어섰어.
크루즈에 타고 있는 놈들이 제법 짭짤한 놈들이었나보다. 하긴, 일본을 먹어치운 놈들인데 어느 정도는 해줘야지.
"그럼 이제 우리는 가만히 앉아있기만 하면 돼요?"
이 상황이 재미있는 듯한 승희.
나는 그런 승희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냐. 돌아갈 거야."
"어? 여기서 지켜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세아야. 테이밍 한 동물이랑 멀리 떨어진다고 테이밍이 풀리거나 말을 안듣거나 하진 않지?"
"그건 잘 모르겠는데…. 해본 적 없어."
"그럼 지금 해보지 뭐. 타."
집으로 돌아가는 게이트를 열었고 세아가 넘어갔다.
그렇게 세아가 넘어갔는데도 코인은 계속해서 들어온다. 음. 잘 되는 거 같지? 게이트가 열려있어서 그런가?
"잠깐 거기 있어 봐."
게이트를 닫았다. 그런데도 역시 코인은 계속 들어온다.
오. 이번엔 4만 2천? 5로 나눴는데도 4만이라고? 이야. 좀 많이 모았던 놈인가 보네.
"되네요?"
"어. 이럼 너희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지. 게이트 열어줄게. 들어가."
게이트를 열었고 우리는 모두 벙커로 돌아왔다. 게이트를 닫았어도 계속해서 들어오는 코인들.
"이야…. 이거 말도 안 되네."
계속해서 신기해하는 세아.
크루즈에는 거의 몇백 명이 타고 있었다.
죽으면서 서로 코인들이 합쳐졌을 수 있지만, 어쨌든 아직 많이 남았다는 뜻이지.
"암튼, 나는 다시 나가 볼게. 만약 내가 페이즈 아웃을 쓰거나 해서 파티가 사라지면 세아는 바로 테이밍 풀어버려. 아니다. 그냥 니가 혼자 다 먹어라."
"그래도 돼?"
"어. 상관없어. 버려두는 것보단 낫지."
어떻게 보면 테이밍은 누구나 하나씩은 찍어야 할 필수 스킬이 됐다.
탐지, 동물 탐지, 코인 탐지. 테이밍. 이거 네 개는 전부 하나씩 가지고 있으면 적어도 손해 볼일은 없겠지.
"그럼. 난 다시 다녀올게."
"항상 몸조심해요! 방심하지 말고!"
승희의 말에 약간 가슴이 찔린다. 쟤는 왜 갑자기 저런 말을 하지? 평소엔 몸조심하라는 말만 하던 애가.
바로 캐슬로 순간 이동해서 탐지를 돌려보니 남아있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
하긴, 옮길 짐이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 게다가 저렇게 게이트가 바로 이어주니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고.
근데 왜 게이트가 일곱 개지? 아. 내가 방금 하나 쓰면서 사라졌구나. 난 바본가?
어쨌든 정오가 되려면 시간은 조금 더 남았다.
하지만 녀석들이 꼭 열두 시가 돼서 짜잔 하고 나타날 리는 없으니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솔직히 지금 당장 나타나도 이상할 건 없잖아.
녀석들은 오게 되면 고속도로로 오겠지? 차를 끌고 오려나?
모든 녀석이 비행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산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는 건 그다지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한계돌파를 찍어서 비행 속도가 100킬로가 된 나 정도 되면 모를까.
녀석들이 제대로 된 놈들이라면, 한 놈만 딱 와서 게이트를 여는 게 맞다.
그리고 그 정도도 못한다면, 정말 한심한 수준인 거다. 고작 티어 9의 스킬을 못 찍어서 빌빌거리면 안 되지.
어휴. 또 방심하고 있네. 이렇다니까. 요즘 배때기에 기름이 너무 꼈나 보네. 자꾸 은근히 얕잡아보려고 하네.
어쨌든 일단 이곳을 지킨다. 녀석들이 오는 걸 확인해야 해. 그래야 마음이 놓이지.
그렇게 가만히 앉아서 주변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뜨는 코인을 획득했다는 메시지도 확인한다.
이야. 이거 즐겁네. 벌써 40만을 넘어섰어.
대충 얼마나 들어올까? 크루즈에 탔던 놈들이 몇 명이나 되는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건 지금까지 기억을 읽은 놈 중에도 정확한 숫자를 아는 놈은 없었다.
쯧. 야쿠자의 왕 그놈의 부하 놈들을 먼저 잡고 정보를 얻었어야 했는데.
왜 바로 우레 폭풍을 날렸을까. 으. 하여간 멍청했어. 나답지 않았다고.
암튼 간단하게 계산해보자. 적어도 300명은 있었다고 치자고.
한 놈이 코인 5만씩만 있었어도 1,500만 코인. 다섯이서 나누면 300만씩이다.
음. 좋네. 게다가 지금 메시지 뜨는 거로 봐선 최소 5만 정도씩은 있다.
물론 죽으면서 이리저리 코인이 합쳐졌을 수도 있으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적게 있지는 않았을 거야.
근데 크루즈에 전투원만 있는 것은 아니잖아? 쩝. 그렇게 생각하니 계산하는 게 무의미하네.
그냥 잠자코 기다리자. 코인은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까.
어쨌든 이 방법은 정말 유용하다. 결국, 중국에서 파밍을 한다면 이런 식이 될 거다.
500코인씩 있는 민간인 짱개들. 그걸 일일이 주울 자신이 없었기에 짱개들이 알아서 줍기를 기다린 건데.
이게 된다면 굳이 기다릴 필요 없지. 본격적으로 사냥과 파밍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렇게 두어 시간이 지났다. 이제 아직 열한 시.
캐슬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게이트를 넘어갔다. 남은 건 몇 명 정도.
바로 게이트가 있는 쪽으로 블링크 했다. 저기 민희가 있네.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민희가 나를 보자마자 반긴다.
"왔어요? 이제 이사는 거의 완료 됐어요."
"어. 그래 보여서 왔어."
"근처에 있었어요?"
"응. 열두 시쯤 녀석들의 본대가 온다고 하니까. 자릴 비울 수는 없지."
"그래요. 이제 그럼 나는 뭘 하면 돼요?"
"가서 사람들 정착하는 거 도와."
"그거 말고요. 같이 싸우거나 할 필요는 없어요?"
"어. 괜찮아. 아 참. 캐슬 말인데."
"네?"
"넌 짐 다 챙겼어?"
"저요? 전 원래 다 수납에 넣고 다녀서."
"아. 그렇지. 그럼 여기 전부 엉망이 돼도 상관없지?"
"엉망이 된다고요?"
"뭐, 꼭 그렇게 될 건 아닌데. 그렇게 될 수도 있어서."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음. 내가 삼국지를 좀 좋아하거든?"
"삼국지? 갑자기?"
"꼭 해보고 싶었던 게 있거든. 마침 오늘이 그날인가 봐."
"으. 난 몰라. 마음대로 해요. 당신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 알면 머리 아플 것 같아."
"그러게. 나도 내가 뭘 생각하는지 모르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이야."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민희의 부하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모두 이동 완료했습니다."
용훈이였던가? 하여간 그가 보고했고,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도 다 넘어가."
"알겠어요. 일 전부 끝나면 꼭 와요. 기다릴 테니."
"당연하지. 어서 가봐."
다들 게이트를 넘어갔고, 나는 게이트를 모두 닫아버렸다.
좋아. 이제 준비는 다 했고.
이제 녀석들만 오면 되는데. 새끼들. 드럽게 꾸물거리네.
다시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계속해서 올라오는 코인 메시지를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테이밍. 그건 스킬 최대 수치 증가가 있는 내가 배우는 게 훨씬 이득이다.
지금 패시브가 4니까 내가 테이밍을 마스터 하면 여덟 마리를 테이밍 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고급까지는 금방 올리니까 배우기만 하면 그 날 바로 일곱 마리까지는 운용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근데 테이밍만 있으면 동물 구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어쨌든 동물 탐지랑 코인 탐지도 배워야 하잖아.
으음…. 뭐가 우선이지? 투시도 배워야 하는데. 게다가 기억 삭제 트리도 타야 하고.
진짜 이 빌어먹을 스킬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다. 항상 쓸만한 게 튀어나와.
게다가 공격 스킬도 하나 있어야 하는데…. 어휴. 진짜 쉽지 않다.
결국, 이 빌어먹을 스킬들은 모든 스킬을 다 배워야 갈증이 사라지겠지.
문제는 하나를 배울 때마다 하나가 또 나온다는 게 문제지만.
코인이 들어오는 메시지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어느덧 들어온 코인은 150만을 넘어섰는데 말야.
그렇게 앉아있는데…. 드디어 탐지에 뭔가 걸렸다.
점점 많아지는 기척. 빠르게 움직이는 기척들.
바로 천리안을 써서 기척 쪽을 바라본다. 도로를 타고 움직이는 차들.
왔구나. 그리고 차야? 한심한 놈들. 결국, 온다는 놈들이 차야?
내가 또 차 타고 있는 놈들 잡아 죽이는 데는 전문가인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