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38화 (43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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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의 왕?

기울어져 있는 배를 걸어 다니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페이즈 아웃을 쓰고 있는 나는 그리 어려울 게 없다.

눈에 보이는 거에 사로잡히면 안 돼. 페이즈 아웃 공간은 현실과 다른 곳이잖아.

그렇게 네 명이 나타난 곳으로 다가가며 벽을 하나 뚫고 지나가다가 깜짝 놀라서 뒤로 살짝 뺐다.

그리고 조금 움직여 벽에 머리만 살짝 내민 채 방 앉을 살펴본다.

기울어진 선실 안에 덩치 큰 남자 네 명, 그리고 페이즈 아웃 세상에 있는 두 명.

이 새끼들. 페이즈 아웃이 맞았네.

동시에 순간 이동을 썼거나 게이트를 썼을 수도 있었겠지만, 페이즈 아웃이 훨씬 간단하잖아?

이 좋은 스킬을 나만 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게다가 이런 무리라면 스킬의 장단점은 쉽게 파악되겠지. 그리고 좋은 스킬은 너도나도 배울 거고.

다만 페이즈 아웃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스킬을 쓰지 못한다는 것.

이 안에서는 나도 일반인이랑 다른 바가 없다. 저놈들 중 두 명이나 이쪽 세상에 있다면 내가 여기 있는 게 유리할 게 전혀 없어.

그렇다고 냅다 밖으로 나가는 것도 그렇고…. 일단 지형지물을 잘 이용해서 좀 지켜보자.

모습을 드러낸 네 명은 둥실 떠올라 기울어진 선실을 벗어난다.

아. 바깥을 확인해보려는 건가? 탐지가 있는 놈들이겠지? 그럼 저기 페이즈 아웃 세상에 있는 두 놈이 윗대가리 놈들인가?

두 놈 다 그리 우락부락해보이는 스타일은 아니다. 리젠트 머리를 하고 있지도 않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도 않다.

뺨에 칼빵이 있지도 않고 눈깔을 이상하게 뜨거나 괴상한 포즈를 잡고 있지도 않다.

그냥…. 평범한 남자들로 보인다. 대신 머리는 빡빡 밀었다는 것? 자세가 제법 그럴듯하다는 것?

한 놈은 검은 와이셔츠, 한 놈은 조금 화려한 와이셔츠. 음…. 이놈 중에 야쿠자의 왕이 있을까? 모르겠네.

내가 싸움을 잘했다면, 여기서 누아르 한편이 뚝딱 나왔겠지.

그런 거다.

재빨리 달려들어서 한 놈의 면상을 주먹으로 후려치고 그대로 몸을 돌려 다른 놈의 목 언저리를 돌려차기로 날려버리는 거지.

하지만 한방에 쓰러지진 않을 거야. 녀석들은 야쿠자니까. 몸으로 투닥거리는 건 익숙할 거 아냐?

게다가 곤조가 있지 한방에 픽 하고 쓰러지지는 않을 거다.

옆에 있던 놈이 사시미 칼을 빼 들겠지만, 야쿠자 왕이 손을 들어서 막을 거야.

"넣어둬. 이놈은 내가 상대해주지. 감히 나에게 달려들다니. 그 배짱은 높이 사주마."

"하…. 하지만 보스…."

"스메끼리. 언제부터 내 말에 토를 달았지?"

"하…. 하이. 실례했습니다! 다마네기 상!"

그리고 부하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나는 거야.

그럼 야쿠자 왕은 와이셔츠 목 단추를 하나 풀면서 목을 우둑거리고 나를 보며 느긋하게 이야기하는 거지.

"자. 와봐라. 네놈을 반 죽여놓고 배를 갈라 내 부하들의 원혼을 달래줘야겠다."

그럼 나는 그 말에 피식 웃은 다음 바로 달려드는 거야. 먼저 페인트로 날리는 가벼운 잽. 하지만 그 정도에 당할 리는 없겠지?

가볍게 피한 다마네기는 손으로 내 팔목을 잡고 내 옷깃을 잡는거야. 그럼 나는 바로 느끼는 거지.

이놈! 유도다!

교묘한 녀석의 몸놀림에 정신 차리지 않으면 그대로 엎어치기 당하며 땅바닥에 나뒹굴게 분명하잖아?

그러니 내 옷깃을 잡으려는 녀석의 손목을 손등으로 쳐내며 무릎으로 복부를 찍지.

하지만 그걸 맞고도 꿈쩍도 안 하는 다마네기. 그대로 나를 잡아 옆으로 집어 던지는 거야.

그리고 나는 바닥을 한번 구르며 그대로 몸을 일으키고 기울어진 선실 바닥을 박차며 다시 달려들어.

내지르는 주먹, 그걸 다 피하거나 가드 하는 다마네기.

덩치로 봤을 땐 내가 조금 밀려. 하지만 나에겐 체급을 뛰어넘을 수 있는 비장의 한 수가 있지.

바로….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뒤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

나와 눈이 마주친 야쿠자 하나. 씨발? 저 새끼도 페이즈 아웃이야? 아까 있던 놈들이 다가 아니었어?

바로 녀석의 몸이 뿌옇게 변한다. 저 말은 해제했다는 이야기.

들켜버린 이상 페이즈 아웃의 이점은 없다. 나도 바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바로 반사부터 건다.

그리고 투명화, 비행. 그리고 블링크를 써서 선실 바깥으로 나가는 문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모든 버프가 꺼졌다.

광역 스킬 무효화? 그렇게 생각하며 바로 반사를 썼는데 안 써진다.

씨발. 아니네. 이건….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좆됐다. 좆됐어. 아. 경솔했네. 바로 순간 이동으로 여길 이탈 해야 했는데.

잠깐의 선택 실수로 상황이 좆같아졌다.

탐지를 못 써서 어디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다. 몇 명이 있는 지도.

게다가 기울어져 버린 선실이라 바깥으로 나가기도 힘들다. 아니…. 그렇다고 이러고 있으면 안 돼.

내 위치는 알려졌을 거다. 녀석들이 병신 머저리가 아니라면 순식간에 포위될 거야.

어떻게든 일단 선실 바깥으로 나간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밖으로 나가야 해.

스킬을 쓸 수만 있으면 무서울 게 없다.

하지만 그 중심지가 어딘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까 그 다마네기…. 아니 야쿠자의 왕이 있는 쪽에서 썼겠지?

아니면 나를 발견한 놈 쪽이라던가.

일단 선실 문을 박차고 나왔다. 좁은 통로. 최대한 방향이 반대인 쪽은? 이쪽이구나.

무작정 뛰었다. 범위가 그렇게 넓지는 않을 거다. 문제는 그게 눈에 안 보인다는 거지.

뛰면서 입으로는 계속해서 반사를 중얼거린다.

제발 써져라. 제발 써져라. 스킬만 써지면 된다. 제발. 제발.

"바보 자식!"

저 멀리 내 앞을 가로막는 야쿠자 세 명.

아. 씨발. 거지 같네. 손에 하나씩 든 회칼이 보인다.

저거에 찔리면 존나 아프겠지? 그간 해왔던 패악질의 업보가 이렇게 끝나나?

지랄. 이렇게 끝낼 순 없지. 나는 토끼 같은 여자들이 다섯이나 있단 말이다! 아. 민희는 토끼보단 여우지만.

녀석들이 스킬을 쓰면 오히려 좋다. 녀석들이 있는 곳까지만 가면 스킬을 쓸 수 있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녀석들도 스킬은 안 써지나보다. 그렇다고 녀석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거나 하진 않는다.

오히려 더 좋다는 듯한 분위기.

그래. 이해했다. 이놈들이 왜 페이즈 아웃과 스킬 사용 불가 지대를 좋아하는지.

스킬이 없던 세상에서는 조폭이나 야쿠자 놈들이 유리하긴 했지.

무기에 대한 공포감이 적고, 연장질에 능숙한 놈들.

그런 놈들이라면 스킬을 못 쓰게 만드는 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드는 행위잖아.

딱 한 번만. 저 녀석들을 딱 한 번만 뿌리치고 지나갈 수 있으면 될 것 같은데.

그러기엔 사시미 칼 세 개가 부담스럽다. 찔리면 존나 아프겠지? 그렇겠지?

정타만. 정타만 안 맞으면 된다. 목, 심장, 다리만 막아내면 된다. 죽지만 않으면 된다.

큰 상처는 승희가 치료해 줄 수 있을 거야.

아. 그래. 포션이 있구나!"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서도 포션은 사지는 게 다행이다.

바로 회복 포션 대를 사서 한입에 털어 반은 마시고 반은 입에 머금는다.

아. 그럼 다른 것도 가능하잖아? 가장 딱딱할 만한 것, 그러니까 통조림.

바로 세 개를 샀다. 그리고 달려가면서 그대로 던진다.

"악!"

운 좋게 가장 왼쪽에 있는 놈 얼굴에 직빵으로 맞았다. 그걸 본 두 놈은 다음 나의 투척에 움찔하는 게 보인다.

이 새끼들 야쿠자 맞아? 이런 거로 쫀다고? 아. 쫄은 것까진 아닌가? 그래도 어쨌든 다행이야. 터프한 새끼들이 아니라서.

두번째 투척은 빗나갔지만, 녀석들의 시선은 확실히 끌었다.

마지막 통조림을 던지는 척하니 팔로 머리를 막는 놈들.

바로 던지지 않고 던지는 척 몇 번을 하다가 전력으로 놈들에게 부딪쳤다.

"바보 녀석!"

"이놈!"

"망할 놈아!"

나와 뒤엉켜 쓰러진 한 놈. 그리고 그런 나를 노리는 옆의 두 놈.

뒤엉킨 놈은 칼로 내 등을 찌르려는데 내가 몸부림치자 별로 효과를 못 봤다.

대신 옆의 두 놈이 내 등과 옆구리 쪽에 회칼을 휘두른다.

등 쪽이 불로 지지는 듯이 확확거렸지만, 그런 걸 느끼고 있을 시간은 없다.

등짝의 상처는 수치라고 했지만, 지금은 수치 같은 걸 따질 때가 아니다. 사는 게 중요하지.

입에 머금던 포션을 꿀꺽 삼키며 어떻게든 일어나 다시 녀석들을 뿌리치고 달린다.

"잡아!"

"죽여!"

"목을 따버려!"

내가 싸울 거라고 생각했지 도망갈 거라고 생각은 못 했나 보다.

어떻게든 뿌리치고 벗어나려고 하자 두 놈은 나뒹굴고 한 놈만 내 옷을 잡고 늘어졌다.

있는 힘껏 녀석의 팔을 내리치고 다시 비틀거리며 앞으로 도망간다. 하지만 바로 쫓아오는 야쿠자들.

제발. 제발. 제발. 스킬아 써져라! 제발!

그렇게 자꾸 엉겨 붙는 야쿠자들을 있는 힘 없는 힘 다 짜내서 뿌리치며 입으로는 계속해서 반사를 중얼거린다.

한 놈의 팔이 내 다리를 잡았고, 다른 한 놈이 내게 덮쳐든다.

그리고 그렇게 앞으로 다이빙하듯 쓰러졌는데…. 드디어 스킬이 써졌다!

"자라! 자라! 자라!"

나를 붙잡던 두 놈은 그대로 잠에 빠졌다.

그리고 약간 뒤처져 있던 한 놈은 이제 스킬을 쓸 수 있는 나를 보며 좆됐다는 표정이 된다.

씨발. 아오. 등짝이야. 회복 포션으로 회복은 되는 거 같은데 아픈 걸 참기는 쉽지 않다.

어쨌든 상황은 역전됐다.

씨발 새끼들. 다 죽었어.

그렇게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녀석을 바라봤지만, 녀석은 상황을 파악하더니 다시 입꼬리를 올린다.

그래. 방금 저놈에게도 수면은 썼다. 하지만 저놈은 아직 스킬 사용 불가 지대 안쪽,

그 말은 저놈에게 스킬은 전혀 안 들어간다는 소리다. 어쨌든 저놈은 저기 서 있으면 나에게 스킬로 공격받을 일은 없다는 소리.

"크크크. 겁쟁이 놈아. 이리로 들어올 배짱은 있냐?"

야쿠자 새끼가 나를 보며 빈정거린다. 그래. 칼질로 싸우면 이길 자신 있다 이거지?

나는 수납에서 마체테를 꺼냈다.

내가 꺼낸 걸 보더니 살짝 흠칫하지만, 오히려 눈빛은 깊어진다.

연장질엔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가소롭다는 표정을 짓는 거 보면?

웃기는 새끼네. 저렇게 멍청해서야 원.

나는 바로 공기총도 꺼냈다. 바로 황당한 표정으로 변하는 야쿠자.

"자…. 잠깐! 잠깐!"

"뭐. 이 씨발 새끼야. 조또마떼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투칵투칵투칵투칵

사정없이 발사되는 공기총. 야쿠자 새끼는 그대로 쓰러졌다.

아. 위력을 기절로 놓고 쐈네. 살상으로 놓고 쏠걸. 음. 그럼 다시 쏘면 되지. 그치?

투칵투칵투칵

공기총을 맞고 빛이 되는 야쿠자. 쓰러져서 자고 있는 두 명은 그냥 마체테로 내리찍었다.

세놈 합쳐서 30만. 그래도 잔잔바리들은 아니었나보네. 하긴 이놈들도 다 페이즈 아웃은 있는 거 같은데.

상황이 끝나자 그제야 통증이 밀려온다. 아오. 씨발. 존나 아프네.

근데 여기 이러고 있을 게 아냐. 일단 벗어나야 해.

탐지를 한번 돌려봤다.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기척들. 숫자가 훨씬 늘어난 게 보인다. 도합 열 명 정도.

근데 이놈들이 얼마나 더 페이즈 아웃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 이게 다가 아닐 거다.

아. 등짝이랑 옆구리. 너무 아프네. 가서 치료부터 해야겠어.

바로 벙커로 순간 이동하고 승희를 부른다.

"에엑!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에요!"

피가 낭자한 내 등과 옆구리를 보고 기겁하는 승희.

포션 때문에 아물고는 있지만, 피가 이렇게 묻어있으면 그런건 잘 모르겠지.

승희는 바로 내 옷을 벗기고 바로 힐을 써준다.

그 소란에 다가온 미나나 세아, 안나도 잔뜩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 이제 살 것 같네. 고마워. 그럼 다시 다녀올게."

옷장에서 티셔츠 하나를 다시 꺼내 입으며 말하자 승희가 펄쩍 뛴다.

"아니! 이 꼴을 하고 어딜 또 가요!"

"걱정 마. 두번은 안 당해."

"걱정을 안 할 수가 있냐고요!"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 아니 눈물은 이미 찔끔 나 있다.

하긴, 자신만만하게 자기들을 보냈던 남자가 피범벅이 돼서 돌아오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겠지.

"진짜 괜찮아. 걱정 마."

그리고 다시 순간 이동했다. 으. 아마 다녀오면 크게 혼나겠지?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당한 게 있으니 갚아 줘야지. 어…. 물론 내가 저지른 짓이 더 크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 이 쪽바리 새끼들은 다 잡아 죽여야 해. 다행히 순간 이동 같은 건 없어 보이니 도망가게 둘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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