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33화 (433/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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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정보

이제 기억 읽기의 시간.

이놈들은 영양가가 많은 놈들이다.

내겐 베일에 가려져 있던 부산과 일본. 거기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원들.

"어.떤.놈.부.터.읽.어.볼.까.요.알.아.맞.춰.보.세.요.딩.동.댕."

"당신…. 진짜 20대 아니죠?"

"아. 왜 또…."

"하는 행동을 보면 절대 20대의 행동이 아닌데."

"어쩔 수 없어. 난 어렸을 때 놀았던 기억밖에 없거든. 중고등학교 때는 죽은 듯이 살아서 잘 몰라."

"아무리 그래도…."

"암튼 봐줘. 나도 내가 하는 짓이 올드 한거 알아."

제일 먼저 걸린 건 여자들을 감상하던 대머리. 녀석에게 다가가다가 갑자기 생각나는 게 있었다.

"아. 맞아. 뭐 물어볼 게 있는데."

"네?"

알몸으로 침대에 엎드려 나를 바라보고 있는 민희. 캬. 정말 보는 맛이 있다니까.

"처음에 나 만났을 때."

"네."

"방독면 줬잖아? 그건 대체 뭐에 쓰려고 했던 거야?"

"아…. 그거요."

나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민희는 느긋하고 천천히 입을 연다.

"페스트요."

"페스트? 흑사병?"

"네. 뭐 흑사병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게 가장 유명했으니까."

"어…. 그런 걸 뿌리려고 한 거야?"

"네. 힘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으니까요. 기절을 쓸 수 있으면 모르지만, 반사가 있으면 기절은 못 쓰죠."

"그렇긴 하지. 페스트라…. 그거 효과 좋나?"

"효과요? 사람 죽이는 효과 말인가요? 이미 역사에서 한차례 입증했잖아요?"

"아니. 그건 나도 아는데. 치료 같은 걸 말하는 거지. 약을 구하기 힘들다거나, 증상이 심하다거나…."

"아아. 그런 거 말인가요. 약이라…. 약은 의외로 간단하죠. 페니실린 알죠?"

"항생제?"

"네. 그것만 있으면 치료돼요. 옛날에나 죽음의 흑사병이었지…. 지금은 어림없죠."

"엥? 근데 왜 그걸?"

"효과가 빠르거든요. 급성 페스트는 공기감염으로 일어나는 전염병 중에 가장 빨리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아. 그래? 얼마나 걸리는데?"

"6시간요."

"죽는데 걸리는 시간이?"

"네. 급성 페스트는 그 정도면 죽어요."

"와. 빡세네. 근데 고영준이 그 새끼도 의사잖아? 항생제 같은 게 없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아까 보니까 질병 해제도 찍었더만."

"뭐…. 그거 말고 다른 것도 몇 개 더 있긴 했어요. 탄저균이나 에볼라 바이러스나 보툴리누스균 같은 거…. 근데 뭐가 됐든 쉽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에게 의지한 거고."

"그래? 그렇구나. 그럼 그것들 가지고 있나?"

"그럼요. 아직 수납 안에 있죠."

"아. 그래서 수납을 찍었구나. 이제야 이해 가네. 그럼 이제 그것들 필요 없지?"

"네. 그렇죠?"

"그럼 전부 나 줘."

"왜요…?"

"쓸 일이 있어서."

"아니…. 이건 어린아이 장난감이 아니라고요."

"걱정 마 이미 비슷한 짓은 하고 있어. 말했잖아. 중국에 역병 풀었다고."

"아…."

나를 보는 민희의 얼굴이 조금 질린다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러면서도 수납에서 꺼내 순순히 나에게 건네는 민희.

"괜히 본인이 걸리지 않게 조심해요."

"알겠어. 이거 공중 높은 곳에서 던져버리면 되나?"

"그렇게 해도 퍼지긴 할거에요."

"그래. 알겠어. 암튼…. 궁금한 건 됐고."

이제 진짜로 기억 읽기를 할 시간.

나는 대머리 옆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남자 몸에 손대는 건 정말 싫지만, 기억을 읽으려면 어쩔 수 없다.

이 스킬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야. 어우. 기분 나빠.

그렇게 기억 읽기가 시작됐다.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 다양한 키워드를 떠올리며 기억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본다.

음. 이놈이 극진파 대가리였네. 기억을 읽어보니 제법 규모가 있다.

총인원이 163명. 이놈의 인원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 그렇다. 그럼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소리네.

호텔에 온 놈들은 그 정도 숫자는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조직원만 그 정도 되는 거니까 그 외의 인원들까지 하면 제법 숫자가 된다는 소리다.

이놈이 데리고 왔던 그 여자들 같은 경우는 조직원이라고 볼 수 없잖아?

어쨌든 인원은 꽤 되지만…. 능력은 시원찮다. 스킬 가장 많이 있는 놈이 다섯 개.

어휴. 한심하네. 대체 무엇을 하느라 이렇게 농땡이를 친 거야?

좆빠지게 스킬 숙련했던 나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래서 어정쩡하게 단체 생활을 하면 안 돼.

이놈 챙기고 저놈 챙기고 혼자 독주하려면 주변에서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그렇다고 독주할 수 있는 여건도 안되고.

무리 짓는 놈들은 결국 발전이 더디게 되어있다. 그래. 그게 현실이다.

짱개놈들이 비현실적인 거지. 그 새끼들은 뭐…. 자본이 넉넉하니까 그랬다고 치지만.

어쨌든 이놈은 크게 건질 건 없다.

주요 거점이 서면? 기억을 보니 여기가 부산에서 가장 큰 번화가인 거 같다.

그래. 뭐 거기는 슬쩍 가보면 되고.

자. 다음 놈. 이 샌님 같은 놈. 이놈으로 하자.

이놈은 레테의 이사네. 생각보다 젊은데. 어떻게 이사가 됐지?

그래서 기억을 계속 읽어봤다. 그렇게 한참을 읽으니 대충 이해가 갔다.

재벌 3세. 그러니까 이놈의 할아버지가 레테의 창업주다. 역시, 젊은데 이사라고 하니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

웃긴 건 이놈의 기억에 서민준이 있었다. 굴지의 대기업 자제들이라 안면이 있는 거 같다.

근데 뭐 그건 내가 알 필요는 없고.

대기업답게 제법 규모가 크다. 대호보단 조금 적은 것 같네.

근데 이놈들은 조금 방식이 깨어있다.

이놈 자체도 스킬이 일곱 개가 있다. 그리고 경호하는 놈이 두 놈 있는데 그놈들은 스킬이 여덟 개였다.

오. 그래도 아주 쳐 놀지는 않았네. 여덟 개면 배울 수 있는 건 다 배웠겠지?

근데 경호라는 놈들이 왜 경호 대상 주변에 있지 않은 거야? 경호원 맞아?

조금 더 기억을 읽어본다. 쿠로하에마루? 뭐지? 유람선? 아니지. 크루즈구나? 초호화 크루즈…. 오. 이것 봐라?

경호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유능한 부하 같은 개념이었나보다.

그리고 이놈 레테의 조재진 이사라는 놈은 자신의 부하 둘을 보내서 부산항에 입항하는 쿠로하에마루라는 것을 몰래 염탐하라고 보냈다.

뭔가 음모의 냄새가 나는데? 기억 읽기가 흥미진진해진다.

나오는 단어, 연관되는 인물, 판세, 지리, 알력과 권익 싸움….

녀석을 대충 밀어내고 이번엔 마지막 남자 놈을 읽어본다.

이놈은 야쿠자. 니지이치구미의 구미초. 그러니까 두목.

빠르게 기억을 더 읽어본다. 그리고 재밌는 것들이 무척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와. 이거 재밌네. 아는 게 많으니 기억 읽을게 넘쳐나.

이거 기억 다 읽으려면 한참 걸리겠는데? 일단 그래도 읽어본다. 무슨 만화책 보는 느낌이네.

한참 동안 기억을 읽었다.

녀석을 계속 재워놓으면서 기억 읽기를 계속하다 보니 어느새 해서 밤이 될 정도.

잠깐 쉴 겸 기억 읽기를 멈추자 그때까지 내가 알몸으로 있었다는 걸 알았다.

어우. 이건 좀 그렇네. 어쩐지 조금 허전하더라.

옷을 주워입고 옆방의 집무실로 향했다. 뭔가를 읽고 있다가 나를 보고 미소짓는 민희.

"끝났어요?"

"아니. 한참 걸리겠네."

"뭐가 그렇게 많아요?"

"많지. 일본 놈이 껴있으니까. 저 녀석 생각보다 아는 게 많네. 덕분에 일본 상황에 대해서 아는 게 많아졌어."

"뭐 흥미로운 거라도 있어요?"

"어. 많아. 들려줄까?"

"네. 알고 있으면 좋죠."

"어…. 그럼 뭐라도 조금 먹으면서 할까?"

"나요?"

잠깐의 정적.

"푸하하. 그래. 아직도 부족하다는 거지? 어디 잠깐 쉬었겠다, 더 해볼까?"

내 말에 피식 웃는 민희.

"농담이었어요. 밥 먹죠. 가져오라고 할까요?"

"어. 그게 되나?"

"원래는 가서 먹었는데, 사람들이 조금 불편해하더라고요. 그래서 이젠 가지고 와요."

"흐음. 그래? 그럼 부탁할게."

무전기를 들고 식사 2인분을 부탁하는 민희.

나는 소파에 털썩 앉았고, 민희는 의자에서 일어나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오더니 내 무릎 위에 앉았다.

"아주 자연스러워?"

"이게 편하니까요."

"식사 가져오는 사람이 보면 어떻게 해?"

"뭐 어때요. 나도 여잔데. 나는 연애 하면 안 되나?"

뻔뻔하게 이야기하는 민희의 표정은 상당히 귀엽다.

언제 다시 했는지 화장을 한 얼굴. 아마 내가 기억 읽기에 정신없을 때 했겠지.

차갑고 도도하게 보이는 여자가 내 앞에서는 귀엽게 굴다니. 이것도 나름의 맛이 있네.

세아랑은 조금 다른 느낌이야. 음…. 약간 장르가 다른가? 아무튼.

"그리고 어차피 들어올 때 노크하고 와요. 상관없어."

"그래? 그럼 이래도 되겠네."

아까의 편한 옷이랑은 다른 블라우스와 긴 치마.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 하나를 풀어서 손을 집어넣는다.

브라의 방어가 심할 줄 알았는데 이건 와이어가 없는 브라인 듯 손을 넣기가 편하다.

그대로 브라 밑으로 손을 넣어서 가슴을 움켜잡았다.

살짝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민희.

"가슴 정말 좋아하네요."

"너도 만져지는 거 좋아하잖아."

가슴을 잡은 손에 힘을 살짝 주면서 손가락으로 꼭지를 만졌다.

잠깐 표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움찔거림. 크. 이런 반응이 좋단 말이지.

"아무튼…. 밥은 금방 오나? 먼저 이야기할까?"

"그래요. 금방 오긴 하겠지만 먼저 시작해도 상관없죠."

"음…. 그래. 그러면 일단은…. 아직 기억을 다 읽은 건 아니거든? 근데 대략적인 건 읽었으니 그것부터 말해볼게."

"네."

"일본은…. 하. 정말 그 새끼들은 진짜 만화 좋아하는 놈들인가 봐. 나도 기억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두 놈의 기억이 같은 거 보니 사실인 거 같아. 일본에는 일곱 명의 절대 강자가 있어."

"풉. 뭐요? 절대 강자?"

"웃기지? 나도 그거 보고 뿜을 뻔했다니까. 진짜 그렇게 불러 절대 강자라고."

"세상에. 아무튼, 계속해봐요."

"게다가…. 푸훕. 그 녀석들은 별명도 있어. 나 진짜…. 항마력이 딸린다니까."

나는 잠시 아까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말했다.

"일단 지금 저 옆에 있는 놈이 니지이치구미라는 후쿠오카 야쿠자 두목이거든?"

"네."

"근데 저놈은 산하 조직의 두목이야. 그러니까 총두목? 총대장? 그런 놈이 있어. 그놈이 야쿠자의 왕. 사토 히데모리."

"야쿠자의 왕…. 그래도 이건 참만 하네요."

"그래. 뭐. 야쿠자들은 좀 유치한 게 있으니까. 그리고 다음이 유혹의 마녀 레나."

"아…. 벌써 힘든데요? 근데 유혹의 마녀면 그거 아니에요? 매혹?"

"그렇겠지. 매혹만큼 사기가 없지. 잘 쓰면 무슨 짓이라도 가능하고. 존나 번거롭긴 하지만."

"그리고요? 유치하긴 한데 흥미진진하네요."

"그렇지? 어우. 근데 나는 기억 읽으면서 조금 힘들더라고."

"또 뭐가 있어요?"

"패왕. 모래흙 마사…. 뭐시긴데. 마사츠쿠? 마사츠키? 뭐 암튼 그런 이름."

"패왕? 패왕이면 괴력인가?"

"아마 그렇지 싶어. 괴력이나 주먹류 스킬 쓰겠지. 대충 예상이 돼."

"그리고요?"

"뇌제. 아….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적어놓은 거 봐야겠다."

아까 스마트 폰에 적어놓은 걸 꺼냈다. 한 손으로 민희의 가슴을 만지고 있느라 꺼내기 귀찮았는데. 어쩔 수 없지.

"아. 아까 패왕 그놈은 마사츠구네. 뇌제 이놈은 하시모토 타케하루."

"뇌제? 번개 스킬?"

"그렇겠지? 번개 스킬은 쓸만한 게 많으니까. 감전도 있고, 썬더 킥이나 번개 주먹도 쓰레기가 아니란 게 밝혀졌으니 충분히 쓸 수 있고. 번개 트리도 있고…."

"재밌네요. 어쨌든 쓸만한 스킬들을 주력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군요."

"아무래도 그렇겠지. 여러 사람의 검증으로 효율 좋은 스킬이 주목받게 되는 거니까."

"그리고 또 누가 있어요? 몇 명 남았죠? 이제 네 명 나왔나요?"

"어. 그리고 남은 놈 중에…. 가면. 이놈은 이름을 모르겠어. 그냥 가면이라고 부르더라. 정보도 별로 없고."

"가면? 얼굴에 쓰는?"

"어. 근데 연상되는 스킬이 없단 말이지?"

"그러네요. 딱히 생각나는 건 없네요."

"이놈들 기억에도 다 이름이랑 별명만 나와서.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어."

"그리고…. 이제 두 명 남았나요?"

"어. 하나는 검성 아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무명."

"검성…. 설마 일본도를 들고 막 설치는 사무라이 같은 걸까요?"

"뭐, 그렇겠지. 일본도 참 좋아하는 놈들이니까."

"근데 이름이 아키에요? 아키면 가을 아닌가? 여자 이름인데?"

"아 그래?"

"네. 내가 아는 일본어로는 그래요."

"그런가. 그거야 뭐 더 알아보면 될 거고."

"무명은요?"

"몰라. 이놈도 아는 정보가 없어. 그냥 무명이야. 이름이 무명일 수도 있고."

"흐음…. 아무튼 재밌네요. 유치한 거 같은 데 익숙하기도 하고…."

"그치. 다 만화 같은 거에서 지겹게 나온 이름들이니까. 근데 민희 너도 만화책 봤나? 의사면 공부하느라 바빴던 거 아냐?"

"원래 본과 들어가기 전엔 다 놀아요. 공부만 하고 사는 건 아니었으니까."

똑똑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이크. 밥 왔나 보네.

나는 빨리 손을 뺐고 민희의 단추를 다시 잠가줬고 그런 나를 보고 싱긋 웃은 민희는 일어나 문 쪽으로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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