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32화 (432/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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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

캐슬. 그러니까 지난 주인이었던 성채 놈.

여자들을 매혹해서 이런저런 걸 한 놈이라 그런지 집무실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시설이 좋다.

방금까지 우리가 뒹굴었던 방도 민희가 꾸며놓질 않아서 그렇지 시설 자체는 괜찮다.

그리고 그건 이 화장실을 보면 확실히 느껴진다.

"궁궐이네. 궁궐이야."

"화장실 청소하기 힘들어요."

"아. 직접 하나?"

"당연하죠.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화장실 청소를 남에게 맡겨요."

"음. 좀 여왕님처럼 살지그래? 시켜도 하겠다는 사람 많을 텐데."

"싫어요. 그런 거 싫어."

쪼그리고 앉아서 샤워기를 들고 화장실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는 민희는 상상이 안 된다.

그런 이미지가 아닌데 말이지.

"아. 욕조 크네. 물 받아서 목욕할까?"

"그럴래요? 바로 할 수 있는데."

"할 수 있으면 당연히 하지. 뜨거운 물에 몸 담그는 건 언제 해도 좋아."

"당신 20대 맞죠?"

"에이. 이건 나이랑은 상관없어. 개인 취향이지."

"그런가?"

욕조에 물을 받는 민희. 알몸인 그녀의 뒷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나도 모르게 뒤로 다가가 몸을 바짝 붙인 뒤 가슴을 움켜잡았고 민희는 그런 나를 힐끔 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렇게 좋아요?"

"당연하지. 눈앞에서 이렇게 섹시한 여자가 알몸으로 엉덩이를 실룩샐룩하고 있는데 안 좋을 리가 있나?"

"실룩샐룩…. 나 안 흔들었거든요?"

"그런가? 나는 흔든 것처럼 보였는데."

한 손을 쓰윽 내려 아래쪽으로 가져간다.

정말 훌륭한 몸매야. 만지지 않을 수가 없어.

그렇게 나에게 만져지면서도 물 온도를 맞추고 욕조에 물을 튼 민희는 샤워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을 틀더니 나에게 뿌리기 시작한다.

"아푸푸푸."

"일단, 좀 씻어요."

얼굴에 물이 뿌려져서 쫄딱 젖어버린 나.

뭐, 어차피 알몸인 데다가 씻을 거니까 상관없긴 한데…. 당했으면 돌려줘야지?

"어? 나 아직 화장 안 지웠어요! 어!? 어!"

잠시 후 민희는 머리가 완전히 젖은 채로 나를 째려본다. 아. 맞다. 여자들은 머리 젖는 거 싫어하지?

머리는 감지 않을 생각이었나? 참 그런 거 보면 신기해. 남자들은 목욕하면 머리까지 감는 게 기본인데 말이지.

젖은 머리를 뒤로 쓸어내리더니 화장을 지우기 시작하는 민희.

약간 악녀 스타일의 여왕님이 순진한 여인으로 변해간다.

그런 민희를 뒤에서 끌어안고 가슴을 만지고 있으니 처음에는 한 소리 하더니 나중에는 포기하고 순순히 가슴을 내준다.

"그만 만지고 들어가요. 물 거의 다 받아졌잖아요. 몸 한번 씻고요."

민희의 말을 듣고 수납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꺼내서 적당히 씻고 욕조에 들어갔다.

큼직한 욕조. 찰랑거리는 따듯한 물.

안에 들어가서 대자로 누우니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으아."

"20대 아닌 게 확실해. 스킬 배우는 속도도 그렇고. 당신 뭐 회귀자 그런 거죠?"

"회귀? 나는 회귀 싫어. 지금이 좋아."

"어머? 왜요? 회귀할 수 있으면 지금보다 더 좋게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글쎄. 모든 걸 알고 있더라도 과연 지금보다 상황을 더 좋게 만들 수 있을까?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확률은 높겠죠."

"세상에 변수가 얼마나 많은데. 운도 따라줘야 하고. 뭐, 회귀한다고 하면 잘 해낼 자신은 있지만…. 하고 싶진 않네."

"신기하네요. 나는 종종 하는데.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그런가. 하긴 그럴법하지."

세상이 망한뒤의 일을 따지고 보면, 나에게 그리 끔찍하거나 위협적인 일은 별로 없었다.

정세희? 그년의 일은 뭐…. 다른 이들의 불행에 비하면 어린애 장난 같은 일이다.

아무런 상처도, 고통도 없는 그저 헤프닝 수준의 일.

하지만 민희만 해도 끔찍한 일들은 많았다. 남자친구의 죽음, 성 착취, 집단강간….

지금 저렇게 담담한 표정으로 살고 있는 게 대단할 정도의 일들.

그렇기에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간다고 해서 있었던 일들이 없어질까?

내가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내가 사람들을 죽였던 일은 없었던 일이 될까?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사람을 쳐죽인 이 시간선은 그대로 남아있을 텐데.

"만약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래서 세상이 망하기 전의 너를 내가 찾아간다면. 너는 나를 받아줄까?"

"흐응….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마…. 힘들겠죠? 그땐 이미 남자친구가 있었으니까."

"남자친구가 없었다면?"

"글쎄요. 그렇게 해도 대답하기 어렵네요."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지금이 좋은 거야. 이런 세상이니 나 같은 놈이 너 같은 여자도 만나는 거지."

잠시 말없이 화장을 마저 지운 민희. 그러더니 몸을 간단하게 씻고 샤워기로 몸을 씻어낸다.

욕조에 누워서 민희가 씻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아래쪽에 힘이 불끈 들어간다.

야해. 여자가 목욕하는 모습은 역시 야하단 말야.

몸을 다 씻은 민희가 욕조로 들어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몸 위로 엎드리며 내 물건을 손으로 잡는 여자.

"이건 왜 이렇게 됐어요?"

"그러게. 뭔가 부족한가 봐."

"정말…. 짐승이야. 짐승."

그러면서 내 몸에 바짝 밀착하며 안긴다.

따듯한 물과 부드러운 가슴. 몸 전체에 느껴지는 매력적인 여체.

아. 여기가 천국이지. 다른 게 뭐가 필요하겠어.

"삐졌어요?"

"엥? 왜? 왜 갑자기?"

"아니…. 내가 받아주기 어렵다고 말해서…."

"아아. 그거? 신경 쓰지 마. 어차피 돌아갈 일도 없을 텐데 그런 걸 따져. 벌어지지도 않을 일로 삐지고 화내면 그것만큼 감정 낭비가 어딨어."

"흐응…. 쿨하네요."

내 어깨에 볼을 대고 나를 바짝 끌어안는 민희.

나는 그런 그녀의 젖은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볼에 손을 감쌌다.

"지금이 더 좋다는 말은…. 못하지만, 그래도 당신 덕분에 훨씬 좋아졌어요. 고마워요."

힘들게 꺼낸 듯한 그녀의 말에서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복잡하겠지. 많은 생각이 날거다.

죽어버린 남자친구, 아픈 과거, 끔찍했던 경험.

복수했으니 이제는 묻어둬야 할 거다. 하지만 쉽지는 않겠지.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간단한 건 아니니까.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려 줬다.

지그시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느끼는 민희. 팔이 조금 더 길었다면 저 엉덩이를 꽉 움켜잡을 수 있었을 텐데.

어이구. 나란 놈은 이런 상황에서도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이제 당신의 계획은 어떻게 돼요?"

민희의 질문에 잠깐 생각했다. 내 계획? 뭐가 있지?

"나? 글쎄. 중국에 역병 뿌려놓은 것도 지켜봐야 하고, 러시아도 가야 해. 근데 일단은 문밖에 있는 놈들 대가리 속부터 들여다봐야지. 그럼 부산이랑 일본 상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을 테니까. 결국, 일본도 가긴 가야 하고…. 할 게 많네."

"러시아? 러시아는 왜요?"

"아. 거기도 복수하러 가야 하거든. 누군가의 복수를 이뤄주는 게 내 전문이니까."

"흐응…. 여자?"

"당연하겠지? 설마 내가 남자 놈들을 위해 복수를 해주겠다는 놈처럼 보여?"

"그건 아니겠죠. 아닌데…."

"왜. 실망했어? 다른 여자가 있다는 거에?"

솔직히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다.

진짜 민희 말대로 내심 삐진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정말 아니야.

그렇다고 선을 긋는 것도 아니다. '나는 여자가 있으니 민희 너의 자리는 딱 거기까지야.' 이런 식의 막돼먹은 짓은 아니다.

어차피 민희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거다. 그렇게 둔한 여자는 아니니까.

그냥…. 편안하게 말하고 싶은 거다. 숨기는 것 따위는 없다는 느낌?

지금까지는 물어보지 않았으니 딱히 말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

문제는…. 이게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는 전혀 모른다는 건데.

"이뻐요?"

"어…. 이쁘지? 나는 이쁘지 않으면 안 만나. 내가 괜히 너를 만나겠어?"

"흐응. 되게 뻔뻔해서 내가 할 말이 없네. 은근슬쩍 말이라도 돌릴 줄 알았는데. 너무 당당한 거 아니에요?"

"그정도로 말재주가 좋거나 남의 기분을 헤아릴 줄 아는 놈은 아니라서."

"에휴.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손해라는 걸 이 나이에 이렇게 알게 되네…."

"음? 누가 손해야? 니가 손해야?"

"몰라요! 그런 거 일일이 물어보지 말라고요!"

그러더니 몸을 살짝 일으키더니 등을 돌린다.

"뭐야. 이러면 가슴 만져달라고 자세 바꾸는 거잖아?"

"으! 진짜! 어쩌다 이런 남자한테 빠져서!"

그러면서도 가슴을 만지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는다.

조용해진 욕탕. 찰박거리는 물소리만 살짝씩 들리고 나는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데 집중한다.

민희의 입에서 살짝살짝 나오는 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꼭지를 꼬집어주면 반응이 조금 더 크게 나온다.

"나갈까? 이걸로는 부족하지?"

말없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는 민희.

악녀처럼 보이던 그녀는 화장이 지워지고 순진한 소녀처럼 변해버렸다.

이런 갭이 좋은거지. 같은 사람인데 색다른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잖아?

그렇게 욕조에서 나와 수건으로 몸을 닦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놈들과 눈이 마주쳤다.

이런. 벌써 수면 시간이 풀렸나? 지금 수면 시간은 110분일 텐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저놈들 깼다."

내 말에도 딱히 몸을 가리거나 하지 않는 민희.

아. 어차피 죽을 놈들이라 상관없다고 했던가?

하긴, 저놈들이 무슨 죄야. 신나게 마약섹스난교파티 하려다가 나에게 잡혀서 끌려온 불쌍한 놈들인데.

잘못이 있다면 고영준이랑 엮인 것 정도?

"이리 와봐."

내가 민희를 부르자 순순히 나에게 다가오는 그녀.

나는 녀석들이 보는 앞에서 민희에게 그대로 키스했다.

짧은 키스가 끝나고 묘하게 흥분된 표정을 짓는 여자.

나는 그런 그녀의 몸을 돌려 벽을 잡게 했다.

"아니…. 이러고 하려고요?"

"왜? 싫어?"

"저 사람들이…."

"어차피 죽을 놈들이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부끄러움인지 아니면 흥분인지 묘하게 말끝을 흐리는 민희.

나는 그런 그녀의 허리를 손으로 조금 누르고 엉덩이를 잡았다.

힐끔 녀석들을 바라보자 예상외로 녀석들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너무 죽을 걸 강조했나? 이런 상황을 보고도 썩은 동태눈깔을 하고 있네.

신경 쓰지 않고 민희의 아래쪽에 물건을 쓱쓱 비빈다.

방금 씻고 나와서 살짝 뻑뻑한 상태지만 이내 금방 젖어오는 아래쪽.

끝부터 집어넣고 몇 번 움직이자 내 물건은 별 어려움 없이 안쪽으로 끝까지 들어가게 된다.

"으음…."

야한 신음. 왠지 아까보다 더 야한 거 같은데.

지켜보는 시선이 있어서 그런가? 조금 더 흥분해있는 느낌이야.

벽을 잡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는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개처럼 허리를 흔드는 나.

저놈들은 대체 무슨 생각이 들까? 상상도 안 되네. 씨발. 절대 저런 상황은 되지 말아야지.

녀석들은 한 놈씩 고개를 돌리기 시작하더니 내가 사정할 때쯤에는 모두 다 아예 눈을 감고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하긴, 죽기 직전인데 눈에 섹스하는 게 들어오겠냐. 내가 감수성이 좀 부족했네.

세 놈을 재웠다. 아마도 이게 그놈들의 마지막 기억일 거다.

아마 다시 깨기 전에 죽을 테니까. 그게 저놈들의 운명이지.

재워버린 녀석들은 무시하고 다시 민희에게 집중한다.

네 번째 사정이지만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다.

내가 좋다는 이 여자. 그 호의에는 확실하게 보답해 줘야지.

그렇게 세 번을 더 하고 나서야 나는 녹초가 돼서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민희 역시 한껏 흐트러진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 숨만 헐떡인다.

그렇게 누워있는데 민희의 손이 내 손을 잡는다.

그 손의 감촉이 좋아서 잡은 손등을 엄지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자주 와요."

그녀가 한 말에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이 여자도 자존심이 있을 텐데, 그런 걸 모두 내려놓고 꺼내놓은 솔직한 마음이잖아.

솔직히…. 조금 감동했다. 그리고 미안한 마음이 더 많이 들었다.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어. 내가 더 잘할게. 계속 도도한 여왕님처럼 있어 줘."

"나는 여왕이 아니라고요…."

"알았어. 어쨌든 나 같은 녀석 때문에 니 자신을 바꾸려고 하지는 마. 그런 건 서로 맞춰가는 거지,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맞추는 게 아냐."

잠시 말이 없는 민희.

그러더니 조금 뒤에 입을 연다.

"아까 다 못했던 말인데요. 혹시라도 예전으로 돌아간다면, 뻔뻔하게 들이대요. 나는 뻔뻔한 남자에게 약하니까."

그런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답했다.

"그래. 꼭 기억해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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