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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지이이이잉
호텔 상공. 미나가 작게 '우레 폭풍'이라고 중얼거리자 그녀를 중심으로 동그랗고 거대한 노란 선이 그려진다.
정확히 1분 뒤엔 이곳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예고하는 죽음의 원.
웃긴 건…. 이놈들은 그걸 못 느꼈다는 거다.
티어 10의 미나. 스킬 반경 증가4를 가진 그녀.
원래의 200미터에서 추가로 200미터가 늘어서 반경 400미터가 된 우레 폭풍.
그렇기에 지상에 있는 저들에겐 노란 선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보이긴 할 텐데 단편적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거다.
쿠르르르릉
모여드는 먹구름. 이정도되면 심상치 않음을 느껴야 할 텐데. 아직도 적극적으로 도망가거나 하지는 않는다.
멍청이들. 대규모 광역 스킬을 맞아본 경험이 없는 거야?
"승희야. 혹시 모르니까 EMP 골고루 써놓고 진동파 유지해줘."
"알겠어요."
주변에 뿌려지는 EMP. 기왕 할 거면 확실하게 해야지. 이제 저놈들의 무전기 같은 건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됐다.
게다가 진동파가 깔렸으니 비행이나 블링크도 불가능하다.
탐지로 살펴보니 기척들이 우왕좌왕하고 있긴 한데…. 큰 소란은 없다.
아니네. 한 무리. 한 무리의 인원이 갑자기 미친 듯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일본어로 뭐라고 외치는데 주변에선 아무도 못 알아듣는다.
옆에서 진정시키려고 하지만 그 일본놈들은 오히려 자신들을 진정시키려는 놈들에게 마구 뭐라고 하며 걷어차더니 갑자기 바깥으로 뛰어나간다.
"쟤들은 이게 뭔지 아나 보다. 안나가 가서 저놈들 저지 좀 해줄래? 외곽에서 저놈들이 바깥으로 못 나가게만 하면 돼. 거리 항상 최대로 벌리고."
"네."
대답하더니 바로 블링크 하는 안나.
"세아는 보호막 쓰는 놈들 보이는 족족 깨버리고."
"알았어."
"승희랑 미나는 이제 포탈로 두를 거야. 안에 있어. 승희는 진동파 계속 쓰고."
"알았어요."
"조심해요."
승희와 미나의 전후좌우 위아래를 포탈로 덮었다.
자. 이제 이 우레 폭풍은 아무도 막을 수 없어.
나는 바로 야쿠자 놈들에게 가서 안나가 휩쓸리지 않게 범위를 잘 조정한 뒤 광역 스킬 무효화를 뿌렸다.
그리고 날아오는 안나의 바람 칼날.
어디서 날아오는지도 모르는 공격에 팔다리가 날아가 버리는 야쿠자.
"축생!!"
뭐야? 웬 짐승? 아. 욕인가보다. 욕을 다이렉트로 번역해서 그런가?
욕 진짜 건전하네. 이런 상황에서 저런 욕이면 성인군자 아냐?
점점 모여드는 먹구름의 양이 많아진다. 몇 번을 봐도 무시무시한 기분이야.
그렇게 절망적인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야쿠자들은 갑자기 건물 안으로 뛰었다.
그걸 보고 뭔지도 모르고 우르르 따라 들어가는 다른 놈들.
으음. 어쩐다? 과연 우레 폭풍이 저런 큰 건물까지 박살 낼 수 있나?
작은 건물, 1층이나 2층짜리 건물들은 깔끔하게 박살 냈는데…. 저건 철근 콘트리트로 떡칠해놓은 건물이잖아.
과연 저게 부서질까?
진동파 때문인지 하늘로 날아오르는 놈들은 하나도 없다.
지상에 있는 놈들은 진동파 효과가 약한지 움직이는 건 가능한 거 같고.
블링크 쓸 수 있는 놈은 없나? 밖으로 나가는 놈은 안 보이네.
그렇게 1분이 지났다.
그리고 앞으로 있을 참상을 예고하는 첫 번째 벼락이 땅으로 내려친다.
콰르르르릉!
그리고 이어지는 무수히 많은 벼락.
나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멍하니 지켜봤다. 내 걱정은 쓸데없는 거였어.
자연적인 벼락이라면 모를까, 이건 스킬이다. 벼락이 한번 칠 때마다 호텔의 외벽과 콘크리트들이 파삭파삭하면서 깨진다.
피뢰침? 그건 이미 처음에 박살 났다. 벼락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예 녹다시피 해버렸지.
썬더 필드의 벼락은 피뢰침으로 어느 정도 버티지만, 우레 폭풍의 벼락은 못 버티네.
한 2분 지났나? 호텔 바깥에 있는 놈들은 더 남아있는 놈이 없다.
보호막을 쓰고 있던 녀석들이 몇 있었는데 그건 세아가 전부 깨버렸다.
보호막이 깨지자마자 벼락을 맞고 빛이 되어버린 놈들.
이젠 만신창이가 된 호텔 건물과 그 안에 남아있는 인간들만 남은 상황.
"세아야."
세아의 옆으로 블링크하자 떨어지는 벼락을 넋 놓고 보고 있던 세아가 깜짝 놀란다.
"어? 어. 왜?"
"저거 건물. 때려 부수고 싶게 생기지 않았니?"
"어? 아…. 알겠어."
"딱 기둥이 있어 보일 만한 곳들만 부숴봐."
"오케이."
세아가 블링크 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세상에 가득한 천둥벼락 사이를 뚫고 거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쿠웅!!!!
그리고 그 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쿠웅!!!!
호텔의 1층에서 울려 퍼지는 폭음. 소리가 날 때마다 호텔 건물은 비명을 지르며 무너진다.
탐지에 걸리는 기척들이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는 모습. 음. 한 다섯 명 남았나? 질긴 목숨이네.
세아는 계속해서 건물을 박살 내고 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들은 건물을 만신창이로 만들고 있다.
흉측하게 드러난 철골들. 바스러져 떨어지는 콘크리트들.
우레 폭풍이 끝나자 탐지 안에는 우리 일행 말고는 한 명만 남게 되었다.
내 쪽으로 모두 모이는 여자들.
"하나가 남았네요?"
안나가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살았지? 금속화나 보호막 그런 건가?
건물의 잔해에 깔린 한 사람.
저걸 어쩐다? 잔해를 다 치워야 하나?
"어딘데."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세아가 바로 그쪽으로 내려가더니 다시 물어본다.
"여기?"
"조금 왼쪽."
"여기?"
"어. 아. 너도 빨리 탐지 좀 배워라."
"알았다고. 그래서 테이밍 열심히 숙련하잖아."
그러더니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쿠우웅!!
땅이 푹 꺼지는 느낌.
건물 파편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어…. 쉽지 않은데?"
"놔둬."
내 말에 물러나는 세아.
아무리 봐도 잔해 밑에 깔려서 꼼짝도 못 하는 거 같은데…. 이걸 일일이 파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 한 명만 남은 그 위에다가 바닷물 게이트 일곱 개를 모두 열어버렸다.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바닷물. 뭐가 됐든 이 정도 바닷물이 쏟아지면 살아남긴 힘들겠지.
정말로 얼마 지나지 않아 기척이 사라졌다. 그리고 잔해 일부가 아래로 움푹 꺼졌다.
보호막 같은 거로 버티고 있었나? 그럼, 말이 되긴 하지.
어쨌든 말끔해진 기척. 아. 깔끔하다. 문제는 이제 코인을 주워야 하는데.
"안나야."
"네?"
"동물 탐지 숙련은 어느 정도야?"
"고급 56퍼센트요."
"아직 이틀은 더 있어야 하네."
"그 정도면 되지 않을까요? 오늘은 무리고."
"으음. 그럼 일단 주울 수 있는 것들만 다 줍자."
내 말에 네 여자는 눈에 보이는 코인들을 줍기 시작했다.
잔해에 깔린 코인은 결국 지상으로 튀어나오기에 줍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문제는 교묘하게 가려진 것들은 찾기가 힘들다는 거다. 이래서 코인 탐지가 있어야 하는 걸지도.
두어 시간을 호텔 주변을 돌며 코인을 주웠다.
37만. 들인 노력에 비해 짜다. 일 인당 37만이라고 해봐야 다 합쳐도 185만이잖아. 여기 있던 놈들 숫자가 꽤 됐는데.
"아. 이거 엄청 귀찮네!"
세아가 화를 버럭 냈고, 승희와 미나가 그걸 보더니 피식 웃는다. 그러는 그녀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
뭐 좋은 방법 없나. 죽일 때 한자리에 몰아넣고 죽이는 방법이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아. 광역 스킬을 쓴 다음에 살 구멍을 만들어줘야 하나? 그럼 우르르 그쪽으로 몰릴 테니까?
그런 다음에 이쁘게 모인 놈들을 깔끔하게 죽이면?
음. 나쁘진 않네. 근데 그게 가능하냔 말이지.
"해도 지는데 그만하자. 더 있으면 나중에 안나가 스킬 배우고 나서 다시 오지 뭐."
벙커로 가는 게이트를 열어주니 네 여자는 사뿐하게 게이트로 들어간다.
"오빠는 안 와요?"
"난 아직 할 일이 많아."
"뭔 할 일이 매번 그리 많아요."
승희의 걱정 반, 투정 반이 섞인 말투. 그런 그녀를 보고 웃어준 뒤 손을 흔들었다.
"닫는다."
게이트를 닫고 파티를 풀었다. 그리고 탐지.
아무도 없는 주변.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호텔의 잔해와 파도 소리,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하는 하늘.
깔끔하네. 역시 광역 스킬이 좋긴 좋아.
잠시 바다를 바라보며 아까 있었던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본다.
레테와 그 조폭 놈들은 우레 폭풍이 뭔지도 몰랐다. 그게 뭔지 알아본 건 야쿠자 놈들뿐이었다.
하. 정말. 우리나라 놈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뭐 발전도 없고 치고 나가는 것도 없네.
한심하다. 한심해. 대기업씩이나 됐으면 끝내주는 씹 고인물 하나 정도씩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하여간 뭘 해도 어설퍼. 탐욕이 모자란 건지, 성정이 악독하지 않은 건지.
어쨌든 각 윗대가리 놈들은 잡아놨으니 녀석들을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민희의 복수를 위해서 부산까지 왔는데…. 어쩌다 보니 정리까지 하게 생겼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싹 정리하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일본까지는 무리겠지만, 그래도 국내를 평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풉. 국내 평정이라니. 무슨 전국구 건달이 하는 소리 같네.
바로 민희의 집무실로 순간이동 한다.
아. 집무실 옆방이구나.
꽁꽁 묶인 채로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다섯 놈.
녀석들을 수면으로 재워놓고 민희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어우. 냄새…."
"미안해요. 왔어요?"
고영준은 싸구려 은박 매트 위에서 눈깔을 뒤집으며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녀석에게 풍기는 구린내와 지린내. 고통이 심해서 막 싸 재꼈나 보네. 더러워라.
"환기를 시켜놔도 냄새가 심하네요."
"속은 조금 풀렸어?"
민희에게 다가가 허리에 팔을 두르고 물어본다.
그다지 밝지 않은 표정의 민희.
그래. 복수는 즐겁긴 하지만, 이런다고 과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표정이 그리 밝을 수가 없지.
"뭐 하는 짓인가 싶네요."
"그럼 빨리 죽여. 뭐하러 저런 놈을 계속 붙잡고 있어."
"그래야 할까 봐요. 오랫동안 기다려온 순간인데, 그리 기쁘지가 않네요."
"어차피 이긴 건 너야. 빨리 매듭지어버리고 끝내. 그리고 앞으로 좋은 것만 보고 살아."
내 말에 나를 바라보더니 씨익 웃으며 말한다.
"좋은 거요? 보여줄 거에요?"
이런 상황에서도 사람을 설레게 하다니. 정민희. 요망한 여자.
"노력해야지."
내 품을 벗어나더니 수납을 여는 민희. 예전에 봤던 폴딩 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이거. 이 남자 거에요."
"그 나이프?"
"네. 이걸로 내 남자친구를 죽였죠."
살짝 섬찟한 모습이지만, 나는 그녀를 위해서 잠자코 가만히 있었다.
고영준 곁에 쪼그려 앉은 그녀. 엉덩이의 곡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어휴. 나는 이 상황에서도 저런 게 눈에 보이네.
"이제 주인에게 돌려줘야죠. 주인의 품에."
그러더니 칼날 끝을 가슴에 꾸욱 찔러 넣는다.
몽글거리며 솟아나는 피가 옷을 적시고 칼날은 계속해서 몸 안으로 들어간다.
하하…. 정말로 칼날을 품에 안겨주네.
그렇게 칼날이 들어가자 고통으로 실신한 상태에서도 몸을 꿈틀거리는 고영준.
마지막으로 나이프의 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박아 넣는 민희.
그러자 고영준의 몸이 빛으로 변했다.
"후우."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여자. 복수는 완료되었고, 그녀의 아픈 과거는 빛과 함께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진 않겠지. 덮어 놓을 수는 있어도 사라지진 않을 거다.
언젠간 불현듯 한 번씩 튀어나와 기분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겠지.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복수를 했다는 것.
복수를 완료했기에 최악의 기분이 되진 않을 거다.
물론 당사자가 아니니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민희가 내 쪽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녀를 잡은 뒤 매트에 바닥에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 안쪽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트. 바로 게이트를 닫자 책상에 놓여있던 종이들이 살짝씩 날린다.
아. 공기도 싹 빨아가서 이제 좀 살 것 같네.
"깜짝이야. 어디에 연 거예요?"
"우한."
"우한? 중국?"
"어. 내 쓰레기통."
"못 말려."
"민희."
"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네 안 좋았던 기억들을 모두 지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기억을 지운다고요?"
"어. 네가 당했던 일들. 다시는 되새기고 싶지 않은 일들. 전부 말끔하게 지워진다면?"
"스킬 말하는 거죠?"
"어."
잠시 고민하는 민희. 그러더니 나를 보고 대답한다.
"안 지워요."
"왜지?"
"그런 일을 당했던 것조차 나 자신이기에."
"그런가."
예상했던 답변이다. 민희의 성격이라면 그렇겠지.
끔찍한 기억이 있다면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할 사람이다.
그걸 스킬로 지울 생각은 안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