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29화 (429/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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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바로 시작할 거야?"

"후우. 잠시만요."

내 질문에 심호흡을 크게 하는 민희. 그리고 그걸 보며 처참한 눈빛을 보내는 고영준.

뭔가 죽기 전까지 냉소적인 모습을 유지하며 자신을 죽이려는 자를 조롱하는 악당을 생각했지만, 그런 건 없었다.

그런 걸 보면 컴퍼니의 그 부장은 대단한 거야. 그러기 쉽지 않지.

"근데, 그 주사는 뭐야? 나 이놈 기억 읽기 해야 하는데."

"아, 아직 안 했어요? 그럼 먼저 해요."

"알았어. 근데 그건 뭔데?"

"이건…. 보톨리눔 주사제요. 그러니까…. 보톡스죠."

"보톡스? 피부 팽팽하게 하는 거?"

"맞아요. 그거."

"그걸 왜?"

"이걸 혈관에 과량 넣으면 통증이 유발되니까요."

담담한 말투로 말하는 민희의 모습이 살짝 무서울 정도다.

그리고 고영준 이놈도 민희의 말을 듣더니 표정이 일그러진다.

의사들은 뭔가를 아는 건가? 뭐, 나야 상관없지만.

"병이 한 개가 아닌거 같은데."

"네. 한 개는 보톡스고…. 한 개는 포타슘. 다른 건 모르핀."

"포타슘? 모르핀? 포타슘은 칼륨이잖아? 모르핀은 마약이고?"

"맞아요."

"그것도 그런 효과야? 통증?"

"네. 포타슘은 혈관에 주사하면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되죠."

"무섭네. 근데 모르핀은? 그건 마약이잖아? 아니…. 진통제 아냐? 기껏 고통을 주고 진통제를 주는 거야?"

"아. 당연히 따로 쓰죠. 모르핀은 마지막에 쓰는 거니까."

"나는 이해를 못 하겠네. 근데 모르핀은 맞으면 기분 좋아지는 거 아닌가? 고통스러운 부분이 있나?"

"물론 맞았을 때는 기분 좋겠죠. 하지만 효과가 끝나면…."

"아. 금단증상?"

"네. 살기 싫어질 거예요."

다시는 민희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 상무 그 새끼는 편안하게 죽은 거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영준의 기억을 읽기 시작했다.

이 녀석의 정보는 더 알 필요가 없어졌다. 어차피 이놈의 운명은 민희에게 달렸으니까.

내가 알아야 할 정보는 부산.

아까 봤던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왜 거기 모여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봐야 한다.

차려져 있는 잔칫상. 누구 잔치인지는 알고 먹어야지.

기억을 읽으면서 흥미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됐다.

와. 역시 이래서 사람은 많은 걸 겪어봐야 해.

이걸 이놈의 기억으로만 볼 수밖에 없는 게 아까울 정도네.

한참 기억을 읽고, 녀석의 몸에서 손을 뗐다.

"끝났어요?"

"어. 일단 알아낼 수 있는 건 어느 정도는?"

"뭐에요? 아까 그 사람들은?"

"레테, 극진파, 니지이치구미."

"네?"

"레테는 알지? 우리나라 대기업. 극진파는 부산의 조폭. 니지이치구미는 후쿠오카 야쿠자."

"대기업에 조폭에 야쿠자? 무슨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조합이네요. 그런데 그들이 왜 저렇게 모인 거죠?"

"다 이놈 고영준이 유통한 약물 때문이지."

내 말에 민희는 고영준을 벌레 보듯이 바라봤다.

지독한 경멸이 담긴 시선. 이야. 저 정도 눈빛이면 누군가에겐 포상이겠네.

"이 새끼가 만든 약이 효과가 좋나 봐. 다 같이 모여서 집단 마약 난교 섹스하려고 모인 거 같은데."

"으…."

경멸의 표정이 진해졌다. 이야. 잘하면 눈빛으로 사람도 죽일 수 있겠네.

아무튼, 녀석들이 모인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서로 간의 유대를 위한 자리. 그리고 그 자리는 가볍게 맛있는 밥 한 끼 먹는 자리가 아니다.

고영준이 만든 특제 약물을 사용해서 다 같이 뿅 간 상태로 신나게 난교 섹스하는 질펀한 자리.

고영준의 기억에서 본 장면은…. 어우. 보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였다.

아마…. 쾌락의 급에서는 가장 최상급이 아닐까?

그제야 아까 호텔에서 페이즈 아웃 하고 봤던 것들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 갔다.

벗은 여자들을 검사하고 있던 놈. 아마 오늘 행사에 쓸 여자들이겠지.

신나게 약에 취해 짐승처럼 섹스하고 질병 해제로 금단증상을 깔끔하게 지워버리는 것.

금단증상은 물론이고 혹시 모를 성병 같은 것들도 지울 수 있을 거다.

후유증이 전혀 없잖아? 저런걸 안 할 수가 없겠네.

"그럼 이제 다시 부산으로 갈 거예요?"

민희의 질문. 그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 고영준은 오늘 행사에서 꼭 필요한 인간이다.

이 녀석이 없어진 걸 알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근데 중요한 인간 치고는 경비가 엄청 허접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지. 이놈들의 수준이 이 모양인걸.

마약 섹스 같은 거에 빠져서 이런 짓거리나 하는 놈들의 수준이 그렇지. 한심한 놈들이야.

"어. 코인이 잔뜩 있는데 남겨둘 순 없지."

"그럼 다녀와요."

"너는 이제 시작인가?"

"그래야죠."

주사기를 준비하는 민희. 뭐, 더 볼 필요는 없겠지. 이제부터는 그녀의 시간이니까.

"파티 풀릴 수도 있어."

"괜찮아요. 이제 상관없어요."

"그래도 코인은 먹어야지. 이놈을 잡았다고 끝이 아니야."

원수를 앞에 둬서 그런지 더는 지체하고 싶지 않은 모습.

쩝. 지금 무슨 말을 해도 귀에 잘 안 들어오겠지. 내가 알아서 챙기는 수밖에.

"다녀올게."

"조심히 다녀와요."

순간이동을 해서 부산으로 넘어간다. 과연 돌아올 때쯤에 고영준 저 새끼가 살아있을까?

하긴,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상태가 아니긴 하겠구나.

차라리 빨리 죽여달라고 빌지도 모르겠네.

아직 호텔은 조용하다. 고영준이 사라진 걸 못 알아챈 분위기.

그렇다면? 내가 먼저 손을 써야지. 일단 윗대가리들 부터 잡는다.

그냥 죽여도 되지만 뽑아낼 수 있는 기억들은 다 뽑아내야지? 그래야 이놈들이랑 엮여 있는 놈들을 전부 잡아 죽이지.

아까 최상층에 있던 세 놈. 그놈들이 가장 윗대가리일 확률이 높다. 원래 바보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법이잖아?

보안도 안 되고 위험하기만 한곳인데 높은 곳을 고집하는 건 멍청한 짓이야.

그리고 그런 멍청한 짓의 대가는 뭐…. 죽음이지.

맨 처음 봤던 남자가 있던 방. 남자는 여러 음식을 펼쳐놓고 밥을 먹고 있다.

캬. 씨발. 맛있어 보이네. 팔자 좋구나. 이런 거나 먹고 있고.

남자가 입에 있는 걸 다 씹고 물을 한잔 들이키는 순간 페이즈 아웃을 풀고 바로 무효화와 수면을 건다.

공중이 아니라면 무조건 먹힐 수밖에 없는 항거불능의 콤보.

혹시나 체할 것을 생각해서 타이밍까지 고려해주는 이 친절한 배려.

정말 센스 있네. 내가 해놓고도 뿌듯해.

테이프 질을 2배속으로 한 다음 게이트를 열고 녀석을 던져 넣었다.

"이 남자는 뭐예요!?"

"USB."

"네? USB?"

"아. 이젠 그냥 기억이 담겨있는 도구 같은 놈들이야. 잠깐만 놔둬 줘. 혹시 수면 깨서 시끄러우면 기절 걸어놔도 돼."

"알겠어요."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쓴다. 자동으로 사라지는 게이트.

바로 옆의 옆방으로 간다. 아까 일본어로 적혀있는 무언가를 읽던 놈.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다.

이야. 분위기 있네. 자신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이 망한 세상에서 그럴듯하게 생존한 데다가 부와 명예, 힘을 가지고 있잖아?

게다가 곧 있을 마약 섹스파티까지 생각하면 저렇게 폼 잡는 게 이해한다.

하지만 거기에 찬물을 끼얹는 건 나의 몫이지.

잠이 들며 옆으로 쓰러지는 녀석. 쯔쯔. 안됐네. 그 삶도 여기까지니까.

녀석의 손에서 떨어진 담배를 주워 우한으로 통하는 게이트를 작게 연 다음 휙 던지고 게이트를 닫았다.

좋네. 좋은 쓰레기통이야.

스피디한 테이프 질. 그리고 민희의 집무실로 통하는 게이트를 연다.

"으으으으으으음!!!"

게이트를 열자마자 들리는 낮은 비명. 깜짝 놀라서 신음을 내지르는 고영준에게 수면을 걸었다.

수면이 걸리고도 끙끙거리는 녀석. 와. 고통이 심한가 보네.

"놀라라."

"미안해요. 시끄러웠죠?"

"아냐. 하던 거 계속해. 내가 옆방으로 옮기지 뭐. 너도 여기 이렇게 이놈들이 있으면 신경 쓰이잖아?"

"괜찮은데."

"아냐. 여기 옆방 비었지?"

"네."

민희의 옆방으로 아까 남자와 이번 남자를 모두 옮긴 다음 저장했다.

그리고 다시 부산으로 넘어간다. 이번엔 여자를 검사하던 그놈 차롄데.

바로 페이즈 아웃을 쓰고 넘어간다. 아까 그놈의 방으로 가니 아직도 벌거벗은 여자들을 검사하고 있다.

어휴. 씨발. 무슨 검사를 이렇게 오래 해? 고맙게.

근데 자세히 보니 아까 그 여자들이 아닌거 같다.

아. 다른 여자들인가? 여섯이 전부가 아니었어? 하긴, 여자가 많을수록 좋긴 하겠지.

적은 것보단 낫겠지.

대머리 남자와 옆에 있는 남자 둘. 그리고 벌거벗은 여자 여섯.

한 번에 스킬을 걸기엔 조금 많다. 어우. 귀찮네. 광역 수면을 배워야 할까?

하긴 그걸 배우면 번거롭게 무효화를 안 걸어도 될것 같은데. 한 번에 재울 수도 있고.

음…. 스킬 찍을 거 없어지면 찍지 뭐. 문제는 그런 날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거지만.

이미 윗대가리 둘이 사라졌는데도 아직 아무도 못 알아차리는 게 신기하다.

뭐, 그게 이 녀석들의 한계다. 치열하게 스킬 숙련 안 하고 딴짓하는 놈들이 다 이렇지 뭐.

녀석들의 숫자가 많으니 일단 구석의 사각으로 가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한다.

그리고 늘 하던 대로 비행, 투명화, 반사를 걸고 슬그머니 녀석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일단 무효화를 걸고 여자들에게 매혹부터 건다. 매혹은 내가 아무 소리 안 하면 걸렸는지 모르니까 먼저 걸어도 되잖아.

그리고 대머리부터 수면을 걸고 옆에 있던 남자 둘 역시 재운다.

"자. 모두 조용."

내가 투명화를 해제하자 홀딱 벗고 있는 여자 여섯이 나를 보고 일제히 웃는다.

어우. 저건 약간 무섭네. 소름 끼칠 정도야.

일단 기억은 읽어야 하니 남자 놈들은 전부다 테이프 질 해서 게이트로 넣어버렸다.

이제 남은 여자들. 하아. 이건 어떻게 처리하나.

고르고 고른 여자들이라 그런지 여섯 전부 이쁘장하고 몸매도 좋다. 게다가 벗고 있잖아.

여자에게 면역이 없다면 이런 상황에서 태연하게 있긴 힘들 거야.

아마 나도 한 이삼 년 전이었으면 눈 둘 때가 없어서 이리저리 시선을 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잖아? 나는 이런 거로 수줍어 할 때는 지났지.

죽이긴 아깝지만…. 그렇다고 쓸 곳도 없다.

여자들의 스킬을 물어봤더니 그다지 쓸모없는 스킬들이다.

하긴 아무리 이쁘고 몸매가 좋아도 공격 스킬을 가지고 있으면 이런 식으로 못 써먹지.

이런 일을 하지도 않을 거고.

게다가 코인도 별로 없다. 쯧. 그야말로 성욕처리 말고는 쓸 일이 아무 데도 없는 여자들.

그래서 그냥 전부 재웠다. 괜히 미련 가질 필요 없다. 관리하기만 귀찮을 뿐.

망설이지 않고 전부 죽인다. 여섯 명을 죽여도 나오는 코인이 3만 코인을 못 넘는다.

참…. 불쌍한 인생이야. 그러니까 왜 바보같이 스킬을 저렇게 골랐을까.

하긴, 그 정도 머리가 됐으면 저런 일을 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일단 윗대가리들은 모두 끝났다.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최상층 놈들을 다 처리했으니 나머지는 내가 잡은 놈들보단 급이 떨어지겠지.

결국, 그 말은 이젠 마음껏 죽여도 되는 상황이라는 거다.

탐지에 걸리는 놈들을 전부 지우고 아무도 남지 않게 하면 되는데…. 어휴. 정말 귀찮네.

승미세안 네 여자를 모두 데려와서 쓸어버릴까?

우레 폭풍 한방만 딱 떨어뜨리면 편할 것 같긴 한데.

근데 또 호텔은 망가뜨리고 싶진 않단 말이지. 아니다. 그냥 호텔을 포기할까?

아. 그래. 그냥 포기하는 게 낫겠다. 호텔이야 여기 말고도 또 많잖아.

귀찮은 것보단 깔끔하게 처리하는 게 낫지.

근데 호텔 안에 있는 놈들은 우레 폭풍에 맞나? 건물이 무너지긴 할 것 같은데. 이렇게 높은 건물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뭐, 해보면 되겠지. 이 녀석들 수준이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것 같기도 하고.

바로 벙커로 돌아갔다.

그리고 밖에서 여유롭게 앉아서 숙련하고 있는 승미세안 네 여자에게 갔다.

"친구들! 출동할 시간이야!"

나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는 세아.

"왜? 왜 나를 그렇게 쳐다보는데?"

"그걸 몰라?"

좀 그런가? 암튼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잠깐 바닷바람 쐬러 가자. 거기에 코인도 줍고."

"갑자기 무슨 일인데요. 자세히 설명을 해줘야 저희도 알죠."

승희가 답답하다는 듯 나에게 말한다. 음. 너무 설명이 짧았나? 하긴, 그런 감이 있긴 하네.

"조폭이랑 야쿠자들 잡으러 가는 거야."

"설명을 들어도 모르겠네요. 암튼 가자면 가야죠. 이러고 가도 상관없죠?"

자신의 옷을 한번 살펴보고 미나와 세아, 안나를 살펴보더니 나에게 말한다.

"너네…. 전부 노브라 아니니?"

"어…. 그렇네요. 잠시만요."

우르르 벙커로 들어가는 네 여자. 웃겨 정말.

뭐, 어차피 전부 다 죽여버리면 노브라건 뭐건 상관없긴 한데, 한 놈이라도 살아남으면 좀 그렇잖아.

노브라 여자 넷이서 자신들을 전멸시켰다고 하면 그것도 웃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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