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28화 (428/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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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역시 바다는 좋구나."

해운대. 한국인에게 해수욕장을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곳.

맞나? 뭐, 그걸 확인할 인간들도 별로 없으니 일단 그렇다 치자. 어쨌든 난 그렇게 생각하니까.

세상은 망했지만, 바다는 변함없이 파도를 보낸다.

보고 있으면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 그래. 뭐 바다는 그렇지. 그렇다 치고….

해운대 앞 호텔. 제법 많은 기척이 잡힌다.

기억 읽기로 알아낸 고영준의 행적은 부산에 '행사'가 있어서 참석한다고만 돼 있었다.

다른 놈들도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상황.

그래서 와봤더니…. 이 난리다. 대체 이게 몇 놈이야?

공중에 떠서 호텔에 있는 놈들을 찬찬히 살펴본다.

그렇게 살펴보니 일단 여기엔 세 부류가 있다.

일단 검은 정장을 입은 놈들.

하. 씨발. 정말 정장 진짜 좋아하네.

아니, 나도 이해는 한다. 정장은 멋있지. 통일성도 있고. 귀찮게 뭘 입을지 고민 안 해도 된다.

게다가 생각보다 보온과 통풍도 잘되잖아. 움직이는 것도 나쁘지 않고.

뭐 어쨌든 이해할 수 있어.

근데 너무 창의성이 없는 거 아냐? 게다가 저런 놈들에게 정장을 입히면 아무리 봐도 조폭이다.

딱 봐도 별로 성실하지 못한 부류. 타이없이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놈들.

그리고 또 다른 정장들.

아까 놈들이 조폭이라면, 이쪽은 샐러리맨이다.

외모와 덩치가 조금 평범하다는 것과 타이를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머리가 단정하다는 것?

게다가 여자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생긴 게 이쁘장하니 매혹할 맛이 나는 여자들.

그리고 마지막, 이놈들도 정장이다.

근데 구별할 수 있는 건 확실히 스타일이 다르다. 이놈들은 옷 입는 게 달라.

딱 봐도 알 수 있다. 이놈들은 한국인이 아니야. 그러니까…. 야쿠자 스타일?

우리나라 조폭들이 대가리가 깨져도 안에 하얀 와이셔츠를 입는다면, 야쿠자 애들은 조금 화려한 셔츠를 입었다.

모르겠다. 내가 맞는지는. 그건 지금부터 알아보면 되겠지.

일단 조금 떨어져서 인적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수원을 저장해놓은 위치에 지금 위치를 저장했다.

그리고 순간이동. 바로 민희의 집무실로 이동한다.

"왔어요?"

아무도 없는 방안. 민희는 혼자 남아있다가 내가 오자 바로 다가온다.

"여자들이랑 잡아 온 놈들은?"

"잡아 온 남자들은 옆방에요. 여자들은 머물 곳으로 안내해줬어요."

살짝 씁쓸한 표정의 민희.

"괜찮지?"

같은 처지에 있던 여자들. 고영준에게 잡혀있었던 여자들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들 거다.

아마 그녀들을 보고 자기 생각이 났겠지.

"그럼요. 물론 고영준 그 새끼를 처리해야 다리 뻗고 자겠지만."

"그렇겠지. 그럼 가자. 그놈 잡으러."

민희를 파티에 초대하고 게이트를 열었다.

바로 넘어가는 민희. 그녀를 따라 넘어가고 게이트를 닫는다.

"투명이랑 비행 쓰고 따라와."

"알았어요."

호텔 근처로 다가간 나는 대략 호텔에 있는 놈들을 설명해줬다.

"숫자는 어떻게 돼요?"

"글쎄. 세기 힘드네. 굉장히 많은데?"

"이 중에서 고영준을 어떻게 찾죠?"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지. 일일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게 시간이 걸릴 뿐."

"그럼 바로 갈 거예요?"

"어. 근데 한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요?"

"원래의 생각대로 고영준만 상대하는 거였으면 너랑 둘이 갔을 거야. 근데 지금 상황은 그게 아냐. 뭔가 잡놈들이 잔뜩 껴있어. 그래서 민희 니가 위험해질 상황이 많아졌지. 물론 지금 니 스킬이면 어지간한 녀석들에게 당하진 않을 거야. 근데 결국 둘이 다니게 되면 노출이 될 거고 일하기가 쉽지 않아져. 그래서 말인데…."

"혼자 처리하겠다고요?"

"어."

"내가 방해되거나 거추장스러워서가 아니고 혼자 하는 게 효율이 더 높아서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요?"

"그렇지."

"알겠어요. 그럼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크. 좋아. 이래서 민희가 좋다고. 쓸데없는 오해 같은 것도 없고 계산이 빠르다.

뭐가 적재적소이고 효율적인지 아는 여자. 이런 거로 괜히 오기나 만용을 안 부린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거다.

"고마워. 이해해줘서."

"고맙긴요.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는데. 내가 고마워해야죠."

"고영준 그놈은 꼭 니 앞에 데려다 놓을 게."

"기대되네요."

"아까 거기로 다시 가자."

아까 저장했던 곳, 그곳으로 와서 민희의 집무실로 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몸조심해요."

"그래. 조금 오래 걸릴 수도 있을 거야. 오늘 안 끝날 수도 있고."

"걱정 마요.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무 늦으면 일찍 자도 돼."

"봐서요."

그러더니 나에게 다가와 찐하게 키스해준다. 그리고 바로 게이트로 들어가는 민희.

크. 좋네. 저런 쿨함이 좋은거지.

게이트를 닫았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

먼저 정보수집이 우선이다. 뭐 하는 놈들인지부터 확인해봐야지.

호텔 근처로 가서 탐지로 건물 안쪽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를 대략 확인한다.

그리고 호텔 옥상으로 블링크. 블링크가 되는 거 보니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없나 보네.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씹사기 스킬. 사람들이 왜 안 쓰는지 모르는 스킬.

아니지.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이건 활용법을 모르면 효과를 반의반도 못 내는 스킬이긴 하지.

분명 더 쩌는 활용법이 있을 텐데. 스킬에 대해서 서로 토론할 수 있는 놈이 없는 게 아쉽다.

SG의 서민준. 그놈이면 뭔가 새로운 걸 발견했을까? 모르겠네.

생각보다 별로 크지 않은 호텔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들어오니 느낌은 달랐다.

큼직큼직하고 전망이 기가 막힌다. 좋구만. 저장도 했겠다. 올해는 여기에서 놀아볼까?

비어있는 방을 지나 옆으로 넘어간다.

혹시나 페이즈 아웃을 하고 있는 다른 놈이 있을지도 모르니 벽에 얼굴만 살짝 내밀어서 방안에 누가 있는지 확인부터 한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차근차근 살펴봐야지. 괜히 발각되거나 하면 골치 아프다.

어차피 대충대충 하는 건 내 성격상 불가능하지만.

먼저 기억 읽기 할 놈을 찾아야 하는데…. 찌끄레기들을 재우고 기억 읽기를 해봐야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번거롭기만 하다.

차라리 이렇게 방에 있는 놈 중에 자는 놈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직 해가 있어서 자는 놈은 없겠지? 내가 재우는 건 조금 위험부담이 크다.

일단은 계속 돌아보자. 다 확인하고 나서 생각해야지. 전부 다 둘러본 것도 아니니까.

그렇게 계속 방을 둘러본다.

오. 사람이 있네. 딱 봐도 높은 놈같이 생긴 남자다. 나이도 꽤 있는 데다가 좋은 방에 입고 있는 옷도 고급스럽다.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뭐라고 대답하는 거로 봐선 윗대가리 놈이 분명해.

페이즈 아웃을 풀고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고 싶지만, 그냥 넘어간다.

다 둘러보고 오자. 다 둘러보고.

다음 옆방은 비었고, 또 다른 옆방. 사람이 있다. 혼자 있는 남자. 뭔가를 읽고 있다.

이놈도 뭔가 있어 보이는 놈인데. 뒤로 돌아가서 뭘 읽고 있나 살펴보았다.

전자기기는 읽을 수 없지만, 종이는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근데…. 일본어다.

씨발. 난 왜 아직도 번역을 안 배웠을까. 번역도 패시브일 텐데.

이번엔 꼭 번역을 배워야지. 하여간 멍청해. 이놈도 패스. 다음 방으로 가자.

또 빈방. 빈방. 빈방. 그리고 사람.

대머리 남자. 옆에 있는 남자 두 명. 그리고 벌거벗은 채로 남자 앞에 서 있는 여섯 명의 여자들.

오우. 이건 무슨 상황이래? 떼씹이라도 하려나?

근데 그런 건 아닌거 같다. 무슨…. 감상이라도 하는 듯한 모습. 아니지. 감상이라기보단 검사라고 해야 하나?

여자들의 몸매는 정말 기가 막힌다. 생긴 것도 이쁘고 화장도 했다.

큰 가슴, 잘록한 허리, 골반도 빵빵하고 키도 길쭉길쭉 보기 좋다.

그런 여자들을 꼼꼼히 살펴보는 대머리 남자. 옆에 있는 남자에게 뭐라고 말하고 여자들의 주변을 돌며 계속 살핀다.

아. 계속 보고 싶은데. 일단은 마저 돌고 와서 계속 보자. 아. 뭐 하는 중인 걸까? 궁금하네. 빨리 돌고 와야지. 궁금해서 안 되겠네.

그렇게 그 층을 더 돌았지만, 더는 사람이 없다.

그럼 내려가야지. 밑의 층으로 이동해서 바로 방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옆의 방으로 이동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고영준. 그 새끼가 있었다. 앞에 고급 위스키 한 병을 두고 온더락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녀석.

하. 고민이네. 이렇게 빨리 찾게 되다니.

이건 찬스다. 혼자 있는 방안에서 여유 부리며 술 마시고 있는 녀석.

게다가 여기는 녀석의 본거지도 아니다.

함정이나 이런 것도 없을 확률이 높다.

하지만 문제는 이놈을 여기서 끌고 가면…. 여기 남아있는 놈들이 어떻게 반응하냐는 거다.

경계가 강화될까? 무시하고 모른척하진 않을 텐데.

이놈들을 일망타진할 기회를 보는 것과 눈앞에 있는 고영준을 바로 무력화시킬 기회.

잠시 고민했지만, 고민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 민희의 복수가 먼저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기회를 보며 미적거리다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멍청이가 되고 싶진 않다.

한 마리 토끼라도 확실히 잡고, 도망가는 다른 토끼를 미친 듯이 쫓아가는 게 훨씬 낫지.

사각. 페이즈 아웃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투명화, 비행, 반사를 두른다. 그리고 탐지.

방금 둘러보고 왔던 녀석들이 위층에서 기척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벽 건너편에 있는 고영준. 같은 층에 느껴지는 몇몇 개의 기척. 아래에서도 느껴지는 바글바글한 기척.

고영준이 먼저야. 바로 밖으로 살짝 머리를 내밀고 소파 위로 보이는 고영준의 머리를 보며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앞으로 툭 떨어지는 머리. 놓친 잔이 바닥을 구르는 소리. 머리 위에 뜬 수면 시간.

간단하게 종료되는 상황. 방심하면 이렇게 되는 거지.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긴장하고 있으라는 건 조금 억까긴 하지만.

녀석의 앞으로 걸어가 다시 한번 확인해본다. 음. 고영준이 확실하다.

혹시나 몰라서 기억 읽기를 해봤다. 키워드는 정민희.

떠오르는 수많은 기억. 차마 기억을 보고 싶지는 않다. 이 정도 기억이 떴으면 이놈이 고영준이 맞지.

더 지체할 필요가 없다. 바로 게이트를 열고 고영준을 번쩍 들어서 게이트를 통과한다.

"대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는 민희.

내가 게이트를 닫자 민희는 그제야 내가 둘러매고 온 남자를 자세히 본다.

그리고 자신의 입을 막는 모습.

"배달왔습니다. 주문하신 고영준이에요."

민희의 앞에다가 고영준을 던져 놓았다.

혹시나 수면이 깰지도 몰라 끝까지 살펴보지만, 마스터 수면은 이 정도로 깨진 않는다.

그동안 이를 갈던 것에 비해 시시한 결말이긴 한데 민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에게 와서 와락 안기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면서 조용히 말했다.

"포장해드릴까요?"

풋 하고 웃더니 내 품에서 떨어져 나를 보고 말한다.

"진짜…. 당신이라는 사람은."

"왜. 너무 사랑스러워?"

"당연하죠!"

다시 나를 꼭 끌어안는다. 그렇게 잠깐 나를 으스러지도록 안은 그녀는 다시 떨어지더니 고영준을 바라본다.

방금 나를 보던 해맑은 표정과는 180도 달라진 모습.

정말 그 말이 맞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는 말.

예전에 그 뭐냐. 펜스에서 이사장을 노려보던 채원이도 이런 모습이었지.

매혹에 걸렸던 여자들이 유독 이런 게 심한 거 같다. 그냥 당하는 것보다 훨씬 끔찍한 느낌인가?

"반사 같은 거 안 걸려있죠?"

"어."

"기절. 수납."

이미 수면에 걸려있는 고영준에게 기절을 거는 민희. 그러더니 수납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어…. 주사기?"

"하아. 손이 떨려서 이걸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진정하고 천천히 해. 이미 잡은 물고기잖아. 혹시 모르니 포장해줄게. 입이랑 손발은 테이프 칠 해놔야지."

"후우. 그래요. 알았어요. 부탁할게요."

나 역시 수납을 열어서 테이프를 꺼냈다.

입을 꼼꼼하게 틀어막고, 손과 발을 정성 들여서 둘둘 감았다.

아. 이놈 스킬이 뭔지도 알아야겠네. 민희가 당장 죽일 것 같지는 않으니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야지.

기억 읽기로 확인해보니 이놈의 스킬은 매혹, 반사, 수납, 질병 해제, 블링크.

블링크가 있네. 웃기는 새끼야.

"이놈, 블링크가 있네. 입은 절대 열어주지 마."

"알겠어요. 비명을 듣고 싶었지만, 그건 포기해야겠네요."

"매혹이라도 걸던가."

"내 복수 때문에 하은이에게 이런 놈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그래? 그럼 뭐 어쩔 수 없지. 자. 다했어."

"조금 물러날래요? 무효화 쓰게."

"상관없어. 그냥 써."

"무효화."

민희가 광역 스킬 무효화를 쓰자 고영준은 수면과 기절이 한 번에 풀리며 바로 눈을 떴다.

나는 풀린 반사를 다시 쓰며 그런 고영준을 바라봤다.

자신을 바라보는 민희를 보자 눈을 질끈 감는 모습.

저 기분은 어떨까? 진짜 궁금하네. 어떤 기분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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