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27화 (427/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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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주변 지형이 점점 외진 곳으로 변해간다.

연구소가 원래 이렇게 외진 곳에 있는 거야? 아니 이놈들이 일부러 외진 곳에 있는 연구소를 점거한 건가?

뭐가 됐든 찾았다. 찾았으니 됐지. 이제는 가서 어떻게 이쁘게 잡아 죽이느냐가 문제인데.

아까 창고에서 있었던 놈의 기억에는 연구소의 위치만 있었다.

방어체계나 자세한 것은 모른다. 그래도 연구소에 갔었던 기억은 남아있기에 이것저것 알아낸 건 있었다.

상당히 방어가 치밀한 건물. 창문도 없고 내부는 밀폐가 되는 건물.

섣불리 들어갔다간 그대로 감금당할 것 같은 건물이다. 실제로 기억에서 그런 농담도 있었고.

만약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그대로 가둬버리면 끝이라고 했었다.

알아서 고통스럽게 죽을 거라고도 했었지.

"민희."

"네."

연구소 쪽으로 날아가면서 민희를 부르자 짧게 대답하는 그녀.

긴장하는 걸까? 아니면 두근거릴까? 드디어 복수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을까?

"영화 같은 곳에서 보면 수면 가스 같은 게 나오잖아? 밀폐된 방안에서 칙 하고 뿌리면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이 픽픽 쓰러지는."

"네."

"그게 가능한가?"

"글쎄요. 그게 가능하냐고 물어보면…. 가능은 하겠죠. 안에 있는 사람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면요."

"그래?"

"클로로포름이나 펜타닐 같은 걸 쓰면…. 가능할 거 같아요. 다만 깔끔하게 잠재우는 느낌은 아니겠죠. 상대를 죽여도 된다는 생각으로 뿌리는 느낌이랄까?"

"아아. 어쨌든 무력화는 맞네."

"그건 왜요?"

"아까 읽은 기억에서 그런 게 있었거든."

"연구소에서 그렇게 한다고요?"

"농담인지 실제로 가능한 건지 모르지만."

"가능하긴 하겠네요. 어차피 그런 짓을 해도 그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그렇단 말이지."

잠시 생각해본다. 어차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긴 하다. 나는 페이즈 아웃이 있으니까.

다만 걱정인 것은 그거다. 스킬 사용 불가 지대. 그게 가장 무섭지.

광역 스킬 무효화 역시 무섭지만 그건 다시 페이즈 아웃이든 순간이동이든 빠져나올 방법은 있다.

하지만 스킬 사용 불가 지대는 아니다. 그게 깔리는 순간 나는 그냥 평범한 일반인이 되어버리니까.

미리 깔려있다면 조심하기라도 하겠지. 하지만 갑작스럽게 깔리는 게 가장 무섭다.

그건 장애물도 무시하고 그냥 일정 영역에 깔린단 말이지. 광역 스킬 무효화는 장애물 영향을 받는 데 말야.

그렇게 날아가다 보니 목적지인듯한 건물이 보였다.

4층 정도 되는 건물. 딱 봐도 뭔가 투박하게 생긴 건물.

창문도 없는 건물을 보니 무슨 감옥 같이 생겼다. 썩 맘에 들지 않는 구조야.

저런데 틀어박혀 있으면 상당히 골치 아프긴 하겠어.

녀석들이 어느 정도 수준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스킬이 열 개씩 되거나 하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모르니 한 20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곳에서 멈춰서 느껴지는 기척들을 살펴본다.

근데…. 생각보다 숫자가 적다?

"분명 커넥션이라고 했는데."

"네? 무슨 소리에요?"

"아아. 용인에 커넥션이 있다고 들었거든. 이쪽 업계에 종사하는 인간들이 모인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숫자가 적어서."

"음…."

"일단 내 눈으로 확인해 봐야겠네. 왜 이리 숫자가 적은지. 안에 고영준이 있는지도."

"알겠어요."

"춥나?"

"아뇨. 괜찮아요."

"이리로 와봐."

주변에 야산. 인기척이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 곳. 그런 곳으로 민희와 이동했다.

그리고 저장. 일단 저장했으니 됐고….

"그럼 다녀올게."

"조심해요."

"당연하지."

탐지에 잡히는 건 4층에 하나, 3층에 둘, 2층과 1층엔 사람이 없다. 그리고 지하에 넷.

총 일곱밖에 안 되는 게 찝찝하지만, 일단 돌아본다. 어쨌든 고영준 그놈을 찾는 게 목적이니까.

블링크로 건물 옥상까지 간 다음 바로 페이즈 아웃을 썼다.

일단 4층에 있는 놈 먼저다. 하나씩 깔끔하게 처리해보자고.

4층으로 내려오자 상당히 익숙한 느낌이 난다.

화학과 실험실. 비슷하긴 하지만 우리 학교 화학 실험실과 비교하긴 무안할 정도의 시설들.

오. 이건 딱 봐도 뭔지 알겠다. 원심분리기네.

글로브 박스들도 깔끔하고…. 하여간 뭐든 다 삐까번쩍해 보인다. 이런 데서 실험하면 실험할 맛 나려나.

어휴. 이러고 있을 시간 없어. 일단 안에 있는 놈들부터 찾아야지.

아까 기척이 있던 곳으로 향했다. 실험실 두 곳의 벽을 지나쳐 그대로 넘어간다.

그러자 남자 하나를 발견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 고영준인가? 했는데 아니다.

쳇. 꽝이네. 어쩔 수 없지.

바로 실험실 구석에서 페이즈 아웃을 해제하고 무효화와 수면을 걸었다.

태블릿을 들고 뭔가를 적고 있던 남자는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일단 됐어. 됐고…. 이제 이놈을 묶어 놔야지.

테이프들은 회귀해 놨기에 다시 넉넉해졌다. 어차피 테이프로 묶었던 놈들은 다 죽었을 테니 회귀해도 상관없으니까.

그렇게 녀석을 꼼짝도 못 하게 돌돌 말아놓고 다시 페이즈 아웃을 쓴다.

바로 아래층으로 내려가 다른 두 놈을 확인한다.

얼래. 이놈도 고영준이 아니네. 귀찮게.

역시 무효화랑 수면. 테이프 질. 바로 옆방으로 넘어가 다른 놈도 확인한다.

얼래? 이놈도 아니네? 씨발. 지하에 있는 네 명 저기에 있나?

한 번에 딱 마주치면 얼마나 좋아. 귀찮게.

탐지를 쓰니 네 명은 한곳에 모여있다.

밥이라도 먹나? 밥때는 아닌데.

일단 페이즈 아웃을 쓰고 네 명이 모여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그렇게 지하에 도착하니…. 의외의 인물들이 있었다.

여자?

지하에 있던 넷은 여자였다. 젊고 이쁘게 생긴 여자들.

조금 넓은 방. 마치 병실 같은 곳에서 생기를 잃고 무기력하게 있는 여자들.

옷을 걸친 게 얼마 안 되는 여자들이다. 거의 헐벗은 여자 넷.

뭔가 어처구니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노리개인데.

아니 씨발 고영준은 어디 있지? 어이가 없네.

일단 페이즈 아웃을 풀고 바로 반사를 걸었다. 그리고 무효화. 수면 넷.

그리고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별일 없지?"

"네. 딱히요."

"잠깐 있어 봐."

그렇게 말하고 잠든 여자들을 들어서 게이트 바깥으로 옮겼다.

"어? 누구예요?"

"나도 몰라."

그렇게 네 명의 여자들을 전부 밖에다 옮기고 다시 게이트로 들어간다.

바로 페이즈 아웃. 위층에 있는 남자 놈들에게 가서 역시 게이트를 열고 다 야산으로 옮겼다.

됐어. 일단…. 연구소는 다 털었고.

"고영준은요?"

"없어. 이제 알아봐야지."

꽁꽁 묶인 남자 세 놈에게 수면을 걸고 하나씩 기억을 읽었다.

고영준의 행방. 이놈들이 하는 일. 지하의 여자들.

세 놈의 기억을 골고루 읽고 난 다음 얻은 정보들을 취합해 정리한다.

"아. 왜 또 부산이야."

"부산요?"

"고영준 그 새끼 지금 부산에 가 있대."

"하…."

"한 사흘 전에 떠났고, 일주일 뒤에나 돌아오나 봐. 일단은…. 상황이 그렇게 나쁘진 않은데."

이놈들에게 얻은 기억은 그리 복잡한 게 없었다.

원래는 상당히 많은 인원이 있었다. 하지만 내부적 갈등으로 인해 파벌이 갈렸고, 결국 고영준을 앞세운 이놈들이 남은 인간들을 모두 처리했다.

그렇게 기반과 시설, 유통 판매라인까지 전부 얻은 고영준은 결국 국내에선 가장 큰 손님과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레테.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

세상이 망한 이후 필요한 것들을 일본과 무역하는 거로 먹고살게 된 녀석들.

"부산 어디로 갔는지는 알고 있어요?"

"어. 해운대 앞에 있는 호텔이래."

"하아…."

한숨을 쉬는 민희.

맥이 빠질 만도 하다. 바로 오늘 복수를 할 줄 알았는데 자꾸 미뤄지니 본인도 답답하겠지.

"그럼…. 잠깐 여기 있어 볼래?"

"왜요? 설마 지금 부산으로 가려고요?"

"아니. 아까 창고에 있던 놈 처리하고 오게. 그리고 이 녀석들도 일단 캐슬로 옮겨야지."

"아…."

"창고에 있는 놈 처리하고 거기 물건들 정리한 다음 캐슬로 가서 포탈 열 테니까, 잠깐 여기 있어. 괜찮지?"

"물론이죠. 이미 이렇게 다 제압해놨는데 그거 하나 못할까 봐요."

"혹시 모르니까 남자 놈들은 기절 하나씩 걸어놔. 아. 그리고."

나는 여자들에게 손을 살짝 대고 기억 읽기를 썼다.

각자 스킬들이 뭔지 알아야 하니까. 매혹을 걸어놓을까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지.

"얘랑 얘는 투명화고, 얘는 보호막, 얘는 기름 생성이거든? 아마 관리하기 편한 여자만 남겨놓은 모양이야. 내가 페이즈 아웃 쓰면 이 여자들이 깰 테니 잘 좀 이야기해 줘."

"알겠어요."

그렇게 민희에게 말해놓고 파티에 초대한 다음 바로 아까 창고 있던 곳으로 향했다.

도착해보니 마치 언제 졸았냐는 듯 책 같은 걸 보고 있다. 쯧. 넌 이제 쓸모가 없어.

바로 바로 죽이자 3만 코인 정도가 들어온다.

그렇게 녀석이 있던 곳의 창고에 있는 앰플들을 다 수납에 몽땅 쑤셔 넣고 바로 자리를 떴다.

최고 속력으로 비행하며 블링크까지 섞어 바로 캐슬에 도착한 나는 민희의 집무실로 들어가 바로 게이트를 열었다.

내가 게이트로 들어가니 헐벗은 여자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울고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면서 약간 동질감과 안쓰러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민희.

"이분이 여러분들을 구해준 분이에요."

민희의 말에 여자들은 울던 걸 멈추고 나에게 매달리듯 하며 감사 인사를 한다.

윽…. 굳이 그럴 것까진 없는데. 쟨 도 왜 웃고 있는 거야? 내가 당황해 하는 표정이라도 보고 싶은 건가.

"알았으니 일단 게이트에 타. 민희 너도."

헐벗은 네 여자와 민희가 게이트를 타고 넘어갔고, 나는 꽁꽁 묶인 남자들을 게이트 안쪽으로 휙휙 던져 넣었다.

됐어. 이제 여기는 정리 됐고….

저 연구소는 어쩌지? 마음 같아서는 확 불 질러버리고 싶지만, 일단은 놔둔다. 지금은 고영준 그 새끼를 잡는 게 먼저니까.

그렇게 민희의 집무실로 다시 이동하고, 나는 민희에게 말했다.

"내가 부산 가서 게이트 열어줄게."

"지금 바로 부산을 간다고요?"

"가야지. 한시라도 빨리 녀석을 잡아야 하니까. 일을 시작했으니 멈출 수 없어."

"여기서 부산까지 어떻게 가려고요."

"뭐 날아가면 금방이야. 어디 보자."

지도를 찍고 거리를 측정해본다. 부산까지 일직선으로 300킬로미터.

아니지 청주가 저장되어 있으니 청주에서 찍으면 220킬로미터.

"두 시간 안 걸리겠네. 중간에 저장된 곳이 있으니."

"머네요. 너무 고생하는 거 아니에요?"

"괜찮아. 뭐, 블링크 섞어서 가면 그보단 덜 걸리겠지."

"알겠어요. 몸조심해요."

"그래. 이따가 보자고. 저 여자들은 알아서 하고."

"네."

그렇게 마지막 저장 위치를 민희의 집무실로 저장한 다음 바로 순간 이동한다. 목적지는 집.

아무래도 상황이 길어질 것 같으니 미리 이야기는 해주고 가야지.

벙커에 있는 승미세안 네 여자에게 늦어질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고 바로 수원으로 이동했다.

부산을 저장하려면 수원 저장해 놓은걸 빼야 하니…. 미리미리 둘러 봐야지.

지하에 있는 두 여자의 상황을 슬쩍 살펴보고 식량을 적당히 리필해 놓았다.

이 여자들도 빨리 조치를 해야 하는데. 그래도 계획한 게 있으니 일단은 조금만 기다려라.

그렇게 출발한 부산행.

아. 파티가 풀렸네. 가는 길에 잡놈들이 있으면 잡아 죽여야 하는데.

아니다. 어차피 가다가 또 페이즈 아웃 쓸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일단 가자. 파티는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비행을 시작한다.

블링크를 간간이 섞어가며 빠르게 부산 쪽으로 향한다.

한겨울에 중국을 날아다니던 것에 비하면 이 정도 비행은 우습지. 춥지 않다는 건 행복한 일이야.

그래도 고글은 있어야겠다. 하이바를 쓰고 가긴 하지만…. 좀 답답하네.

어디서 고글을 구하지? 바이크 타는 사람들이 쓰는 그런 멋진 고글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나는 한 시간 반을 비행과 블링크를 병행해서 결국 부산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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