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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오! 살인마!"
나를 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재현. 나는 그놈에게 살며시 중지를 들어 올려 줬다.
미친놈. 저 새끼는 필터 같은 게 없나 봐. 아무래도 죽여야겠어.
"그러지 마. 재현아."
재현은 승규의 만류와 동현이, 민준이의 뜨악한 표정을 보더니 다시 나를 보고 말한다.
"살인마 맞잖아? 나도 살인마고."
"에휴."
내가 한숨을 쉬고 넘어가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저 새끼 저거 아직도 당당한 표정 짓는 거 봐라.
괜히 살렸나? 진지하게 고민되네.
"승규 형."
"그래. 오랜만이네. 바빴나 봐."
"네. 일이 좀 있어서."
"무슨 일인데 그렇게 바빠?"
"음. 짱개 놈들을 쳐 죽이느라."
"짱개? 전에 자양동에서 죽인 놈들이 더 나타났어?"
"아뇨. 그건 아니고, 말하면 긴데…. 암튼 중국 본토를 박살 내고 있어요.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 일단 넘어가고…."
"아니아니아니. 잠깐. 중국 본토를 박살 낸다는 게 무슨 소리야? 그게 왜 안 중요해?"
"말하면 길어요. 뭐, 나중에 천천히 말해줄게요."
"급한 일 있는 거 아니면 지금 말해봐. 그렇게 말을 꺼내놓고 입을 다물면 어떻게 하니."
승규의 말에 민준이와 동현이도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끄덕인다. 게다가 김포 저놈도 대체 무슨 소린가 하면서 귀를 기울인다.
얼래? 아닌 척 음료수를 준비하는 유정 형수도?
아. 그냥 말을 꺼내지 말 걸 그랬나. 왠지 자랑하는 거 같아서 좀 그런데.
"어…. 에이. 그냥 대충만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 대충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간단하게 말했다. 전부 다 말하기는 어려우니 최대한 간단하게.
"사…. 산샤 댐을!?"
승규의 말에 민준이와 동현이는 그게 뭔가 싶은 표정을 지었지만, 재현이 저놈은 입을 쩍 벌리고 나에게 따지듯 말한다.
"미…. 미…. 미친놈아!? 너. 지금 방금 싼샤 댐이라고 했냐?"
"어."
"와. 너 진짜 미친놈인 척하는 패션 싸이코인줄 알았는데 진짜 미친놈이었네!? 싼샤 댐을 스킬로 부쉈다고!? 진짜로? 그게 사람 힘으로 부서져? 다른 댐 부수고 착각하는 거 아냐?"
어지간하면 그냥 넘기겠는데, 저 새끼가 말하면 왜 이리 울컥하게 되는 걸까?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동영상을 보여줬다.
승규 형과 동현이 민준이, 재현은 물론이고 유정 형수도 와서 동영상을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반응은 정 부장이랑 크게 다른 바가 없었다.
동영상이 끝날 때쯤엔 나를 보는 눈이 조금 달라졌다. 어…. 썩 아름다운 표정은 아니네.
"너…. 너. 진짜…. 완전…. 또라이 새끼네!?"
"고마워."
"아니! 뭐가 고마워!? 와. 씨. 미쳤다. 미쳤어. 와. 허허…. 정말…. 미쳤어."
질린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재현.
그리고 뭐, 다들 비슷비슷했다. 근데 진영이 너는 왜 감동한 표정인데.
어쨌든 그렇게 소소한 소동이 지나가고, 나는 승규 형이게 말했다.
"형. 냉동 창고 구했어요?"
"아. 그거. 일단 하나 찾아놓긴 했어. 조금 거리가 있긴 한데 못 다닐 정도는 아니니까."
"그럼, 형 탐지는 마스터 했어요?"
"어. 마스터 했지."
"그럼 아직 스킬 못 찍었어요? 코인은요?"
"코인…. 17만 있다."
"아. 부족하네. 아. 너 코인 120만 있다고 그랬지?"
내가 재현을 보고 물어보니 그는 엥?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한다.
"그게 언제 일이냐. 나 지금 45만 정도밖에 없는데."
"뭐야. 스킬 사용 불가 지대 마스터 했냐? 다섯 번째 뭐 골랐어."
"헤헹. 내가 그걸 말할 거 같냐?"
"됐어. 안 궁금해. 승규 형. 그럼 일단 이 새끼를 죽이고 45만이라도 건지죠."
"아냐아냐아냐! 나 투명화 골랐어. 투명화 골랐다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물끄러미 쳐다보자 녀석은 다급하게 '투명화!'라고 외치며 스킬을 쓴다.
"체력 증가도 찍었냐."
"어…."
"그래. 그건 있어야지. 그거 안 찍었으면 병신 새끼라고 놀리려고 했는데. 아깝네."
"승규 형님이 그건 찍으라고 해서…."
승규를 바라보자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저만큼 알려줬다는 건 결국 승규도 저놈을 곁에 두겠다는 뜻이다.
쯧. 뭐…. 그렇게 결정했으면 따라야지.
"하. 17만…. 17만…. 고민이네. 민준이랑 동현이 니네도 스킬 마스터 했냐?"
"네."
"네."
"진영이는? 아. 아니다. 걔는 지금 바빠 보이더라."
"어? 진영이 형 아까 들어오던데요? 서현이랑 같이 들어오던데."
동현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고 민준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그게 끝이었어? 하여간…."
"네?"
"아냐. 됐어. 그럼…. 하. 어쩐다."
오랜만에 온 청평. 원래대로라면 잘살고 있는지 쓱 확인하고 돌아갔으면 됐다.
근데…. 아니다. 욕심이 생긴다. 짱개를 보고 오지 않았으면 그냥 갔을 거다.
하지만 이들도 결국 몸을 지킬 힘을 길러야 한다.
미약하더라도 가만히 멈춰있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발버둥은 쳐야지.
"가서 진영이 좀 불러줄래?"
내 말에 동현이가 대답하더니 비행을 키고 냅다 날아간다.
그리고 난 잠깐 고민했다. 코인. 그리 많이는 필요 없다. 일 인당 30만 코인 정도.
더 많으면 좋지. 좋은데…. 그것까진 무리다. 일단은 코인을 먹게 해주자.
오늘 하루를 쓰더라도.
"잠깐 있어 봐요."
나는 아까 저장했던 물류센터 대신 이곳을 저장하고 바로 청주로 순간이동 했다.
청주의 저장 포인트는 공중에 저장이 되어있기에 그대로 게이트를 열면 저들은 동현이 말고는 전부 낙사 할 수밖에 없으니까.
SG센터 근처 허공에 나타난 나는 가장 높아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향했다.
대충 밑에서 위가 안 보일만 한 곳으로 간 나는 바로 청평을 향해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를 타고 들어가니 다들 어리둥절한 눈으로 게이트에서 나온 나를 바라본다.
그 사이 진영이도 왔는지 나를 보고 당황한 표정을 짓는 모습.
"이…. 이게 게이트야?"
승규가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파티생성."
그리고 하나씩 초대한다. 승규, 민준, 동현, 진영, 그리고….
"하아. 널 데려가야 하냐 말아야 하냐?"
"왜!? 왜! 뭐 하려고! 뭔데!? 나도 도움이 될 거야! 나도 데려가!"
나는 한숨을 푹 쉬고 재현에게도 초대를 줬다.
파티에 들어왔다는 메시지. 그런 그들을 향해 나는 말했다.
"타요."
군소리 없이 포탈을 타는 승규, 민준, 동현, 진영.
재현은 잠깐 주춤하다가 포탈을 탔고, 나는 남아있는 유정 형수에게 웃으며 말했다.
"잠시 다녀올게요. 오늘 안에는 들어올 수 있을 거예요."
"네? 네. 그래요. 잘 다녀와요. 조심하고요!"
"아조씨 빠빠!"
하율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고, 그 미소를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그래. 안녕!"
게이트를 넘어온 다음 닫아버리자 다들 황당한 표정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여긴…. 어디야?"
"여긴 청주에요. SG그룹이 만든 SG 시티란 곳이 있는 곳이죠.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하고…. 여기서 탐지 돌리면서 기다리고 있어요. 딱히 뭘 할 필요는 없고요, 주변에 누가 오는지만 확인하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반사를 리필한 다음 투명화와 비행을 쓴 뒤 바로 SG 센터로 날아갔다.
그리고 시작된 사냥.
단기간에 빨리 코인을 빨아야 하니 여유 부릴 시간은 없다.
게다가 코인도 여섯 명이 나누는 거라 양이 적다.
나는 바로 SG 센터를 나가는 놈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7시가 됐을 무렵, 코인은 30만을 넘겼다. 6배를 하면 180만.
다시 아까 그 건물 위로 올라가니 내가 오는 것을 탐지로 느꼈는지 승규와 재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혹시 배고픈 사람 있어요?"
"성철아…. 너…. 대체 뭘…."
"너…. 너…. 매번 이런 식 인거야?"
황당한 표정의 승규, 질린다는 표정의 재현. 그리고 민준이나 동현이, 진영이의 표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 원래 고렙버스가 그렇지. 게다가 이들은 초보 중의 초보잖아.
뭐 재현 저 사람은 그나마 짬이 있다고 하지만…. 내가 봤을 땐 초보나 중수나 그게 그거다.
"아니…. 무슨 수납으로 그렇게…. 차를…. 망치처럼."
"아. 여기서 보이디?"
말을 더듬는 재현. 나는 그의 말을 듣고 바깥을 바라봤다.
보니까 여기 건물에서 고속도로가 어느 정도는 보였다. 아. 그럼 사냥하는 걸 봤을 수 있겠네. 그래서 저러는 거구나.
하긴, 파티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훤히 보일 테니까 어렵지 않았겠지.
게다가 내가 오늘은 좀 급해서 가까운 곳에서 잡아 죽이기도 했고.
"승규 형도 봤어요?"
"어? 어…. 봤지. 나도…."
"수납은 이런 식으로 쓸 수도 있어요. 참고하세요. 암튼, 배고픈 사람 있어요? 있어도 참아요. 여기 10시에 문 닫으니까 그때까지만 조금 참으면 될 거에요. 영 배고프면 뭐 먹을 거라도 줘요?"
"아니. 나는 괜찮다. 입맛이 안 생기네."
"나도 괜찮아. 나도. 허허허."
민준이와 동현이, 진영이도 마찬가지로 고개만 가로젓는다. 음. 신선한 반응이네. 재밌어.
"이러고 있을 시간 없으니 또 다녀옵니다."
그리고 다시 SG 센터로 향했다.
이어지는 사냥. 사람이 눈에 띄게 줄었기에 하나라도 남겨둘 수는 없다.
슬슬 여기도 끝물인가? 아직 코인이 많이 부족한데.
얼마 남지 않은 기억 읽기를 마스터 하면 새로 스킬을 찍어야 하는데…. 패시브만 해도 총 800만이다.
문제는 내가 지금 820만 밖에 없다는 거다. 그 많던 코인들을 패시브에 꼬라박았더니 이제 정말 바닥이 보이는 지경이 되었다.
이것도 큰일이네. 당분간은 특단의 조치를 취하긴 해야겠어.
하. 씨발. 그 코인 밭인 짱개놈들을 두고 코인이 부족하다니. 이건 정말 거지 같은 상황이네.
그렇게 10시까지 사냥을 하고 마지막 팀을 따라간다.
밤이 되어도 따듯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는 게 너무 맘에 든다. 정말…. 사람 잡아 죽이기 좋은 날씨.
아마 조금만 더 지나면 덥다고 지랄을 하겠지. 한겨울에 그 살을 에던 찬바람이 그리워질 정도로.
봄바람. 참…. 이상한 바람이다.
어디선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이건 어디서 맡아본 냄새인데.
아. 그래. 알겠다. 아카시아 냄새다. 옛날에 어렸을 때 한번 씹어봤던 껌. 거기에서 났던 냄새.
훈훈하고 달큼한 향이 느껴지는 바람.
그런 바람을 가로지르며 차를 쫓는 나.
수납이 열리고 차가 떨어져 빠른 속도로 달리던 차 위에 그대로 내려꽂힌다.
기묘한 일이야. 내가 이러고 있는 것 자체가 참 말이 안 돼.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아무렇지도 않게 날아가고 아무렇지도 않게 커다란 차를 내던지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인다.
거기에 사랑하는 여자도 아닌 시커먼 남자들을 위해 코인 버스를 하는 내가 너무 어색하다.
정말 신기한 일이야. 이게 과연 제대로 된 짓인지 모르겠어.
아마 나는 이 봄바람에 취한 게 분명해.
다시 건물 옥상에 도착해 모습을 드러내니 다들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저 가만히 앉아있었을 뿐인데 이들이 더 힘든 모습이다. 고생은 내가 다했는데 말이지.
"가죠."
다시 게이트를 열었다. 아무런 말 없이 곱게 게이트를 타는 다섯.
나도 따라 들어갔고, 텅 빈 주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코인. 충분하죠?"
"어? 어. 당연하지…."
얼이 빠진 듯한 승규. 오늘 미친 듯이 사냥한 결과 한 사람당 60만은 들어왔을 거다.
거의 씨를 말리다시피 사냥했으니 나올 수 있는 금액. 게다가 오늘은 코인을 많이 가지고 있던 놈들이 꽤 있었다.
"승규 형은 수납 배우세요. 그리고 내일 저 다시 올 때까지 중급은 만들어 놓으시고요. 포션은 직접 사서 드세요. 그리고…."
내가 민준이와 동현이, 진영이를 바라보자 녀석들은 마치 무슨 교주를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민준이. 금속화 가속화지?"
"네? 네. 그렇죠…."
"투명화 배워라."
"네. 알겠습니다."
"동현이는 투명화랑 비행이지?"
"네."
"너는 뭐 할래? 하고 싶은 거 있냐?"
"어? 저요? 그게…."
"생각 한 거 없으면 탐지 배워라. 반사도 좋고."
"탐지요. 알겠어요. 탐지가 낫겠네요."
"진영이는 비행 배우고."
"비행요. 알겠어요."
세 녀석은 내 말이 무슨 하늘의 계시인 양 고개를 끄덕거린다.
쯧. 민준이가 아쉽네. 그때는 금속화가 좋아 보이긴 했는데…. 지금은 별로잖아. 그래도 모르지. 가속화는 쓰레기 스킬은 아니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나…. 나는? 나는 뭐 배워?"
나를 보며 물어보는 재현.
"넌 니가 알아서 하고."
"아니! 왜!? 나도 알려줘!"
"넌 니가 딱 보면 알아야지. 뭘 거 같냐?"
"당연히 비행이지!"
"알면 그렇게 해. 니 투명화 마스터는 했냐?"
"어…. 해야지."
"그러니 알아서 하라고. 암튼, 뭔가를 더 하고 싶지만, 오늘은 이만하죠. 내일 오고 싶을 때 올 거니까 다들 시간 비우고 있어요. 그럼 갑니다."
언제나 퇴장은 깔끔하게. 나는 바로 순간이동을 써서 벙커로 돌아왔다.
후우. 어쩌다 보니 서비스가 화끈해졌네. 그것도 남자 놈들에게.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