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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C
"그럼 이제…. 제 이야기는 됐고, 펜스 이야기 좀 하죠. 어떻습니까? 상황은?"
내 질문에 정 부장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려놓는다.
"펜스요. 그래요. 우리도 많은 일이 있었죠. 근데 성철 씨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시시하네요. 이야깃거리가 거의 없는 수준인데요."
"해 보세요. 아. 가장 궁금한 건 그거에요. 왜 동두천으로 온 거예요?"
"그럼 그거부터 이야기해 볼까요?"
그러더니 커다란지도 한 장을 꺼내왔다.
소파 앞에 있는 테이블에 꽉 찰 정도로 커다란 지도. 지형과 지리가 적혀있는데 아무리 봐도 군용 지도 같다.
나는 앱을 켜서 비교해봤고, 크게 차이가 없는 걸 확인했다. 하긴 지도인데 차이가 있을 리 없지.
"어라. 그거 뭡니까? 지도 앱이에요?"
"네."
"아니…. 어떻게 지도가 되죠? GPS 안되는 거 아닙니까?"
"아. 이거 오프라인 지도에요. 당연히 GPS는 안되고요."
"아아. 그거 혹시 우리도 줄 수 있습니까?"
"될 거에요. 근데 저는 방법을 잘 모르겠네요. 아는 친구에게 말해볼게요."
"고맙습니다. 아무튼…. 자. 지도 보실래요?"
그러면서 말을 잇는 정 부장.
"여기 보면 여기가 의정부고요. 여기가 펜스가 있던 자리에요. 그리고 여기 보시면 여기가 동두천. 보시면 아시겠지만…. 아. 이 지도로는 잘 안 느껴지실 수도 있겠네요. 그거 앱에 위성사진 보기도 있습니까?"
"어. 있네요."
"그럼 그걸로 보세요. 그럼 확 느껴지실 겁니다."
바로 화면을 위성사진으로 바꿔서 보니 나는 정 부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와. 이쪽 지형이 이랬군요."
물론, 나는 이곳을 날아왔기에 위성사진보다 훨씬 생생한 모습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볼 때는 위쪽에서 비스듬하게 본 시야라 이렇게 보이진 않았기에 새로운 것들이 많이 눈에 보인다.
"왜 동두천에 미군 부대가 있는지 아시겠죠?"
"네. 연천 쪽에서 내려오는 길을 완전히 틀어막는 곳이군요.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의 초입. 이 길을 쭉 따라가면 의정부. 그리고 서울."
"맞아요. 북괴의 침공을 막기엔 더없이 중요한, 말 그대로 전략적 요충지죠. 여기 동두천을 틀어막으면 그 아래쪽을 전부 막을 수 있으니까요."
한국지리에는 나름 관심이 많았는데 이건 처음 알았다.
왜 연천에 군부대가 많은지, 왜 동두천에 미군 부대가 있는지, 의정부가 왜 중요하고 거기에 그리 군부대가 많았는지.
"여기 보시면 의정부와 동두천을 사이에 둔 이 동그랗게 생긴 지역이 있죠? 여기 불곡산이랑 도락산을 중심으로 한 곳이요."
"네."
"저희가 동두천을 확보함으로 이 일대를 전부 수중에 넣은 겁니다. 실제로 이 지역은 이제 사람 한 명 없는 곳이 되었죠."
"으음."
"게다가 우리는 지금 포천까지 어느 정도 확보했습니다."
정 부장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를 보며 야전사령관 같다는 기분이 든 게 정확했어.
그는 지금 자신 휘하의 부대를 이끌고 북진하고 있는 야전 사령관이 맞았다.
나 같은 초보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확실하게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모습.
"아마 일주일, 조금 더 여유롭게 주변을 파악하면 열흘에서 이 주 정도면 이 주변 지역은 모두 저희가 장악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럼 이제 다음 단계로 들어갈 겁니다."
"다음 단계요? 다음 단계는 뭐죠?"
"저희는 파주로 갈 겁니다."
"파주요?"
"정확히 말하면 문산이죠."
"문산? 문산…. 어디서 들어봤지."
"여기입니다."
"아. 여기. 근데 갑자기 왜 이쪽으로 가죠?"
"이 지도를 한번 보실까요."
그리고 다시 꺼내는 지도 한 장.
북한 쪽 지형이 전부 그려져 있는 지도. 그걸 보며 정 부장은 다시 설명을 계속한다.
"보시면. 북한의 지형은 이렇습니다."
"아아."
"네. 보시면 아시겠죠. 문산으로 간 이유는 그겁니다. 북한의 동쪽은 먹을 필요가 없어요. 해봐야 원산에서 흥남 쪽으로 이어지는 이쪽 정도? 백두산에서 이어지는 태백산맥 때문에 이쪽 산지에는 사람이 그다지 없을 겁니다. 그거 잡겠다고 일일이 뒤지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고요. 저희는 개성에 먼저 진출한 다음 그대로 평양으로 올라갈 겁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결국 목표는 여기 신의주 이쪽입니까."
"그렇죠. 일단은 그 정도까지만 해도 엄청난 성공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정 부장의 설명은 상당히 재밌다. 사실 그렇게 전문적인 것까지는 아니지만 체계적이고 자연스러운 계획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 부장이 간과한 것들이 있다.
"근데…. 너무 예전 방식인 거 아닙니까? 스킬은 지형지물을 제법 무시할 수 있어요. 이 작전은 지상군 위주의 군대가 하는 북진 작전 같은 느낌이네요."
"그쵸. 그게 문제네요. 원래 계획은 그랬었죠. 방금 성철 씨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요. 근데 투명화와 비행이 기본인 데다가 블링크에 공격 스킬을 이것저것 잔뜩 쓰는 사람이 많다는 걸 생각하면…. 그런 것까지 상정해서 다시 전략을 짜야겠네요."
"근데 그건 뭐 전술의 문제니까요. 전략 자체는 정 부장님의 계획만큼 무난한 게 없어 보이네요."
"저도 그렇게는 생각합니다만…. 조금 더 고민해보긴 해봐야겠어요."
"북한 쪽에 정찰은 보내 봤습니까?"
"이제 포천 쪽 끝나고 파주로 넘어가면 그때 운용해 봐야죠."
"그렇군요. 아. 일산 파주 쪽은 아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거에요. 물론 그쪽도 한 번 더 훑어보시긴 해야 하지만."
"음? 그건 왜 그렇습니까?"
"파주는 확실하진 않아도 일산 쪽은 사람 하나 없는 무인지대거든요."
"엑. 거긴 이미 성철 씨가 다 정리 한 겁니까?"
"아뇨. 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요."
"허허. 그런 괴물이 또 있습니까? 이거 함부로 나다니다간 결국 저희도 크게 얻어맞겠군요. 그 사람은 걱정 안 해도 되는 겁니까?"
"네. 걱정 안 해도 돼요. 이제 일산에 없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음. 근데 그런 사람이 또 있다면 피곤해지긴 하겠네요."
"조심해야죠. 정말 조심해야 해요. 제가 생각하기엔…. 사람이 무리 짓고 사는 건 단점이 너무 많아요."
그러면서 내 생각을 모두 말해줬다.
짱개들의 약점과 대호 그룹의 이야기. 결국, 지킬 게 있는 사람들은 약점을 훤히 내놓을 수밖에 없다.
나 같은 놈이 마음먹고 덮치면 얼마든지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빈틈.
"그건 좀 곤란한데요. 생산 시설은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인원들을 완전히 숨기는 건 불가능해요."
"그러니 모든 인원이 움직이는 것은 반대라는 거에요. 전면전은 바보 같은 짓이고요. 상대에게 우리의 본진을 들키는 것 자체가 패배라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합니다. 말 그대로 꼭꼭 숨기고 멀리까지 공격 간다는 생각으로 움직여야 해요. 다수의 어정쩡한 스킬 보유자보다는 소수의 핵심 전력을 운용해야 하고요."
"흐음…."
"펜스에 가장 필요한 스킬은 티어9의 게이트. 그게 핵심인데요."
"스킬 여덟 개 마스터라. 하아. 멀고도 험난하군요."
"쉽지 않죠. 죽어라 포션만 먹어도 단기간에 만들어지는 단계는 아니죠."
잠시 생각에 잠긴 정 부장.
사실 지금 이 사람들은 상당히 운이 좋은 거다.
그 일산에 살던…. 도현이.
그래. 도현이 같은 놈이라도 만났다면 이들이 이만큼이나 남아있을 순 없을 거다.
걔가 뭐였지? 아. 암석 탄환이었나?
어쨌든 그놈이 마음먹고 하나씩 잡아 죽이기로 했다면 하루에도 몇십 명씩 죽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테니까.
"저희가 스킬이 다수인 능력자를 상대할 방법이 있을까요?"
한참을 생각한 정 부장이 겨우 입을 연다.
"생각해 보신 게 있을 텐데요?"
내 반문에 정부장은 또 생각하더니 말했다.
"잘 때를 노려서 몰래 침입하는 방법밖에 없겠죠. 동두천도 그렇게 뚫어냈으니까요."
"그게 답이 될 수 있긴 하죠. 아무리 스킬 몇십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고 있으면 못 쓸 테니까. 근데 그건 상대의 아지트를 알고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겠죠? 상대가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른다면?"
"으음."
"제가 공격한다고 가정해보세요."
"아아. 그건 좀 막막해요. 제가 그걸 생각 안 해본 게 아닌데…. 크게 방법이 없더라고요. 그나마 가장 승산 있는 건 최루탄인데…."
"최루탄요?"
정 부장의 말에 세아가 생각났다. 그래. 세아도 처음 봤을 땐 그런 호신용품을 들고 다녔었지.
"단일 타겟 스킬은 반사가 무섭고, 물리 스킬이나 광역 스킬은 보호막에 모두 막히죠. 근데 보호막은 기체를 못 막잖아요? 그러니 쓸 수 있는 건 그런 류 밖에 없더라고요. 최루탄 같은 것. 눈물 나고 기침하느라 스킬 쓸 여력이 안 될 테니 최루탄만 맞출 수 있으면 공격은 막아낼 수 있겠죠."
"흠. 그렇긴 하네요. 근데 그게 있습니까?"
"네. 이번에 동두천을 얻고 나서 구했습니다. 최루탄과 최루제 전부 구했죠. 그래서 일단은 물대포랑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
"물대포요?"
"네. 물대포요. 그런 거 본 적 없습니까? 시위대 같은 거 흩어지게 할 때 물대포 쏘지 않습니까? 거기에 최루제를 섞어서 뿌리기도 합니다."
"아아. 그건 나름대로 효과가 있긴 하겠네요. 근데 문제는 맞힐 수가 있냐 이거죠."
"그렇죠. 상대가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진 않을 테니까요. 게다가 물대포 같은 건 아군 쪽에는 못 써서…. 최루탄도 마찬가지고요. 그렇게 확실한 방법은 아닙니다."
둘 다 나쁜 생각은 아니다. 하지만 역시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맞아야 통하는 거다.
블링크가 있는 사람은 그런걸 맞는 게 더 힘들겠지. 이상하다 싶을 때 바로 튀면 되는 거니까.
"아까 제가 중국 이야기를 할 때 안 했던 내용인데요. 이게 도움이 될 것 같네요."
내가 운을 띄우자 정 부장은 호기심을 잔뜩 보이면 내 말에 귀 기울인다.
"투명화를 할 때 주변 사물과 함께할 수 있다는 거. 아시죠?"
그렇게 나는 투명화에 대해서 모두 이야기해 줬다.
투명화, 시야, 타겟이 되지 않는다는 것, 맹점. 그런 것들.
이야기를 다 들은 정 부장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나에게 말한다.
"아니…. 그럼 만약에 인형 탈을 투명화 할 때 같이 투명하게 만든 다음 뒤집어쓰면 단일 스킬에 타겟이 되지 않습니까?"
"그럴 거 같네요. 인형 탈로는 안 해봤지만."
"허허…. 이건 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네요."
"인형 탈은 번거로울 거고 어떻게 경량화시키면 도움이 되긴 하겠죠. 그리고 내가 뒤집어쓰는 것보다 상대에게 뒤집어씌우는 게 더 효과적이고요. 물론 그러긴 쉽지 않지만."
"흐음…."
잠시 고민하는 정 부장. 어차피 지금 당장은 답이 나오지 않겠지.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거 같네.
"어쨌든 이번에 중국을 보고 나니 조금 경솔하게 움직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제가 따로 말 안 해도 잘 하시겠지만, 탐색이나 정찰을 신중하게 하셔야 할거에요."
"알겠습니다. 근데…. 그렇게 말을 끝맺으려고 하시는 거 보면 가실 생각인가 보군요."
"너무 티 났나요?"
"네. 할 이야기는 다 하신 거 같아서요."
"이런. 너무 대놓고 내색했나 보네요."
"하하. 뭐 늘 그랬잖습니까. 이젠 뭐 그러려니 합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식량 챙기셔야죠? 같이 가시죠."
"근데 식량은 충분합니까? 근거지를 옮겨서 아직 자리 안 잡힌 거 아니에요?"
"설마요. 저희의 생산력은 그렇게 어설프지 않습니다."
"아. 하긴…."
그렇게 정 부장을 따라가서 식량을 받고 펜스를 나왔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펜스. 이제는 미군 부대 자리였던 곳에서 체계적으로 이것저것 짓고 있는 모습.
그걸 보면서 다소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다.
괜찮으려나? 조금 더 오지로 숨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어쨌든 나는 해줄 수 있는 말은 전부 다 해줬다. 나머지는 정 부장이 알아서 하겠지.
역시 나는 저렇게 커다란 조직은 운영할 수 없다. 불안해서 못 살 것 같다.
하지만 식량 생산을 위해선 어느 정도 규모가 필요하긴 하다. 딜레마네. 딜레마야.
차라리 규모를 확 줄여버리면? 음…. 그것도 나쁘진 않겠네. 사실 입이 줄면 생산 시설도 줄일 수 있겠지.
성장 스킬이 있는 사람만 잘 보호하면 되니까. 그러면 생산력이 크게 줄진 않을 것이고.
아…. 설마 정 부장이 말한 희생이 이건가? 으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 부장 입장에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을 필요는 없잖아? 으음…. 생각해보니 그렇네.
게다가 그 아저씨 의외로 음흉하단 말이지.
어쨌든…. 여긴 그가 알아서 할 거다. 크게 신경 쓰지 말자.
정보도 전부 공유해줬으니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