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멸망한 세상의 수면술사-414화 (414/703)

=============================

※ 조아라에 게시된 모든 작품은 저작권법에 의거 보호받고 있습니다 ※

※ 저작권자의 승인 없이 작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복제, 전송, 배포 및 기타의 방법으로 이용할 경우,손해배상 청구를 포함해 강력한 민/형사상 처벌대상이 됩니다. (5년 이하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부과) ※

정보전

처음에 잡은 넷. 주변을 정리하면서 잡은 열 놈. 그리고 마지막에 잡은 아홉. 합이 스물셋.

벙커 안으로 들이려다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서 그냥 비행장 바깥에다가 쭉 늘어놓은 놈들.

어휴. 많네. 너무 신나게 잡아 왔나 봐.

기억 읽기를 시작해야 하는데 너무 막막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런 건 다른 놈이 한 다음 딱 종이 한 장으로 정리해주면 좋겠는데. 후우. 언제나 발품 파는 건 내 몫이지.

누워있는 짱개들을 보면서 살짝 불안감을 느낀다.

한 놈이라도 입의 테이프가 풀리면 바로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

평소라면 바로 처리하고 죽여버리니 괜찮지만…. 지금은 숫자가 너무 많다.

좀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겠어.

일단 스물 세 명 중 여자가 넷. 남자가 열아홉.

지금 완벽하게 스킬로 제어할 수 있는 인원은 내가 수면으로 일곱, 고성연과 최신영의 매혹으로 여덟. 합이 열다섯.

남자 놈 넷은 죽여야겠어. 혹시 모르잖아. 불안하니까.

남자 열아홉의 기억을 빠르게 읽는다. 숫자가 많으니 잠깐 읽는 것도 상당히 빡쎄네.

키워드는 소속과 직위. 자신의 계급, 스킬 숫자.

열아홉 중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놈을 넷 추려냈다. 말 그대로 말단인 놈들. 크게 아는 것이 없는 놈들.

스킬 개수가 적을수록 계급이 낮다. 뭐…. 그건 당연하다고 본다.

스킬이 다섯 개인 놈 하나랑 여섯 개인 놈 하나. 일곱 개인 놈 둘.

당첨된 녀석들을 다른 짱개 위에 올려놓고 마체테로 찍는다.

짱개 넷은 빛이 되었고 다른 짱개놈에게 코인이 합쳐진다.

코인은 나중에 한꺼번에 먹어야 해. 승미세안이랑 파티 맺고 한 번에.

좋아. 이제 좀 안심이 된다.

혹시나 테이프가 풀려도 이젠 상관없지. 그럼…. 기억 읽기를 해보자.

"너희 둘은 계속 가서 자. 졸린 데 깨워서 미안."

"아니에요."

"별말씀을요."

사근사근하게 대답하고 내가 열어둔 게이트를 통해 벙커 안으로 돌아가는 두 여자.

사실 이젠 필요가 없는 여자들인데.

당장 죽여도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여자들이다.

기억 읽기가 생긴 이상 저 여자들을 더 살려둘 필요는 없다.

하지만 왜 남겨두고 있을까? 나도 모르겠다. 별다른 이유가 없는데. 내가 물러터지게 된 건가.

어쨌든 저 여자들은 일단 놔두자. 좀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살려두면 쓸모가 있는 일이 있을 수도 있겠지. 아니…. 내가 살려둘 이유를 찾고 있는 걸지도.

약간 쌀쌀한 밤공기를 느끼며 기억 읽기를 시작한다.

얻어내야 할 것들은 많다. 얼마나 많은 기억을 읽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부디 들인 시간 만큼 얻어내는 게 많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기억 읽기를 하는데 꼬박 하루를 썼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무리 불면증이 있다고 해도 피곤은 느끼니까.

기억 읽기라는 건 뇌를 풀로 혹사하는 작업이다.

아무리 고르고 골라 기억을 읽는다고 해도 받아들이는 정보의 양이 원체 많으니 뇌가 기긱기긱거리는 느낌이 난다.

게다가 기억 읽기를 하면서 포션까지 잔뜩 먹었더니 상태는 더 말이 아니다.

어우 죽겠네. 뒤지겠어.

진짜…. 서 있는데도 몸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이대로 있다간 진짜 뭔가 고장 날 것 같은 느낌이야.

어쨌든 기억을 다 읽었으니 이 짱개놈들은 필요 없다.

꼬박 하루를 묶어놔서 그런가 아무렇게나 찍찍 똥오줌을 싸놓은 짱개들.

그럴 때마다 바닷물을 들이 부어줘서 냄새는 안 나는데…. 정말 더 보고 싶진 않다.

바로 네 여자가 있는 벙커로 돌아가 전부 파티를 맺은 다음 다시 비행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아. 칼로 쳐 죽이기도 힘들어. 그냥 편하게 죽이자. 편하게.

비행으로 하늘 높이 올라가 공중을 저장했다.

그리고 내려와서 누워있는 놈들의 밑에다가 게이트를 열었다.

게이트로 빠지는 놈들. 그리고 저 높은 하늘에서 떨어져 바닥에 처박힌다.

콰직

한 놈이 떨어질 때마다 끔찍한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 퍼졌다.

소리가 좀 거슬리긴 하지만 어차피 죽으면서 피는 사라지니 이게 가장 깔끔한 방법이야.

힘도 안 들고.

그렇게 모든 짱개들이 한자리에 떨어져 죽었고, 바닥엔 단 한 개의 코인 주머니만 놓이게 됐다.

떨어진 놈들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코인을 먹고 바로 죽었기에 한 개로 합쳐진 코인.

[554,320 코인을 획득했습니다.]

음. 55만? 지금 5로 나뉜 거니까 275만? 한 놈당 대충 12만 정도인가. 생각보다 적네.

그래도 뭐…. 나름 괜찮네. 암튼 됐어. 이제 정리도 됐으니 가서 좀 자야겠다.

더는 버티기 힘들 것 같다. 혹시 지금이면 누워서 스르륵 잘 수 있지 않을까?

집으로 돌아가자 네 여자는 내 상태를 보고 빨리 자라고 독촉한다.

어휴. 그 정도야? 그렇게 엉망으로 보이나?

옷을 훌훌 벗고 따듯한 물로 한참을 샤워했다.

자. 이 정도 했으면 잘 수 있겠지? 그치? 빌어먹을 불면증 새끼야. 한 번만 좀 봐줘라.

그렇게 나오니 침대에 승희가 누워있었다.

씻고 나온 나를 보더니 씨익 웃으며 나를 향해 팔 벌리는 승희.

아…. 정말. 승희 너는 천사야. 미치겠어. 정말.

그렇게 침대에 누워서 바로 승희를 끌어안았다.

익숙한 살 냄새. 향긋한 샴푸향.

그렇게 나는 바로 잠이 들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정말….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이런 적 몇 번 없는데. 역시 승희 파워는 대단해.

스킬 없이 자연스럽게 잠든 데다가 이렇게 깔끔한 아침이라니.

덕분에 머리가 상쾌하다. 마치 자는 동안 뇌를 꺼내서 차가운 물에 벅벅 씻은 것 같은 기분이야.

좋아. 지금 이런 좋은 컨디션일때 어제 기억 읽은 걸 정리해야지.

어제 있었던 일.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결국은 간단했다.

공격한 놈들은 파룬궁. 그러니까 이놈들의 말대로 한다면 파룬 다파.

방어한 놈들은 역시나 짱개. 공산당.

이놈들의 기억에서 읽은 정보를 토대로 하면 파룬궁은 별도의 직위나 계급이 없다.

그냥 다 같은 수련자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 수련자 중에도 결국 중요한 놈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게 어제 갇혀있었던 다섯 명. 남자 셋에 여자 둘.

얼마나 중요하냐면…. 스킬 사용 불가 지대에 뛰어들어가 구출을 감행해야 할 정도였다.

원래는 자금과 조직을 관리하던 간부들이었던 놈들.

이제는 자금이 필요 없게 됐지만, 조직 구성원, 아지트와 안가 같은 곳을 모두 아는 중요인사였기에 무조건 구출해야 했다.

매혹과 기억 읽기가 있는 세상이다. 알고 있는 정보는 바로 추출하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

그렇기에 잡히자마자 바로 구출하러 온 거였다.

계획이 조금 허술해 보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어쨌든 녀석들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자신들의 정보가 적어도 공산당에 퍼지진 않았으니까.

다만 구출도 실패했다. 엄하게 끼어든 나 때문에.

그 다섯이 알고 있던 정보는 내가 다 적어놓긴 했다. 그리고 공산당 놈들이 알고 있던 정보들도.

문제는 이름이 짱개어라 정확하지 않다는 것? 지명도 거지 같다는 것? 그래서 쉽게 매칭이 안 된다는 것?

사실 이 정보는 크게 필요 없다. 나는 이들이 서로 싸우기를 원하니 굳이 파룬궁을 먼저 쳐죽일 필요는 없다.

게다가 파룬궁 녀석들은 곧 조직적인 공세에 나선다는 정보도 있었다.

물론 간부가 죽어서 좀 더디게 될 수도 있겠지만 이놈들이 간부의 전부는 아니다.

이런 놈들이 스무명은 더 있다고 하니 뭐…. 알아서 잘 하겠지.

결국은 정보를 많이 얻긴 했지만 당장 써먹을 획기적인 정보는 없다.

차라리 조금 기다렸다가 서로 치고받고 한 다음에 약해진 녀석들의 뒤통수를 치는 게 낫지.

그렇게 대충 정리하고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또 안나 무릎 위에 엎드려 있는 고양이.

그리고 그런 안나와 주변에 바짝 붙어있는 승희, 미나, 세아.

"걔는 왜 매번 안나 무릎 위에 앉아있냐?"

"잘 잤어요?"

"일어났어요? 배고프죠?"

"몰라. 안나가 좋은가 봐."

"자꾸 저한테 안기네요."

각자 한마디씩 하는 여자들. 그리고 미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왜? 어디가?"

"아. 밥 차리려고요."

"아냐. 당장 배고픈 거 아냐. 조금 이따가 먹자. 조금 뒤면 점심 먹을 시간이잖아."

"아. 다들 조금 아침을 늦게 먹어서요. 점심은 안 먹을 거 같은데요. 배고픈 사람 있니?"

미나가 물어보자 승희와 세아, 안나는 모두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래? 그럼 나도 간단하게 먹지 뭐. 내가 적당히 꺼내 먹을게. 굳이 안 차려 줘도 돼."

"그래도."

"괜찮아. 굳이 번거롭게 안 그래도 돼."

"그래요…. 알겠어요."

그냥 달라고 할 걸 그랬나? 왠지 미나의 표정이 아쉬운 표정인데.

"아 참. 우리 슬슬 음식이 바닥을 보여요."

"아. 그런가. 하긴 안 간 지 꽤 됐구나. 가서 음식도 더 가져와야겠네."

"근데 그거 정말 2주 치 식량이었어요? 아무리 봐도 2주 치 식량은 아니었어요."

"거기 이모님이 손이 좀 크지. 게다가 너희들이 덜먹는 것도 있고."

"게다가 회귀 때문에 군것질도 많이 하고요."

"그래. 그랬지."

"진짜 밥 안 먹어도 돼요?"

"어. 괜찮아. 가서 고양이 봐."

잠시 머뭇거리더니 미나는 다시 고양이한테 간다.

어휴. 그정도로 좋나.

"세아야. 근데 너 테이밍 숙련은 어떻게 하냐?"

"아…. 그거."

"설마 지금까지 테이밍 숙련 하나도 안 한 거 아니지?"

"아니 그게….“

어휴. 요 가스나. 고양이에 정신 팔려서 숙련이고 뭐고 손 놓고 있는거야?

"자꾸 그러면 내가 실망하지 않겠니?"

"근데! 다른 동물을 테이밍 하면 루시가 테이밍이 풀리잖아!"

"나중에 다시 하면 되잖아.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니고."

"그게 그렇긴 한데…."

"니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건 뭐라고 안 하는데 할 건 하면서 하자. 너 아직 테이밍 스킬 효과도 다 안 알아봤잖아?"

"으…. 알겠어."

그래. 뭐 이런 거로 다그칠 생각은 없다. 적당히 환기만 시켜주면 되니까.

지금은 고양이에 눈이 뒤집혀있어서 그렇지 미련한 여자는 아니잖아.

"아. 미나야. 역병 상황은?"

"역병요? 잠시만요."

역병 패널을 확인하는 미나.

"공기 감염은 75만을 넘었어요."

"75만? 뭐야. 갑자기 왜 그리 많이 늘었지?"

"아뇨. 오히려 느려지고 있죠. 원래 수치라면 훨씬 더 많이 늘어야 했는데."

"아. 그런가. 음…."

"어제까지는 확 늘었다가 지금은 주춤하고 있어요. 제가 숫자 체크해 놓은 거 있는데 그거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그래? 왜 줄었지? 그만큼 죽는 게 많아져서 그런가?"

"제 생각엔 그 봉쇄된 지역 때문인 거 같아요."

"아아…. 그 지역에서 걸릴 놈은 다 걸린 건가?"

"네. 한 지역은 이미 다 걸릴 만큼 걸린 거 같고, 지금 늘어나는 숫자는 옆 지역에서 새로 퍼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일리 있네. 그거 역병이 퍼지는 걸 딱 보고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 맞다. 그럼 내가 걸렸을 수도 있는 거네."

"오빠는 이미 어제 들어왔을 때 질병 해제 많이 걸었어요."

"벌써? 부지런하네."

"혹시 모르니까요. 오빠 열 있어요?"

"열? 없는 거 같은데?"

미나는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온다. 그리고 내 이마에 손을 짚었다.

고개를 한번 갸웃하더니 자신의 이마를 한번 만져보고는 내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댄다.

"열은 없는 거 같네요. 소화가 안 되고 그런 건 없죠?"

"어. 근데 오늘은 뭐 먹은 게 없어서 모르겠네."

"괜찮겠죠. 질병 해제는 걸었으니까. 체온계가 있으면 좋겠는데."

"아. 체온계? 나갔다 오면서 몇 개 주워오지 뭐."

"어디 나가요?"

"밥 가지러 가야지."

"아."

펜스도 펜스지만 여기저기 한번 둘러보고 오긴 해야겠다.

당분간 짱개는 그냥 놔두는 게 답이다.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엉망진창이 될 것 같으니까.

그동안 짱개들 잡느라 소홀했던 것들 좀 이번 기회에 싹 정리해야지.

민희도 보러 가고.

아…. 민희가 화 좀 낼 거 같은데. 너무 안 갔어. 큰일이네. 선물이라도 준비해야 하나.

"또 필요한 거 있어?"

"아뇨. 그런 건 없어요. 근데 지금 바로 나갈 거예요?"

"아마도?"

"오래 걸려요?"

"글쎄.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네."

"파티 걸고 갈 거예요?"

"아마 페이즈 아웃 쓸 일이 있을 테니 안 걸고 갈 거 같은데."

"그럼 너무 늦지는 마요. 오래 걸려도 잠깐씩 왔다 갔다 해줘요."

미나가 나를 보며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느새 승희와 세아, 안나도 나와 미나를 바라보고 있다.

"알았어. 걱정 안 되게 할게."

"네."

그러면서 이쁘게 웃는 미나.

어휴. 살짝 찔리네. 미안하게시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