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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승희와 미나, 세아가 갑작스럽게 나에게 살랑거리기 시작한다.
못된 가스나들. 아까는 내가 하는 말 들은 척도 안 해놓고선.
다들 두고 봐. 복수할 거야. 짜식들아.
그렇다고 꽁해서 안 들어줄 수도 없으니 그냥 빨리 해결하러 간다.
바로 벙커 근처 시내에 있는 동물병원을 쳐들어갔고 세아는 필요하다 싶은 것들을 죄다 수납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필요한 것을 전부 챙긴 뒤 게이트를 타고 벙커로 돌아갔다.
오자마자 승희와 미나, 세아는 바로 고양이를 목욕시킨다고 요란을 떨기 시작했다.
테이밍 된 고양이라서 그런가? 순순히 목욕을 당하는 모습.
아깝다. 쌩난리를 피웠어야 했는데.
세 여자가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있는 틈을 타서 내 곁에 꼭 붙어있는 안나.
그렇게 좋을까? 내 손을 꼭 잡은 그녀는 슬그머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독점 찬스를 쉽게 놓치지 않는 모습. 역시 똑똑하다니까.
세 여자는 목욕시킨 고양이를 보며 귀여워 죽겠다고 난리를 핀다.
뭐, 씻겨 놓고 나니까 쫌 볼만하네. 여전히 벙커 안에 고양이가 들어와 사는 것은 별로 안 내키긴 하지만.
테이밍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고양이는 고양인가 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구석탱이로 들어간다. 그걸 보고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그저 안절부절못하는 세 여자.
"테이밍 한 거잖아. 나오라고 하면 나오는 거 아냐?"
"아! 맞다! 그렇지!? 루시야. 나와."
세아가 말하자 고양이는 영 맘에 안 든다는 듯 슬금슬금 밖으로 나온다.
그러더니 승희와 미나, 세아를 슬쩍 바라보고는 나와 안나 쪽으로 사뿐사뿐 걸어온다.
소파에 앉아있는 안나도 그걸 바라보는 세 여자도 그저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고 지켜보고만 있는 상황.
고양이는 그런 건 알 바 아니라는 듯 살포시 뛰어오르더니 안나의 무릎 위로 올라와 몸을 말고 엎드렸다.
"루…. 루시!"
이게 뭐야. 크크크. 주인은 저기 있는데 엄한 안나한테 와서 이러냐. 크크크크.
차마 어쩌지도 못하고 세 여자가 전전긍긍하는 사이 안나가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고양이 특유의 머리 비비는 동작으로 안나의 손에 머리를 가져다 대는 고양이.
아. 이거 웃기네. 특히 세아의 세상 무너진 듯한 표정이 제일 웃겨.
"귀엽네."
안나에게 악의는 없을 테지만, 왠지 지금은 약간 놀리는 느낌이다.
"세아. 이리와."
안나가 다시 말하자 세아의 표정이 밝아진다. 하긴 뭐 고양이를 뺏긴 것도 아니잖아.
고양이가 놀랄까 봐 조용히 다가온 세아가 안나의 무릎 위에 편안하게 엎드린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으으으."
좋아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세아. 그걸 보더니 승희와 미나도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나는 그녀들에게 자리를 슬쩍 비켜줬다. 세 여자는 그렇게 옹기종기 모여서 고양이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한다.
되게 귀찮은 표정인 거 같은데 또 안나 무릎에서 떠나진 않네. 저 새끼 저거 수컷인가?
"그럼…. 적당히 하고 자. 나는 잠시 나갔다 올게."
"다녀와요."
"조심히 다녀와요."
"어. 잘 다녀와."
"다녀오세요."
안나만 나를 바라보고 웃으며 말해줬고, 세 여자는 고양이에 정신이 팔려 바라보지도 않는다.
괘씸한 가스나들. 두고 봐라. 흥.
순간이동을 해서 베이징 근처로 이동했다.
EMP가 생겼으니 바로 써먹어 봐야지.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지.
근데 문제는 발전소의 위치를 모른다는 것. 그렇기에 발전소의 위치를 확인하러 가야 한다.
누가 알고 있을까? 당연히 공산당 간부 같은 놈들은 알고 있겠지?
하지만 간부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간부를 찾아다니기도 힘들고.
지난번에는 비상상황이라 관공서에 늦은 시간까지 인간들이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것 같지도 않다.
이놈들도 출퇴근은 하니까.
뭐, 근데 그렇게 윗대가리들의 기억을 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발전소는 상당히 큰 건물이다. 일반인들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다.
일단 탐지에 걸리는 놈들의 기억을 하나씩 뒤져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기억 읽기 숙련도 하고 좋네.
비행으로 근처의 좀 좋아 보이는 아파트로 들어갔다.
그리 높진 않은 아파트. 한 5층 되는 거 같다. 그럼 이건 아파트가 아니고 맨션이라고 해야 하나?
암튼 그런 건물 옥상에서 탐지를 돌린다.
층층별로 보이는 짱개들. 탐지를 돌린 상태에서 조건을 바꾼다. 남자. 탐지로 잡히는 인간들이 몇 명 지워졌다.
신기해. 이런 걸 이제 알았다니.
페이즈 아웃을 쓰고 밑으로 이동한다.
아파트는 좀 괜찮아 보였는데 집 안은 상당히 너저분하다. 뭔 짐이 이렇게 많아?
집안을 한 바퀴 싹 돌아보니 나이 조금 있는 부부와 젊어 보이는 아들 하나가 있다.
페이즈 아웃을 풀고 부부에게 무효화와 수면을 건다. 그리고 젊은 아들에게도 수면을 걸었다.
그리고 기억 읽기 시작. 나이 많은 남자 짱개부터 살펴본다. 키워드는 발전소.
몇 개 기억이 나오는 데 위치가 나오진 않는다. 코인은? 키워드를 코인으로 해서 기억 읽기를 해봤다.
역시 마찬가지로 나오는 게 거의 없다. 게다가 코인을 직접 먹는 기억이 아예 없네.
패스. 다음은 옆에 누운 나이 많은 여자 짱개.
역시 마찬가지. 아는 것도 없고, 가진 코인도 없다. 아들에게 가서 살펴봐도 역시 얻을 만한 건 나오지 않는다.
꽝이네.
그대로 페이즈 아웃을 쓰고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안 죽이고 가려니 기분이 조금 이상하네.
하지만 이것도 익숙해져야 한다. 코인도 안되는 놈들을 죽여봐야 이목만 끌 뿐이지 이득이 없어.
밑의 층. 여기는 비교적 나이가 어린 부부다.
역시 기억 읽기를 해본다. 여기도 둘 다 아는 게 없다.
생각보다 쉽지 않네. 발전소가 이렇게 찾기 힘든 건물이었나?
다시 아래층. 여기는 비었다. 사는 사람이 없어진 지 꽤 된 거 같다. 을씨년스러운 집안.
페이즈 아웃을 풀면 별로 좋지 않은 냄새가 날 것 같은 집이다. 그냥 내려가자. 있고 싶지도 않네.
2층. 남자 혼자 있다. 기억을 읽어보니 역시 건질만 한 건 없다. 하. 이거 왠지 방법이 잘못 된건가.
1층. 나이가 제법 있는 남자 하나와 중년 부부. 역시 꽝이다.
음. 기억을 읽은 게 몇 명 안되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안나를 줄은 몰랐네.
어쩔 수 없지. 결국, 양으로 조지는 수밖에.
주변을 돌면서 닥치는 대로 불법 침입해서 기억을 읽었다.
중간에 제법 괜찮은 여자 혼자 하나 사는 집이 있었지만, 그냥 지나갔다…. 짱개 년이랑 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발전소에 대한 정보를 얻어낸 건 거의 두 시간을 돌아다닌 뒤였다.
발전소 근처의 건물에서 일했던 기억이 있는 남자.
그 남자의 기억을 제법 들여다본 끝에 대략적인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좋아. 그럼 가보자.
남자의 기억을 따라 길을 나서본다. 근데…. 위치가 조금 이상하다.
이쪽은 베이징 시내 쪽 아냐? 시내 한가운데 발전소가 있어?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일단 가본다.
그리고 결국 도착한 곳. 발전소 비슷한 건물인 거 같은데 뭔가 조금 이상하다.
아무리 봐도 운영을 안 하는 것 같은데?
아. 답답하네. 기껏 찾아서 왔더니 운영을 안 해?
아니, 발전소를 왜 운영 안 하지? 그럼 전기를 어떻게 생산해?
탐지를 돌려서 근처에 있는 인간들을 찾아본다. 음. 적당히 있네.
하나하나 찾아가서 기억을 읽었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면서 기억을 읽어본 결과 대략적인 상황을 알게 됐다.
여기 발전소는 열병합발전소. 석탄을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 곳.
근데 한점 전에 대기오염을 이유로 가동을 중지해버렸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거의 운영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씨발…. 짱개놈들이 언제부터 대기오염에 신경 썼다고.
발전소를 찾아서 EMP로 셧다운 시킨 다음 주변이 모두 어둠에 잠기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 생각보다 번거롭네. 이런 계통을 잘 알고 있으면 이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타인의 기억에만 의존해서 뭔가를 하려니까 드럽게 어렵네.
EMP 쑈는 조금 미뤄둬야 하나? 으음….
다시 공중으로 떠올라 베이징을 내려다본다.
이 도시 어딘가에 녀석들의 가장 윗대가리 놈들이 있을 텐데.
차라리 거기를 바로 습격해? 근데 나는 그놈들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그리고 그건 기억 읽기로도 알아내기 쉽지 않겠지?
핵심 인물들이 아니라면 아는 게 별로 없을 거고, 핵심 인물이라면 경호가 있을 테니까.
후우. 일단 오늘은 돌아가자. 벌써 새벽 다섯 시다. 곧 있으면 해가 뜨고 깨는 놈들이 많아질 거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하자. 그래도 역병은 잘 퍼지고 있으니까.
역병이 얼마나 퍼질지는 모르겠지만 하나하나 해보면 되겠지.
그렇게 사흘이 지나갔다.
낮에는 SG 센터로 가서 사냥하고 밤에는 중국을 돌아다니면서 기억 읽기를 한다.
짜증 나는 건 생각보다 발전소나 고위 간부 같은 놈들의 정보가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것?
아무래도 엄한 놈들의 기억을 뒤지고 있는 느낌이야.
전혀 핵심 인물들 쪽으로 접근을 못 하는 느낌.
그나마 다행인 건 기억 읽기 숙련도가 오르고 있다는 거다.
에휴. 기억 읽기도 빨리 마스터를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 그리고 다행인 건 하나 더 있다. 미나의 역병이 미친 듯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하루에 네 배씩 팍팍 퍼지고 있는 역병.
지금은 거의 20만에 가까운 짱개들이 역병에 걸렸다. 진짜…. 무시무시한 전파력이야.
근데 20만이라고 하면 엄청 많은데…. 이놈들의 총인구를 생각하면 아직도 찔끔 이다.
그래도 잘 퍼지고 있으니까 괜찮겠지. 이정도 기세면 금방 감염 인구도 팍팍 오를거고.
또다시 밤.
적당히 베이징 밤거리를 돌아다녀 본다.
생각보다 조용한 곳. 이쪽은 상당히 조용한 편이다. 상수도 테러를 당했을 텐데.
생각보다 효과가 없나? 더 공격해야 하나?
근데 그것도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졌다. 일단…. 이 땅은 너무 커. 인간도 너무 많고.
뭐든지 쉬운 게 없다. 그냥…. 한쪽 구석부터 싹 다 전멸시키면서 전진할까?
그렇게 기억 읽기를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자정이 되었을 무렵.
하늘을 날아가는데 뭔가가 기척에 걸렸다.
다섯 명의 인원. 한쪽으로 날아가는 기척들.
뭐지? 지급 파견대 같은 놈들인가? 근데 이 시간에?
호기심이 생겨서 녀석들을 따라가 봤다.
뭐 하는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적어도 녀석들의 본부 같은 곳을 알아낼 수 있겠지.
그렇게 따라가는데 녀석들은 어느 한 곳에 도착하더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늘? 왜?
계속해서 올라가는 녀석들. 으슬으슬한 곳까지 올라간 녀석들은 주섬주섬 두꺼운 옷을 껴입는다.
아. 나도 입을까? 추운데?
조금 멀리 떨어진 다음 오랜만에 하이바와 침낭을 두르고 다시 녀석들 근처로 이동했다.
탐지거리가 550미터라 눈으로는 잘 안 보여도 녀석들의 기척은 확실하게 알 수 있어.
그렇게 보고 있는데…. 바로 밑 지상에서 붉은색 커다란 원이 생겨났다.
어? 저건?
저건 분명히 그거랑 비슷하다. 미나가 썼던 우레 폭풍의 전조.
아무리 봐도 그거다. 다만 색이 붉은 색일 뿐.
방금 본 녀석들의 위치. 그리고 바닥에 생겨난 커다란 원. 붉은색.
머릿속에서 뭔가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깜짝 놀랐다. 이건 설마….
내가 있는 위치를 확인해본다. 빨간 원 바깥이네. 그럼 괜찮겠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계를 바라봤다. 앞으로 20초. 20초 뒤면 확인할 수 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저 밑에서 하늘을 나는 기척이 보인다. 점점 위로 올라오고 있는 기척.
하늘에 있던 녀석들은 아직 모르나 보다. 아직도 한자리에서 뭉쳐있다.
서로의 위치를 모르는 녀석들. 앞으로 10초.
그리고 밑에 있는 놈들이 위에 놈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위에 있는 놈들도 밑에서 올라온 녀석들의 기척을 발견한 거 같다.
잠깐의 탐색.
앞으로 5초.
밑에 있던 다섯 명. 녀석들의 모습이 일제히 사라졌다.
4초.
위의 놈들 바로 앞에 나타난 놈들.
3초.
이 느낌은 진동파. 내가 상당히 멀리 있는데도 그 기운이 느껴진다. 하지만 거리가 꽤 돼서 그런지 큰 여파는 없다.
2초.
위에 있던 놈들도 전부 보호막을 두르고 있었는지 아무런 피해가 없다.
1초.
번개 하나가 밑에서 올라온 놈에게 떨어졌다. 어우. 아프겠네. 근데 죽거나 떨어지진 않는다. 데미지 감소인가?
그리고…. 위에 있던 놈들의 더 위쪽.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거대한 운석 덩어리들이 지면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